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18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선영 옮김 / 비채 / 2009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사회의 부조리에 저항하는 지극히 인간적인 감정 - 고백 _ 스토리매니악


'사회社會'는 불합리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사회를 구속하고 있는 '규칙'이 그렇다. 규칙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단지 정신만을 구속하는 것, 암묵적인 동의 하에 정의되는 것, 또 엄벌 규정이 가장 강한 법률이라는 명문화 된 규칙이 그렇다. 이 모든 것들은 우리의 사회를 구속하는 틀이다. 문명이라는 이름 하에 이 틀은 더욱 견고해지고 팽창했다

 

날로 견고하고 날카로워지는 이 틀은 안타깝게도 인간의 감정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불합리한 것 투성이다.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망가뜨려 놓아도, 몇 년간의 자유만 희생하면 그 죄를 탕감할 수 있다. 사람을 죽여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피붙이가 잔혹한 살인마의 손에 처참히 생을 마감해도, 피해자의 가족은 가해자에게 그 무엇도 할 수 없다. 그 가해자는 몇 년 후 사회에 멀쩡히 복귀한다. 함무라비 법전에 보면 '자유인의 뼈를 부러뜨린 자는 그 뼈를 부러뜨린다'라고 했다. 문명이라는 안경으로 보면 범죄자도 보호 받아야 하는 한 사람의 인간이다. 하지만, 인간의 감정적인 면에서 본다면, 함무라비 법전의 보복주의가 합리적인 것이다.

 

'무엇이 옳은가, 그른가'를 논하고 싶은 건 아니다. 나는 이 부분의 정답은 철저히 '자신'이라는 관점에 있다고 본다. 내가 피해자 혹은 그 가족의 입장이 된다면, 어떻게든 그 피해자에 보복을 하고 싶을 것 같다. 똑같은 고통을 주고 똑같은 형태로 벌을 주고 싶어질 것 같다. 하지만, 법적인 문제로 규범적인 문제로 윤리적인 문제로 그렇지 못하게 된다면 그 심정이 어떨까?

 

여기 그에 대한 하나의 시각을 보여주는 문제작이 있다. 장르소설을 읽는 사람이라면 다 알고 있을 법한 <고백>이라는 소설이다. 이 소설은 충격적인 '고백'으로 시작한다.

 

내 딸 마나미는 사고로 죽은 것이 아니라 살해당했습니다. 그 범인은 바로 우리 반에 있습니다.

한 여교사의 딸이 학교에서 죽었다. 경찰은 사고사라 결론지었다. 하지만, 그 여교사는 자신의 딸은 살해당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자신의 반 아이들 중에 그 범인이 있다고 담담하게 말한다. 그리고, 또 하나의 충격적인 '고백'을 덧붙인다.

 

여교사 '유코'는 자신의 딸을 죽인 범인을 경찰에 알릴 생각이 없다. 어차피 소년법 때문에 16세 미만 청소년은 살인을 저질러도 처벌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유코의 선택은 대담하다. 불합리한 틀을 벗어나 인간의 감정적인 면에 치우친 선택을 한 것이다. 바로 '복수'.

 

저는 두 사람이 생명의 무게와 소중함을 알았으면 합니다.

자신이 저지른 죄의 무게를 깨닫고 그 죄를 지고 살아가길 원합니다.

이야기는 이 복수를 시작으로, 사건에 연루된 사람들의 독백이 이어진다. 저마다의 잣대를 통해 자신의 입장을 이야기하고, 자신의 심정을 드러내며, 각자가 이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을 생생하게 묘사한다. 마치 자신이 관련되지 않은 사건을 이야기하듯 담담하게 풀어내지만, 그 안에 담긴 기운은 섬찟하다유코의 복수로 인해 만들어진 갈등, 갈등으로 인해 드러나는 가해자들의 심리, 가해자를 지켜보는 사람들의 감정까지, 이야기에서 느낄 수 있는 이 소설만의 기운은 범상치 않다.

 

하나의 사건에 연루된 사람들의 각기 다른 시각, 그것들이 부딪히며 만들어내는 문제의식, 문제의식을 통해 보게 되는 사회의 부조리함, 그 부조리함 안에 엉켜 있는 인간의 감정들, 이 모든 것들이 이야기의 흐름 속에 자연스레 녹아 있다. 각각의 캐릭터에서 뿜어져 나오는 감정을 느끼고 있노라면, 그들이 제시하는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에 깊이 빠져들게 된다.

 

유코는 사회라는 틀 안의 시각으로 딸의 살해를 보지 않고, 철저히 자신의 관점에서 바라봤다. 그 결과 복수라는 선택이 이어졌고, 이 선택은 가해자와 그를 둘러싼 집단에 심리적감정적 문제를 불러 일으킨다. 이 소설이 충격으로 다가왔던 부분은, 틀 안에서 괴로워만 하는 인물이 아니라철저히 자신의 관점에서 복수라는 지극히 인간의 감정적인 면을 실현한 주인공의 모습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그것도 철저히, 자신의 감정을 꾹꾹 눌러 담은 복수로 말이다.

 

나는 독백으로 이루어진 소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이야기에 리듬을 느끼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이 소설 또한 그렇다. 흥을 돋울 만한 적절한 리듬감은 상당히 배재 되어 있다. 하지만, 그 리듬감을 아우르고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흡인력이 있다. 나도 모르는 새에 저항할 수 없는 힘에 이끌려 들어간다. 그 흡인력에 압도 당하면 정신 없이 페이지를 넘기게 되는 소설이다.

 

'복수'라는 동적인 선택을 '고백'이라는 정적인 형태로 풀어낸 작가의 재주가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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