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정
지아 장 커 감독, 자오타오 외 출연 / 에스와이코마드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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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정

중국6세대 감독인 지아장커 감독의 연출작품. 이 작품이 중국에서 살아남아 세계에 널리 공개되었다는 게 신기할 만큼, 이 작품은 중국 내부의 문제를 날카롭게 보여주고 있다. 힘 있는 영화의 공통점은 '보여주되 설명하지 않는다'로 특징할 수 있는데, 이 영화도 그렇다. 관객은 주인공들이 놓여 있는 상황을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주인공들이 하는 언행을 통해 그가 놓여 있는 사회적 위치와 사람들과의 관계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주인공들은 모두 사회에서 밀려난 가장자리 인물이다. 그들은 빠르게 변화, 발전하는 중국 사회를 따라가지 못하거나 그럴 능력을 가지지 못해 어쩔 수 없이 강요된 삶을 살아야 한다. 이들의 모습이 온전한 자본주의 체제에서라면 약육강식, 적자생존의 원칙에 따라 밑바닥 삶을 살아가는 도시빈민으로 규정되고, 자본주의의 소모품으로 전락하는 것을 당연히(!) 여기겠지만, 중국은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하면서도 경제 분야에서만 자본주의 방식을 채택하고 있는 이중성 때문에 인민의 삶은 사회적으로 통제 받으면서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적 노동자로 규정되는 모순의 존재가 되었다.
이 모순은 곧 중국이라는 거대한 집단 체제의 모순이자, 개인에게 강요되는 구조적 모순이다. 이렇게 이해할 수 없는 사회적 모순 속에서 살아가는 '개인'은 선택을 강요당한다. 자본주의적으로 살아갈 것인가, 사회주의적으로 살아갈 것인가. 영화는 이 질문을 받은 네 명의 평범한 중국 인민이 어떻게 대답하는가를 보여준다.

영화에서 거의 드러나지 않고, 관객들이 쉽게 알아보기 어렵지만, 영화 속 풍경은 매우 의미 깊은 배경이다. 중국은 땅이 넓은 만큼, 세계적으로 아름다운 풍경도 많아서, 중국의 자연을 보기 위해서라도 일부러 관광을 오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보이는 풍경은 회색 도시와 재개발 현장의 살벌한 풍경이다.
오래된 주거지가 파괴되어 사라지고, 멀리 고층 아파트가 옥수수처럼 솟아오르며, 길은 파헤쳐지고, 보이는 모든 곳에서 공사가 벌어지고 있다. 중국은 '근대화'하고 있다고 말하지만, 그 근대화가 과연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근대화인지 회색빛 암울한 풍경은 중국 인민의 불투명한 미래를 상징한다.

영화는 강렬한 이미지로 시작한다. 사과를 실은 큰 트럭이 옆으로 넘어져 있고, 붉은 사과가 거리에 쏟아진 채 있다. 그 옆에 몇 사람이 어쩔줄 모르고, 한 사람(따하이)이 오토바이에 앉아 사과 한 개를 손으로 굴리며 그 풍경을 바라본다.
이 첫 장면은 영화 전체의 의미를 상징하는 메타포다. 무수히 많은 과일(중국의 부)이 아무렇게나 널렸지만, 그것은 임자(중국 공산당과 자본가)가 있기 때문에 건드려서는 안 된다. 그것을 무단으로 가져가는 것은 반당 행위이며, 자본가의 재산을 훔치는 절도가 된다. 즉, 중국 인민은 겉으로 보이는 풍요로움을 누리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것은 처음부터 그들, 인민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뒤이어, 포장이 안 된 자갈길을 달리는 오토바이. 그를 둘러싼 사내들의 손에는 손도끼가 들려 있다. 산적이다. 지나가는 사람에게서 돈을 뺐고 살해하는 산적이 옛날 이야기에나 나오는 줄 알았지만, '현대' 중국에는 아직도 산적이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오토바이를 탄 사내는 그러나 놀라지 않는다. 그는 침착하게 품속에서 권총을 꺼내 세 명을 사살한다. 도끼를 든 산적에게 총을 쏘는 건 범죄가 아니다.

따하이는 우진산 마을 촌장과 학교 동창이자 친구인 쟈오셩리에게 불만이 많다. 그는 베이징에 있는 공산당 기율위원회에 촌장과 쟈오셩리를 고발할 생각이다. 그는 고발장을 써서 우체국에 가지만, 우체국 직원은 주소를 똑바로 쓰지 않으면 보낼 수 없다고 말한다.
따하이는 많이 배운 사람이 아니다. 그는 무식한 사람이고, 평생 노동자로 살았다. 그의 친구이자 지금은 촌장처럼 똑똑하지도, 말을 잘 하지도 못한다. 또한 친구였던 쟈오셩리는 자가용 비행기를 타고 다닐 정도로 성공한 재벌이 되었지만, 촌장이나 재벌 친구는 그들이 마을 주민을 등처먹고 부자가 된 것을 알고 있기에 잘못된 것을 바로 잡으려 한다.
우진산 마을에 있는 탄광은 국가 소유로, 마을 주민들이 공동으로 운영하던 곳이었지만, 개방화 이후 탄광을 개인에게 임대할 수 있도록 법이 개정되었다. 마을 촌장은 친구인 쟈오셩리에게 탄광을 임대하면서, 탄광에서 나오는 수익의 일부분을 마을 주민에게 배당할 것이라고 약속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배당금은 나오지 않았고, 쟈오셩리는 자가용 비행기를 타고 다닐 정도로 부자가 되었지만, 마을 주민은 여전히 가난할 뿐이다. 따하이는 이것이 분명 촌장과 쟈오셩리가 마을 주민을 속이고 있다고 생각하고, 당 기율위원회에 고발하는 한편, 마을 주민들에게도 알리려 한다. 하지만 마을주민들은 수동적이고, 촌장이나 쟈오셩리에게 잘못보이면 그나마 생계도 더 어려워질 것이어서 따하이를 멀리 한다.

쟈오셩리가 마을에 돌아오는 날, 마을은 온통 난리가 난다. 환영회에 참석하는 사람에게는 밀가루 한 포를 준다는 말에 마을 주민들이 동원되고, 따하이도 따라간다. 쟈오셩리를 위해 만든 개인 비행장으로 자가용 비행기가 내려 앉고, 최고급 옷으로 치장한 쟈오셩리 부부가 내린다. 아이들이 꽃을 바치고, 악단이 동원되어 악기를 치며 연주하고, 마을 주민들은 목소리를 높여 '쟈오셩리 회장님을 환영합니다'라고 외친다.
이런 극진한 대접은 중국공산당 고위 관료가 아니면 받을 수 없는 융숭한 대접이지만, 이제 중국 자본가는 중국공산당 고위 관료와 같은 대접을 받는다. 공산당과 자본가의 이종교배인 셈이다.
쟈오셩리가 도도하게 마을 주민들과 아는 척을 하며 걸어올 때, 따하이가 앞으로 나서서 배당금 이야기를 하지만, 무시당한다. 사람들이 모두 떠나고, 따하이는 쟈오셩리의 부하에게 폭행당하고 머리가 깨져 피가 흐른다. 병원에서 머리를 감싸고 있는 따하이에게 쟈오셩리의 부하가 찾아와 돈다발을 던지며 이걸로 끝내자고 비웃으며 말한다. 따하이는 골똘히 생각에 잠긴다.
따하이는 병원에서 나와 누나를 찾아간다. 누나는 셋집에 살고 있고, 여전히 가난하다. 동생 따하이가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고 사는 것이 소원이지만 따하이는 이제 반백의 늙은이로, 더 살고 싶은 마음도 없다고 말한다. 그가 누나를 찾아갈 때의 심정은 복잡하다. 더 이상 말로는 문제가 해결될 것 같지 않고, 희망도 없어 보인다. 자기가 하는 말이 마을 주민을 위한 것이지만, 마을 주민들도 나 몰라라 하고, 돈과 권력을 가진 촌장이나 쟈오셩리 같은 갑부는 이제 더 이상 마을 주민을 위해 일하지 않는 것이 분명하다.

