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0호
움베르토 에코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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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0호
움베르토 에코의 마지막 소설이라는 광고가 조금은 선정적이다. 이 소설은 나중에 쓰긴 했어도 이미 오래 전-[장미의 이름]과 [푸코의 진자]를 발표한 이후-에 이미 소재를 생각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출판사나 서점의 광고는 한결같이 '언론과 권력에 대한 풍자'라고 말하는데, 이 소설에서 이야기하는 내용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이탈리아의 언론을 장악하고 총리가 되어 나라를 망가뜨린 베를루스코니와 그가 운영한 지저분하고 타락한 언론에 대한 풍자와 비판이고 다른 하나는 움베르토 에코가 즐겨 사용하는 역사적 음모론이다. 소설의 시작도 그의 예전 작품들-장미의 이름, 푸코의 진자, 전날의 섬 등-과 같은 구조를 보인다. 즉, 생존한 주인공이 위험에 놓인 상황에서 지금까지의 사건을 회상, 기록하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현재로 돌아와 문제를 해결하거나, 비극적 상황을 맞이하는 것이다.
결코 발행하지 않을 신문을 만들기 위해 모인 사람들은 새로운 신문의 편집방향을 두고 갑론을박한다. 이들이 참고하는 기존 언론의 모습은 돈과 권력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부패한 언론의 모습이다. 신문은 너무 고급스러워도 안 되고, 너무 천박해도 안 되고, 신문발행인이 고소당할 기사를 취급해서도 안 되고, 기사에 언급된 개인이나 단체가 공격할 때를 대비해 빠져나갈 뒷구멍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기자들은 저마다 자신들이 얻을 수 있는 정보를 찾아 길거리로 나서고, 무언가 새롭고, 사회적 이목을 띌 수 있는 기사소재를 찾으러 다니는데, 이때 한 기자가 다른 사람에게는 비밀로 하고 주인공에게만 자신이 취재하고 있는 내용을 알린다. 그 내용은 무솔리니의 생존설과 관련된 음모론으로, 이 이야기는 움베르토 에코의 이 소설에서 매우 자세하게 언급하고 있지만, '위키백과'에도 무솔리니 생존설 음모론이 떠 있는 바, 극히 일부의 독자는 움베르토 에코가 '위키백과'에서 소재를 가져왔다고 주장했다는 말이 있다. 물론 결코 그런 일은 없었지만, 무솔리니 생존설은 히틀러 생존설과 함께 거대한 음모론을 만들어냈다. 무솔리니는 1945년 4월 28일에 처형된 것이 아니라, 생존해서 아르헨티나로 갔으며 그곳에서 잘 살고 있었다는 내용이다. 여기에 이탈리아에서 70년대 발생한 쿠데카를 연결해 전후 이탈리아 공산당과 파시스트의 협력, 이탈리아 교황청과 아르헨티나 대교구가 무솔리니의 도피를 도왔다는 설, 여기에 유럽과 미국 정보국의 암약, 교황청 뒤에 숨어 있는 중세 비밀조직의 등장 등 온갖 음모설이 등장한다.
소설의 재미로 보면, 신문을 창간하겠다는 이야기보다는 무솔리니 생존설이 훨씬 재미있다. 두 이야기가 두 줄기로 흘러가고 있다가 마지막에 기자의 죽음으로 이야기는 하나로 모이지만, '장미의 이름'이나 '푸코의 진자'를 생각하고 이 소설을 읽는 독자는 분명 실망할 것으로 생각한다. 아니면, 아주 천천히, 움베르토 에코가 설명하는 이 길고 긴 이야기를 곱씹으며 따라가는 독자라면 읽는 즐거움을 느낄 것이다. 
