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의 철학자들 - 철학은 어떻게 정치의 도구로 변질되는가?
이본 셰라트 지음, 김민수 옮김 / 여름언덕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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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 책은 마르틴 하이데거와 칼 슈미트를 비롯하여 많은 독일 학자들이 나찌 정권 초반부터 말기까지 어떻게 독일 대학을 황폐화시키고 유대인 탄압과 분서갱유에 일조했는지 써내려간다. 이 책을 읽으면 두가지를 알게 되는데, 첫번째는 한국에서 독재정권이 그렇듯이 독재는 지식인층의 협조 없이는 절대 그 세력을 기형적으로 확장할 수 없다는 것이고, 두번째는 사람들이 서구사회는 나치부역자를 효과적으로 처벌했으나, 한국은 그렇질 못해서 아쉽다고 생각하는 것이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는 것이다.


 읽다 보면 나치에 부역한 학자들의 행동은 거의 발암물질 수준이다. 유대인 철학자들의 저서 2만권을 모아 대학에서 태우며 희희낙락했다던가, 유대인이 왜 열등한가 하는 논문을 일년에 몇십편씩 쓰질 않나, 하이데거 같은 인간은 자기한테 사실상의 은인이나 다름 없는 후설이나 야스퍼스를 유대인 탄압이 시작되니 무시하고 온 열과 성을 다해서 히틀러를 찬양하고..사실 한국에서 좌빨이니 종북이니 타령하는 거랑은 그 수준이 달라 한숨이 나올 지경인데, 패전 이후에는 그래도 이놈들 다 처벌받았겠지? 라는 희망을 갖게 하다가 말미인 '뉘른베르크 재판 이후' 에서 그 희망을 다 산산조각 내는 게 또 이 책의 별미.


 나치에 진심으로 부역한 수많은 학자들은 정말 핵심적인 인물들이 아니면 별다른 처벌 없이 교수직을 유지했다. 가장 드라마틱한 인물은 아마 하이데거일텐데, 그는 옛 정을 잊지 못한 한나 아렌트(!)의 헌신적인 노력 뿐 아니라 반나찌 성향을 지녔던 프랑스 철학자들의 도움까지 받아가며 화려하게 부활한다. 칼 슈미트는 자신이 어쩔수 없이 협조했을 뿐이라는 변명으로 시종일관하며 법학계의 슈퍼스타가 되었다.


 반면 나치 치하에서 저항했던 철학자들 중 어떤 이들은 죽은뒤에도 명예를 회복하지 못했고, 망명했다 돌아온 이들은 교수직을 다시 얻지 못한 채 '교수가 되려면 유대인이어야 하냐'라는 경멸어린 말을 듣는 신세가 되었다. '철학은 윤리의 학문인데, 나찌부역자의 사상이 철학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을 용납해야 하는가?'라는 저자의 문제의식에 대한 답은 쉽게 할 수 없지만, 정의가 실현되지 못한게 한국만이 아니라는 점이 이 책이 주는 위안이라면 위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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