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꺼풀
오멸 감독, 이상희 외 출연 / 아트서비스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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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눈꺼풀
-희생자를 위한 진혼곡

바닷가 자갈 틈에서, 산속 개울 아래서 크고 작은 미륵불이 보이는 섬, 노인은 이 섬을 찾는 사람에게 떡을 만들어 먹인다. 멀고 먼 길을 떠나는 여행자들은 이 섬을 찾아와 노인이 만들어준 떡을 먹으면 그가 떠나왔던 곳에서의 모든 기억이 사라지고, 그가 가야할 길만 기억하게 된다.
노인은 라디오로 세상 소식을 듣고, 떡을 만들어 달라는 전화를 받으면 절구에 쌀을 빻고, 우물에서 물을 긷고, 아궁이에 불을 지펴 떡을 찐다. 그렇게 하얀 백설기가 되면, 섬을 찾아온 사람은 떡을 먹고 사라진다.

어느 날, 라디오에서 세월호가 침몰했다는 소식이 들리고, 그 배에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던 학생들이 많고, 이 학생들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아직 알 수 없다는 방송 보도가 들린다. 그리고 바다에서 섬으로 쥐 한 마리가 헤엄쳐 오고, 그 쥐는 노인의 집 천정에서 부스럭거리며 노인의 잠을 방해한다. 노인은 쥐를 잡으려 나서고, 절구공이로 절구 위에 있던 쥐를 내리치지만 절구공이만 부러지고, 쥐는 다시 도망치다 섬에서 유일한 우물에 빠진다.

섬에 학생과 선생님이 도착하고, 노인은 어린 학생을 보더니 '어린 사람이 왜 이 섬에 왔느냐'고 역정을 낸다. 학생은 '떡을 먹으러 왔다'고 말한다. 노인은 자기가 해야 할 일이 있으므로, 쌀을 빻아 떡을 만들려 하지만, 절구공이가 부러져 쌀을 빻을 수가 없다. 하는 수 없이 돌미륵불을 거꾸로 들어 쌀을 빻지만, 고통스러운 노인의 신음소리와 함께 돌미륵불의 목이 부러지고, 절구도 부서진다. 
선생님은 물을 마시려 우물로 가지만, 우물은 이미 썩어버렸다. 노인은 망가진 절구와 목이 잘린 돌미륵불을 우물에 던진다. 절구와 돌미륵은 바다 깊이 가라앉고, 자욱한 모래먼지 속에서 돌덩이로 보이던 물체가 미륵불인듯, 사람인듯 눈을 감고 있는 돌같은 물체가 순간 눈을 번쩍 뜨고 정면을 바라본다.