움베르토 에코의 마지막 소설이라고 해서 '최후의 걸작'이라거나 '최고의 작품'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이 소설도 움베르토 에코의 긴 농담에 불과하다. 그는 '장미의 이름'을 쓸 때부터, 그가 가지고 있는 박학으로 즐거운 농담을 한 것이다. 움베르토 에코의 열렬한 팬인 나도, 그의 농담에 즐거웠고, 행복했으며, 박학의 끝부분을 맛보았다. 그것으로 된 것이다. 움베르토 에코를 추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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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몸 오류 보고서 - 쓸데없는 뼈에서 망가진 유전자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온갖 결함들
네이선 렌츠 지음, 노승영 옮김 / 까치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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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책을 읽는 건 언제나 재미있고 즐겁다. 과학분야는 수학, 의학, 물리학, 천문학, 지구과학, 화학, 공학, 생물학 등 매우 다양하고 폭넓은 분야지만, 이들 각 분야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는 서로 다르지만 흥미롭기는 마찬가지다. 게다가 이 모든 과학 분야를 하나로 아우르는 공통점이 있으니, 그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이 '원자'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과학은 물리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모든 분야를 말하고 있지만, 유일하게 추상적인 세계를 다루는 것이 수학이다. 추상의 세계를 다루고 있지만 수학도 궁극에서는 과학이 밝힌 엄밀한 사실과 일치하므로, 수학과 과학은 분리할 수 없다.
이제는 과학과 역사가 융합되어 '빅히스토리'가 하나의 뚜렷한 분야를 만들었는데, 이것은 빅뱅과 함께 우주의 탄생, 우주의 진화, 우리 은하계의 형성, 태양계의 탄생 그리고 태양계에 속한 지구의 생성, 지구의 역사, 지구에서 발생한 진화와 인류의 탄생, 지구에 살고 있는 모든 생물체의 진화와 인류의 진화를 다루고 있다. 이 모든 과정은 예전이라면 서로 다른 교과서나 책으로 각자의 영역에서 따로 배웠겠지만, 이제는 하나의 통일된 과정과 일관된 이론-진화론-을 바탕으로 배우고 있다.
과학책-과학지식-을 읽는 즐거움은, 인류가 지금까지 배우고, 체험하고, 익혀온 지식과 지성이 과학 지식으로 집적, 축적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인류의 훌륭한 자산이며, 인류가 고도로 진화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하지만, 인류의 문제로 돌아오면, 인류의 진화가 매우 빠른 시간에-6백만년밖에 안 된다. 물론 생명의 진화는 약 36억년의 시간이 축적된 것이므로 결코 짧다고 하기는 어렵지만-이루어졌으므로 필연으로 인류의 진화 과정에서 유전자는 다양한 실패와 실수를 드러내고 있다.
이 책은 인류(정확히는 '인간종')가 진화하면서 발생한 유전자의 진화 과정에서 실패와 실수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인류의 진화는 또한 생명의 진화 과정이므로 지구의 진화와 지구에서 생명의 탄생, 진화를 다루지 않을 수 없다. 현생 인간종에서 과거로 거슬로 올라가면서 생물학적 조상을 찾아가는 과정을 가장 잘 다루고 있는 책은 리처드 도킨스의 [조상이야기]다. 즉, 현재에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는 방식을 통해 우리 인간이 너무도 당연하게 진화의 산물이라는 것-그것도 우연에 의한, 자연선택의 결과라는 것-을 증명한다.
그렇게 진화를 통해 지금의 우리가 있고, 진화-유전자의 활동-는 완전하지 않으므로 지금 현생 인간은 과거 진화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필자 네이선 렌츠는 우리 몸을 들여다보면서, 진화의 흔적을 발견하고, 그 진화 과정에서 완전하지 못한 부분을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다. 차례는 아래와 같다.

