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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 제로 편 - 지혜를 찾아 138억 년을 달리는 시간 여행서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개정판)
채사장 지음 / 웨일북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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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쪽 정도 되는 두터운 이 책을 덜컥 데려온 데엔 '채사장이잖아'라는 지대넓얕 팟캐스트 시절부터 이어져 내려온 팬심이 컸다. 채사장이 '제로'부터 시작하는 이야기라니, 뭐가 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궁금했다.

힘 빼고 프롤로그를 읽기 시작했는데 읽자마자 충격적인 아기코끼리 이야기로 정신이 번쩍 들었다.
책의 앞부분에선 우주의 시작과 지구의 역사와 호모사피엔스에 대해 이야기한다. 읽으면서 난 우주와 지구와 인간에 대해 진지하게 관심을 가져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는 사실을 여실히 느꼈다.

뒤이어 1.인도의 고대 경전 《베다》, 2.노자의 도가, 3.고타마 싯다르타의 불교, 4.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을 기반으로 한 서양철학, 5.기독교에서 각각 세계를 어떻게 바라보고 자아는 무엇이라 사유하는지 살펴본다.

"위대한 스승은 수많은 시대와 장소에서 탄생했다. 그중에서 특히 경이로운 시기가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2500년 전, '축의 시대'라 불리는 시기가 도래한 것이다. 영국의 종교학자 카렌 암스트롱에 따르면 축의 시대는 인류 정신사에 거대한 전환점이 된 시기였다. 인도에서는 우파니샤드와 고타마 싯다르타가 등장했고, 중국에서는 노자와 공자가 활동했으며, 고대 그리스에서는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이, 그리고 이스라엘에서는 엘리야, 예레미야, 이사야가 태어났다. -174쪽"
(*축의 시대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사람은 독일의 실존철학자 카를 야스퍼스)

특히 인도 고대 사상을 담은 문서 《베다》의 〈우파니샤드〉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우파니샤드, 브라흐만과 아트만, 범아일여라는 말 모두가 생소했기 때문일까.
도덕 교과서에서만 봤을 뿐 제대로 접해본 적 없었던 노자와 공자 이야기도 의외로 술술 읽혔다.

"우리는 '세계관'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어떤 이들은 심지어 세계관 같은 건 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우리는 누구나 자신의 눈에는 드러나지 않는 하나의 세계관의 대륙에 발을 딛고 산다. 우리가 자신의 세계관을 들여다 보아야 하는 것은 나의 세계관이 내가 일어설 수 있는 단단한 대지를 제공해주기는 하지만 동시에 이것이 나의 한계이자 울타리가 되기 때문이다. -385쪽"

단순한 지식의 나열이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가장 근원적인 시각인 일원론과 이원론을 역사적 맥락까지 살펴 쏙쏙 들어오고 술술 읽히게 풀어낸, 채사장의 스토리텔링 능력이 빛을 발하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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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동주
안소영 지음 / 창비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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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동 주 (1917 - 1945)


주요 작품: <서시>, <별 헤는 밤>, <참회록>, <쉽게 씌여진 시>, <자화상> 

유고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자아 성찰, 저항시인.


내가 아는, 그러니까 내가 고등학교 문학 시간에 배운 윤동주는 대충 이러했다.

다른 시인에 비해 조금 인상적이었던 건 내가 줄줄 외웠던 <서시> 때문이었다. 쉽게 읽히면서도 입에 착 감기는 느낌. <서시>를 한번 외고 나면 바람이 토닥여주기라도 한 듯 마음이 잔잔해지는 듯한 기분이 좋았다.


윤동주를 다시 만난 건 일본에서 지낼 때였다. 간사이 여행 일정을 짜던 중 윤동주가 다녔던 도시샤대학교에 윤동주 시비(詩碑)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도시샤대학교에는 정지용의 시비도 있다.) 

시비에는 윤동주의 생애와 <서시>가 한국어와 일본어로 나란히 적혀 있었다. 특히 '尹東柱' 이름 석 자와 <서시>는 어쩐지 낯이 익은 그의 글씨로 새겨져 있었다. 시비 옆에는 '중요 문화재가 있으니 금연해달라'는 내용의 키가 큰 나무 표지판이 벗삼아 서 있고, 시비 앞엔 색색의 꽃이 정갈하게 놓여 있었다. 그 앞에서 나는 함께 간 일본인 친구와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사실 이 때도, 내가 아는 윤동주는 고등학교 문학 시간에 배운 모습이 거의 전부였다.


