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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고도 슬픈 영혼에 관한 이야기다. 여성들의 영혼, 자궁의 피로 쓰여진 소설이 이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폭력과 참혹함으로 일그러진 역사 속에서 여성들은 따뜻한 피와 다정한 모성애로 힘든 상황을 이겨내며 살아왔다.

이사벨 아옌데의 소설은 가족에 국한되어 있지 않고 칠레의 역사와 관련되면서 스케일이 참으로 큰 이야기가 되었다.

첫 문장이 잊혀지지 않는다. "바라바스가 바다를 건너 우리에게 왔다."

마지막도 같은 문장으로 막을 내리고 있다. 이 긴 서사시를 읽으면서 나는 내가 참 작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는 가슴이 울렁거렸고, 눈물이 나려고 했다.

마법처럼 사람의 마음을 매료시키고, 종국에는 영혼까지 완전히 물들어버리게 하는 그런 소설이다. 나는 마술적 사실주의란 단어가 참으로 마음에 든다. 이사벨 아옌데의 소설은 <운명의 딸>로부터 알게 되었다. 처음엔 <운명의 딸>이 이사벨 아옌데의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라고 생각했고, 최고의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심지어 만약 <바람과 사라지다>를 능가할 만한 대서사시를 갖춘 소설을 꼽으라면 자신있게 꼽을 수 있을 책이라고 생각했다. 모두 <영혼의 집>을 읽기 전의 생각이다. 비현실적이지만 너무도 현실적인 소설을 읽어가면서 소설의 미래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다. 아마도 이런 소설들이 쓰여진다면 소설은 21세기에도 꿋꿋이 살아남으리라는 믿음을 갖게 되었다. 어떤 다른 매체가 책이 줄 수 있는 이토록 큰 감동을 대신할 수 있겠는가. 아름다운 로사의 이야기로 시작된 소설은 오랜 세월 후 알바의 목소리로 끝나게 된다. 에스테반 트루에바라는 청년의 인생이 주된 줄기를 가지고 있지만, 사실 이것은 클라라에서 비롯된 딸들의 이야기다. 딸에서 딸로 이어지는 모계사회 구조는 이사벨 아옌데의 여성주의를 그대로 드러내는 부분이다. 에스테반이 저질렀던 폭력은 복수의 여지를 남겼고, 폭력은 돌고 돌아 계속 잔혹한 형태로 그들 인생에서 되풀이 되었다. 외할아버지의 폭력의 결과로 엄청난 고초를 겪어야했던 손녀딸 알바의 깨달음은 그 속에 있었다. 폭력에 대한 복수는 언제까지나 끝나지 않을 것임을 그녀는 알았다. 알바는 자기의 손자가 자신을 고통스럽게 했던 자의 손녀딸을 강간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이 즈음에서 폭력의 고리를 끊어야한다고 생각했다. 모성을 지닌 따뜻한 영혼의 세계... 아마도 영혼의 집에서 늙어 죽어가는 에스테반에게 클라라가 남긴 가르침을 그것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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