따하이는 집으로 돌아와 벽장에서 총을 꺼낸다. 그는 호랑이가 그려진 헝겊으로 총을 둘둘 말고, 거리로 나선다. 그는 먼저 마을회계사 리우의 집으로 간다. 마을 기금과 공동 재산에 관해 그가 가장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따하이는 리우에게 회계 비리를 스스로 밝히라고 말하지만, 평소 사람 좋고, 조금 멍청해 보이는 따하이를 보며 리우는 총을 쏠테면 쏘라고 말한다. 마을에서 함께 자란 사이라 설마 죽이기야 하겠느냐는 마음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따하이는 가차없이 방아쇠를 당긴다. 그때 문을 열고 들어오던 리우의 아내도 사살한다.
마을 사무실로 촌장을 찾아가는 따하이. 평소 자기를 업신여기고 촌장의 충실한 부아인 직원 리우리우를 살해하고, 촌장이 있다는 절을 찾아간다. 마을 큰길을 지날 때, 주민들이 모여 있고, 총을 메고 가는 따하이에게 어디 가느냐고 묻는다. 따하이는 '짐승 잡으러 간다'고 말한다. 그에게 촌장이나 자본가 쟈오셩리는 인간이 아닌 '짐승'인 것이다. 마침 절 앞으로 나오던 촌장과 맞닥뜨린 따하이는 가차 없이 촌장을 살해한다. 그리고 다시 마을로 돌아오는 길에 말을 학대하는 남자를 사살하고, 마지막으로 쟈오셩리를 찾아간다. 공사장 가운데 전혀 어울리지 않는 외제차 마세라티가 서 있다. 마을 주민 대부분은 가난에 허덕이고 있지만, 이 자본가는 자가용 비행기에 고급 외제차 마세라티를 몰고 다닌다. 그가 번 돈의 많은 부분은 원래 마을 주민에게 돌아가야 할 몫이었지만, 촌장을 비롯한 몇몇이 마을의 부를 빼돌려 자기 배를 채운 것이다.
따하이는 열려 있는 마세라티의 뒷자석에 앉아 쟈오셩리가 오길 기다린다. 그리고 차에 타는 쟈오셩리의 뒤통수에 총구를 들이대는 따하이. 쟈오셩리는 따하이에게 원하는 건 모두 들어주겠다고 말한다. 따하이는 그 말이 거짓말이라는 걸 잘 알고 있고, 그래서 아무런 거리낌없이 방아쇠를 당긴다.

조우산은 기차를 타고 충칭에서 내린다. 그는 영화 첫 장면에서 도끼를 든 세 명의 산적을 죽인 남자다. 오랜만에 고향을 찾아오지만, 고향은 피폐하다. 가까운 곳에 거대한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고, 마을 주위는 공사를 하느라 어수선한 풍경이다. 
그는 어머니 칠순잔치에 참석하느라 어렵게 먼 길을 왔다. 아내와 아들이 있지만 오래도록 만나지 못해서인지 어색하다. 아내는 남편이 무슨 일을 하는지 알고 있는 듯하다. 돈을 보내지만, 그 돈은 받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아무리 가난해도 떳떳하지 않은 돈으로 생활하기는 싫다는 조우산의 아내는 순진하고 어리석지만 정직한 중국 인민의 전형이다. 조우산의 형도 같은 유형이다. 어머니 칠순 잔치를 치르고 축의금을 결산하면서, 약간의 돈이 남았고, 그 돈을 정확히 네등분으로 나눠 갖기로 한다. 조우산은 자기 몫은 어머니를 드리라고 말한다.
조우산은 쫓기고 있고, 어디론가 떠나야 하는데, 광저우, 이창, 난닝으로 가는 표를 구입한다. 어디로 갈지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 그는 집을 나서 시내로 들어가 일꾼 행색으로 변장하고 은행 앞에서 기다린다. 돈이 많을 것 같고, 돈을 많이 찾아 나오는 부자를 물색하는 중이다. 한 부부가 눈에 들어왔고, 그는 대낮 거리에서 두 사람을 쏘고 돈가방을 들고 유유히 그 자리를 빠져나간다.
오토바이를 타고 도로를 달리는 조우산 앞에 소를 실은 트럭이 간다. 그 소는 자기 운명을 모르는 채 죽음을 향해 가는 조우산 자신이자, 중국 인민의 모습이기도 하다. 그는 시외버스를 타고 가다 정류장이 아닌 곳에 내려달라고 말한다. 그렇게 조우산은 사라진다. 그리고 그 버스에는 요우량이 타고 있다.

요우량은 버스터미널에서 샤오위를 만난다. 두 사람은 불륜이다. 요우량은 아내가 있고, 샤오위와 만나지만 아내와 헤어진다는 확신을 갖지 못한다. 샤오위는 둘이 광저우로 가서 새롭게 살자고 말하지만, 요우량의 태도는 어정쩡하다. 태도를 분명하게 하라며 다그치는 샤오위. 두 사람은 기차역에서 헤어지고, 샤오위는 요우량이 가지고 있던 칼을 손에 넣는다.
샤오위가 근무하는 사우나에 도착하자 요우량의 아내가 어떻게 알고 찾아와 행패를 부린다. 샤오위는 일단 그 자리를 피해 엄마에게 간다. 엄마는 공항을 짓는 공사장에서 밥집을 하고 있는데, 곧 공사가 끝나면 일꾼들이 떠날 거라고 말한다. 이 공항 공사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통행세를 받는 사람들이 있다. 엄연한 불법이지만, 불법을 통제하지 않는 사회의 단면을 보여준다. 통행세에 항의하는 공사장 노동자를 폭행하는 이들은 지역의 조직폭력배들로 보인다.
샤오위는 다시 사우나에서 일하는데, 이 사우나는 사우나도 하지만, 성매매도 하는 곳이다. 그는 사우나의 카운터를 보는 직원일 뿐인데, 남자 손님(낮에 봤던 공사장 입구에서 통행세를 받던 두 남자)들이 와서 샤오위에게 성매매를 하라고 강요한다. 샤오위는 그냥 직원일 뿐이며, 자기는 안마도 잘 못하고, 성매매는 하지 않는다고 강하게 말한다. 그러자 샤오위를 돈다발로 때리며 샤오위를 모욕한다. 참을 수 없던 샤오위는 칼을 꺼내 남자를 찔러 죽인다.

요우량은 공장 사장이었다. 그가 운영하는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 샤오후이는 동료와 이야기를 하다 동료가 다치게 되면서, 일을 방해한 책임으로 몇 달치 임금을 그 동료에게 주어야 한다는 말을 듣는다. 그 말을 듣고 공장에서 도망쳐 친구가 일하는 동관으로 간다. 친구는 큰 공장에서 일하는데, 돈을 더 많이 벌고 싶은 샤오후이는 친구의 소개로 클럽 웨이터로 일한다. 
시골에서 살던 샤오후이에게 클럽은 믿기 어려울 정도로 화려하고, 번쩍거리는 첨단의 문물이었다. 예쁜 여성들이 수백 명이나 되고, 같은 웨이터 남성들도 수십 명이 넘는 거대한 클럽은 돈이 흘러넘치는 곳이었다. 그곳에서 같은 후난성 출신인 여직원 리엔룽을 만난다. 웨이터는 팁으로 받는 돈이 공장에서 일할 때와는 비교가 안 되게 많았고, 몸도 힘들지 않았다.
하지만 사랑하는 줄 알았던 리엔룽은 돈을 벌어야 한다며 클럽에서 남자들의 온갖 더러운 요구를 따라야 하고, 그걸 본 샤오후이는 환멸을 느끼고 다시 친구가 일하는 공장으로 돌아온다. 월급은 적은데, 집에서 엄마는 돈을 더 보내라고 독촉하고, 예전 다니던 공장에서 손을 다친 동료가 찾아와 돈을 내 놓으라고 협박한다. 궁지에 몰려 어떻게도 할 수 없는 샤오후이는 공장 기숙사 건물에서 뛰어내린다.

