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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도끼다
박웅현 지음 / 북하우스 / 2011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인문학이 대체 무엇인가? 라는 질문 만큼 요즘 우리를 혼란스럽게 하는 질문도 없다. 이 책에 한하자면, 박웅현의 인문학이란 '삶의 감각을 풍부하게 만들어서, 더 많은 것을 느끼게 하고 그로 인해 행복을 찾는 것'이라고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책 내내 사물을 보는 법, 평상시의 행복을 찾는 법 등을 설파한다. 이 정도면 '인문학을 알아야 취업한다' 따위의 돈냄새 나는 소비방식 보다는 훨씬 세련된 패턴이 아닌가.
그러나 나는 그가 말하는 풍부한 감상,풍부한 삶이라는 게 누구나 인문학을 통해서 도달 가능한 것이 아니라 이미 물질적으로 잉여가 있는 이들이 찾을 수 있는 여유 같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다. 강신주의 냉장고 타령..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중산층 정도 되는 이들의 미덕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요즘 우리가 인문학에 대해서 말하는 것은 꼭 파랑새에 대해 말하는 것 같다. 인문학을 알게 되면 우리가 더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그것이 엄청난 기만이라 생각한다. 사람의 삶을 여유있게 해주는 것은 결국 내 삶을 꾸릴 수 있도록 해주는 물질적 기반이며, 이것이 일정 수준에 다다르지 않고는 인문학 운운 하는 것은 기만일 뿐이다.
판자와 쓰레기 속에 사는 이에게 판자와 쓰레기를 살펴볼수 있는 풍부한 감각과 평상시의 행복을 말하는 것은 삶을 나아지게 하는 게 아니라 그를 기만하는 것이다. 실업난 속에서 자본주의란 인성을 파괴하니 거부하세요,여유를 가지세요 라고 말하는 것은 실업자를 엿먹이는 것이다.
왜 사람들은 박웅현이, 그리고 인문학을 찬양하는 장사꾼들이 안타까워 하는 것처럼 인문학같이 좋은 걸 모르고 죽은 듯이 살고 삶을 제대로 살지 못할까? 그것은 우리 대다수가 죽은듯이 살아야만 삶을 영위할 수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닐까. 질문의 선후관계가 잘못되었다. 인문학적 사유가 없어서 이런 삶들을 사는 게 아니라, 우리가 사는 삶이 그런 사유 자체를 불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박웅현의 독법이나 삶의 태도가 잘못되었다는 비판을 하자는 게 아니다. 그의 삶, 글, 생각은 너무나 훌륭하다. 그러나 배경에 상관없이 그것을 받아들이고 소화하고 활용할수 있으며, 그래야만 뭔가 제대로 사는 거라고 말하는 것은 너무나 가혹하고 기만적인 이야기라고 나는 생각한다.
지독히 불우했던 친구 하나는 삶의 풍요로움에 듣고 읽고 알수록 자신의 삶의 비루함을 견딜수 없다고 했다. 학자금도 못내고 취직도 어려워 찌들어 사는 친구였다. 그런 이에게 김훈의 글을 읽고 자연풍경을 되새기라는 말은 무슨 의미가 있는가? 물론 의지로 똘똘 뭉쳐 그런 모든 환경에도 불구하고 형이상의 세계로 날아가며 살아가는 이들도 있으나, 그것을 모두에게 당연한 미덕으로 말할수 없을 것이다.
인문학으로 표상되는, 현재를 보고 주변을 보라는 태도는 더 나아져야만 하는 삶들을 현재에 묶고 비탄에 빠진 이들을 욕심에 가득찬 이기적 현대인으로 만든다. 나는 정말로 우리 세계에 필요한 태도란 인문학적 태도 운운하며 자연이니 절제니 여백이니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 태도들이 결국 다다르는 것은 지독한 냉소 아니면 자아도취 뿐일 것이다. 지금 시대의 인문학이란 결국 스펙의 끝에 다다라서 기업들이 추가로 생각해낸 스펙이거나, 새로운 생산수단이거나, 중산층 이상의 삶을 사는 이들의 미덕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 같아 보인다. 물론 그것도 충분히 의미있겠지만.
그러나 나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들이 더 필요하고 의미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하는 일들과 우리가 사는 세상은 왜 이리 고단한 걸까, 누구 때문인 걸까. 정말 나아져야 하는데 나아지지 못한 것들, 정말 개발되어야 하는데 개발되지 못한 것들은 왜일까. 우리가 파괴해야 할 것들은 무엇일까. 등등. 계속해서 우리는 더 나아질수 있고, 인간은 자연과는 다르다 라고 말하는 욕심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문제들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나를 포함한 많은 이들이 이 책을 찾았겠지만. 그 힘과 답은 적어도 요 근래 유행하는 괴이한 '인문학'의 것은 아닌 것 같다. 비참에 대해 풍경의 아름다움을 알아야 한다고 해 봤자 비참이 사라지지는 않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