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야간비행 - 정혜윤 여행산문집
정혜윤 지음 / 북노마드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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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여행을 상상하다 - 스페인 야간비행 _ 스토리매니악

 

여행은 보통, 여행을 떠나기 전 준비의 과정이 가장 즐겁다고 한다. 가기 전 여행지의 다양한 모습들을 상상하면서 행복감을 느끼고, 내가 원하는 여행을 그려볼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다 여행지에 도착하여 모든 것을 이미지로 확인하는 순간, 상상했던 모습들은 조금씩 무너지기 마련이다. 그 정도가 심하냐 그렇지 않냐에 따라 여행의 성적이 결정되는 것은 아닐까?

 

CBS 라디오 프로듀서이자 북 칼럼니스트인 '정혜윤' 작가는 내가 말한 여행을, 이 책을 통해 잘 보여준다. 스페인의 여러 도시들과 리스본 등을 보여주는 여행산문집인 이 책은, 일반적인 여행책에는 꼭 있는 것이 없다. 바로 여행지의 사진이다. 어느 여행책을 들춰보아도 여행지의 사진이 수십, 수백 장 들어 있다. 심지어는 여행기인지 사진집인지 분간이 안 갈 정도로 사진으로 도배한 책도 수두룩하다. 그런 책들이 일반적인 요즘에, 여행지 사진 한 장 들어 있지 않은 여행산문집이라니, 신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저자는 단 한 장의 여행 사진 없이, 오직 텍스트로만 여행을 그려내고 있다. 그러나 여행지를 보여주는 사진이 없음에도 오히려 그렇기에 더 여행지가 선명한 이미지로 다가온다. 정형화된 틀 안에서 보는, '이곳의 이미지는 이런 거야' 라며 지정해 주지 않는, 텍스트를 통해 한껏 상상하게 되는 이미지다. 소설이 재미난 이유가 바로 이 지점이다. 이미지로 보여주지 않고, 글을 통해 이미지를 상상하게 함으로써,사람마다 다른 감정, 다른 이미지를 불러 일으킨다. 이 책은 바로 그런 소설 같다. 텍스트를 통해 여행지의 모습, 여행지에서의 감정, 여행지에서 느껴지는 분위기를 전달하며, 한껏 상상하게 해준다. 마치, 여행을 떠나기 전 여행지를 한껏 상상하듯이 말이다.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도 독특하다. 독자를 대상으로 말을 하듯 풀어낸다거나, 로드무비 형식으로 가는 길을 쭉 보여주는 방식이 아니다. 특이하게도 서간문 형식이다. " 미스 양서류야. " 로 시작하는 이야기는 마치 누군가에게 편지를 하듯, 자신의 여행 이야기를 들려준다. 보고 느낀 것을 전달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자신의 감정까지 고스란히 전달되는 방식이다. 덕분에 더 많은 감정을 흡수하고 더 큰 이미지를 그려보게 된다. 독특한 매력이다.

 

여행기라고는 하지만, 일반적인 여행기와는 다른 점이 또 하나 있는데, 바로 책과 함께 하는 여행이라는 점이다. 관광지를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책과 독서 경험 등을 버무려 여러 책을 통해 여행을 하고 여행을 즐기는 여행기다. 독서 경험을 통해 원했던 여행을 하게 된 작가를 보면서 작가가 원했던 여행지와 그곳의 이야기를 들으며 상상하는 나의 여행지가 겹쳐진다. 작가가 본 곳과 또 내가 그리는 그곳이 얼마나 같은 이미지로 겹쳐질지 궁금하기까지 하다. 나도 꼭 그 이미지를 확인해보고 싶다는 열망이 일만큼, 저자의 이야기가 파고든다.

 

때로는 저자만의 세계를 따라가지 못할 때도 있다. 출판사의 책 소개를 보면 '우주를 유영하듯' 이라는 표현이 있는데, 다른 의미에서 동의하는 표현이다. 저자가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 감정을 따라가지 못했을 때는, 마치 어두운 우주 한 복판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어지럼증 마저 느껴지는 당혹감이 일 때도 있다. 쉽게 말하면 '뭔 얘기지?' 하게 되는...

 

여행을 이렇게 할 수 있고, 이렇게도 이야기 할 수 있구나 하는 것을 가르쳐 준 책이다. 뭔가 괜스레 빠져드는 매력이 있었다. 스페인의 모습을 이렇게도 즐길 수 있구나 하는 점에 감탄하며 읽었다. 좀 색다른 여행산문을 원하는 이들에게는, 많은 어필을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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