오멸 감독은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한편의 진혼곡을 영화로 만들었다. 이 작품은 알레고리와 메타포로 일관하고 있지만, 아주 드물게 현실을 직접 언급할 때가 있다. '세월호 침몰'과 관련한 언론 보도를 다룰 때가 그렇다. 
바다는 삶과 죽음의 경계를 이루는 삼도천을 상징한다. 바다는 세월호가 침몰한 바다이면서, 희생자들이 있는 삶과 죽음의 공간이자, 삶에서 죽음으로, 죽음에서 삶으로 이어지는 경계로써의 바다다. 이 바다를 건너면, 어떤 사람은 살아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고, 어떤 사람은 죽어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거나, 영영 바다에 살게 된다. 
노인은 미륵불의 현현이고, 불쌍한 중생을 보듬는 부처이자 억울하게 죽은 영혼을 달래고, 위로하는 한없이 자애로운 보살이다. 노인은 섬을 찾아온 학생과 선생님을 보면서, 그들에게 떡을 해주어야 하는 자신의 처지를 한탄한다. 저 어린 것들이 대체 무슨 죄가 있어서 이 깊은 바다를 건너 노인을 찾아와야 했을까. 노인은 자신을 내던져 온몸으로 쌀을 빻지만, 주체할 수 없는 비애와 아픔 때문에 목이 잘리고 만다. 미륵불 마져도 이 어린 학생과 선생님을 구할 수 없다는 기막힌 현실, 죄 없는 사람들만 바다를 건너야 하는 이승의 불의를 더 이상 참을 수 없다.
노인은 이승을 떠난 사람이 먹어야 하는 떡도 만들지 않고, 떡을 만드는 도구인 절구와 절구공이를 바다에 버린다. 부정한 세상에서 갈 곳 없는 영혼들은 결국 떡을 먹지 못하고 사라지고, 목이 잘린 미륵은 저 바다밑 깊은 곳에서 수천 년, 수만 년을 기다려도 뜨지 않던 눈을 뜬다. 
느리고 유장한 화면만으로도 이 작품이 얼마나 깊게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고, 희생자를 생각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우리는 살았지만, 산 것이 아니고, 살아있는 동안 결코 잊을 수 없는 화인같은 슬픔을 가슴에 새기게 되었다. 
그것은 민주주의라는 제도로 뽑은 대통령이 더할 나위 없이 무능하고, 천박하며, 야비하고, 악랄한 쥐새끼 같은 존재였고, 인간이 아닌 존재, 저주받아야 마땅한 악귀같은 존재가 대통령이며, 공무원이며, 국회의원이며, 검찰, 경찰, 해경이며, 패륜집단이 저지른 야만의 학살이자, 집단 살해극이었고, 그 결과의 참담함은 다수의 국민들 가슴에 찍힌 고통이다.

7년. 아직도 세월호 참사의 원인은 밝혀지지 않고 있고, 가해자들은 잘 먹고, 떵떵거리며 살고 있다. 달마가 눈꺼풀을 잘라 낸 것은 무엇을 보려는 것이었을까. 두눈을 부릅뜨고 끝까지 지켜봐야 하는 것은 저 악마들, 가해자들의 기쁨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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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세월호 생존자 이야기
김홍모 지음 / 창비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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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어느 세월호 생존자 이야기

7년, 아직도 세월호의 진실은 밝혀지지 않고 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정부는 왜 존재하는 걸까. 정부는 누구의 편에 서 있는가. 국가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싶었던 2014년 4월 16일. 그 이후 박근혜 정부는 세월호 침몰의 사실을 밝히라는 시민의 비통한 목소리를 폭력으로 탄압하고, 언론과 정치권 역시 세월호의 진실을 밝히려는 노력도, 의지도 보이지 않았다.
오로지 시민들(일부를 제외하고)이 세월호 참사와 희생자, 유가족을 끌어안고 잊지 않겠다는 다짐과 각오로 7년을 버텼다. 무능하고 천박하며, 악랄하고 야비한 박근혜 정부를 촛불로 끌어내린 시민은 문재인 정부를 세우고, 국회의석도 민주당에 180석을 밀어주었지만, 정부와 여당은 집권하고 무려 4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밝히는 노력을 하지 않고 있다. 이는 명백히 촛불시민에 대한 배신이며, 역사의 정의를 거스르는 죄악을 저지르는 것이다.

이 작품은 세월호 생존자 김동수 씨와 그의 가족, 다른 생존자들을 인터뷰해서 완성했다. 작가는 이 작품을 위해 세월호 참사 관련 영상과 자료를 거의 모두 찾아봤으며, 시나리오를 완성할 때까지 2년의 시간이 걸렸다고 했다. 작가와 마찬가지로 나도 세월호 참사 이후 그들의 고통을 정면으로 바라보지 못했다. 참사는 기억하되 참사의 디테일은 외면하고 싶었던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희생자의 얼굴을 바라보면, 나 역시 그 깊은 고통과 슬픔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것만 같았다.
그럼에도 작가는 세월호 참사를 알리려고 스스로 그 고통과 슬픔의 늪에서 빠져나와 사실에 가까이 다가갔다. 그것만으로도 커다란 용기이며 많은 시민에게 희망을 주는 행동이다.