다음으로 윤동주를 만난 건 한 다큐멘터리를 통해서였다. 


MBC 스페셜: 537회 가을, 윤동주 생각 (2011.11.4)


이 다큐멘터리에는 '윤동주를 기리는 릿쿄의 모임'이라는 일본 단체가 나온다. '릿쿄'는 경성에서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한 후 도쿄로 건너간 윤동주가 다니던 대학교 이름이다. (릿쿄대학교에 다니던 윤동주는 고민 끝에 교토의 도시샤대학교로 학교를 옮기게 된다.)

일본에서 안타깝게 생을 마감한 한국 시인 윤동주를 생각하며 눈물 짓고, 그의 희미한 일본 발자취를 되살리려 노력하는 일본인들을 보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결코 우호적이지 않으며 때때로 숨이 턱 막히는 분위기에서 바다 건너 가족과 동료를, 일본의 그늘에서 벗어날 날을 그리며 잠들곤 했을 청년 윤동주. 나는 그제서야 교과서에 나오는 시인이 아닌, 나보다 앞선 시대를 살다 간 한 청년으로서 윤동주를 바라볼 수 있게 되었던 것 같다. 

일본에서 지내며 늘 잊지 않았던 '나는 한국인'이라는 자의식과 나를 둘러싼 공기에서 이따금 느꼈던 위화감. 당연히 무단통치 시절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내가 느꼈던 감정보다 더한 감정을 윤동주가 느꼈으리라 생각하면 어쩐지 더욱 가깝게 느껴졌다.


윤동주의 시에 등장하는 '육첩방'은 다카다노바바 1초메(高田馬場一丁目)일 거라는 기사를 보았을 땐 '70년 전 바바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혼자 그려보기도 했다. 

내가 걸었던 길을 윤동주도 걸었을까, 그도 하늘을 올려다보며 걸었겠지, 티 없이 맑은 하늘을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


나는 이렇게 조금씩 윤동주를 만났다. 그리고 《시인 동주》를 읽게 됐다.

《시인 동주》는 윤동주가 연희전문학교에 입학했을 무렵부터 생을 마감하기까지의 시간을 그린 소설로,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생전 윤동주의 모습을 생생히 되살렸다는 점이 인상깊다. 윤동주는 왜 창씨개명을 해야 했을까. 왜 일본으로 건너갔을까. 왜 시의 제목이 <서시>일까. 제각기 흩어져 있던 수많은 점을 선으로 이어 하나의 물결로 재현해낸 느낌이다.


소설은 1938년 '동주'와 '몽규'가 경성역에 내리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연희전문학교에 다니는 동주와 몽규를 중심으로 당시의 암울한 시대상이 묘사되다가 일본으로 건너간 윤동주의 모습이 그려진다.

시인 윤동주의 생을 그린 소설이지만 오로지 윤동주 개인에게만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은 아니다. 윤동주가 연희전문학교에 다닐 무렵은 일본의 무단통치 하에서 삼십 년이 넘는 시간이 흐르고, 핍박받은 시간만큼 조선이 무기력해져만 갈 때였다. 《시인 동주》에도 이런 시대상이 잘 나타나 있다. 치밀한 현실 및 풍경 묘사와 시대상을 잘 보여주는 단어 선택도 돋보였다.


"일본에 이어 식민지 조선도 전쟁을 위한 '국가 총동원' 체제로 본격적으로 내몰리고 있었다. 강압적인 사회 분위기를 조성하려 본국 정부가 그랬듯이, 조선 총독부는 말 많은 지식인 사회부터 길들이려 했다. 그리하여 기독교계 교수와 학자, 사업가들의 모임인 '흥업 구락부'를 불온 단체로 규정하고 회원들을 잡아들였다." (본문 99쪽)


