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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의 흔적을 걷다 - 남산 위에 신사 제주 아래 벙커
정명섭 외 지음 / 더난출판사 / 2016년 8월
평점 :

잊으려는 기억, 남아있는 상처 - 일제의 흔적을 걷다 _ 스토리매니악
일제강점기 35년은 우리와 맞닿아 있는 역사다. 우리 민족은 예부터 다른 민족과 나라의 침입을 자주 받았고 그로 인한 상처가 많다. 하지만 21세기를 사는 우리들은 그 먼 곳의 상처는 단순한 기록 정도로 이해한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35년의 상처는 21세기를 사는 우리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아픔이다. 그 시대를 살며 모진 세월을 견뎌낸 인물들이 생존해 있기도 하고, 그 때 남은 생채기들이 곪아 지금 우리 사회의 큰 이슈로 남아 있기도 하다. 이처럼 우리가 느낄 수 있는 큰 아픔의 시기, 아픔의 상처들을 지금의 우리는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적어도 내가 파악하는 우리의 모습은 그 시기를 치욕스럽게 느끼고 잊으려고 하는 것으로 보인다. 젊은 세대들에게는 교육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안중근 의사가 긴또깡으로 불리고, 군국주의의 상징인 욱일기가 셀럽들의 SNS와 TV 프로그램에 버젓이 등장하고는 한다. 좀 더 윗세대들은 일제의 잔재를 없애려고만 하지 그 잔재들이 갖는 의미와 그것을 이용할 방법들을 생각하지는 않는다. 더 윗세대 어쩌면 일제강점기 시대를 살았을 수도 있는 그 세대들은, 일제 시대의 아픔들을 해소하려는 적극적인 노력은 뒷전인채 애먼 애국주의니 민족주의니 친일파에 대한 이야기에만 열을 올리고는 한다. 이처럼 대한민국 사회는 일제강점기의 아픈 기억들을 시간의 흐름 뒤에 슬며시 감추어 애써 잊으려는 것처럼만 보인다.
그런다고 모든 기억들이 없어질까? 그 아픔의 상처들이 모두 아물까? 대한민국의 산하 곳곳에 남겨진 그 시절의 잔재들을 다 청산할 수 있을까? 일제강점기가 남기 아픈 기억인지도 모른채 사용되는 잔재들이 수두룩하며, 일반 시민들은 그것이 우리 고유의 전통 유산인줄 알고 있는 경우도 허다하다. 애써 잊으려는 노력이 가져온 아쉬운 무지다.
이 책의 저자들은 그렇게 애써 잊으려 하는 아픔들을 꺼내 펼쳐 놓는다. 우리 국토 곳곳에 세워진 일제의 유산들을 찾아가 둘러보고 그 유산들이 남겨 놓은 이야기들을 전달한다. 남산 위에 있는 일본의 신사와 제주의 땅에 묻혀가는 벙커까지, 우리 땅에 남아 있는 아픔의 흔적들을 누비며, 지금의 시대에 우리에게 필요한 일제강점기가 주는 메시지를 찾아낸다.
저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 안에 이토록 많은 잔재들이 여전히 남아 있음에 놀라고, 그것들에 대한 조사와 이를 통한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음에 안타깝고, 그런 흔적들을 좀 더 발전적으로 해석하여 이 시대에 교훈을 던지고 또한 새 시대를 사는 길잡이로 삼지 못함에 한탄하게 된다. 부끄러운 기억이라고 없애기만 하고 잊으려고만 하는 우리들의 행태와 정부 당국의 안일함이, 우리가 가지고 있는 또 하나의 역사를 묻어 버리는 것이 아닌가 하여 내내 마음이 무겁다.
책에서 소개되는 일제의 흔적들은 알고 있는 경우도 있고 처음 알게 된 곳도 있었다. 무엇보다 저자들의 세심한 조사와 그것들의 용도와 역사에서 갖는 의미를 유추하고 찾아 들어가는 과정이 참 인상적이다. 건물의 외양을 자세히 묘사하고, 벙커 내부 모습을 상세히 정리하는 것을 보며, 하나의 자료로써 또 다른 연구의 기초로써 사용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 또 저자들이 그런 부분들을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한 부분이 많이 보였다. 조금은 전문적인 내용에 갑갑함이 느껴질 수도 있으나, 그런 내용들이 지니는 의미를 곱씹어 볼 때 오는 또 다른 전율이 있다.
무엇보다 그것들이 우리의 가슴 깊이 남겨진 아픔의 원흉들이라는 점에서 감흥이 더 했던 듯 싶다. 저자들의 답사를 통해 일제강점기의 시대상을 유추하고, 그 과정에서 희생된 민초들을 되새기며, 이러한 역사를 이해하고 공부하는 것이 왜 중요한가를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해방 후 70여년이 지났다. 건국절이 어디부터 시작이니, 교과서의 근대사를 뜯어 고치니 마니 하는 자신의 역사관을 주입만하려는 사고에서 벗어나, 저자들처럼 역사가 남긴 흔적들을 보듬어 보는 일부터 해야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