샤오위는 셩리그룹에 면접을 보러 간다. 그곳에서 쟈오셩리의 아내에게 면접을 본다. 두 사람 모두 후베이 출신이고, 셩리의 아내는 어디선가 샤오위를 본 적이 있는 것 같다고 말한다. 아마 신문에 살인사건이 실렸을 것이고, 샤오위는 정당방위라도 짧게는 감옥에 있다 나왔을 것으로 추측된다.
샤오위는 따하이가 살던 후베이로 간다. 그곳에서 경극을 보는 마을 주민들과 함께 경극을 본다. 경극 무대를 바라보는 마을 주민들의 수많은 얼굴이 보이고, 영화는 끝난다.
중국 인민이 묻는다. 과연 지금 중국은 올바른 길을 가고 있는가. 중국은 인민의 행복을 위해 공산주의를 일정부분 포기하고,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도입했고, 실제 중국의 부는 급격하게 늘어나 배고픔에서 벗어난 인민이 많지만, 자본주의 경제로 인해 중국 인민 대부분은 노예로 전락하고, 공장의 소모품이 되었으며, 빈부의 격차는 더 커졌다. 
중국은 공산당 일당독재를 하면서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용인하는 한편, 공산당원이 권력을 사용해 부를 독점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인민의 대부분이 가난으로 시달리지만, '기본소득제' 같은 공산주의 사회에서 당연히 해야 하는 정책도 펼치지 않고 있다. 
중국의 현실은 인민의 고통과 피땀의 결실로 벌어들인 막대한 부를 바탕으로 공산당과 자본가(그들 대부분이 공산당원이다)들이 배를 불리고, 그렇게 벌어 들인 돈으로 군비를 확장해 중국은 패권국가, 제국주의 국가로 변신하려 한다. 이제 중국에는 공산주의 철학과 사상은 볼 수 없고, 마르크스, 레닌의 가르침도 사라졌다.
마오쩌둥은 여전히 우상이지만, 마오쩌둥 시대에 벌어졌던 무수한 인민 학살과 굶주림으로 죽은 인민에 대한 이야기는 금기이며, 문화대혁명으로 동포를 학살하고, 중국의 오랜 문화와 역사를 말살한 사건은 덮어두고 있다.
중국 인민의 삶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으며,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 그 격차는 더욱 커지고, 절대적, 상대적 빈곤과 인간의 노예화, 인간의 소모품화는 공산주의 체제일 때보다 더 극심하다. 인민을 돌보지 않는 정부는 신뢰를 잃고, 인민 위에 군림하려는 권력은 타도의 대상이 될 뿐이다. 영화는 인민이 사용하는 폭력을 정당화한다. 인민을 무시하고 돈과 권력을 차지하는 촌장과 자본가, 돈으로 가난한 여성노동자를 폭행하는 돈 많은 건달은 인민의 총과 칼에 죽어도 싸다.
빈곤에 허덕이는 젊은 노동자가 자살하는 것은, 중국의 미래를 상징한다. 중국이 인민의 삶을 보장하지 않으면, 인민은 희망을 잃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처럼, 중국의 미래를 포기할 거라는 예언이다.
애둘러 말하지 않고,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지아장커 감독의 이 작품은, 중국 내부의 체제와 계급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이자 예언이다. 인민의 삶을 보장하라. 그렇지 않으면 권력은 무너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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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혼의 사무라이 SE (2disc) - [할인행사]
야마다 요지 감독, 사나다 히로유키 외 출연 / 아이비젼엔터테인먼트(쌈지)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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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혼의 사무라이

'황혼의 사무라이'는 중의적 제목이다. 주인공 이구치가 하급 사무라이로 창고지기 노릇을 하며 가족을 부양하느라 해가 떨어지면 곧바로 집으로 돌아가야 해서 '황혼'이라는 별명을 얻었고, 이구치가 살던 19세기 중반은 '사무라이'라는 계급이 사라지기 직전이어서 역사적으로 사무라이의 '황혼'이기도 했으며, 마지막 '사무라이'로 살았던 이구치가 관군의 총탄에 죽음으로써 계급으로의 사무라이는 '황혼'을 맞이했다는 의미를 갖는다.

영화는 하급 사무라이 이구치의 막내딸, 다섯 살 이토의 나레이션으로 시작한다. 이 영화는 이토의 눈으로 본 세상이며, 회고이기도 하다. 영화에서는 명확하지 않지만, 이토는 다섯 살에 등장해 나중에 일흔 살의 노인으로 나온다. 그렇다면 '메이지 유신'을 중심으로 나이를 살펴보면, 이토는 1860년생으로 짐작할 수 있다. 여기에 70년을 더 하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1930년대가 된다.
이토의 나이가 중요한 것은,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 역사가 매우 빠르게 군국주의화하는 과정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인데, '메이지 유신'으로 일본의 수십 개 막부가 사라지고, 일본 천황을 중심으로 하는 중앙집권이 강화된다. 일본은 메이지 유신이 종료되는 것과 동시에 조선을 침략하고, 곧바로 식민지를 확대한다. 가장 가까운 나라가 조선이었고, 아시아의 여러 나라들도 일본 식민지로 전락한다.
이런 일본의 침략은 유럽과 미국 강대국의 폭력 앞에 무릎 꿇은 뒤, 선진문물을 수입해 빠르게 개화하면서, 아시아에서 가장 발빠르게 최신 무기로 무장할 수 있었고, 여기에 자신감을 얻어 이웃 나라들을 침략하기 시작한 것이다. 내부적으로는 여전히 지방에 남아 있던 막부의 토호세력들의 불만을 누그러뜨리고, 식민지에서 얻는 이익을 일정부분 공유하며, 일본 내부의 화합을 유지할 수 있는 수단이기도 했다.
일본에서 군국주의가 부활한 것은 '메이지 유신' 이전의 막부와 관련이 있다. 형식적으로 막부는 사라졌지만, 지방의 토호세력은 여전히 힘을 가지고 있었고, 이들은 메이지 천황제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막부에서 귀족으로 신분이 바뀌어 중앙 정부 또는 지방 정부에서 권력을 가진 세력이 된다. 이들 지방 귀족들은 어쩔 수 없이 천황제에 동의하기는 했지만, 천황을 신성한 존재로 여기지는 않았다. 일본은 전통적으로 전체주의 체제가 오래 이어져 오고 있었고, 정치적으로 기반이 약한 메이지 천황제에서 과거 막부의 전통, 사무라이의 신성화 등이 군대, 군인을 우상화하고, 군인의 정치적, 사회적 위상이 높아지면서, 군국주의가 등장하게 된다.

1860년대 초, 우나사카 막부 휘하에서 하급 사무라이로 살아가는 이구치는 막부에서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 평시에 성의 곡식창고에서 하급 관리로 일하고 있다. 그는 매우 가난해서 한달에 50석에 해당하는 임금을 받으며 일하는데, 그 돈으로는 생활이 궁핍해 퇴근하고 저녁에 새장을 만들어 파는 부업을 하고 있다.
그는 얼마 전 폐병을 앓던 아내가 사망했고, 장례를 치를 돈이 없어 매우 난감하고 고통스러운 기억이 있다. 게다가 어머니는 치매를 앓고 있고, 어린 두 딸은 이제 열 살, 다섯 살이어서 그가 오로지 돌봐야 하는 어려운 환경에 살고 있었다.
함께 일하는 동료들은 하루 일과가 끝나면 함께 술집으로 몰려가 술을 마시며, 여흥을 즐기지만 이구치는 곧바로 집으로 돌아가 집안 일을 하고, 어머니도 돌봐야 하고, 아이들도 보살펴야 한다. 여기에 부업으로 새장을 만들어야 하니 그는 조금도 쉴틈이 없는 것이다.

하루는 영주가 곡식창고 시찰을 나왔는데, 이구치가 직접 보고를 하다 몸에서 냄새가 나는 걸 영주에게 들키고 말았다. 다행히 영주는 덕이 있는 사람이라 다른 말을 하지 않았으나, 영주의 부하인 관료들이 더 난리를 부리고, 이구치의 집안 어른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이구치의 삼촌이 그날 저녁 집으로 달려와 영주 앞에서 망신 당한 사실에 대해 노발대발 하고, 자기가 점지한 지인의 딸이 있으니 재혼하라고 윽박지른다. 하지만 이구치는 어린 두 딸과 치매를 앓는 노인이 있는 집에 어떤 여자가 올 것이며, 설령 온다해도 고생만 할 뿐이니 자기는 재혼할 의사가 없노라고 말한다.
이구치는 성정이 따뜻하고 다정다감한 사람이다. 그는 술도 마시지 않고, 신분이 낮은 사람에게도 함부로 대하지 않으며, 무엇보다 폭력을 싫어한다. 그는 사무라이 계급이고, 그 자신 어려서 무술을 배워 출중한 실력을 갖추고 있으나, 먼저 칼을 빼는 일은 결코 없다. 더구나 그가 아버지에게 물려 받은 가장 아끼는 보검은 아내의 병구완을 위해 일찌기 팔아버렸다. 그의 꿈은 농부가 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구치는 운명을 잘못 타고 태어난 인물이다. 그는 사무라이보다는 농부나 학자가 되는 것이 본성에 어울리게 보이는데, 사무라이에서도 하급에 머무른 것은 그가 욕심이 없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봄이 되어 진달래가 피는 따뜻한 날, 이구치는 두 딸과 함께 들판으로 나와 나물을 뜯는다. 그때 개울에 떠내려오는 어린 아이의 시신을 보게 되고, 몇 년 째 계속되고 있는 흉년으로 사람들이 굶어죽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나마 이구치의 가족은 근근히 삶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구치는 친구 이누마를 만난다. 이누마는 한 달 정도 오사카 막부와 쿄토의 황성을 다녀왔는데, 막부의 움직임과 황성과의 갈등이 심상치 않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얼마 전, 결혼했던 여동생 토모에가 이혼하고 집에 와 있다고 말한다. 토모에의 전 남편 코다 역시 사무라이였고, 부유한 집안이었다. 하지만 술 마시고 아내를 때리며, 학대해서 오빠 이누마가 막부에게 직접 부탁해 이혼을 하게 된 것이다.
그의 말을 듣고 집에 돌아오니 뜻밖에도 토모에가 와 있었다. 이구치는 몹시 반가웠지만 내색하지 않고, 토모에 처지를 위로한다. 토모에를 집까지 바래다주는 길에, 토모에 집앞에 도착했을 때, 집안에서 싸움이 벌어져 소란스러웠다. 토모에의 전 남편 코다가 찾아와 행패를 부리고 있었다. 코다는 토모에보다 그의 오빠 이누마가 더 괘씸하다고 화를 낸다. 그러면서 이누마에게 행패를 부리고 싸우자고 덤벼드는데, 이때 이구치가 나서서 싸움을 말리고, 코다를 힘으로 제압한다. 코다는 화가 나서 이구치에게 정식으로 대결을 신청하고, 두 사람은 목숨을 건 싸움을 하게 된다.