1부
침몰하는 세월호에서 마지막까지 남아 학생과 시민을 구한 '민용'의 증언을 토대로 한 내용. 민용은 세월호에 트럭을 싣고 인천에서 제주를 오가는 트럭기사로, 세월호 참사 당일 배가 침몰하기 직전까지 남아 학생과 시민을 구한 의인이다. 
하지만 정부와 언론은 민용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고, 민용은 배에 남아 있던 사람들을 떠올릴 때마다 극심한 고통을 느낀다. 민용에게 세상은 단순하다. 거짓말 하는 것은 나쁘고, 어려움에 놓여 있는 사람은 도와주어야 하며, 특히 목숨이 걸린 상황에서는 앞뒤 가리지 않고 무조건 최선을 다해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것이 당연하다.
또한 정부는 국민의 목숨과 재산을 보호해야 하며, 대통령과 장관, 공무원은 국민 앞에서 거짓말을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이렇게 상식적인 사람이 세월호 참사를 겪으면서 대통령을 비롯해 공무원, 경찰, 언론 등 정부를 구성하는 모든 분야에서 거짓말과 회유, 협박을 하며 민용을 압박하고 있다는 걸 느낄 때, 그는 정부의 존재가 거대한 악마의 모습 그 자체였다.

2부
민용의 딸 안나는 고등학생이다. 인천에서 제주로 수학여행을 오던 단원고 학생들과 같은 2학년이었고, 그 학생들을 구하다 몸과 마음이 망가진 아버지 민용을 옆에서 지켜보며 많은 생각을 한다. 아버지는 자책과 트라우마로 우을증을 앓고, 자해를 해서 병원 응급실에 실려간다.
세월호 참사 1주기를 맞아 안나는 친구들과 함께 '세월호 기억 플래시몹'을 준비한다. 안나와 친구들은 고3으로 수험공부를 해야 했지만, 그들에게 '세월호 참사'는 남의 일이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들의 일이라는 걸 잘 알기 때문에 제주신성여고, 제주여고, 중앙여고, 제주일고, 대기고 학생들과 연합해 플래시몹을 계획하고 실행한다.
대학에 진학한 안나는 언니 나연과 같은 '응급구조학과'를 전공한다. 언니 나연이 '응급구조학과'를 선택한 것은 우연이었지만, 안나가 '응급구조학과'를 선택한 것은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아버지가 세월호에서 많은 학생, 시민의 목숨을 구한 것이 안나는 많이 자랑스럽다.

3부
세월호 생존자 민용과 그의 가족, 아내와 두 딸(나연, 안나)은 민용을 지켜보며 함께 괴로워한다. 민용은 세월호 참사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몇 번의 자해를 하며 세월호 참사 희생자와 생존자를 안전하게 구하라는 말을 하지만, 정부와 주위 사람들은 오히려 민용을 비난한다.
희생자 가족은 말할 것도 없지만, 생존자와 생존자 가족들의 삶도 세월호 참사 당일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이다. 세월호 침몰의 사실을 밝히고, 희생자, 유가족, 생존자, 생존자 가족에 대한 충분한 보상과 치료가 절실함에도 박근혜 정부는 그들을 '빨갱이' 취급했으며, 패륜집단인 '일베'는 희생자와 유가족, 생존자를 모욕하고 조롱하는데도 정부는 그걸 방관하고, 심지어 조장했다. 그것이 박근혜 정권의 정체성이었다면, 문재인 정부에서도 이런 일들이 여전히 벌어지고 있지만, 이런 패륜집단과 악랄한 반인륜 발언을 하는 자들이 여전히 활동하고 있는 상황이다.