머리말:자연의 실수들을 보라
1. 쓸데없는 뼈를 비롯한 해부학적 오류
2. 부실한 식사
3. 유전체의 정크 DNA
4. 호모 스테릴리스(Homo sterilis, 불임의 인간)
5. 신이 의사를 만든 이유
6. 뇌의 오류
후기:인류의 미래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들도 이 책에는 있지만, 그보다 훨씬 자세하고 재미있다. 과학자이면서 전공자들이나 알고 있을 고급한 정보를 필자는 쉽게 풀어 설명하고 있다. '우리몸의 오류'라는 것은 진화를 전제한다. 진화가 없다면 모든 생물의 현재 상태는 완벽해야 한다. 즉, 생물체가 창조되었다면 처음부터 완벽한 존재로 만들어졌을 것이기 때문이다. (신이 불완전하게 만들고, 나중에 진화한다는 가정이나 설명은 '오컴의 면도날 이론'에 어긋난다) 인간의 육체가 불완전한 상태라는 것은 인간(인류)이 아주 오래 전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지금도 계속 진화 과정에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필자는 바로 이 지점, 인간의 육체가 불완전한 상태라는 것과 그 불완전한 부분을 구체적으로 짚어가면서 과학적, 논리적, 진화적 설명을 이해하기 쉽게 곁들이고 있다.
이 책은 과학 지식과 상식으로도 재미있게 읽히지만, 매우 중요한 의학 지식도 들어 있어서, 단지 재미로만 읽는 것 외에 얻는 것이 많다. 2장 '부실한 식사'를 보면, 비타민C로 대표되는 필요한 원소들에 관해 이야기하는데, 다른 동물과 달리 인간의 육체에서 비타민C를 생성하지 못하는 것이 진화 과정에서 발생한 유전자의 선택이라는 것과 과학문명이 발달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육체는 여전히 수만년, 수십만년 전의 인류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이해하도록 만든다. 그렇다. 우리의 육체는 인류 문명의 진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문명과 기술, 과학은 매우 빠르게 진화하고 있지만, 우리의 육체는 여전히 구석기시대에 머물러 있다고 과학자들은 말한다. 그것은, 우리가 먹는 음식들로 인해 발생하는 모든 질병-비만부터 암까지-의 원인이 음식에 있음을 강조한다. 우리몸은 기회가 되면 지방을 축적하도록 진화해 왔다. 구석기시대에는 음식이 충분하지 않았고 특히 육식을 거의 할 수 없었기에, 지방의 축적은 매우 중요한 진화적 선택이었다.
하지만 현대의 우리는 지방과 당류의 섭취가 매우 풍족하게 이루어지고 있어서-아프리카나 아시아 일부의 굶주리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는 알고 있지만 여기서는 잠깐 뒤로 미루자-과거의 유전자에 의해 지방이 축적되는 것을 막을 수 없어 비만이 쉽게 발생하는 것이다.
6장 '뇌의 오류'는 인간이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패턴 가운데 자신이 인지하지 못하는 오류들이 많은데, 그것 역시 인류가 생존을 위해 발생한 유전자의 진화다. 이 책을 포함해 뇌과학과 인지과학에 관한 책을 읽다보면, 인간은 크게 두 부류로 분류할 수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물론, 이것도 이 책에서 말하는 '확증편향'에 속한다) 지구에는 다양한 인종이 살아가고 있지만 이들 사이에는 피부색 외에 다른 아무런 차이가 없다. 그런데 어리석은 인간들은 바로 이 피부색을 갖고 차별을 해왔다. 내가 분류하는 두 부류의 인간은 뇌과학에서 설명하는 '확증편향'과도 관련이 있는데, 흔히 '보수'와 '진보'로 분류할 수 있는 사람들이 그렇다. 물론 대규모 집단에 속한 사람을 두 가지로만 분류하는 것은 옳지 않고, 정확하지 않지만, 여기에 하나를 더 추가한다면 '기회주의자'가 있겠다.