"학교에서 돌아와 야단맞은 진규의 누나와 형도 마음이 복잡했다. 집에서 오가는 이야기와 학교에서 배우는 내용은 너무도 달랐다. 아버지가 친구 분들과 낮은 소리로 주고받는 이야기에 정의로운 울분이 담겨 있는 것은 어린 마음에도 알 수 있었다. 아버지를 수시로 찾아와 근황을 꼬치꼬치 캐묻는 형사의 눈길과 말투도 기분 나빴다." (본문 183쪽)



윤동주의 시를 그의 삶 속에서 만날 수 있다는 점도 좋았다. 윤동주는 시 마지막에 항상 날짜를 덧붙이는 습관이 있었다는데, 덕분에 어떤 맥락에서 쓴 시인가 하는 정황이 비교적 선명하다. 시에 정답은 없다지만 윤동주의 삶 속에서 그의 시를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죽음에 이르는 병과 같은 절망의 끝에 결국 동주는 닿아본 것일까. 끝없이 빠져드는 깊은 늪 속을 허우적거리다 마침내 바닥까지 내려갔을 때, 거짓말처럼 고요히 몸을 떠오르게 하는 부력의 그 순간을 느낀 것일까. 동주의 새로운 시는 맑고도 담담했다." (본문 172쪽)



이렇게 담담히 책장을 넘기던 나는 어느 순간부터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다.



"동주가 감옥에서 풀려나올 날짜는 1945년 11월 30일이고, 몽규가 풀려나 자유를 얻게 될 날은 1946년 4월 12일이다." (본문 280쪽)


"만 이십칠 년 이 개월이 채 못 되는 삶. 동주가 태어날 때부터 조국은 남의 나라 식민지였다. 아무런 근심 없이 한번 싱그럽게 웃어 보지도 못했고, 어떤 일을 마음껏 좋아해 본 적도 없었다." (본문 297쪽)



그리고 1945년 2월 16일이 묘사되기 시작하는 장면에서 나는 얼마간 책장을 넘기지 못했다.

"만 이십칠 년 이 개월이 채 못 되는 삶. 동주가 태어날 때부터 조국은 남의 나라 식민지였다. 아무런 근심 없이 한번 싱그럽게 웃어 보지도 못했고, 어떤 일을 마음껏 좋아해 본 적도 없었다." (본문 29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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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 것인가 - 힐링에서 스탠딩으로!
유시민 지음 / 생각의길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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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 것인가'


몇 년 전, 삶의 방향을 고쳐먹어야 하나 하는 회의가 들 때 내 머릿속을 들들 볶아댔던 문장이다. 

때마침 내 고민과 똑같은 제목의 책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읽어야지, 읽어야지 생각만 하다가 몇 년이 지난 뒤에야 겨우 손에 들었다. 큰 고민이 한 차례 지나갔지만 요즘도 '어떻게 살 것인가'란 질문을 스스로에게 심심치 않게 던진다.


이 책은 정치에 몸담았던 사람이 쓴 정치 회고록이 아니다. 정치인 유시민이 아닌 평범한 작가 아저씨 유시민이 쓴 책이다. 저자 본인의 경험에 인문학을 섞어 어떻게 살면 좋을지를 소신껏 이야기하는 '인문 에세이'로, 저자의 삶을 말하는데 떼려야 뗄 수 없는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에피소드가 읽는 재미를 더해준다. 문장은 무게 잡지 않고 상냥하니 혹여 내용이 무거울까 봐 독서를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면 지금 바로 읽어보아도 좋을 듯하다.


나는 최근에 외삼촌을 떠나보냈다. 여태껏 경험한 죽음 중 가장 가까운 이의 죽음이었다. 저자가 자신의 장례식을 이야기하는 마지막 부분을 읽으며 정신이 번쩍 들었던 건 그런 이유에서였으리라. 저자가 치는 장단에 맞춰 덩달아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생각하다 보니 내일 당장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가 보이는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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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술사
파울로 코엘료 지음, 최정수 옮김 / 문학동네 / 200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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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속삭임에 귀 기울이는 방법



소설 《연금술사》는 보물을 찾아 나선 양치기 소년 산티아고가 여행하며 자아를 찾아가는 이야기다. 꿈에서 본 피라미드를 찾으러, 꿈에서 들은 ‘당신이 여기(피라미드)에 오면 숨겨진 보물을 찾게 될 것’이라는 말을 따라서 험난한 순례길에 나선 산티아고는 다양한 사건에 휘말린다. 그리고 매번 선택 앞에서 갈등하고 방황한다. 그럴 때마다 올바른 길을 알려주는 ‘표지’가 나타나 산티아고의 선택을 돕는다.