세월호 참사는 한국의 역사에서 그 전과 이후를 가를 정도로 심각한 사건이었으며, 이 사건이 완전하게 사실이 드러나고, 원인을 제공한 자들, 가해자들이 모두 처벌받고, 희생자, 유가족, 생존자, 생존자 가족이 납득할 만한 정부의 사과와 배상을 받지 않는 한, 절대 끝날 수 없는, 끝나서도 안 되는 사건이다.
세월호 참사 7주기를 맞아 김홍모 작가의 '홀'이 나온 것이 세월호 참사의 사실을 밝히는 데 작은 밑돌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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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기 평전 - 황해 문명권의 독특한 어업 문화를 창출한 어느 물고기 이야기
주강현 지음 / 바다위의정원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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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기 평전


글쓰기를 업으로 삼고 있다고 생각하는 내가 가장 부러워 하는 글쓰기 방식이 '조기 평전'과 같은 형식이다. 하나의 주제를 갖되, 그 주제가 드러내는 모든 요소를 날실과 씨실을 엮듯, 즉 그물을 엮듯 엮어가면서 점차 확장해 나가는 방식이다. 
이런 글쓰기는 글을 쓰는 사람은 괴롭지만, 읽는 사람에게는 매우 기분 좋은 경험을 하게 만든다. 작가는 박물학적, 백과전서적 지식을 섭렵해야 하며, 그렇게 얻은 지식과 자료와 정보를 면밀하게 계산해서 글로 풀어야 한다.
이 책 '조기 평전'은 조기 한 마리로 무슨 이야기를 얼마나 할 수 있을까 생각할 수 있다. 제주도 서남쪽에서 시작해 서해 바다의 근해를 따라 이동하면서 압록강 근처 철산 용암포까지 올라갔다가 회귀하는 조기의 이동은 우리 민족의 삶에서 결코 떼어놓을 수 없는 문명사, 경제사, 어업사, 인류사에 포함된다.

서해 바다에서 조기를 잡았다는 기록은 고려 때도 있었으니 이미 훨씬 오래 전부터 서해에서 조기 잡이는 이루어졌을 것이라 짐작한다. 서해의 남쪽부터 무수히 많은 섬들과 그 섬에서 사는 민중의 삶은 물고기를 잡아 곡식으로 바꿔 먹는 삶이었고, 서해안의 바닷가 마을에 사는 민중 역시 바다에 기대어 살고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서해 남쪽의 섬 가거도부터 만재도, 흑산도, 안마도, 송이도, 위도, 개야도, 죽도, 연도, 어청도, 삽시도, 호도, 녹도, 외연도, 횡견도, 궁시도, 난도, 격렬비열도, 덕적도, 선갑도, 백아도, 울도, 연평도, 백령도, 대청도, 초도, 대화도까지 한반도 서쪽의 육지에서 가까운 섬들은 모두 조기 잡이와 깊은 연관이 있다.

역사적으로 조기는 임금에게 진상하는 물목 가운데 하나였으며, 조선시대에 조기는 흔한 생선이었다. 또한 조기의 크기도 지금보다 훨씬 커서 소금에 절인 조기는 오래 보관할 수 있고 맛도 좋아 인기 있는 생선이었다.
조기잡이는 일제강점기부터 구체적인 자료를 남기기 시작했는데, 조기잡이 배들이 들어오는 어항의 객주들이 조기를 사들이는 양과 금액이 구체적으로 적시된 자료가 많이 남아 있다. 또한 조기철이 되면 남해안의 어선은 물론이고 멀리 일본에서까지 조기를 잡으로 올 정도였으니 어업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기라 해도 조기의 어획량은 엄청났다.