즉, 사회에는 진화를 믿고, 공동체의 선함, 평화, 우애를 지키고 유지하려는 집단이 있고, 반대로 진화를 믿지 않고, 분열, 폭력을 일으키려는 집단이 있다. 그리고 그 사이에 갈팡질팡하는 기회주의집단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 분류는 개인의 지연, 학연, 혈연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고, 개인의 재산, 족보, 혈통과도 전혀 관련이 없다. 그래서 오히려 이 두 분류(세 분류)는 사회적 진화를 설명할 때 인간의 뇌과학(뇌진화)와 연결해 설명할 수 있는 합리적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에서 특히 흥미롭게 읽은 부분은 '후기'에 있었다. 필자는 인간의 진화를 말하면서 우주에서 인류의 존재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현재 과학이 밝힌 바로, 지구처럼 생명체가 존재하고, 고등한 생물이 진화하는 행성이 이론적으로는 천문학적으로 많고, 우리가 살고 있는 태양계 안에서도 수천 개의 행성이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인공적인 우주 전파를 전혀 발견하지 못하는 이유는, 외계의 행성에서 진화한 고등생물이 이미 모두 멸종했거나, 아직 진화하지 못한 상태이며, 현재 인류도 머지않아 멸종하므로 앞으로도 외계의 고등생명체와 교류할 확률은 매우 낮을 거라는 설명이다.
이것은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충격이었다. 인류는 머지않아 멸종한다. 내부적으로 붕괴하거나(핵전쟁, 기후문제, 환경문제 등) 우주에서 날아오는 행성과 충돌할 가능성 등으로 인류의 멸종은 예고된 상태다. 그렇다면 태양계에 생명체가 살고 있는 다른 행성이 아무리 많아도, 우리가 그들을 찾아가거나, 그들이 우리를 찾아올 가능성은 거의 없는 것이다. 진화가 서로 다르게 발생하고, 진행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과학 지식이 없는 사람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내용이다. 유익한 내용이고, 진화의 과정과 관점, 진화의 역사와 의미를 공감할 수 있고, 진화에 관한 올바른 관점을 유지할 수 있다.



출처: http://marupress.tistory.com/2555 [知天命에 살림을 배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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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이가 된 고슴도치
문성훈 지음 / 밀알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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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이가 된 고슴도치

이 책의 저자는 나와 페이스북 '친구'지만 이름만 알뿐, 얼굴 한 번 본 적 없고, 목소리도 들은 적이 없으며, 메신저로 대화도 나눈 적이 없는, 오로지 온라인의 많은 '친구들' 가운데 한 명일 뿐이다. 어느 날 그와 '친구'가 맺어졌고, 살가운 인사도 없이 나날이 지나며 가끔 댓글에서나 서로의 이름을 볼 뿐이었다. 그런 그가 어느 날 책을 낸다고 했고, 책 표지 디자인을 올려 사람들에게 쑥쓰러운듯 물었다.
나는 그가 건축가인줄 알고 있었는데, 그가 올리는 글이 작가인 나보다 더 매끄럽고 부드러우며 알맹이가 있다는 걸 알고는 건축가가 작가(나는 명색이 작가다)의 뺨을 후려치는 느낌을 받으며 부끄러움과 함께 열등감을 갖게 되었다.
솔직히 고백하건대, 나는 나이 들어 돌아본 내 삶에서 가장 후회했던 것이, 건축가가 되지 못한 것이었다. 나는 소설을 쓰고 있지만, 알고 보면 소설도 이야기를 '축조'한다는 점에서 건축가와 비슷한 점이 있다. 하지만 내가 젊어서 다시 공부를 한다면, 단연코 '건축가'의 길을 선택할 것이다.
현대사회는 더 이상 레오나르도 다 빈치 같은 '르네상스형 인물'을 원하지 않지만, 건축가는 고대부터 지금까지 가장 많은 직업의 복합체였으며, 르네상스형 인간이고, 다재다능한 사람이다. 건축을 하려면 공학, 인문학, 예술을 두루 공부하고 이해하며 그 지식과 배움을 건축현장에 적용해야 한다. 집을 짓는 것은 건설노동자들이지만, 집을 세울 수 있도록 창조하는 것은 건축가가 하는 일이다. 내가 건축가의 꿈을 아쉬워 하는 이유는, 15년 전에 양평에 내 집을 짓고 살면서부터다. 작은 집을 짓고 살면서 집에 관한 생각을 하게 되었고, 집(단독주택)을 관리해야 하는 과정을 통해 건축, 공간, 물성, 환경, 보수, 수리 등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다. 
