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린 희망
유재현 지음 / 그린비 / 2006년 7월

최악의 영웅은 살아있는 영웅이다. 이 자들은 스스로 자신을 영웅으로 만들고 나머지 모두를 바보이자 노예로 만든다.

다음은 죽었으되 살아있는 영웅이다. 살아있는 자들이 죽어있는 자를 무덤에서 끄집어내 통치의 수단으로 활용한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살아 있는 자는 사관을 부려 제 입맛에는 달콤하되 인민에게는 독이나 다름없는 사탕을 만들어내 모두를 노예로 부린다.

각주(脚註) _ 김남주

헤겔은 어딘간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동방에서는 한 사람만이 자유로왔는데 지금도 그렇다

그리스 로마에서는 몇 사람이 자유로왔다

게르만 세계에서는 모든 사람이 자유롭다

마르크스는 어딘가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아시아적 봉건사회에서는 한 사람만이 자유로왔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몇 사람이 자유롭다

사회주의 사회에서는 만인이 자유로울 것이다

그러나 헤겔도 마르크스도

다음과 같이 각주 붙이는 것을 잊어버렸다

식민지 사회에서는

단 한 사람도 자유롭지 못하다고

그러나, 김남주도 다음과 같이 각주 붙이는 것은 잊어버렸다.

영웅이 통치하는 사회에서는 여전히 단 하나 사람만이 자유롭다고.

행복한 영웅은 인민이 스스로 만들어내는 전설의 영웅이다. 그는 시대의 영웅으로 시대의 소명을 다하면 기꺼이 장막 뒤로 모습을 감춘다. 그는 그저 인민의 희망에게 얼굴을 빌려주었을 뿐이므로. (109쪽)

* 잉여 생산물이 생겨난 이후로 인류는 권력이라는, 부(富)라는 강제적인 관계 속에서 서로를 구분하고 억압해왔다. 힘이 없는 백성들, 국민들은 전제군주, 독재자들에게 굴복해야 했고, 생산수단을 소유하지 못한 노동자들은 자본가 계급에게 착취당해야 했다.

이것이 비자발적인, 타인에 의한 불행이라면, 반대로 고통을 자청하는 경우도 있다. 역사는 히틀러, 일본 천황, 김일성, 황우석 등 끊임 없이 거짓된 영웅을 만들어 왔다. 이들은 대중들의 영웅으로 자리잡고 그들의 광적인 사랑을 받았다. 대중들은 영웅에 대한 자신의 사랑 속에서 황홀감을 느꼈다.

하지만 사람들이 영웅을 통해서 맞보는 황홀감에도 불구하고 영웅은 사람을 불행하게 만들 뿐이다. 영웅에 열광하는 대중들 뿐만이 아니라 영웅화 대상인 영웅 본인에게도.

이 세상에 영웅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불의와의 싸움에서 늘 정정당당하게 승리하고, 얼굴도 잘 생기고/예쁘고, 고귀한 혈통 출신의 소위 대중이 믿고 싶어하는 '그들의 영웅'은 말 그대로 '그들만의 영웅'일 뿐이다. 대중들이 영웅이라 믿고 있는 실체는 대중들 자신들의 소망이 만들어낸 허구의 존재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행동은 무의미하다. 그리고 때때로 대중의 이러한 욕망은 자신들이 만들어낸 허구의 이미지를 영웅에게 강요함으로써 대중 그 자신 뿐만이 아니라 그들이 영웅이라 믿고 있는 대상에게까지 고통을 줄 뿐이다. 대중이 진정으로 사랑해야 할 것은 자기 자신일 뿐이다. 그들은 자신의 은밀한 곳에 꽁꽁 숨겨져있는 나약함을 영웅이라는 사탕발림이 아니라 단련된 강인함으로 극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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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네킹 2006-09-30 1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신의 사랑은 한없는 것이지요..
영웅도 기다리는 기간이 깉 만큼 멋지고 훌륭하겠네요...

하나비 2006-10-01 2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하... 이렇게 영웅에 대해 무의미함을 토로해놓고 오늘 주몽 재방송을 즐겁게 보았답니다// 이런걸 보면 역시 저도 평범하고 나약한 대중이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