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데요?"
"돈은 반드시 전신환으로 보내야 한다는 것."
외할머니는 오르골 같은 소리로 웃었다. - P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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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 생각하면 과연 아베와 구로다가 시행한 통화정책/재정 부양콤보의 진짜 목적이 무엇이었는가에 대해 많은 사람이 내렸던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이들은 일종의 경제적 ‘환각 상태‘를 만들어 그 에너지로 2013년 7월 21일 참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이 압승할 수 있게 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 선거를 이기기만 하면 자민당은 헌법을 뜯어고치고 전체주의 정권을 세우는 데 필요한 과반을 상하 양원에서 모두 차지하게된다. 그 전체주의 정권은 일본을 일류 국가로 재정립하는 데 필요한 일필요하다면 경제 개혁도 포함해서)에 반대하는 세력을 잠재울 합법적이고도 강제적인 권력을 갖게 된다. - P5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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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일본이 왜 1930년대에 벌어졌던 일들에 대해서 독일처럼 반성하지 못하는가 의아해한다. 하지만 많은 일본인에게 있어 그렇게 행동하는 것은 정신적인 자살이나 마찬가지다. - P4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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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탄생 - 한국사를 넘어선 한국인의 역사
홍대선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23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엄마아빠 선생님 말씀 잘 들으며 자란 난 스스로를 제법 규범적이고 인내할 줄 아는 인간이라 여겼다. 이런 나를 남이란 거울에 비춰볼 기회가 있었으니, 때는 도쿄 유학 시절. 섬나라라 원체 습도가 높은 데다 하필 분지여서 맹렬히 뜨겁고 푹푹 쪘던 어느 여름날이었다. 이런 날씨에 자전거를 타고 언덕을 오를 수 있을 리 만무하니, 수업이 끝난 뒤 역 앞 번화가(駅前)로 나가기 위해 시내버스를 탔다.


그런데 대체 이게 무슨. 버스를 탔는데 땀이 비 오듯 흘렀다. 넓은 아량으로 생각해도 최소 32도는 될 것 같은 버스 실내. 머리 위 구멍에서 바람은 나오는 둥 마는 둥. 의미 없는 손부채질을 하며 머릿속은 초비상이었다. ‘너무 더운데, 창문을 열까?’ ‘에어컨 세게 틀어달라고 기사님께 말할까?’ 창문을 열면 그나마 희미하게 새어 나오는 에어컨 바람이 훅훅 찌는 바깥 공기에 압도당할 것 같았고, 무엇보다 창문을 열어젖힌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 에어컨 세게 틀어달라고 하기엔 버스 안의 다른 모든 이가 너무나 얌전히, 마치 무기물처럼 앉아있었다. 손부채질은 물론 땀 닦는 시늉을 하는 이조차 없었다. 나와, 함께 탄 한국인 언니 둘이서만 난리였다.


“아니, 다들 안 더워? 왜 참는 거야? 부채질도 안 해? 세상에, 이게 대체 뭐야!”

한국이었다면 말도 안 되는 서비스에 열이 뻗쳐 5분도 참지 못하고 기사님께 말씀드렸을 텐데. 아니, 내가 말하기 전에 누군가가 진작에 외쳤을 거다. “거, 에어컨 좀 틀어요!” 하고.

결국 언니와 나는 열이 머리 끝까지 뻗친 채로 애먼 손바닥만 힘없이 팔랑거리다가 예정된 정류장에 내렸다. 환장하도록 더웠지만, 일본 땅에서 어글리코리안이 될 수 없었던 우리는 차라리 파김치가 되었다.


더위를 식히고 나니 물음표가 남았다. 조금 전 상황에서 난 남들보다 훨씬 참을성 없는 인간이었다. 가만히 앉아 가는 사람들을 보며 화마저 났으니, 나의 인간성 대체 무엇….

이날 이후였던 것 같다. 내색 안 하고 참는 일본인의 성향과, 이런저런 요구를 하며 목소리 높이는 한국인의 성향이 자꾸만 비교되듯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건.


《한국인의 탄생》에서 저자는 말한다. ‘한국인은 성격이 나쁘며, 놀랍도록 이기적인 동시에 이타적’이라고. 말장난 같지만 너무 맞는 말이라 헛웃음이 나왔다. 나도 살아보니 영 좋은 성격은 못 되고, 남 때문에 가만히 있던 내가 피해 보는 건 눈 뜨고 못 보거든.


저자는 오늘날 한국인의 타고난 기질과 사고방식의 뿌리를 국토, 민족의식, 민족성이라는 세 가지 측면에서 찾는다. 키워드를 꼽자면 마늘, 귀주대첩, 정도전 정도 되시겠다.


1부에서는 척박한 한반도 자연환경에서 살아남아야 했던 한반도 정착인의 사연을, 2부에서는 절체절명의 전쟁을 통해 비로소 민족의식을 공유하게 된 사건을, 3부에서는 유교라는 철학적 토대 위에 세워진 조선이라는 나라에서 현대 한국인의 민족성이 어떻게 발현했는지 들려준다.


