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모와 어둠 속의 기적 1
발터 뫼르스 지음, 이광일 옮김 / 들녘 / 2006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어둠 속에 알파벳이 한 글자씩 적혀 있는 서랍들이 있다.  'A… Z' . 우리는 그 중에서 R자가 적힌 서랍을 연다. 루모(Rumo)의 R이다. R자가 적혀있는 서랍이 열리면서 영사기가 돌아가기 시작한다. 우리 앞에 있던 투명한 스크린에 루모의 모험이 펼쳐진다.

  루모는 개와 노루가 묘하게 뒤섞여서 전반적으로는 개의 모습이지만 노루처럼 머리에 두 개의 뿔이 달려있는 '볼퍼팅어'이다. 태어나면서 부모들에게 버림을 받는 볼퍼팅어들은 누구에게 주워지느냐에 따라 다양한 어린 시절을 보내게 된다. 채찍으로 매일 학대를 일삼는 주인들도 있지만 루모는 다행히 유순한 페르하헨들의 손에서 자라며 금지옥엽 대접을 받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살아있고, 움직이는 생물들은 모든 잡아먹는 외눈박이들에게 잡혀가면서 드디어 루모의 모험이 시작된다. 타고난 싸움 실력으로 외눈박이들에게서 탈출한 루모는 모든 볼퍼팅어들이 보게 되는 은띠를 따라 볼퍼팅에 도착한다. 볼퍼팅은 볼퍼팅어들만이 들어올 수 있는 볼퍼팅어들만의 도시이다. 이 곳에서 볼퍼팅어들은 도시를 위해 공공의 의무를 수행하고, 그 대가로 볼퍼팅어의 역사, 글쓰기 그리고 싸움 기술을 배운다. 모든 볼퍼팅어들은 매우 호전적이고 싸움을 잘하기 때문에 볼퍼팅어가 싸움을 잘 한다는 것은 자랑거리가 아니라 평범한 '사실'일 뿐이다. 다만 학교를 다니면서 싸움의 기술에 대해 더 정교한 교육을 받고, 자신이 더 잘 싸울 수 있는 분야가 어느 것인지 계발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볼퍼팅에서 싸움 실력을 늘려가면서 행복한 나날을 보내며 일상에 안주하고 있던 루모와 다른 볼퍼팅어들에게 위기가 닥치고, 루모는 그 위기에서 동족들을 구해낸다.

  사실, 루모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혹은 우리가 바라는 영웅의 모습이 아니다. 루모는 '주몽'처럼 비열한 경쟁자에 비해 딱히 선하다고 할 수 없으며, 특출나게 지략이 뛰어난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해리포터'처럼 선택받은 자로써 사람들을 휘어잡을 수 있는 극적인 쇼맨쉽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다. 루모가 그의 세계를 구하는 영웅이 될 기회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은 단지 ''  덕분이었다. 꼭 루모가 아니더라도 선천적으로 싸움을 잘하는 기술을 타고나는 볼퍼팅어라면 누구나가 루모처럼 될 수 있었다.  하지만 루모는 볼퍼팅 시의 모든 볼퍼팅어들이 위험에 처한 그 순간 우연히 시의 외부에 있었고, 다른 모든 이가 겪어야 했던 동족의 위기을 비껴나갈 수 있었기 때문에 그들을 구할 수 있는 위치에 설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영웅이 될 수 있는 전제'를 가졌다고 해서 무조건 '영웅이라는 결론'이 나올 수는 없다. '평양 감사도 저 싫으면 그만'이라는 말처럼 영웅이 될 수 있는 기회를 가졌고, 적으로부터 동족을 구해낼 수 있는 역량을 가졌다고 해도 저 싫으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다행히 루모는 그가 사랑하는 볼퍼팅어인 랄라를 위해 누르넨이라는 거미 괴물을 무찌르고, 발터 뫼르스가 창조해낸 기상천외한 생물들로 가득찬 지하세계로 뛰어든다.

  루모가 볼퍼팅어들을 구해내고 난 뒤 다른 볼퍼팅어들은 루모가 겪은 모험과 그가 지하세계의 괴물들을 물리쳤다는 것을 믿지 못한다. 워낙 말주변이 없는 데다가 옆에서 루모의 모험에 대해 간간이 과장 섞인 뻥과 함께 침 튀겨가며 설명해줄 '보조자'가 없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면, 그 보조자가 루모와 텔레파시로 의사소통을 하고, 직접 말을 할 수 없는 루모의 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루모는 다른 볼퍼팅어들이 자신의 말을 믿어주지 않아도 별로 신경쓰지 않는다. 인정받지 못해도 그 자신이 만족할 만한 모험을 했고, 그 속에서 성장할 수 있었으며,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과 다시 행복을 되찾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기서 R자가 적혀있는 서랍이 닫힌다

  루모의 모험을 다른 볼퍼팅어들이 알아주어 그 뒤 모든 볼퍼팅어들의 영웅으로 후세에 길이길이 남을 전설이 되었는지, 아니면 동족의 위기를 함께했던 평범한 볼퍼팅어로 기억에서 잊혀졌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R자가 적힌서랍이 닫혔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루모와 어둠 속의 기적' 두 권을 함께 한 우리는 루모가 겪은 모든 일들을 알고 있기에 빙그레 웃으며 마지막 책장을 덮을 수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