건축은 한마디로 '종합예술'이다. 나는 안도 다다오를 비롯해 루이스 칸, 르 코르뷔지에, 가우디, 미스 반 데어 로에,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렌초 피아노, 리차드 노이트라...등등 무수히 많은 건축가들이 지은 건축물을 보면서, 그들의 작품은 인류의 주거물을 예술품으로 창조하는 예술가라고 생각했다.
그런 '종합예술'을 하는 건축가도 분명 '작가'다. 그러니 그가 글을 써서 작가인 내 뺨을 후려친 것도 알고보면, 내가 열등감을 가질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도 작가이기 때문이다. (이런 아Q식 자기합리화를 하는 내가 좀 한심해 보이긴 하다.)

그의 글이 미문인 것은 분명하지만, 단지 그의 글만으로 그에게 '동지적 친근함'을 갖는 것은 아니다. 이 책에서도 나오고, 페이스북에서도 우연히 알게 된 내용이지만, 그와 나는 공통점이 좀 있다. 저자는 '앙꼬빵'을 좋아한다. 그 앙꼬는 '단팥'이다. 단팥이 든 빵을 나도 퍽 좋아한다. 팥이 든 음식이라면 다 좋다. 팥죽, 팥칼국수, 팥빙수, 팥빵, 제주도 오메기떡, 시루팥떡, 팥이 든 호두과자, 팥소가 든 전병, 수수팥떡... 그런데 이 책의 저자도 팥이 든 음식을 좋아한다니, 뭔가 나와 공통점이 있어서 반가웠다. 게다가 그의 아내는 페스츄리를 좋아한다는데, 내 아내도 팥보다는 페스츄리를 좋아한다.
그런데, 팥을 좋아한다는 것과 함께 그가 군대 생활을 27사단에서 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나도 27사단에서 복무했다. '이기자 부대'인 27사단은 화천 사방거리와 사창리 주변에 흩어져 있는데, 우연히 만난 사람이 같은 사단에서 복무했다는 건 신기하고 반가운 일이다.
그러니까, 그와 나는 '전우'였던 것이다.
여기에, 저자는 유럽여행을 자동차를 빌려 가족이 자유롭게 다녔다고 했다. 신기하게도, 우리 가족도 유럽여행을 자동차를 빌려 자유롭게 다녔다. 비록 다닌 곳은 다르지만,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방식으로 유럽을 다녔다는 것도 신기하지 않은가 말이다.
마지막으로, 저자의 아내는 아이들을 대학에 보내면서 자신도 대학원에 진학했다. 내 아내도 직장에 다니며 대학원에 다닌다. 대학원 다니는 아내를 둔 '모지리' 남편(물론 저자는 동의하지 않겠지만)이라는 공통점도 있다. 

이런 비슷한 것들을 나열하는 이유는, 저자의 멋진 모습에 슬쩍 기대보려는 나의 알량한 비굴함이라는 걸 읽는 분들은 다 알 것이다. 비슷한 점들 보다는, 저자의 글솜씨가 일품이다. 생활에서 겪으며, 느낀 감상을 쉽고 깔끔하게 써내려간 그의 글솜씨는 어지간한 작가 뺨을 후려치고도 남는다. 나도 글을 쓰고 있어서 여느 사람보다는 글쓰기에 고민을 두는 편인데, 부드럽게 읽히는 글을 쓰기가 결코 쉽지 않다는 걸 잘 안다. 문장도 좋지만, 그의 상념과 생활의 천착, 사물을 바라보는 시선, 사람의 마음을 대하는 따뜻한 감정이 더 좋다. 