이누마는 자기 때문에 코다와 싸우게 되었으니, 자기가 나서겠다고 하지만, 이구치는 이누마의 실력으로는 코다에게 죽임을 당할 수 있으므로 나서지 말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진검이 아닌, 목검을 들고 코다와 맞선다. 이 시기에는 이미 사적 폭력이나 개인적 결투는 막부에서 금지하고 있었지만, 사무라이들은 목숨을 걸고 일대 일 승부를 겨루는 경우가 드물게 있었다. 
코다는 이구치가 목검을 들고 서자 자기를 얕잡아 본다며 진검으로 달려든다. 이구치는 가볍게 코다를 제압하고, 이누마와 함께 돌아온다. 이 영화에서 사무라이가 칼을 들고 싸우는 장면은 두 번 나온다. 이구치가 코다와 싸울 때, 이때는 목검을 들었지만 사무라이의 검술이 어떤 모습인가를 짐작하는 동작이 나온다. 목검이 아니고 진검이었다면, 코다는 두세합 만에 목숨을 잃게 된다.
또 한 장면은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이구치와 요고 젠에몬의 결투인데, 전혀 과장하지 않은 사실주의 형식으로 사무라이가 어떻게 싸우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들 사무라이의 결투는 일본 사무라이의 환상을 깨뜨리고, 막부 시대의 사무라이가 어떤 존재인가를 가감없이 드러낸다.

이구치가 집에 돌아오니 토모에가 보낸 편지가 있었고, 이구치는 토모에의 마음을 읽는다. 이후 토모에는 이구치의 두 딸 키야노와 이토의 '엄마'가 되어 생활의 중심이 된다. 어린 키야노에게 살림살이를 알려주고, 함께 놀아주며, 나들이도 하면서 엄마 역할을 해주는데, 이구치는 이런 사실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한다.
이누마는 이구치에게 토모에의 재혼을 거론한다. 이누마도 이구치를 좋아하는 친구이고, 토모에는 어려서부터 함께 소꿉놀이를 하던 동생이었으니 서로 남다른 감정을 갖고 있는 진정한 벗이었다. 이누마는 부잣집 아들이지만 가난한 이구치를 차별하지 않고 친구로 어울렸고, 나이 든 지금도 변함없이 친구로 지내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이누마의 인성도 훌륭하고, 토모에는 어려서부터 이구치를 좋아했었다. 다만 입으로 말하지 않았을 뿐. 그건 이구치도 마찬가지였지만, 집안이 너무 기울어져 토모에가 자기와 결혼하면 불행하게 될 거라고 생각한 이구치는 혼인을 거절한다.

이누마는 한달 전, 에도(교토)에서 영주가 사망하는 바람에 후계자 문제로 내부 권력투쟁이 일어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매우 심각한 상황이 일어날 수 있다고 이구치에게 알려준다. 이구치는 최하급 말단 사무라이여서 위에서 어떤 일이 벌어져도 자기와는 직접 문제될 일이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창고관리 사무장인 쿠사카가 이구치를 찾아온다. 두 사람은 우나사카 가문의 고위 관료인 호리 댁으로 찾아가 명령을 하달받는다. 요고 젠에몬이 할복하지 않아 죽이러 간 무사들이 오히려 요고에게 죽임을 당하고 있으니 이구치가 가서 요고 젠에몬을 죽이라는 명령이다.
이구치는 애써 변명하며 거절하지만, 호리는 이건 부탁이 아니라 명령이라며, 말을 듣지 않으면 무사 계급을 박탈하고 번에서 내쫓겠다고 협박한다. 하는 수 없이 승락하고 돌아온 이구치는 죽음을 의식하며 마음을 정리한다.

이구치는 몸종 나오타에게 심부름을 보내, 토모에에게 와달라고 부탁한다. 나오타의 전언을 들은 토모에는 급하게 달려오고, 전투를 앞두고 몸치장을 해야 하는 이구치의 부탁을 듣고 그의 몸단장을 돕는다. 이 과정에서 이구치는 자신이 마음에 담아두었던 진심을 털어놓는다. 토모에를 진심으로 사랑했다고, 어릴 때부터 늘 좋아했고, 결혼하고 싶었으며, 결혼한 이후에도 토모에를 잊지 않고 있었노라고. 지금 결투를 하러 떠나지만, 살아 돌아오면 토모에에게 청혼하겠노라고. 지난번 오빠를 통해 재혼 이야기를 들었지만, 부잣집에서 귀하게 자란 토모에가 자신과 혼인하면 평생 고생만 할텐데, 그건 자신이 용납할 수 없었다고. 하지만, 진심으로 사랑하기에 고백하노라고.
이 장면에서 이구치와 토모에의 모습은 담담하지만 깊은 슬픔을 간직하고 있어 감동으로 다가온다. 가난한 이구치와 부잣집 딸 토모에의 신분, 어릴 때부터 서로 좋아했지만 겉으로 드러낼 수 없었던 감정들, 체면과 권위로 살아야 하는 사무라이와 사회 제도로 억눌린 여성의 지위와 감정을 드러내면 안 되는 수많은 제약들. 그런 환경 속에서도 서로의 마음을 믿으며 조용히 살아온 두 사람의 깊은 사랑을 읽게 되면서, 시대와 역사를 떠나 인간 본연의 사랑의 실체를 만나는 느낌이다.
하지만 토모에는 이미 혼담이 들어왔고, 자기도 그 혼담을 받아들였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이렇게 불러줘서 고맙다고 담담히 말한다. 이구치는 자기가 하면 안 되는 말을 한 것 같아 몹시 당황하면서 마침 도착한 길잡이를 따라 집을 나선다.

