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소한의 이웃 - 허지웅 산문집
허지웅 지음 / 김영사 / 2022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진작에 사놓았는데, 몸보다도 마음이 굼뜬 나는 겨우겨우 이 책을 꺼내 들었다.


‘최소한의 이웃’이 무슨 뜻일까. 책장에 꽂아둔 책 제목에 눈이 갈 때마다 생각했다. 친한 사람의 숫자나 범위를 말하는 건가 했는데, 다 읽고 보니 이런 뜻인 듯하다.


이 땅 위 오천만 국민이 손에 손잡고 대통합을 이루어 하하 호호 살아갈 수는 없을지언정, 서로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켜주기 위한 최소한의 마음은 열어두고 살아야 하지 않겠나. 적어도 남을 비참하게 만들지는 말아야 하지 않겠나. 선물을 주고받으며 살갑게 지낼 필요까지도 없고, 그저 서로가 서로에게 최소한의 이웃만 되어준다면.


읽은 사람은 알겠지만 이 책의 각 글에는 ‘제목’이 안 붙어있다. 여섯 챕터로 구분은 되어있는데, 각 챕터에 실린 글에는 제목이 없다.

저자의 이전 책들에는 글마다 제목이 붙어있어 ‘자, 이제부턴 이런 이야기를 할 겁니다’ 하고 이정표 역할을 해주었는데. 읽다 보니 저자가 진행하는 라디오 오프닝에 쓰인 내용도 섞여 있는 것 같은데, 그래서 제목이 없는 건가 싶기도 하고.


진짜 이유는 알 길이 없지만 그냥 ‘꼭지마다 제목을 달지 않은 게 이 책의 의도이겠거니’ 하며 읽었다. 같은 사건도 저마다의 입장에 따라 달리 보일 수 있는데 글이라고 다르지 않겠지. 같은 글도 사람에 따라 달리 느낄 수 있고, 같은 사람이라도 읽을 때마다 다를 수 있다. 이런 생각이 제목을 뭘로 다느니 하는 고민에 손톱만큼이라도 영향을 미쳤으리라 멋대로 추측하면서. 제목이라는 울타리가 사라지니 처음부터 글의 방향을 단정 짓는 일 없이, 저자가 풀어놓는 이야기를 마음 가는 대로 자유롭게 읽을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우연히 마주친 먼 이웃과 잠시 커피 한잔하듯, 그렇게 오늘 새벽 앉은 자리에서 책을 다 읽었다.


‘와, 이 구절은 기억해두고 싶다.’ 읽으면서 표시해둔 구절을 모아놓고 보니 하나같이 실수와, 실수를 딛고 일어서는 마음과, 그 마음에 대한 응원 들이었다. 요즘 나에게 필요한 말은 이런 것들이었구나.

누군가의 응원이 이렇게 와닿는 건, 응원을 보내오는 사람에게서 그만큼 넉넉한 따스함과 깊이감을 느꼈기 때문. 정답보다는 오답에서 더 나은 방향을 찾고, 조용하지만 강인한 평정 안에서 조금씩 앞으로 나아갈 것.


그리고 부끄럽지만, 나 살기 바쁘다는 이유로 ‘아이고 그거참 안됐네’ 하고 흘려보냈던 아픈 일들을 다시금 꺼내주어 고맙다.


우리는 모두 잘못을 저지릅니다. 나라는 사람의 본질은 내가 저지른 잘못으로 정해지지 않습니다. 그것을 수습할 방법을 결정하는 순간에 정해집니다. 


《최소한의 이웃》 p.55


지금 여러분이 맞닥뜨린 크고 심란한 문제도 사실 본질을 따지고 보면 그리 대단한 일이 아닐지 모릅니다. 여러분이 소음 앞에 무너지지 않기를. 휘둘리거나 잡아먹히지 말기를. 조용하고 강인한 평정 안에서 무엇보다 자유로운 사람이기를 바랍니다.


《최소한의 이웃》 p.237


사유가 더해지지 않은 극복의 경험은 그저 고생일 뿐입니다.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괜한 고생이겠지요. 끊임없이 생각하고 고민하며 경험을 재료로 나만의 답을 찾는 것. 그리고 그 답을 타인에게 강요하지 않고 겸허한 마음으로 나의 쓸모를 찾는 것. 중요한 건 경험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이후의 태도에 달려있다. 그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최소한의 이웃》 p.264


확실한 건 현실에서 우리의 노력이 대부분 보답받지 못한다는 사실일 겁니다. 나의 쓸모를 제대로 알아주는 조직은 드뭅니다. 헌신에 고마워하는 파트너도 희귀합니다. 쓸모를 알아주는 조직에 몸담고 있다면, 헌신에 감사하는 파트너와 함께라면 고마워해야 합니다. 분노하지 말고, 실망하지 말고, 때를 기다리며 버팁시다. 여태 운이 없었다면 그 운이 언젠가 나의 쓸모를 알아보고 고마워할 줄 아는 만남으로 돌아오리라. 제가 함께 응원하겠습니다.


《최소한의 이웃》 p.232




큰 힘이 되는 응원 고맙습니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