특히 2부, 고려 현종 시대에 거란의 침략을 두 번 막아낸 사건은 빨려들어가듯 읽었다.

한 민족이라는 정체성은 언제 생겨났을까? 어릴 적 영화 〈황산벌〉을 보고 난 뒤 줄곧 마음에 있었지만 풀리지 않았던 의문이, 고려와 거란의 전쟁을 다룬 대목을 읽고 비로소 시원하게 풀렸다. 조선시대 조정에서조차 ‘한반도의 역사는 고려시대 현종 전과 후로 나뉜다’고 인식했고 조선시대의 왕들도 고려 현종에게 제사를 올렸다고 하니, 그야말로 고려 현종의 재발견, 강감찬의 재발견. (고등학교 때 이 책이 있었더ㅣ다면 고려사 이해가 조금은 더 수월했을거다.)


한국인은 왜 마늘을 먹어야 했으며 성격은 왜 이리 괴팍한지 통쾌하게 풀이하던 저자는 3부에 이르러 한국인이 사랑하고 증오해 마지 않는 조선을 파고든다. 조선시대부터 일제강점기까지의 역사를 공부하며 뒷목을 여러 번 잡았던 입장에서 꽤 신선했다. 나 역시 ‘결국 망한 나라’라는 말의 함정에 빠져있진 않았나. 그리고 저자는 마지막에 이르러 이렇게 말한다.


📖 p.347

나는 한국인이 행복하길 바란다. 그러나 앞으로도 한국인은 화가 많고 고통스러울 것이다. 성격이 그 모양인데 행복할 수가 없다. 반면 한국이 앞으로 어떤 위기에 처할지 알 수 없지만, 결국엔 극복하고 회복할 것이다. 한국의 미래는 희망적이다. 현재 상태에 만족하기엔, 한국인은 성격이 너무 나쁘기 때문이다. 


계속해서 화를 내며 살아야 한다니 절망스럽지만,

정말… 언젠간 극복하고 회복하길 바랄 수밖에.

나는 한국인이 행복하길 바란다. 그러나 앞으로도 한국인은 화가 많고 고통스러울 것이다. 성격이 그 모양인데 행복할 수가 없다. 반면 한국이 앞으로 어떤 위기에 처할지 알 수 없지만, 결국엔 극복하고 회복할 것이다. 한국의 미래는 희망적이다. 현재 상태에 만족하기엔, 한국인은 성격이 너무 나쁘기 때문이다. - P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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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을 다하면 죽는다 총총 시리즈
황선우.김혼비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편지를 주고받는 마음, 그것은 어떤 마음인가.

떠올리며 추억에 잠겨보려 했지만 먼 기억이라 아련하기만 하다.


보고 느낀 것을 펜으로 꾹꾹 눌러 적으며 종이 너머의 누군가를 생각하고,

그 누군가의 마음이 담긴 답장을 받아 들고는 ‘연결되어 있다’는 안도감에 적잖은 위로를 받으며 흐뭇하게 미소 짓던.


매년 함께 맞는 생일이 돌아오면 짝꿍에게 짧은 편지를 쓰고 짝꿍도 비자발적으로(!) 짧은 편지를 써주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편지를 주고받는다고 하면 최소 편지지 두 장은 거뜬히 넘겼던, 고등학생 때 옆 반 친구와 주고받던 편지가 먼저 떠오른다. 가로본능과 롤리팝으로 떠들썩했고 알 요금제를 쓰던 그 시절, 첨단을 달리고 있다고 자부했던 그때 그 시절에 정성껏 펜으로 꾹꾹 눌러썼던 편지가.


최선을 다하면 죽는다며 서로의 지난날을 얼싸안는 마음,

‘대갈’로 자리매김한 순간을 종이 너머로 쿡쿡 웃으며 나누는 마음.


두 작가가, 사계절에 걸쳐서, 서로를 향해 조심스럽고도 정성스럽게 담아낸 마음을 읽는다는 건 독자 입장에서 꽤나 흥미로운 일이었고, 좀처럼 만날 수 없는 귀한 일이었다.


그렇다면 나도 누구에게 편지를 써볼까.

올해 연말에는 편지를 쓸 수 있을까.


p.94

혼비씨는 무엇에 기대어서 이 시간을 견디고 있나요? 담요님은 담배가 더 늘진 않았는지 모르겠어요. 부디 사소하지만 도움이 되는 것들을 곁에 두고 단단히 붙드시길 바랍니다.

혼비씨는 무엇에 기대어서 이 시간을 견디고 있나요? 담요님은 담배가 더 늘진 않았는지 모르겠어요. 부디 사소하지만 도움이 되는 것들을 곁에 두고 단단히 붙드시길 바랍니다. - P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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