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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악마다
안창근 지음 / 창해 / 2015년 11월
평점 :

정의를 감추는 사회, 정의를 드러내는 유령 - 사람이 악마다 _ 스토리매니악
정의 사회 구현이라는 표어를 어린 시절 많이 보았던 기억이 있다. 지금도 관공서 특히 경찰서에 이런 표어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 여섯 단어에 담긴 막연하면서도 희망적인 메시지가 주었던 감흥은 잊히지 않는다. 저 단어만으로도 내가 정의 사회에 살고 있는 듯한, 앞으로 내가 살 곳은 정의가 충만한 사회가 될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이 있었다. 어른이 되어 한참의 시간이 지난 지금 생각해 본다. 과연 우리 사회는 정의 사회를 구현하였는가?
이 질문에 '예' 라고 대답하는 사람들은 정치인이거나 행정권의 고위직에 있는 사람일 가능성이 많다. 간단히 말해 현실을 모르거나, 애써 외면하거나, '예' 라는 대답이 자기에게 유리한 사람이다. 지금의 우리 사회는 불의가 넘쳐나는 사회다. 사회 시스템으로 좀 더 안전하고 좀 더 안락할지는 몰라도, '정의' 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10년 전이나, 20년 전에 비해서, 그다지 개선되었다고 볼 여지가 없다. 이는 뉴스만 슬쩍 보아도 간단히 검증된다.
나는 이 소설이 불의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다 평하고 싶다. 연쇄 살인이라는 용서받지 못할 범죄를 저지르는 범인이 그 결말에 이르러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 불의를 바라보고 있다고 밖에는 할 수 없다. 사회의 부조리한 면들이 어떤 불의를 낳고 그 불의가 어떤 결과를 가져오며, 그럼에도 여전히 우리 사회는 불의를 외면하고 있다는 만만찮은 무게의 메시지다.
스릴러 소설이기에 본격적으로 다룰 수 있는 부분을 아주 잘 들춰 이야기하고 있다. 또 그 메시지를 억지로 주입하는 것이 아닌, 이야기의 형식을 잘 살려 그 안에 녹여내고 있는 점도 훌륭하다. 무엇보다 스토리 자체가 가독성 있게 읽힐 만큼의 힘을 갖추고 있어 읽는 내내 즐거웠다. 간만에 국내의 장르소설 중에 속도 있게 또 재미를 느끼며 읽은 소설이 아닌가 싶다.
유령이라 명명된 연쇄살인범, 이 살인범을 프로파일링 하는 또 다른 연쇄살인범의 구도는 이야기의 흥미를 돋우기에 충분했으며, 스릴러로써의 이야기에 긴장감을 불어 넣는 역할도 충실히 했다. 닮은 듯 하면서도 다른 두 인물의 팽팽한 대립, 서로간의 두뇌 싸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전개 방향은 스릴러 소설이 가지고 있는 재미들을 한껏 느끼게 해주었다. 또, 국내 소설에서 쉽게 볼 수 없는 다양한 지식들이 동원된 암호 풀이와 이를 응용한 프로파일링 수사 등도 이야기에 재미를 더해주었다.
전체적으로 본다면 스릴러 소설로써 재미가 충분하다고 본다. 큰 흐름에서 보이는 재미들은 나름 조밀한 구성 안에 잘 녹아 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보이는 아쉬움도 공존한다. 우선 캐릭터를 깊이 다루지 못한 점에 큰 아쉬움이 남는다. 전직 형사이자 최고의 프로파일러였던 강민수, 그가 왜 연쇄살인범이 되어야 했고, 그의 연쇄 살인에 남은 의문점이 무엇인지, 그의 과거를 깊이 있게 다룸으로써 캐릭터의 깊이를 더할 수 있었다고 본다. 또 이를 통해 그의 전 애인이자 하나의 키로 등장하는 여주인공의 캐릭터 또한 그 심리의 깊이를 이해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또, 앞서 말한 다양한 암호 풀이나 오컬트 지식 등은 하나의 재미 요소이기도 하지만, 소설 안에서 약간의 위화감을 띄는 것도 사실이다. <다빈치 소설> 같은 경우와 비교해 보면, 그 소설에 등장하는 암호 체계와 수수께끼는 이야기의 요소이기도 하지만, 그 자체가 이야기이기도 하다. 때문에 다양한 방식이 등장해도 위화감 없이 섞인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는 수수께끼를 위한 수수께끼라는 경향이 강하다. 또, 문학, 오컬트, 수학, 수비학 등 다양한 지식을 활용한 수수께끼들이 오히려 그 분야의 다양성으로 인해 어수선함을 일으키지 않았나 싶다.
이처럼 세부적으로 보면 허점도 보이고, 조금은 아쉬운 부분도 많아 보이는 소설이다. 하지만, 스릴러로써의 흥미점도 못지 않게 가지고 있어 재미를 놓치지는 않는다. 일례로 강민수는 감옥에 수감된 몸이다. 그 상태에서 경찰의 협조 요청에 응해 범인에 대한 프로파일링을 실시한다. 이는 마치 제프리 디버의 <링컨 라임> 시리즈를 떠올리게 한다. 사지가 마비된 상태에서 두뇌만으로 범인을 상대하는 링컨 라임과 감옥에 갇혀 제한된 자료로 범인을 유추하는 강민수의 모습이 오버랩된다(끝부분에서는 약간 다른 점도 있다). 부자유스러운 상태에서의 두뇌 대결이 긴장감과 흥미는 이 소설에서 느낄 수 있는 하나의 빅재미이기도 한 것이다.
흥미로운 요소로 무장하고 유려한 스토리 구성으로 그려진 이야기에 묵직한 사회적 메시지까지 담고 있어, 본격 스릴러 소설이 주는 재미를 한층 끌어올린 소설이었다. 국내 작가의 스릴러 소설에 더욱 기대를 갖게 한다. 좀 더 국내의 사회상을 담고 있는 장르소설들이, 더 다양한 모습으로 그려졌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