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어진 한조각 커다란 동그라미를 만나
쉘 실버스타인 / 청목(청목사) / 1991년 2월
평점 :
절판


새해를 맞아 집안 곳곳을 정리하며 많은 시간을 보냈다. 옷이며, 물건들이며, 책이며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것들을 모아 정리했다. 그러다보니 오랫동안 구석에 숨어 있던 책들도 많고, 박스 안에 들어가 있는 책들도 참 많았다. 아이들이 어려서도 잘 안 보이는 곳에 책들을 놔두었는데, 이제는 아이들이 어느 정도 커서 책을 일부러 찢거나 하지는 않으니 책을 내놔야지 싶었다. 그러다보니 한동안 못 봤던 책들을 하나 둘 만날 수 있었다.

 

이 책 역시 책장 깊숙이 숨어있던 책이었다. 근데 너무 오랜만에 봐서인지 책 내용이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래도 참 기분 좋게 읽었던 기억은 강하게 남아있어서 정리하다 말고 책장을 넘기었다. 역시나 이 책은 쉽게 읽히지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책이었다. 애써 설명하거나 설득하려 하지도 않았고, 화려하고 현란한 문장으로 현혹하지도 않았다.

 

그저 어느 한 조각의 기다림과 만남을 들려주었고, 만남 속에서 지나가듯 한 마디 툭 듣게 되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 한 마디 덕분에 조각은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원하던 동그라미가 되어 함께 굴러 어디든 갈 수 있는 자신의 짝을 만나게 되었다.

 

처음에는 조각의 기다림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누구든 어딘가에 있을 자신의 짝을 기다린다는 생각에 말이다. 쉽게 자신의 짝을 찾지 못하는 조각의 짧고 어려운 만남 역시도 당연하게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조각이 자신과 꼭 맞는 조각을 찾았을 때 나도 기뻤고, 점점 커져가는 조각 때문에 그 조각과 헤어졌을 때는 나도 안타까웠다. 하지만 이 역시도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커다란 동그라미를 만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나하고 함께 갈 수는 없어도 너 혼자서 굴러갈 수는 있을 거야.”

커다란 동그라미가 대답해 주었네.

“나 혼자 말이야? 나처럼 이렇게 떨어져 나간 조각은 혼자 굴러갈 수 없는 걸.”

“혼자 굴러가려고 생각이나 해봤니?”

커다란 동그라미가 야단치듯 물었네.

“끝이 뾰족한데 굴러갈 수 있을까.”

조각이 되묻자

“구르려고 애쓰다 보면 뾰족한 건 닳아서 모양이 변할 거야. 하여튼 난 가야하니까 나중에 만나자.”

그리고는 커다란 동그라미는 데굴데굴 굴러가 버렸네.

- <떨어진 한 조각 커다란 동그라미를 만나> p65 중에서 -

 

커다란 동그라미가 들려준 그 한 마디는 참 강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내가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을 다시 한 번 돌아보게 했다. 그러면서 많은 생각이 몰려왔다. 나는 어떤가 싶었다. 나 역시 혼자 굴러가려고 생각이나 해봤다 싶었다. 왜 나에게 부족한 것을 찾아 채워야만 한다고 생각했을까. 왜 나의 부족한 점을 모두 다 채워야만 내가 구를 수 있다고 생각했을까 싶었다. 내가 내 부족한 점을 채우는 것에만 급급하다면 난 평생 구를 수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부족한 점은 채웠다고 생각하는 순간 다시 또 커질 테니까 말이다.

 

어쩌면 나는 지금의 나로서는 구를 수 없다고 단정지어버렸던 것 같다. 아무것도 해보지도 않은 채 혼자서는 구를 수 없다고 말이다. 새로운 해를 맞이하며 나는 다짐해본다. 나도 잠시도 쉬지 않고 열심히 굴러서 더 이상 조각이 아닌 동그라미가 되어보겠다고.

 

 

 

- 연필과 지우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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