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라는 글쓰기 플랫폼이 있다. IT 대기업 카카오에서 제공하는 플랫폼이다. 

자기가 쓴 글을 기반으로, 작가 신청을 하면 심사를 거쳐 브런치 작가로 인정해주고 

글을 쓰는 자리를 제시해주는 플랫폼인데, 외국의 미디엄이라는 작가 플랫폼을 벤치마킹해서 현지화한 느낌이 든다.


야심만만하게 준비해서 두 번 정도 지원했고, 쓴 글에 대해 시원하게 퇴짜를 맞은 다음, 나는 브런치를 철저히 무시하기로 했다. 더 나아가 브런치를 탈퇴를 할 까 했지만, 그정도 까지는 나가지 않았다. 

브런치에 퇴짜 맞았음에도 잘먹고 잘 살았다고 소문 나는게 내 인생의 사이드 프로젝트다. 


그래서, 브런치 에세이 대상을 받았다 어쩠다 해도 개무시했다. 그 따위 책들을 읽을 시간에 다른 양질의 책을 읽고 말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우연히 이 책을 만났다.

이 책은 누군지 말할 순 없어도 모든 책을 대놓고 까는 어떤 리뷰어가 이 책을 극찬했고, 나는 마음이 동했다. 

무시해왔던 브런치였지만 읽어보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하룻밤 만에 다 읽었다. 나의 시니컬한 독서습관에서 이 정도의 임팩트를 가진 책은 김영민교수님의 책 이후에 오랫만이었다.


간략히 이야기하면, 이 책의 정수를 다 말하지 못할 우려가 있다. 전공이 영문과였던 주인공이 일본에 치의대 관련 공대에 박사과정에 지원해서 갖가지 우여곡절 끝에 박사과정을 마치고 학위를 받은 후 일본에서 서바이벌하다가 미국에 건너가서 자신의 선택에 따라 열심히 survive하는 과정을 그린 에세이인데, 대상을 받기에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 만큼 based on true strory로 적힌 소설같은 인생역정이었다. 


일본 여행을 가보면 그들의 친절함에 놀란다. 특히, 관광지에서 그들이 보여주는 마음 속에서 나오는 친절함에 감동하기도 한다. 이런 사람들이 우리를 지배할 때 그렇게 괴롭혔던가 헷갈리기도 한다. 하지만, 관광에서 겪는 것은 어느정도 걸러서 보아야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을 쓰는 사람은 우월한 지위에 있기 때문이다. 똑같은 상황에서 돈을 벌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은 다르게 접할 수 밖에 없다. 이 에세이의 주인공은 반대로 일본에서 돈을 벌거나, 장학금 상황을 유지하기 위해서 현지 일본인과 의사소통해야하는 사이였다. 밥벌이와 관련된 고통이기에 거기에 친절함을 찾기는 힘들다. 


저자가 가지고 있는 무한 긍정과 노력의 배경에는 종교적인 측면도 있기에, 섣불리 이 책을 누구에게나 추천하기는 어렵다. 반대로 말하면 기독교인들에게는 어필하는 측면이 더 강할 것이다. 나는 저자가 어려운 시절에 말한 "자동분류기"라는 말에 특히 공감을 했다. 


"이는 어떤 일에 대하여 이건 화가 날 일, 이건 슬픈 일이라고 결정짓는 ‘자동분류기’가 유년기부터 차츰차츰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느닷없이 따귀를 때리는 노숙자에게 무슨 일이 있으시냐고 침착하게 묻는 사람과 길거리에서 실수로 어깨를 치고 지나가는 행인에게 불같이 화를 내는 사람의 차이는, 이 자동분류기를 때려 부수고 반응의 주인이 된 사람과 여전히 자동분류기의 공식에 따라 주어진 상황에 자동으로 반응하며 사는 사람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말은 데이비드 포레스트 월리스가 이야기한 디폴트 세팅의 관점과 거의 동일하다.

 

"태어날 때부터 우리 뇌에는 ‘디폴트’로 배선이 그리 깔려있는 까닭이다. 생각해 보라. 지금까지 너희가 경험한 것 중 너희가 그 중심에 자리잡고 있지 않은 경험이란 게 있었는지. 너희가 경험하는 세상은 네 앞에 있든지 뒤에 있든지 옆에 있든지, 아니면 티브이에 있든지 모니터에 있든지, 하여튼 네 둘레에 있다. 남들의 생각과 느낌은 어떤 식으로든 너희에게 소통돼야 하지만, 너희 자신의 생각과 느낌은 그런 매개체가 필요 없다. 직접적이다. 급박하다. 현실이다." 

- 데이비드 포레스트 월리스


월리스는 어떤 대학교 졸업식 축사에서 위와 같은 '디폴트세팅'을 거스르는 삶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마무리했다. 태어날때 부터 타고난 잘못된 디폴트세팅을 거스르는 삶을 살았던 '조태호' 작가에게 감동했던 이유다. 

시니컬한 독서습관을 가지고 있던 내게 울림있는 감동을 주었던 책이고, 가족이나 주위 사람들에게 추천해줄만한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Quote>


사람의 두뇌는 편안한 곳을 안전한 곳으로 착각한다.


하지만 편안한 곳은 위험한 곳이다.


변화를 가로막고 그 자리에 머물도록 정체시키다 결국 더 큰 위험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결국 안전하다고 착각하게 하는 지금의 편안함을 언제든 털고 일어날 수 있어야 한다. 그 두려운 한 걸음이 나를 더 큰 위험에서 벗어나게 해 주기 때문이다.


내가 바꿀 수 없는 부분에 원인을 두어 끝없이 원망하고 불평하기보다, 세상과 나의 경계를 파악해서 나를 지키고 내 생각을 지키는 것. 세상과 분리된 내가, 긍정적이고 확신으로 가득한 작은 선택들을 계속해서 만들어 가는 것. 이것이 세상이 주는 결과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기쁨으로 살아가는 모습이 아닐까 


나를 찾아오는 세상의 어떠한 일들도 기쁨으로 받아들이고 장차 올 수도 있는 일들에 소망을 품는 것. 이러한 결단은 누구도 나를 대신해서 해 줄 수 없다. 


이만큼 했으니 반드시 이만큼은 되어야 한다’는 기대를 더 이상 하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 마음의 짐을 벗어 놓으니 뛰던 걸음을 늦추고 조금 천천히, 하지만 확실히 한 걸음씩 내딛을 수 있었다. 


일본의 꽉 막힌 조직구조를 답답해하기도 했지만, 시스템이 없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환경 속에서 수천 년을 살아온 사람들이라면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교토대학은) 일등이 아니라, 유일을 추구하기 때문이죠.” 


변화하지 않으면 뒤처지는 것은 생명의 본질과도 같다. 모든 것들은 지금 여기에서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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