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 스트라우스 - 부활하는 네오콘의 대부
박성래 지음 / 김영사 / 2005년 7월
평점 :
품절


 

신은 죽었다.

그럼 세상은 누가 지키지? .... 독수리 오형제?

걱정마, 우리에게는 네오콘이 있잖아.

 

신은 죽었다.

  신은 죽었다,고 니체는 말했다. 중세 유럽의 학문들은 '신학의 시녀' 역할을 수행하며 카톨릭을 위해 존재했었고, 중세 유럽인들의 삶 역시도 카톨릭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그러나 카톨릭의 헤게모니는 '근대이성'이 등장하며 깨졌다. 신은 버림받았다. 단순히 버려진 것이 아니라 신의 존재까지 부정되기 시작했다. 인간을 여타의 동물들과 구분지을 수 있게 만든 우리의 만능해결사 '이성'을 가지고 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신이 존재한다는 믿음은 먼 옛날에 씌어졌던 '기적'인지, 후손들에 의해 '뻥튀기된 약간 비범했던 사람의 이야기'인지 확인할 길이 없는 성서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이라는 전제 하에서만 가능할 뿐이었다. 이성주의자들의 사회에서 진실로 신은 죽은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이전까지 도덕이 지향해야 하는 아웃라인을 제시해주며 사회 질서를 유지해 오던 종교가 힘을 잃으면서 사회에 공백이 생긴 것이다. 거기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성주의자들이 신봉하는 자유주의는 상대주의, 허무주의 그리고 무책임한 방종이라는 결과를 낳았다. 자유주의는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개개인의 자유를 최대한으로 보장해주려 했고 그에 따라 '너도 옳을 수 있고, 나도 옳을 수 있다'는 상대주의가 사회의 미덕으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상대주의는 진리의 불확실성에서 기인하는 '허무주의'를, 제한이 없는 절대적 자유는 권리만 존재하고 책임은 지지 않는 '방종'이라는 문제를 만들어냈다. 사회는 질서와 도덕을 잃었고 혼란스러워졌다. 

 

세상을 지킬 자는 누구?

   한국전쟁 때 목사 14명이 체포되었다. 그 중 12명은 처형됐으나 2명은 살아남았다. 살아남은 목사 중 한 명은 미쳐버리는 바람에 살아남았고, 주인공 신 목사만 온전하게 살아남았다. 신도들은 신 목사가 신앙을 배반한 대가로 살아남았다며 욕을 해댔지만 진실은 신도들의 추측과는 달랐다. 12명의 순교자들은 살려달라 아우성을 치면서 신을 부정하고 비참하게 죽어갔고, 자신의 신앙을 지킨 사람은 신 목사 한 사람 뿐이었다. 죽음의 위협 앞에서도 신앙을 지켜냈던 신 목사는 사실 신을 믿지 않았다. 모진 고문으로 괴로워하던 한 목사에게 사실은 신이 없다는 자신의 신앙의 비밀을 털어놓는 순간 한 목사는 미쳐버렸던 것이다.

  그러나 신 목사는 자신이 예수를 배신한 가리옷 유다라는 누명을 기꺼이 뒤집어쓰며 신도들 앞에서 잘못을 회개하는 척 연기하고 끝까지 진실을 밝히지 않는다. 신도들은 진리를 원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의 믿음이 부정되지 않으면서, 혹시나 신이 존재하지 않을 지도 모른다는 그들의 불안감을 잠재워 줄 수 있는 촉진제, 즉 순교자가 필요했던 것이다. 신도들은 진리를 알고도 견딜 수 있을 만큼 강인하지 못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십자가를 질 수 없는 사람들이었고, 그것을 아는 신 목사는 그들의 십자가를 대신 짊어진 것이다. 

   재미 소설가 김은국의 1964년작,「순교자 The Martyred」의 줄거리이다. 일반 대중들은 '신은 사람들이 만들어낸 가상의 존재일 뿐이고, 죽어서 가게 된다는 내세 따위는 없다'는 냉혹한 진리를 믿고 싶지도 아니 알고 싶지도 않아한다. 그래서 진실을 알고도 견뎌낼 수 있는 사람들은 다수의 사람들을 위해 거짓 연기를 해야한다, 그들이 상처받지 않도록. 

  도덕도 마찬가지이다. 신이 실재의 존재가 아닌 것처럼 도덕 또한 그 자체로 옳고, 완벽한 것이 아니다. 도덕은 정치 엘리트들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진 세속적인 것이다.

  하지만 도덕이 근거가 없는 세속적인 것이기에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는 기능을 빼앗아 버린다며 사회는 방종을 일삼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의 상태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도덕은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는 잣대로써 계속 남아 있어야 한다. 다만, 도덕은 그 자체로 완전한 것이 아니고 가진 자들의 이익에 휘둘릴 염려가 있으므로 도덕 혼자서는 안되고 정치철학을 교육받은 엘리트들에 의해 사회가 움직여야 한다. 정치철학을 교육받은 엘리트들은 완벽한 지식을 바탕으로 공동의 이익(공공선 good)을 위해 일하기 때문이다. 이들이 바로 '네오콘'이다. 네오콘들은 국가 전반을 통제함으로써 사회질서를 지킨다. 동성애 금지와 같은 보수적, 자연적(네오콘들이 보기에) 가치 수호, 가톨릭의 국교화, 일반대중의 정치참여 금지 등이 바로 그것이다.