요고 젠에몬은 상당한 실력을 지닌 사무라이다. 그를 죽이러 간 다른 사무라이들이 칼 한 번 휘둘러보지 못하고 죽임을 당할 정도였는데, 이구치는 내심 자신 있었지만, 그래도 긴장한다. 그는 조심스럽게 요고의 집안으로 들어간다. 마당에는 먼저 들어갔던 사무라이의 주검이 쓰러져 있고, 그 주변으로 파리들이 요란하게 날아다니고 있다.
하지만 의외로 요고는 이구치를 기다리고 있었다. 요고는 이구치에게 싸우지 않겠노라고, 자기는 도망갈 것이고, 도망가도록 길을 터달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요고는 자기가 살아왔던 과거를 이야기한다. 그 역시 사무라이로 쇼군을 모셨으나, 그 쇼군이 다른 쇼군에게 지면서 가산이 몰수당하고, 자기 가족도 쫓겨나 낭인으로 7년을 떠돌다 어렵게 하세가와의 수하로 들어올 수 있었고, 하세가와의 은혜를 입었기에 그를 은인으로 생각한다고 말한다. 7년 떠돌이 생활을 하면서 아내와 딸이 병으로 죽었다는 말을 하고, 이구치 역시 자기 아내가 병으로 죽은 것을 알고 있으니, 하급 사무라이들의 삶이 얼마나 비참한가를 말한다.
이구치도 아내의 병구완을 위해 명검을 팔고, 싸구려 검을 가지고 다닌다는 말을 한다. 이때 갑자기 요고가 화를 내며, 싸구려 칼로 자기를 베러 왔느냐고 소리친다. 요고의 자존심이 상한 것이다. 두 사람은 결투를 하고, 이미 지쳐 있던 요고는 이구치의 칼을 맞고 죽는다. 두 사람이 싸우기 전에 나눈 대화는 하급 사무라이의 처지를 드러내는 의도적 장치라고 할 수 있는데, 이들의 존재가 이제 시대의 막바지에 있다는 걸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결투에서 이기고 돌아온 이구치를 맞이하는 건 토모에였다. 토모에는 이미 집안에서 재혼 혼담이 오가고 있고, 상대도 정해졌지만, 집안의 반대를 무시하고 독단으로 이구치와 결혼하겠다고 선언한다. 이후 이구치와 결혼하고 두 딸과 행복하게 살지만, 그 기간은 불과 3년이었다. 이토의 나레이션으로 이어지는 토모에와 이구치의 사연은, 이구치가 관군과의 전투에서 총에 맞아 사망하고, 토모에는 두 딸을 데리고 도쿄로 이주해 그곳에서 두 딸을 훌륭하게 키운다. 토모에가 나이 들어 숨지자, 카야노와 이토는 아버지 이구치와 어머니 토모에를 한 무덤에 모신다.
막부가 해체되고, '메이지 유신'이 일어나면서 일본은 메이지 천황을 중심으로 하는 중앙집권의 국가체제로 발전한다. 그 와중에 마지막 사무라이였던 이구치와 토모에의 애틋하고 깊은 사랑과 저물어가는 사무라이의 역사를 온몸으로 보여주었던 이구치의 삶을 보면서, 역사 속에서 개인의 삶과 운명에 대해 새삼 생각하게 된다.
역사는 거대한 담론으로 강물처럼 흘러가지만, 그 속에는 무수한 개인들의 삶이 담겨 있고, 한 평생이 들어 있고, 개인의 희노애락이 담겨 있다. 역사를 덩어리로만 볼게 아니라, 그 시대를 살았던 개개인의 삶을 깊이 들여다 보는 과정에서 우리의 삶에 거울이 되는 장면을 만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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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 (1disc) - 아웃케이스 없음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 앤디 맥도웰 외 출연 / 20세기폭스 / 2007년 7월
평점 :
품절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

아주 오래 전에 이 영화를 비디오테이프로 봤을 때는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오늘 넷플릭스에서 다시 집중해서 봤다. 기회가 되면 이 영화를 꼭 다시 볼 생각이었고, 마침 넷플릭스에 올라왔다. 
이 작품을 만든 감독이 스티븐 소더버그라는 건 처음부터 알았지만, 그가 데뷔작인 이 영화로 곧바로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건 모르고 있었다. 그동안 스티븐 소더버그의 데뷔작인 이 영화를 비롯해 그의 작품을 꽤 많이 봤다고 생각했는데, 전체 작품 가운데 30% 정도에 불과했다. 
스티븐 소더버그의 작품들은 진지하거나 엄숙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가벼운 영화도 아니다. 그는 대중성과 예술성, 사회성을 알맞게 버무려 관객이 재미있게 볼 수 있도록 만든다. 그의 작품으로 대중적인 영화는 '오션스' 시리즈다. 유쾌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드는 실력을 보여주는 작품들이다. 
재미도 있으면서 사회문제까지 드러내는 작품으로 '에린 브로코비치', '컨테이전', '사이드 이펙트', '시크릿 세탁소' 같은 영화들이 있는데, 나는 '사이드 이펙트'를 세 번 봤고, 다시 보고 싶은 영화다. 드라마에서 반전의 묘미가 어떤가를 교과서처럼 보여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이 영화,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는 극적인 결말이나 반전의 묘미는 없거나 약하다. 그럼에도 이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주인공들의 대화, 그 자체가 영화의 핵심이기도 하다. 따라서 관객은 네 명의 주인공이 나누는 대화를 주의 깊게 들어야 할 뿐 아니라, 대화가 갖는 함의가 무엇인가도 깊이 생각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관객을 괴롭히는 영화다.
앤은 심리치료 상담을 받는다. 그는 항공기 사고가 나면 어떻게 하나, 쓰레기가 너무 많이 넘쳐흘러서 세상이 쓰레기로 뒤덮이면 어떡하나 고민한다. 자기의 의지로는 해결할 수 없는 불가항력의 문제를 두고 심각하게 고민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앤은 섹스가 싫다고 말한다. 남편 존을 만진 것도 오래 전이었고, 부부이긴 해도 섹스 없는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고 말한다.
앤이 심리치료를 받고 있는 그 시간에 남편 존은 앤의 여동생 신시아와 섹스를 한다. 두 사람은 앤을 속이고 있다. 존은 앤의 남편이지만, 아내에게 거짓말을 하고, 신시아는 앤의 여동생이지만 언니에게 거짓말 한다. 거짓말은 모든 관계를 파탄내는 씨앗이자 결과이다.

존은 아직 젊은 변호사인데, 실력을 인정 받아 로펌에서 파트너로 승격할 단계에 있다. 그는 자기의 실력을 보여주어야 하고, 의뢰인에게 성실하고 유능한 변호사로 인정받아야 한다. 존은 새로 지은 주택에서 살며, 일하던 아내 앤에게 전업주부로 살도록 하고, 넉넉한 임금을 받으며, 전망 좋은 사무실을 배정받아 안정된 변호사로 성장하고 있는 중이다.
그는 미국의 중산층으로, 마약도, 담배도 하지 않으며, 술도 거의 마시지 않는 건전한 시민이다. 다른 사람이 볼 때, 존은 성공한 변호사이면서, 훌륭한 미국 시민이다. 하지만 존의 내면은 어떤가. 그는 허위의식에 찌들어 있으며, 자기의 사회적 성공을 정도 이상으로 부풀려 자부심을 갖는 인물이다. 주위 사람들에게 권위적이고, 스스로를 속이는 기만성을 여실히 드러낸다.
반면 앤은 중산층의 삶을 살면서도 늘 불안하고 의기소침하다. 남편은 변호사로 사회적 성공을 이루었고, 좋은 주택에서 먹고 사는 걱정 없이 잘 살고 있지만, 그런 모든 것이 '내 것'이 아니라는 불안이 그를 두렵게 만든다. 앤은 남편과 같은 침대에서 잠을 자면서도 남편과 섹스를 하지 않고, 남편의 존재가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앤의 내면은 공허하고 쓸쓸하다.

술집에서 바텐더로 일하는 신시아는 앤의 동생이지만 성격이 전혀 다른 인물이다. 그는 좋은 의미에서는 '외향적'이지만, 나쁜 말로는 '난잡한' 인물이다. 그녀는 언니의 남편(형부)과의 관계에서 도덕적, 윤리적 갈등을 겪지 않는다. 상식적 인물이라면 형부와 불륜의 관계를 맺으려 하지 않을 것이지만, 그런 이성적 판단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영화는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신시아는 존의 친구인 그레이엄이 9년만에 고향에 돌아와 집을 얻었다는 걸 알자, 언니 앤에게 그레이엄의 주소를 알려달라고 하고, 직접 그레이엄을 찾아간다. 그레이엄이 누군지도 모르는 신시아였지만, 오로지 앤이 그레이엄이 이상한 사람이니 만나지 말라는 말을 했다는 것만으로, 앤에 대한 반발이자 호기심으로 그레이엄을 찾아간 것이다. 
신시아는 능동적이고 즉물적 인간이다. 자신의 욕망을 위해 주위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기가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적극 행동으로 움직인다. 남성과의 관계에서 주체적 인물이기 때문에 남성의 시각으로 바라보면 신시아가 '난잡'해 보일 수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반여성적 시각일 뿐이다. 
오히려 앤의 태도는 수동적이고 타인, 특히 남성의 시각에 맞춰 생각하고 행동하려는 경향이 강하게 드러난다. 앤은 남편 존과의 섹스에서 한번도 오르가즘을 느낀 적이 없다고 고백하는데, 이런 단서를 통해 앤이 성적으로 몹시 억눌려 있는 상태라는 걸 알 수 있다.