나는 앞으로도 저자를 계속 질투하면서 열등감을 느끼겠지만, 그의 글이 더 널리 알려지고, 사람들이 읽으면서 고개를 끄덕이면 좋겠다. 그가 젊어서 고슴도치였으나 이제는 거북이로 살고 있다는 카프카적 '변신'의 고백을 했지만, 나 역시 그렇다. 나이 들면서 남성호르몬이 줄어들어서인지, 자식의 뒷모습만 봐도 눈시울이 뜨거워질 때가 있다. 저자인 문선생과 함께 해바라기를 하면서 동병상련의 일상을 나누는 꿈을 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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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이가 된 고슴도치
문성훈 지음 / 밀알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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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글솜씨가 일품이다. 생활에서 겪으며, 느낀 감상을 쉽고 깔끔하게 써내려간 그의 글솜씨는 어지간한 작가 뺨을 후려치고도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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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병동 이야기 - 증보판 이숲의 과학 만화 시리즈
대릴 커닝엄 지음, 권예리 옮김, 함병주 / 이숲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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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신병동 이야기

작가는 정신병동에서 간호조무사로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이 만화를 그렸다. 우리가 알고 있는 여러 종류의 정신병이 비슷하지만 다 다르고, 복잡한 원인으로 발생한다는 것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작품이다.
'정신병'의 공통점은 모두 '뇌'에서 발생한 문제라는 것이다. 이 작품에서는 뇌에 관한 생물학, 유전학적 분석은 깊지 않지만, 상식으로 이 정도만 알고 있어도 꽤 도움이 되겠다. 인간의 뇌는 수백만 년(약 700만년)에 걸쳐 느리게 진화하다 지금부터 약 20만년 전부터 급격하게 발달하기 시작했다. 네안데르탈인과 호모사피엔스가 공생하던 시기에 인류는 서서히 수렵 채취에서 정착, 농경 단계로 진입하게 되는데, 육식의 비율이 높아지고, 불을 이용한 화식이 늘면서 인류의 육체는 커지고 뇌 발달도 빠르게 진행했다.
문제는, 인류가 다른 동물과 달리 '이성'을 갖게 되면서 시공간 개념을 이해하고, 과거, 현재, 미래를 추상하며, 언어를 구사하는 복잡한 뇌 구조로 진화하면서 그만큼 문제가 생길 확률도 높아졌다. 복잡한 뇌기능은 물리적, 화학적, 생물학적, 유전적 영향 등 선척적인 원인은 물론, 후천적 환경에 노출되면서도 쉽게 영향을 받아 이상이 발생한다. 정신병의 많은 부분은 선천적 원인에 있다고 하지만, 현대의 정신병은 후천적 요인의 비율을 무시할 수 없을 만큼 높다고 알고 있다.
특히 자본주의 사회에서 개인은-그가 '자본'의 지배를 받지 않을 만큼 부르주아라면 문제가 없겠지만-자본의 노예로 생존하는 자체로 큰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고 있다. 생존을 위해 노동해야 하는 것부터 존재 자체가 스트레스가 되는데, 여기에 수많은 경쟁 속에서 다른 사람과 경쟁하며 살아야 하고, 소음, 공해에 시달리며 육체와 정신이 늘 긴장과 스트레스에 노출되어 면역계가 파괴되고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물질숭배 사회에서 인간은 소모품으로 전락하고, 건강하고 온전한 인간관계는 맺기 어려운 세상이 되면서, 개인은 사회로부터 소외되거나, 스스로 소외당하는 위치에 놓이게 된다. 스트레스는 외부에서 충격을 주지만, 받아들이는 뇌에서는 뉴런, 스냅스, 호르몬이 화학적 반응을 일으켜 결국 물리적 자극을 통해 뇌를 변화시킨다. 우리가 보고, 듣고, 믿는 것이 완벽하지 않은 것은 뇌의 활동의 결과를 마치 '나'라는 존재가 판단하는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자아'와 '뇌 기능'의 관계는 물리적으로 동일하지만, '이성적 의지'와 일치한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런 점에서 인류에게 '뇌'의 문제는 진화와 관련해 매우 어려운 상태에 놓여 있다고 볼 수 있다.



출처: http://marupress.tistory.com/2528 [知天命에 살림을 배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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