조기와 관련해 펼쳐지는 이야기에는 병자호란 당시 남한산성에 갇힌 인조과 신하들의 상황, 한양까지 내려온 청나라 황제 앞에서 인조가 무릎을 꿇어야 했던 굴욕의 역사, 그리고 '조기의 신'으로 추앙받고 있는 임경업 장군의 전설과 신격화가 자세히 다뤄지고 있다.
임경업 장군이 '조기의 신'으로 추앙받게 되는 과정은 곧 억압받는 민중의 한과 정서가 당시 임경업 장군이 억울하게 처형당한 상황과 맞물리면서 신격화로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칠산파시, 연평도파시 등 조기철 어업이 성황을 이루고, 각 섬과 포구에 조기가 넘치게 되면 덩달아 사람과 돈도 넘쳐흘렀다. 지나가던 개도 돈을 물고 다닐 정도로 흥청거렸을 정도라고 하니 지금으로는 상상하기 어려운 장면이다. '한국민족문화백과사전'에서 설명하는 '파시'의 일부분에 이런 내용이 있다.

1930년대 중기의 일간지 기사에는 연평도의 파시풍을 현장감 있게 다룬 것들이 보인다. 우리 나라 3대 어장 중의 백미(白眉)로 유명한 연평도 조기어장에는 조기 안강망 어선 약 1,000척과 운반선 및 상선 약 1,000척이 몰려와 장관을 이루었고, 육상에는 성어기(盛漁期)의 어부의 상륙을 노려 급히 문을 연 요리점 30호, 카페 1호, 음식점 53호를 비롯하여 이발관 9호, 목욕탕 3호, 대서소 2호, 여인숙 5호가 있었다고 한다.
또한, 조기와 함께 연평도의 명물인 낭자군(娘子群)에서는 예기(藝妓) 5명, 작부 95명, 여급 3명, 합계 103명이 활약하고 있었는데, 조기를 쫓는 어부와 어부를 쫓는 낭자군이 뒤범벅이 되어 광복 후에도 조기어업은 주요 어업의 하나로서의 위치를 상실하지 않고 있었고, 파시도 예나 다름없이 열리고 있었다.[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파시(波市))]

지금 우리가 먹는 조기는 예전에 비하면 작은 크기다. 지금도 팔리고 있는 조기는 1cm 단위로 가격이 엄청나게 큰 차이를 보인다. 즉 큰 조기는 훨씬 비싸게 팔린다. 조기가 작은 이유는 오랜 남획 때문이며, 수탈 어업의 문제점이기도 하다.
조기 한 마리에서 우리는 역사를 관통하는 민중의 삶과 변화, 발전하는 어구, 조업 방식, 조기를 가공하는 방식, 조기를 비롯한 물고기의 생태와 상품(식품)으로의 유통과 식재료, 음식으로 끼친 영향 등을 배울 수 있다.
'조기 평전'은 책 읽는 즐거움을 느끼고 누릴 수 있는 박물학적 지식이 가득한 책이다. 역사, 신화, 민담, 영웅서사까지 다양한 소재와 흥미로운 이야기가 가득한 이 책을 많은 분이 읽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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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배근 대한민국 대전환 100년의 조건 - 디지털 생태계와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위한 새로운 사회계약과 기본권에 대하여
최배근 지음 / 월요일의꿈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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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대전환 100년의 조건

