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벌
기시 유스케 지음, 이선희 옮김 / 창해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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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괴함이 감도는 처절한 서스펜스 - 말벌 _ 스토리매니악

 


'공포' 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우선 '러브크래프트' 라는 인물이 떠오른다. 현대의 공포소설 조상격으로 불리는 이 작가는 '미지의 존재에 대한 공포' 가 얼마나 으스스한 것인지를 보여주었다. 나 또한 존재하지 않는, 생각지도 못한 존재로부터의 공포가, 실제하고 있는 존재로부터 공포보다 클 수 있다는 점에 동의하고 있다. 때문에 공포소설에서 존재 자체가 보여지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일본의 인기 호러 소설가 중 한 사람인 '기시 유스케' 가, 실체가 존재하고 익히 알고 있는 존재를 내세워 소설의 소재로 삼았다는 것에 일견 의아하기도 했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 알겠지만, 실체가 있는 존재에 대해 트라우마가 있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트라우마로 인한 공포는 그 어떤 공포에도 뒤지지 않는다. 저자는 바로 그 점을 날카롭게 포착하여 이 소설의 소재로 삼았다.

 


이 작품은 작가의 2013년도 작품이다. <검은집>, <악의 교전> 등으로 유명한 호러소설 작가답게 '공포' 라는 단어를 정면에 내세웠다. 다만 특이하게도 그 소재가 '말벌' 이다. 말벌의 독에 대한 두려움은 누구나 있지만, 그 두려움이 어떻게 공포에 어울릴까 쉽게 매치가 되지 않았다.

 


이야기의 시작부터 독특하다. 배경 설명, 캐릭터 설정 없이, 다짜고짜 주인공을 생사의 갈림길에 몰아 넣는다. 벌 독에 대한 알레르기 반응 때문에 다시 벌에 쏘였다가는 죽을 수도 있는 주인공이, 잠에서 깨자 마자 공포의 소리를 듣는다. 바로 말벌의 날개짓 소리! 생명이 위험할 수도 있겠다 생각한 주인공이 말벌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나려 애쓴는 것이 이 소설의 주된 줄거리인데, 일견 굉장히 맥없이 보이는 이야기의 줄기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내용이 주인공의 상황과 말벌에 대한 사실적인 묘사, 눈 덮인 산장에 고립되어 벗어날 수 없는 상황에서의 죽음에 대한 공포 등과 어울려 묘한 공포로 휩싸인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있다.

 


솔직히 공포라는 단어 보다는 기괴함이라는 표현이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이야기를 읽으며 심장이 쫄깃해지는 공포보다는, 이야기 어디에선가 느껴지는 기괴함, 뭔가 모를 뒤틀림이 거슬렸기 때문이다. 그 기괴함의 정체는 결말에서 드러나기도 하지만, 작가의 의도적인 시점 장치에 기인하는 면도 커 보인다. 다양한 스토리를 펼치는데 여러 문제점을 안고 있다는 1인칭 시점으로 이야기가 이어지는데, 보기에도 1인칭 시점은 답답함이 느껴졌다. 하지만 저자가 1인칭을 선택한 이유가 3인칭으로 보여지는 결말에 이르면서 해소가 되고, 그 기괴함의 정체가 이해된다. 이야기 자체에서 느껴졌던 답답함과 기괴함이 결말에 이르러 속시원히 해결되는 쾌감은 이 소설의 색다른 묘미가 아닐까 생각한다.

 


사실적인 묘사 위에 서스펜스와 미스터리적인 설정이 교묘히 섞여 있다. 작가 특유의 기괴함을 보여주는 분위기 설정과 묘사가 좋고, 거기에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소리' 사용이 어우러진다. 말벌의 윙윙 거리는 날개짓 소리가 공포심을 북돋고, 이야기를 진한 두려움의 향기로 물들일 때, 작가가 의도한 공포의 실체를 이해하게 된다.

 

다만 이 작품이 전작들인 <검은집>이나 <악의 교전> 등에 비해 잔혹함이나 호러 자체가 갖고 있는 공포심에는 못미친다. 어찌보면 서스펜스 위주의 소설이라 작가의 분위기를 기대했던 이들에게는 실망으로 비춰질 수도 있겠다. 결말에 대한 해석도 독자에 따라 평가가 달라질 여지가 있지 않나 생각된다.

 


상당히 호불호과 극명히 나뉠 소설이 아닌가 싶다. 나도 어떤 면에서는 실망했지만, 다른 면에서는 상당히 마음에 들기도 하는 소설이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 특유의 장점이 잘 드러난 소설이라 나쁘지 않은 점수를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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