《연금술사》를 읽다 보면 ‘표지’라는 단어가 수없이 등장한다. ‘나아갈 방향을 알려주는 단서’ 정도로 설명할 수 있겠다.


“난 어떻게 미래를 짐작할 수 있을까? 그건 현재의 표지들 덕분이지. 비밀은 바로 현재에 있네. 현재에 주의를 기울이면, 현재를 더욱 나아지게 할 수 있지. 현재가 좋아지면 그다음에 다가오는 날들도 마찬가지로 좋아지는 것이고.”


언뜻 ‘표지’는 신호등의 빨간 불이 초록 불로 바뀌는 것처럼 겉으로 드러나는 현상만을 가리키는 듯도 하다. 파울로 코엘료는 나아가 이렇게 썼다.


“그대의 마음에 귀를 기울이게. 그대의 마음이 모든 것을 알 테니. 그대의 마음은 만물의 정기에서 태어났고, 언젠가는 만물의 정기 속으로 되돌아갈 것이니.”


즉 현재에 주의를 기울이라는 것은 내 마음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뜻이고, 내 마음에 귀를 기울여야 비로소 표지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화내도 괜찮아, 울어도 괜찮아, 모두 다 괜찮아》(크리스토프 앙드레 저, 다른세상)에서는 ‘자각’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자각이란 은연중에 불청객같이 자기 안으로 쳐들어오는 마음을 통해서 내적 세계와 삶을 자각하는 것을 말한다. …… 겨울 하늘에서 홀로 반짝이는 별을 보거나 아무도 없는 길거리에서 새삼 느껴지는 발자국 소리에도 자각 경험을 할 수 있다. 존재감을 상실한 채 반쯤 찢겨진 상태로 벽에 붙어 있는 포스터도 우리에게 자각의 계기를 만들어 준다. 이처럼 자각 경험은 곳곳에서 일어날 수 있다.”


그렇다.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의 대화 소리, 도로변에 붙은 짤막한 광고 현수막, 외국어 공부를 하면서 접하는 문맥 없이 생뚱맞은 문장에서도 우리는 마음이 걸어오는 말을 들을 수 있고, 내 마음을 자각할 수 있다.


사실 산티아고가 보물을 찾는 여정은 끊임없이 갈등하고 선택해야 하는 우리네 인생살이와 닮았다. 우리는 자신의 마음에 온전히 집중하기 어려운 시대를 살고 있다. 일, 가정, 자기계발……. 신경 써야 할 일은 많고, 이 와중에 홍수처럼 흘러넘치는 정보들은 우리를 더욱 지치게 한다. 뒤집어 이야기하면, 산티아고가 표지를 따름으로써 마침내 자아라는 보물을 찾았듯이 우리도 마음의 속삭임에 귀 기울이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정한 행복과 만족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이 소설을 쓴 파울로 코엘료는 세계적으로 인기 있는 브라질 작가로, 국내에서도 수십만 명에 이르는 고정독자를 거느리고 있다. 하지만 그 명성만큼이나 호불호가 극명히 갈리는 작가이기도 하다. 당장 《연금술사》만 생각해봐도 단순한 구성과 철학적 통찰로 인간의 내면을 파고드는 명작이라는 평이 자자하지만, 밋밋한 구성에 보기 좋은 말만 늘어놓았다는 혹평도 만만치 않다. 이렇게 평이 엇갈림에도 무명작가에 가까웠던 파울로 코엘료를 세계적인 작가 반열에 올려놓은 소설 또한 《연금술사》다. 어찌 되었든, 매 순간에서 ‘표지’를 발견하는 산티아고를 따라가다 보면 저절로 마음의 속삭임에 귀 기울이는 방법을 깨우치게 되는 작품임은 분명하다.


이제 당신의 차례다. 앞만 보고 달리느라 지쳤다면, 내 마음의 소리를 듣고 싶은데 방법을 모르겠다면 이 책을 한번 읽어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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