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시 노부스케와 박정희 - 다카키 마사오, 박정희에게 만주국이란 무엇이었는가
강상중.현무암 지음, 이목 옮김 / 책과함께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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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중•현무암 공저 <기시 노부스케와 박정희>는 일본제국이 만주사변을 통해 세운 인공국가 만주국의 탄생 과정과 운영 과정을 다룸와 동시에 만주국에 자신의 젊은 시기를 바친 기시 노부스케(일본 56,57대 총리)와 박정희가 해방 전후로 어떤 유착관계를 가지고 국가를 만들어 나갔는가를 다루는 책이다. '귀태'발언의 출처로도 유명한 책이기도 하다.

두 저자는 만주국이 세워지고 운영되는 과정에서 진행된 국가 경영술과 계획, 그리고 인맥이 어떻게 한 일 양국에 깊은 그림자를 드리웠지를 차근차근 설명해나간다. 그 과정에서 우리가 발견하는 사실은 현대 한,일의 근원이 만주국에서 행해진 국가 경영 시도들 및 인맥들에서 나왔다는 사실이다.

 당시 일본과 조선의 야심찬 젊은이들은 만주국에 자신의 꿈을 투영했다. 여기선 이러한 꿈과 꿈을 위한 시도들을 모두 통칭해서 '만주국 프로젝트'라고 하자. 만주국 프로젝트는 만주국이 내걸었던 슬로건 (오족협화 혹은 왕도낙토)과 같은 이상을 실현하고자 하는 순수성이었을 수도 있고, 본토에서는 더이상 자신의 이상을 실현 불가능하다고 판단된 젊은 엘리트(기시 노부스케)의 이상을 실험하는 장이었기도 했다. 더불어 식민지인으로서 '제국인'이 되어 '칼을 차고 떵떵거리며' 살고 싶은 욕망을(박정희) 실현할 수 있는 최후의 방법이기도 했다.

어떤 욕망이건 만주국은 그러한 욕망을 빨아들이며 조선•일본 양국에서 '만주광(狂)'이라 불릴 정도의 붐을 형성했다. 실제로도 일본의 신진관료들은 만주국 고위관료로서 국가경영을 시도할 수 있었고, 박정희를 포함한 소수의 조선인들은 고급관료로 채용됐다. 이처럼 만주국은 젊은이들의 뒤틀린 이상을 어느 정도는 실현시켰다. 그러나 만주국의 본체인 일본제국의 태생적 한계와 2차대전 패전에 따라 만주국 프로젝트는 실패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당시 만주국에 꿈을 실었던 기시 노부스케,박정희는 결코 만주국 프로젝트를 포기하지 않았고 해방 이후의 전후복구 과정에서 다시 살아남은 그들은 자신의 마음속에 간직한 만주국 프로젝트를 만주국의 인맥을 통해 실현했다. 그 결과 한일 양국은 전후의 급속한 경제발전이라는 명과 독재자와 일당장기집권에 따른 깊은 상처와 갈등이란 암을 모두 안게 됐다. 그리고 이 상처와 갈등을 어떻게 소화해내고 합의할 것인가 하는 점은 아직도 양 국 모두 미지수로 남아있다. 박정희의 국가운영은 어찌됐건 성장을 가져왔고, 광범위한 동의와 지지층을 만들었다. 마치 만주국이 그 태생에 있어서 비도덕적이었고, 실제로 괴뢰국가였지만 만주국 안의 소수의 조선인들에게는 '오족협화'의 이상이 실현됐던 것 처럼 말이다.

만주국 프로젝트의 잔재를 모두 청산해야 한다면, 이러한 성과들에 대해 우리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 어디까지를 인정해야 하는가? 하는 물음이 나온다. 더 나아가 만주국 프로젝트의 폐해를 우려한 이들이 도입한 시스템(한국의 경우 자유주의 정부 10년과 전면적 시장 시스템)은 실패를 목전에 두고 있다.

더불어 강력한 통제경제라고 요약할 수 있는 만주국 프로젝트의 핵심 중 하나가 단순히 독재자만의 발상이 아니라 현재 체제의 폐해에 대해서 유력한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다면, 우리가 이 책을 친일파 고발서로만 읽는 건 아까운 일이다. 만주국으로 대표되는 정신, 혹은 경영 방침은 과연 어떤 점에서 문제인가, 그것의 장점은 취사선택 될 수 있는 것인가. (책 본문의 인용에서 박정희의 유신은 곧 중화학 공업이다 라는 말이 나온 것처럼), 그것에 대한 대안은 어떤 것이 있으며 과연 나오긴 했던 것인가? 그리고 이를 지지하는 이들에 대해 우리는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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