존의 친구 그레이엄의 등장으로 세 사람 - 앤, 존, 신시아 - 사이의 관계에 균열이 발생하고, 그레이엄까지 네 명이 되면서 이들 사이에 화학적 변화가 일어난다. 그것은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현상으로, 수동적이고 자폐적이었던 앤이 그레이엄을 두번째 만난 날 섹스에 관한 이야기를 꺼낸다. 앤은 그레이엄을 잘 모르는 사람이지만, 먼저 섹스 이야기를 꺼내고, 그레이엄은 자신이 정서적 성불구라고 말한다.
그레이엄은 자신이 촬영한 비디오테이프의 내용을 보면서 성적 만족을 느끼는, 보통의 시각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감정을 가지고 있다. 그레이엄이 녹화한 테이프에는 여러 명의 여성이 자기가 경험했던 섹스에 관한 이야기가 담겨 있고, 스스로 원해서 자위를 하는 장면도 있다. 그레이엄은 그런 여성의 자기 고백을 보면서 오르가즘을 느낀다.
그레이엄이 9년만에 고향으로 돌아온 것은 9년 전, 어떤 사람, 아마도 그레이엄이 사랑했던 여성이었을 것으로 예상하는, 사람과의 관계를 망쳤고, 그로 인한 고통으로 고향을 떠났으며, 외지를 떠돌다 다시 관계를 회복하려고 돌아왔다고 말한다. 그레이엄이 관계를 망쳤다는 여성은 엘리자베스였고, 엘리자베스는 이 영화에서 등장하지 않는, 맥거핀이다.

신시아는 존에게 그레이엄을 만났으며, 인터뷰를 했고, 자위도 했노라고 말한다. 존은 바보같은 짓을 했다고 화를 내지만, 신시아는 자신이 선택한 것이니 아무 문제가 없다고 당당하게 말한다. 신시아와 존은 처음부터 육체 관계를 목적으로 만난 사이였고, 두 사람은 실제 섹스를 하는 것으로 목적을 달성하지만, 정작 대화가 필요할 때는 두 사람 사이의 소통이 어렵다는 걸 보여준다.
섹스도 분명 '대화'의 한 갈래임에 틀림없지만, 섹스만으로는 충분한 대화가 이루어질 수 없는 것처럼, 두 사람의 관계도 마음을 터놓는 대화 없이 섹스로 충족하는 욕구는 한계가 있다는 걸 차츰 깨닫게 된다.
처음부터 의심하지는 않았지만, 앤은 존과 여동생 신시아의 관계를 어렴풋하게 의심하고 있었고, 한번은 진지하게 존에게 사실을 말하라고 추궁하지만, 아무런 증거 없이 추궁만으로 '자백'을 받아낼 수는 없었다. 더구나 존은 유능한 변호사였고, 세상에서 가장 거짓말을 잘 하는 사람은 변호사라는 그레이엄의 말을 떠올린다.

앤은 더 이상 존을 의심하지 않기로 마음 먹고, 자신의 불안과 공허도 극복하려 노력한다. 그가 집안 청소를 하다 진주귀고리를 발견하는데, 그건 명백히 신시아의 물건이었다. 확실한 증거를 찾은 앤은 존에게 이혼하자고 말하고, 그레이엄을 찾아가 존과 신시아가 불륜 관계라고 말한다. 그레이엄은 신시아의 인터뷰에서 그 말을 들었다고 확인해준다.
앤은 그레이엄에게 인터뷰를 하겠다고 말하고, 자신이 생각하는 섹스에 관해 이야기한다. 하지만 인터뷰는 앤의 일방 고백이 아니고, 앤이 그레이엄을 인터뷰하는 상황으로 이어진다. 그레이엄 역시 마음의 상처를 크게 가진 사람이라는 걸 확인하고, 두 사람은 서로가 가진 내면의 아픔, 고통, 상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공감한다.
앤이 자신의 불안과 공허함, 외로움, 소외감, 박탈감 같은 부정적 감정을 극복하는 과정은 그레이엄과의 대화를 통해 이루어진다. 진정한 오르가즘은 육체를 통한 섹스가 아니라, 서로의 내면을 드러내면서 나누는 대화라는 걸 소더버그 감독은 핍진한 장면을 통해 관객이 이해하도록 만든다.

앤이 그레이엄과 인터뷰를 했다는 말을 들은 존은 그레이엄을 찾아가 그를 때려눕히고, 앤이 찍힌 비디오를 본다. 그건 앤이 그레이엄과 섹스(육체적)를 했는가를 확인하려는 것이지만, 앤의 인터뷰를 다 본 존은 앤이 느끼고 있던 감정을 알게 되고, 스스로를 돌아본다.
존과 앤은 그동안 부부로 살았지만, 겉으로 드러난 중산층의 안락한 삶의 이면에 각자 개인이 가진 어둡고 고통스러운 내면이 있음을 인정한 것이다. 존이 신시아와 저지른 불륜은 용서나 이해가 필요 없는 나쁜놈이고, 신시아는 자신의 욕망을 외면하지 않은 주체적 여성이었으며, 그레이엄은 마치 '파리, 텍사스'에서 트레비스가 자신의 잘못을 탓하는 것처럼, 스스로를 억압하고, 고통을 감수하는 삶을 살아왔다.
앤 역시 자신의 욕망보다는 주위의 시선을 의식하며, 주체적인 삶을 살지 못했다는 걸 깨닫게 되고, 존과 이혼하며 그레이엄과 가까워진다. 앤의 이혼은 존이 여동생 신시아와 불륜을 저질렀다는 것이 핵심은 아니다. 앤은 존과 깊은 대화를 나누지 못했고, 두 사람이 서로에 대해 믿음을 갖지 못했던 것이 더 큰 이유였다.
반면 앤과 그레이엄은 자신의 내면에서 벗어나지 못한 과거의 어리석음과 상처를 깨닫고, 서로 믿음으로써 새로운 삶을 살아갈 자신감을 갖게 된다. 앤과 신시아는 자기의 내면을 인터뷰 형식을 통해 솔직하게 드러낸 반면, 존은 끝까지 인터뷰를 부정한다. 즉, 자기 자신의 내면을 다른 사람에게 또는 공개적으로 말하고 드러내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특히, 내면을 드러내는 방식이 가장 내밀해야 하는 '섹스'에 관한 이야기라는 점에서, 이 영화가 자칫 자극적 소재를 담고 있을 거라는 선입견을 주지만, 정작 영화에서 섹스는 거의 등장하지 않고, 장면도 짧다. 섹스 이야기를 꺼낼 수 있을 정도로 내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라면 믿을 수 있다고 사람들은 생각한다. 실제 영화에서도 신시아나 앤은 그레이엄에게 자기의 섹스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도 그레이엄을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결혼은 물론 친구, 연인 사이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정직함이고, 자기의 내면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이며, 상대방을 신뢰하고,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영화는 끊임없이 말한다. 솔직하라, 자기와 남을 속이지 말라. 그것이 인간관계의 기본이자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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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레이] 시크릿 윈도우 - 아웃케이스 없음
데이비드 코엡 감독, 조니 뎁 외 출연 / 소니픽쳐스 / 2007년 5월
평점 :
품절


시크릿 윈도우

스티븐 킹 소설을 영화로 만들었다. 지금까지 스티븐 킹의 소설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만 50편이 넘는다. 스티븐 킹의 소설은 공포, 호러에 바탕을 둔 장르소설로 분류하지만, 환타지, SF, 추리, 심리, 액션 등 거의 모든 장르를 넘나들기 때문에, 스티븐 킹의 작품 세계를 하나로 규정하기 어렵다.
'리타헤이우드와 쇼생크 탈출'처럼, 소설보다 영화가 더 유명한 경우도 있지만, 스티븐 킹의 소설을 영화로 만드는 건 결코 쉽지 않다. 그 가운데 성공한 작품을 보면 '캐리', '미저리', '쇼생크 탈출'처럼 드라마적 요소가 강한 작품이 대중의 인기를 얻었다.
한국에서 번역 출판산 스티븐 킹의 소설을 거의 다 읽은 독자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샤이닝'이고, '샤이닝'과 같은 계열의 심리 스릴러 작품들이 다른 작품들보다 완성도가 높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 '시크릿 윈도우'도 '샤이닝', '미저리'와 같은 심리 스릴러에 속하며, 주인공의 정신 분열을 영상으로 잘 드러내고 있다. 물론, 중반 이후에는 관객이 이야기의 전개를 눈치 챌 수 있어 드라마틱한 반전은 일어나지 않는다.
원작 소설은 '소설을 훔친 남자 Secret Window, Secret Garden'로 중편 소설이며, 소설가 '모튼'을 찾아오는 남자 '슈터'와의 사이에서 발생하는 사건을 그리고 있다. 영화보다는 소설을 읽는 재미가 더 크다. 스티븐 킹의 최대 장기인 심리 묘사를 통해 독자는 주인공의 감정에 거의 동질화할 정도로 깊게 이입하며, 주인공이 왜 이상하게 변해가는지, 서서히 광기를 띄며 미치광이로 변해가는 과정을 공감하게 된다.

