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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기 - 전10권 세트 ㅣ 대산세계문학총서
오승은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3년 7월
평점 :
품절
중국뿐 아니라 한국 일본을 포함한 동양 3국에서 고전 서유기의 인기는 엄청나다. 어린이를 위한 각색본 뿐아니라 영화와 만화로 나온 것들의 수를 헤아려 보면 알 수 있다. 1달 쯤 전 일요일 11시 쯤에 서유기라는 책 자체를 없애려는 마왕들에 대항하여 손오공 및 그 일행들이 미국인 학자와 함께 서유기와 저자 오승은을 구하는 영화를 방영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서유기를 번역한 임홍빈 선생의 지적에도 있듯이 원본을 감상한다는 관점에서 서유기 만큼 우리나라에서 푸대접을 받은 책도 없을 것이다. 70년대에 정음사에서 완역본이 나오고 80년대 절판된 이후로 국내 작가들이 만든 새로운 완역본은 없었다. 국내 최고의 작가 두분이 일으킨 최근의 삼국지 출간 붐과 비교해 보아도 그렇고, 고우영 화백의 만화들이 재출간되고있는 시점에 고우영판 서유기는 유독 소식이 없는 것을 봐도 그렇다.
나의 서유기 이력은 70년대 어깨동무라는 어린이 잡지에서 번역되어 나온 손오공이라는 일본만화에서 부터 시작된다. 어린이 풍의 귀여운 그림체였기는 하나 스토리상으로 상당히 원전에 충실한 만화였다. 천상과 천하를 종횡 무진하는 손오공과 동료들의 모험은 소년을 서유기의 세계에 푹빠지게 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그 후로 아버지의 서재에 정음사판 완역 서유기를 발견하여 원본을 읽게 되었다. 우리나라 무협의 시조로 알려진 김광주 선생의 노작이었다. 불교와 도교를 아우르는 동양적 세계관을 접할 수 있었고 한문과 함께 제시되는 한시에서 우러나오는 동양적 풍경은 또 다시 나에게 무궁무진한 꿈을 꾸게 만들어 주었다.
하지만 대학 시절 아버지께서 오래된 책을 정리하면서 정음사 서유기를 함께 없애버리시고 말았다. 그후로 계속 연변에서 번역된 서유기를 사보기도 했으나 왠지 모자라는 느낌이 많이 들었다. 할 수 없이 헌책방을 뒤져 정음사판 서유기 상중하 중 상권과 하권을 찾아내기도 하였다.
그런 마당에 새롭게 만난 서유기는 정말 나를 기쁘게 했다. 당장에 10권 한질을 구입하여 즐겁게 읽고 있다. 이 기회에 우리나라에도 서유기 원전을 읽는 사람들이 많기를 바란다. 사실 나는 우리나라 독자들이 삼국지에 지나치게 열광한다고 생각한다. 고등학교적 책 좀 읽는다는 친구들 사이에서는 삼국지를 몇번 읽었다고 서로 자랑하는 일이 가끔 벌어지곤 했다. 삼국지에 나오는 영옹호걸의 이야기가 재미있기는 하나 민심을 등에 업고 정권을 잡기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모습은 작금의 현대 정치인들과 다를 바가 없다. 사실 궤변적으로 말하자면 현재 우리나라 정치인들의 작태속에 삼국지의 영향이 없을 수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반면에 서유기에서 손오공이 보여주는 반역과 자유, 당 삼장의 구도심과 대중 구제의 자비심은 삼국지에 흐르는 정서와는 차원이 다르다. 신물나는 이 현실 속에서 진실로 찾아야 할 것은 그런 것이 아닐까.
30년 서유기의 팬으로서 서유기 완역을 위해 오랜 세월 노력해온 역자 임홍빈 선생과 문학과지성사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비록 황석영 선생이 삼국지 번역을 빗대어 노후대책이라고 할 만큼의 폭넓은 인기는 아닐지라도 나같은 열혈 팬들이 있음을 알려드리고 싶다. 다만 새 번역본에서 아쉬운 점은 정음사 판처럼 육백여수 한시의 한자 원문을 첨가하지 못하고 양장본으로 출간되지 않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