 

네오콘에 대한 비판

   분명 '너도 옳고, 나도 옳은 수 있다'는 상대주의적 사고는 진리에 대한 회의주의적 사고를 사회에 퍼뜨릴 위험이 있다. 하지만 상대주의를 거부하고 '나만이 옳다'는 식의 논리 또한 문제가 있다. 네오콘은 사회질서를 유지한다는 명목하에 하나의 가치를 정하고 사회 구성원들에게 그것을 강요한다. 동성을 사랑하는 것은 이성을 사랑하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오직 하나의 가치-이성간 결혼-를 추구하는 네오콘들에게 동성애자들의 행복추구권 따위는 관심 밖이다.

    이러한 네오콘들의 태도는 비단 미국 국내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자신의 사회에 강요할 뿐만 아니라 세계 최강의 힘을 가지고 국제 정치에도 관여하면서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선(善)'을 휘두른다. 이라크에 대량살상무기가 있다며 거짓 정보를 퍼뜨리고 멋대로 심판 전쟁을 벌이는 등 그 전과가 화려하다.

   네오콘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 군사력으로 다른 나라를 얼마든지 희생시켜도 좋다고 한다. 그들에게 세상은 '강자의 자연권'이 지배하는 정글이다.(P.186) 네오콘의 외교는 다윈의 적자생존법칙을 뛰어넘는 제국주의 논리이다. 

   네오콘식 정치의 근본인 정치적 엘리트와 우월한 하나의 가치에 의한 다스림은 이렇게 국내외적으로 사람들의 다양한 취향, 흥미, 사고방식 등을 탄압함으로써 엘리트들을 제외한 수많은 사람들에게 고통을 안겨주고 있다.

 

책에 대한 비판

  "단순히 독일이 우경화되고 유대인들을 쫓아냈기 때문에 우파의 원칙들이 자동적으로 거부돼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스트라우스의 말을 비판하기 위해 "마치 스탈린식의 현실 공산주의가 폭압적인 일인 독재에 불과하다는 현실을 목도하고도 '공산주의가 자동적으로 거부돼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하는 공산주의자처럼 이야기한다."고 저자는 154쪽에서 얘기한다.

  저자는 스트라스를 비판하기 위해 공산주의자의 경우를 예로 든다. 독일이 우경화되고, 유대인들을 탄압한 것은 우파의 원칙들이 시행된 것이므로 우파는 배제되어야 한다. 스탈린의 공산주의가 나쁘기 때문에 역시 그 큰 틀인 공산주의 역시 자동적으로 거부해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의 논리는 이렇다. 그러나 나는 여기에 선뜻 고개를 끄덕일 수 없다.

  우선, 왜 스탈린을 예로 들며 가지고 비유를 해야했는지 의문이 생긴다. 저자처럼 스탈린을 예로 들며 공산주의를 배격해야 한다는 사람들도 많지만 스탈린의 러시아에서 일어났던 변화는 공산주의가 아니라 국가자본주의라며 진정한 사회주의가 아니였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그에 못지 않게 많다. 저자는 전자의 입장인 듯 하지만 난 후자의 입장이기 때문에 저자의 예시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스탈린 치하의 러시아는 스탈린을 필두로 공산주의에서 타도의 대상인 엘리트들이 정치적, 경제적 실권을 장악한 사회였다. 자본주의의 '자본가-노동자' 관계, 즉 '엘리트 독재' 관계를 타파하기 위해 대안으로 등장한 것이 공산주의였는데도 결과적으로 엘리트 독재를 답습한 꼴이 되어버린 스탈린의 러시아는 결코 공산주의 사회라고 할 수 없다.

  또한, 우파가 그리고 스탈린이 잘못했다고 그들의 원칙이 '자동적으로' 거부되어야 하는가에 대해서도 동의할 수 없다. 나는 우파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분명 안정적 변화와 전통의 가치를 중시하는 그들의 태도는 사회를 유지하는데 꼭 필요한 덕목이라고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스탈린을 공산주의자라고 봤을때) 스탈린의 공산주의가 잘못됐다고 공산주의 전체를 싸잡아 자동적으로 거부하는 태도도 옳지 않다. 동상이몽(同床異夢)이라는 말처럼 한 이불을 덮고도 두 사람이 서로 다른 생각을 하는 것이 인간이다. 그렇기 때문에 '-주의(-ism)'라는 단어로 서로 나누고 묶어서 생각을 분류하는 것도 웃기는 일이지만 반대로 우파의 일부만 보고, 공산주의의 일부만 보고 그 전체를 싸잡아서 '자동적으로' 거부하는 것도 웃긴 일 같다. 

   이 외에도 빨간 것에 대해 결벽증을 가지고 있는 대부분의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저자 역시 책의 여기저기서 사회주의에 대해 거부감을 표출해서 잠깐잠깐씩 답답함을 느꼈었다. 하지만 그 점을 제외하고는 전체적으로 네오콘의 사상적 기반이나 내용, 실제 정치에서의 네오콘의 영향력에 대한 설명이 쉽게 잘 되어 있어서 나같이 국제정치에 문외한인 사람들에게는 네오콘에 대해 재밌게 공부할 수  있는 기회였다. 부시 대통령이 소위 불량국가라고 불리는 나라들에 대해 주장하는 레짐 체인지(regime change)가 무엇인지,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이 이스라엘의 레반논 침공에 대해서 어떻게 '평화의 확산을 위해서 그 정도의 희생은 감수해야 한다'고 태연하게 말할 수 있는 지 그 저의가 궁금하다면 이 책을 읽어보는 게 좋을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