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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발 직전의 여자 2
마이테나 부룬다레나 지음, 옥지윤 옮김 / 에디터 / 2006년 6월
평점 :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여자들의 심리는 비슷한 것 같다. 서양 여자가 쓴 이 책을 읽으며 내가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보면 말이다. 폭발 직전의 여자. 어쩌면 난 폭발 직전의 여자가 아니라, 이미 폭발한 여자인지도 모르겠다. 꿀꿀한 기분으로 혼자 찾은 커피숍 책장 한켠에서 내가 찾은 이 책을 보며 참 절묘하다는 생각을 했다. 이런 책이 있는 줄도 몰랐는데 지금 이 순간 내 눈에 들어와 내 손에 이 책이 잡히다니 말이다.
여자이기에 공감할 수 있고, 여자라서 공감할 수 있는 책. 이 책이 바로 그런 책이다. 이 책의 마지막장에 쓰인 저자의 삶을 보면, 이 책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스무살이 되기 전에 결혼을 하고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던 저자, 그리고 이혼을 했다가 서른살을 넘기고 다시 결혼과 함께 세 아이의 엄마가 된 저자. 여자로서 쉽지 않은 삶을 살고, 여자로서 살 수 있는 다양한 삶을 산 저자였다.
그리고.. 난 서름 즈음 결혼을 하고 서른을 막 넘기고 바로 두 아이의 엄마가 된 여자다. 서른 세 살인 난 가끔 시한폭탄 같다. 그래서 가끔 빵빵 터지곤 한다. 나의 불만과 우울함이 어디서 오는 건지도 모른 채 말이다. 오래오래 생각해본 결과, 그것은 아마도 내 인생에서 그리고 내 삶에서 내 자신이 점점 없어져가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 근데 내 안의 시한폭탄은 어떻게 해야 없앨 수 있는지, 도저히 모르겠다. 어떻게 해야 내 인생에서, 내 삶에서 내가 다시 주인공이 될 수 있는지도..
이 책의 저자에게는 집필하는 것이 해결책이었나보다. 해우소.. 음식을 먹었으면 소화된 음식이 나와야 하는 곳이 있어야 하듯, 내 안에 쌓인 불만과 우울함도 분명 빠져나갈 곳이 필요했다. 내 마음의 해우소를 찾는다면, 내 안의 시한폭탄도 사라질 듯 한데, 그 해우소를 찾아도 찾아도 찾아지지가 않는다. 이 책의 저자처럼 이런 내 자신을 주인공으로 만들 수 있는 표현할 뭔가를 찾아야 할까..?
이 책의 제목이 폭발 직전의 여자이지만, 이 책 안에서 폭발하는 여자는 없었다. 나 역시도 이 책을 읽으며 폭발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 책을 읽기 전에 폭발 직전이었던 것들을 이 책을 읽은 후엔 조금 잊을 수 있었다. 여자들의 화를 유머로 승화시킨 이야기들을 보며 화조차 삶의 일부로 보였기 때문이랄까. 그 잊혀짐의 유통기한은 너무도 짧았지만 말이다.
생각에 생각을 거듭한 끝에 나는 결혼은 여자의 자유와 독립을 끝장내는 무시무시한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그러나 내가.. 무시무시한 결혼이란 걸 하게 된 것이다.
- <폭발 직전의 여자 2> p79 중에서 -
이 책에서 가장 공감이 가는 구절이었다. 이 책의 저자가 자신의 삶에 대해 적은 부분에 써놓은 글이었다. 그녀처럼 나 역시 그 무시무시한 결혼을 했고, 그와 함께 여자로서의 자유와 독립이 끝장이 났다. 끝장이 났다는 말이 좀 과한 표현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혼이 주는 즐거움과 행복보다 결혼이 주는 힘겨움과 괴로움이 더 큰 시기에 있는 나이기에 저자의 말에 공감이 갔다. 난 무시무시한 결혼을 한 것이다.
그동안 잃어버린 여자로서의 삶을 되돌려받을 수는 없겠지만, 언젠가 다시 내 삶을 살 수 있게 되지 않을까. 그때면 난 내 안의 시한폭탄을 저 멀리 날려버릴 수 있지 않을까. 오늘 폭발 직전이었던 여자였던 나는 내 안의 시한폭탄이 터지는 것을 잠시 보류할 수 있게 되었다. 다음에 또 폭발 직전이 되면 이 책의 1권을 찾아 읽어봐야겠다. 그때는 이 책의 반대편에 있는 영어버전으로 읽어봐야지. 근데 그러다 영어 때문에 폭발하게 되지는 않을련지 모르겠다.
- 연필과 지우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