모튼은 뉴욕주에 있는 여름 별장에서 살고 있다. 그의 집을 청소하고, 식사까지 챙겨주는 마음 좋은 아주머니 - 당연히 임금을 준다 - 가 있고, 그는 노트북 컴퓨터에 워드를 띄워 놓고 소설을 쓰려 하지만, 소설은 쉽게 써지지 않는다. 하루 하루를 빈둥거리며 낮잠을 자거나, 게으름을 피우는 모튼.
어느 날, 누군가 찾아온다. 챙이 있는 모자를 쓰고, 키가 크며, 조금 험상궂게 생긴 남자가 불쑥 원고 다발을 내밀며, 내 소설을 표절한 파렴치한 놈이라고 모튼을 향해 소리지른다. 모튼은 황당하고 불안하다. 자신은 결코 다른 사람의 작품을 표절한 적이 없다고 맹세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완벽하게 장담할 수 없는 노릇이다. 남자는 표절한 작품을 원래대로 돌려 놓으라고 협박한다.
'슈터' 역을 하는 배우는 '존 터투로'로, 코엔 형제의 영화에 자주 등장한다. '오, 형제여, 어디로 가는가'에서도 조지 클루니와 함께 중요한 역을 맡은 '피트'가 존 터투로인데, 코미디 영화에서는 우스꽝스러운 연기가 돋보이지만, 이 영화처럼 심리 스릴러 영화에서는 진지하고 무서운 연기를 보여주는 뛰어난 배우다.
주인공 '모튼'을 연기하는 조니 뎁은 '팀 버튼'의 영화에 자주 출연했고, '짐 자무시' 감독의 영화에도 나온다. '가위손'으로 이름을 크게 알린 이후, 헐리우드 최고 배우 가운데 한 명으로 유명하다. 이 작품은 그가 진지하면서도 분열적 인물을 연기하는 걸 보는 재미가 있는 영화다.
'샤이닝'에서는 잭 토렌스가 '오버룩 호텔'에서 관리인으로 가족과 함께 지내는 동안, 극심한 고립감, 호텔에 존재하는 거대한 악령의 영향, 자신의 미래에 대한 불안, 소설을 쓰지 못하는 초조함 등이 뒤섞이면서 미치광이로 변해가는 과정을 눈부시게 썼다면, 이 작품에서는 외부의 악령이나 미지의 힘에 의한 영향 없이, 오로지 자신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자아의 분열만으로 변해가는 개인의 정신과 심리를 잘 보여주고 있다.

모튼이 여름 별장에서 지내는 건, 아내와의 이혼 수속 때문에 별거 중이라 그렇다. 그는 뉴욕에 있는 집을 나와 이곳 여름 별장에서 혼자 지낸다. 아내 에이미는 새로 만난 남자 테드와 살고 있으며, 이혼 수속은 모튼이 도장만 찍으면 끝나는 상황인데, 모튼은 선뜻 도장을 찍지 못하고 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지만, 모튼은 아내의 불륜 현장을 급습해 에이미와 테드가 모텔에서 벌거벗고 있는 장면을 봤다. 에이미는 엄연히 모튼과 결혼한 상태로, 모르는 남자와 불륜을 저지른 것이다. 모튼은 심한 배신감과 분노로 피가 끓었지만, 이혼을 결심하고 집을 나왔다. 이런 상황에서 어느 날 갑자기 '슈터'라는 남자가 찾아와 자기 소설을 표절했다는 말을 하니, 모튼으로서는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슈터'가 타고 온 자동차 번호를 보니 '미시시피주'였다. 남쪽 먼 곳에서 일부러 찾아왔다면 돈이나 뜯어낼 목적으로 거짓말을 하는 양아치는 아닌 듯 하고, 무엇보다 '슈터'의 표정은 진지하고 심각했다.
하지만 상황은 모튼에게 유리했다. 모튼이 '시크릿 윈도우'를 발표한 시기는 1992년이었고, 슈터가 자기 작품을 표절했다고 밝힌 창작 연도는 1994년이었으므로, 오히려 슈터가 모튼의 작품을 표절했을 가능성이 높았던 것이다. 하지만 슈터는 모튼의 말을 믿을 수 없다고 말하고, 증거를 가져오라고 다그친다. 그러면서 모튼이 키우던 개를 죽이고, 모튼과 슈터가 대화를 나눌 때 차를 타고 지나가던 마을 주민도 죽였으며, 모튼의 변호사도 살해한다. 그 모든 것이 모튼이 증거를 내놓지 않아서 벌어진 일이었다. 심지어 모튼의 아내 에이미까지도 그냥 두지 않겠다고 협박한다. 그러면서 에이미가 살고 있는 집에 불을 질러 집이 모두 타버리고, 에이미는 애인 테드와 함께 작은 아파트로 이사하게 된다.
이 와중에 에이미와 테드는 이혼 협상을 위해 변호사와 대동해 모튼을 만나지만, 모튼은 이혼서류에 싸인을 해주지 않고 버틴다. 에이미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모튼의 여름 별장으로 달려가 이혼 서류에 싸인하라고 말하는데, 이때 모튼은 사라지고, '슈터'가 나타난다. 모튼의 모습으로.

모튼은 아내의 불륜으로 증오가 불타오르고 있었지만, 행동으로 옮기지 못한다. 그는 한때 잘 나가던 소설가였으나 그가 소설을 쓰느라 보내는 시간 동안 아내 에이미는 마치 버림받은 사람처럼 소외당하고 있었다는 걸 알지 못한다. 에이미가 다른 남자를 만나게 된 것도 오로지 에이미의 탓만은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모튼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는 다시 잘 나가는 소설가가 되려고 새로운 작품을 쓰려 하지만, 소설은 마음대로 써지는 것이 아니어서 몹시 초조하고 답답한 심정이다. 여기에 아내의 불륜이 준 충격으로 그의 내면은 이미 분열되고 있었고, 미움, 증오, 초조, 우울한 감정이 뒤엉켜 증폭하면서 그 내면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또 다른 자아를 만든다. 그가 바로 '슈터'다.
실제로 '다중인격'과 관련한 사례는 많은데, '싸이빌'에서는 주인공이 열여덟 명의 인격을 가진 것으로 나온다. 다중인격자의 특성은 주로 어렸을 때 극심한 고통을 겪으면서 새로운 인격을 만들어 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나의 자아로는 그 고통을 견디기 힘들기 때문에, 고통을 상쇄하고, 현실을 잊을 수 있는 전혀 다른 인격을 스스로 만드는 것이다.
모튼의 경우, 다중인격으로 보기 어렵다. 그가 만든 '슈터'라는 인물은 자신이 하지 못하는 더러운 일을 맡아서 하는 존재이긴 하지만, 그것이 내면의 분열을 통해 새로운 인격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진다기 보다는, 오히려 매우 영리하고 교활한 방법으로 범죄를 저지르고, 마치 자신이 아닌, 정신분열 상태에서 다른 존재가 나타나 범죄를 저지른 것처럼 보이기 위한 계획된 행동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즉, 모튼은 매우 뛰어난 싸이코패스이거나 머리 좋은 살인자라고 할 수 있다. 그는 경찰의 추적을 받으며, 용의자로 분류되지만 '슈터'가 저지른 여러 건의 살인은 결정적으로 증거가 없다. 
슈터를 보지 못했다는 이웃 주민과 변호사는 차와 함께 강물에 가라앉았고, 아내 에이미는 집 뒤뜰에 묻혔다. 에이미의 실종은 테드의 증언으로 모튼의 여름 별장으로 갔다는 것이 확실해졌지만, 증거는 나타나지 않았다. 모든 정황이 모튼을 범인으로 지목하고 있지만, 결정적 증거가 나오지 않는 상황에서 섣불리 체포, 기소를 할 수 없는 것이 경찰의 딜레마인 것이다.
모튼은 자신의 내면에서 끓어오르는 광기를 분명 느꼈다. 그는 자신의 인생이 내리막길로 치닫고 있다는 걸 알았고, 에이미의 배신으로 더욱 확실해졌다. 소설은 써지지 않고, 작가의 명성은 사라졌으며, 미래는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변호사는 시간당 2백 달러를 주어야 하고, 이혼하면서 재산도 거의 다 사라졌다. 모튼에게 남은 것은 고통과 증오, 분노 뿐이고, 스스로를 파괴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내몰리면서 극단적으로 행동하는데, 그는 또한 냉정한 계산으로 일종의 게임을 즐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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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K 블루레이] 오버로드 (4K UHD Only)
율리우스 에이버리 감독, 와이어트 러셀 외 출연 / 파라마운트 / 2019년 8월
평점 :
일시품절


오버로드

영화는 공수부대를 싣고 노르망디 지역의 상공을 날고 있는 수송기로 시작한다. 대공포가 정신 차릴 수 없을 정도로 무수히 터지는 상공에서 미군 공수부대 수송기는 독일군의 대공포에 맞아 끈 떨어진 연처럼 추락한다.
1944년 6월 6일, 노르망디 해안에서 먼 바다에는 곧 상륙을 앞둔 미군과 연합군의 함대가 작전 시간을 기다리고 있고, 그에 앞서 노르망디 상공으로 침투해 지역을 장악하려는 미군 공수부대 수송기 1,200대가 하늘을 뒤덮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은 공수부대가 노르망디 영공을 통해 후방으로 침투하는 것을 시작으로 작전이 개시되었으며, 이 작전 전체를 '오버로드 작전'이라고 한다.
수송기에 탑승한 병사들은 노르망디 해안의 후방에서 독일군을 섬멸하는 임무를 부여받았고, 이들 가운데 특별히 선발된 중대는 독일군의 내보내는 전파방해탑을 제거하라는 임무를 안고 수송기에서 긴장한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 하지만 이들이 탄 수송기도 독일군 대공포에 맞아 추락하고, 병사들은 불타는 비행기에서 뛰어내린다.
공중에서 대공포를 맞아 죽은 병사들, 땅에 내리기 전에 죽은 병사들, 땅에 내렸지만 독일군에게 발각되어 사살당한 병사들이 대부분이었고, 살아남은 병사는 고작 여섯 명 정도에 불과했다. 이들은 정해진 시간 안에 독일군이 점령한 교회로 침투해 교회 첨탑에 설치한 전파 방해 시설을 파괴해야 한다.
영화를 보는 관객은 '밴드 오브 브라더스'나 '라이언 일병 구하기'처럼 본격 2차 세계대전을 다룬 전쟁 영화라고 여기며 미군 병사의 뒤를 따라간다. 이들 소수의 미군 병사들은 어둠을 뚫고 숲속을 지나다 우연히 한 여성을 발견한다. 프랑스 여성인 클로이는 숲에서 토끼를 잡다 미군 병사들을 만나고, 이들을 자기 집으로 데려가 숨겨준다. 이 마을에는 독일군이 수시로 드나들고, 마을 주민을 납치해 교회 건물로 데려가는데, 교회 건물로 들어간 사람 가운데 살아온 사람은 클로이의 고모가 유일하다.
클로이를 찾아온 독일군 장교가 클로이를 강간하려는 순간, 미군 병사들이 독일군 장교 바프너를 체포한다. 그 사이, 주인공 보이스는 동료를 찾으러 숲속으로 들어갔다가 우연히 교회로 들어가는 입구를 발견하고, 그곳에서 독일군이 마을 주민을 잔혹하게 학살하는 장면을 보게 된다. 수색을 계속 하던 보이스는 개(셰퍼드)에게 쫓기다 독일군 트럭에 올라탄다. 그 트럭에는 죽은 병사들의 시체가 가득했고, 트럭은 교회의 지하로 들어갔다. 
갑자기 독일군 비밀기지로 들어온 보이스는 그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독일군의 생체실험 장면을 보게 되고, 동료를 구해 탈출한다. 탈출하면서 실험실에 있던 주사기를 하나 가져오는데, 클로이의 집으로 돌아온 보이스는 총에 맞아 죽은 동료 체이스의 몸에 가져온 주사기를 꽂아 주사액을 투입한다. 그러자 죽었던 체이스가 살아나고, 괴물로 변신한다.
독일군 비밀기지에서 생체실험을 하고 있었고, 독일군이 만드는 약물은 인간의 육체를 더욱 강하게 만드는 성능이 있었다. 약물의 효과는 있었으나 안정적이지 않았고, 약물을 투여하면, 인간은 죽었다 살아나기도 하고, 괴력을 갖게 되며, 총에 맞아도 죽지 않는 특이한 존재로 변한다. 
이런 설정은 게임 '울펜슈타인'의 기본 설정과 비슷하다. 주인공이 독일군에게 잡혀 '울펜슈타인 성'에 갇히고, 이곳에서 탈출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데, 이 영화도 주인공 보이스가 독일군 비밀기지에 잠입해 동료를 구출하고 탈출한 다음, 다시 최초의 임무인 교회 첨탑을 폭파하기 위해 독일군 비밀기지로 들어가 임무를 완수하고 탈출한다는 내용이다.
이때, 단순하게 독일군 비밀기지를 폭파하고, 독일군을 모두 사살하는 것은 보통의 전쟁영화와 차별성이 없다고 판단했는지, 독일군 비밀기지에서 '불멸의 병사'를 만드는 생체실험을 하는 것으로 설정했다.
독일군은 프랑스의 마을 주민을 납치해 생체실험의 도구로 썼으며, 이곳에서 벌어지는 생체실험은 너무 끔찍해서 묘사하기 어렵다. 물론 역사에서 이런 일은 실제 일어나지 않았지만, 독일군이 점령한 노르망디 지역에서 독일군이 비밀 생체실험을 통해 괴물을 만들어 낸다는 설정은 전쟁과 호러를 결합한 혼종을 통해, 독일군이 아우슈비츠를 비롯한 유대인 수용소에서 수많은 사람을 학살한 것에 대한 강렬한 비유이기도 하다.
독일군은 유대인을 절멸할 계획으로 독일 지역에 많은 수용소를 만들었고, 그곳에서 유대인을 학살했다. 그 과정과 방법은 이미 영화, 책, 만화 등을 통해 수없이 많이 알려졌고, 그 사실을 부인하는 사람은 없다. 영화에서는 프랑스 주민을 생체실험 대상으로 삼아 참혹한 만행을 저지르는 독일군을 묘사했고, 그 실험을 통해 만들어낸 괴물 병사들이 등장한다.
독일군이 유대인을 가스로 학살하고, 소각하는 방식으로 전쟁범죄를 저질렀다면, 일본군은 731부대를 만들어 이 영화에서 나오는 것처럼 '진짜' 생체실험을 했다. 일본군은 조선인, 중국인을 잡아다 생체실험을 했으며, 이들이 저지른 행위는 이 영화에서 묘사한 것보다 더 끔찍하고 잔혹해서 필설로 옮길 수 없다.
일본이 기초과학이 발달하고, 의학, 생리학 분야에서 노벨상을 많이 받았다는 걸 부러워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 기초 데이터를 만든 과정이 바로 731부대에서 전쟁범죄를 저지르며 했던 생체실험의 결과라는 걸 알아야 한다.
전쟁이 끝난 이후, 731부대의 생체실험 데이터는 전부 미군이 압수했고, 미군에게 협조한다는 조건으로 731부대의 지휘관은 처벌당하지도 않았다. 생체실험에 앞장 섰던 731부대의 군의관들은 전쟁이 끝나고 일본 유수의 대학에서 교수로 활동하며 생체실험의 결과를 가지고 논문을 써서 발표했다.
일본은 지금도 731부대의 존재를 부정하고 있으며, 그들이 했던 생체실험의 참혹함과 결과에 대해 공개하지 않고 있다. 일본 731부대가 저지른 잔혹한 만행에 비하면 이 영화에서의 독일군 생체실험은 귀여울 정도로 보인다.
영화를 통해 알 수 있는 사실은, 역사에서 실제 벌어졌던 만행이 영화보다 훨씬 극악하고 참혹하며, 잔인하다는 것이다. 현실이 더 지옥같다는 건, 창작이 현실을 뛰어넘지 못하는 한계를 분명히 보여준다. 창작에서 아무리 극악한 장면을 묘사해도, 실제 벌어진 사건이 그보다 더 끔찍하다는 건 말할 필요가 없다.
따라서, 독일군이든 일본군이든 이들이 저지른 전쟁범죄는 영화에서 아무리 최대의 효과로 묘사해도, 실제 그들이 저지른 만행을 드러내는데 한계가 있다. 오히려 실제 전쟁 상황을 보여주는 흑백 다큐멘터리가 어떤 영화보다 더 강렬한 충격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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