내가 경제학 기초를 처음 공부한 건 군대에서 전역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스무살 중반이었다. 그때 소모임은 사회과학을 중심으로 커리큘럼을 짰는데, 우리 모임의 학습을 이끌던 선배 둘은 모두 성대를 다니고 있었다. 그때만 해도 성대 학생운동 그룹은 PD 진영으로 알려졌고, NL이 중심이었던 서울대와는 다르게 마르크스, 레닌 이론을 주로 학습했다. 수준은 당연히 기초적 내용이었고, 우리는 매주 한 권씩 책을 읽고 토론했다.
그때 읽었던 책 가운데 최종식의 '서양경제사론'과 박현채 교수의 '한국 농업문제의 새로운 인식', 백남운의 '조선사회경제사' 같은 경제 관련 책을 읽었다. 이밖에도 일본 번역서 가운데 경제 관련 사회과학 책들을 읽었고, 제3세계 관련 책도 몇 권 있었다.
이때 읽은 내용에서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할 뿐 아니라, 인류의 발전을 물적 토대로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된 책이 백남운의 '조선사회경제사'였다. 이 책은 1933년 출판되었는데, 당시로는 유일하게 우리나라의 원시, 고대사회 경제를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즉, 우리가 신화로만 알고 있는 단군 신화의 내용이 부족과 부족 사이의 투쟁과 결합이었으며, 당시의 부족이 정착생활을 하며 농업을 하던 부족들이었다는 내용인데, 지금이야 쉽게 수긍할 수 있지만, 사회과학 공부를 처음 하던 나는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그 뒤로 경제학 공부는 더 깊게 하지 못했고, 한국의 경제학자들 가운데 마르크스 경제학을 하는 학자들도 드물고, 그 이론을 펼치기에는 당시 한국사회가 군부독재 상황이어서 여의치 못한 것도 있었다. 
그러다 '정운영' 선생님을 알게 되었다. 한겨레신문을 통해 알게 된 정운영 선생님은 그 뒤로도 방송에서도 볼 수 있었고, 중앙일보에서도 칼럼을 꾸준히 써서 그의 글을 읽는 즐거움과 행복함이 있었다. 정운영 선생님은 지금도 그 분을 능가하는 사람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미문'이다. 글을 잘 쓴다는 건 결코 쉽지 않은데, 더구나 '아름다운 문장'을 쓰는 건 예사 재능으로는 흉내내지 못하는 영역이다.
나는 지금도 정운영 선생님의 책을 읽곤 하는데 - 오늘도 헌책방에서 갖고 있지 못한 책을 발견하고 주문했다 - 글을 읽을 때면 정운영 선생님의 생전 모습이 떠오른다. 그는 마르크스 경제학을 공부했고, 대학에서 강의도 했지만, 한국의 엄혹한 상황에서 자신의 뜻을 충분히 펼치지 못했다.

최배근 교수님을 알게 된 건 '김어준의 뉴스공장' 덕분이다. 그 전까지 솔직히 나는 한국의 경제학자들에 관심이 없었고, 주로 외국 학자 가운데 한국에 책으로 번역되어 있는 학자들을 조금 알고 있을 뿐이었다. 그 가운데 E.K. 헌트의 책을 통해 세계 자본주의 흐름과 마르크스 정치경제학의 기초를 배울 수 있었다. 경제학과 경제학자의 개론에 관해서는 여러 권을 읽어서 큰 줄기는 알고 있었지만, 경제학, 정치경제학의 깊이와 구체적인 면면까지는 도달하지 못하는, 수박 겉핥기의 독서였다.
라디오에서 최배근 교수님이 한국 경제에 관해 설명하는 내용을 들으면서, 평소 내가 가졌던 생각과 거의 99%의 씽크로율을 느끼게 된 것이 신기했다. 방송으로만 알게 된 최배근 교수님은 약간 투박한 말투와 독특한 어미의 활용이 인상 깊었는데, 그의 책을 구입할 생각까지 하지는 못했다.
그러다 최근에 최배근 교수님이 쓴 '대한민국 대전화 100년의 조건'을 구입해 읽어봤다. 책의 내용은 차치하고, 책날개에 있는 프로필을 보면서 많이 놀랐다. 최배근 교수의 경력은 매우 화려했다.
2010년 영국 케임브리지 국제인명센터의 '세계 100대 교수', '세계 100대 교육자', 21세기의 탁월한 지식인 2,000명'에 선정되었으며, 2017년, 2018년 연속으로 마르퀴즈 후즈 후의 '평생공로상'을 수상했다.
나만 그동안 최배근 교수님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모르고 있었나보다. 

이 책 '대한민국 대전화 100년의 조건'도 처음에는 큰 기대하지 않고 구입했다. 경제학자가 한국을 분석한 이론서니까 조금 딱딱할 것이고, 각종 통계 자료와 경제학 용어들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했다가,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재미로 책장이 술술 넘어갔다.
무엇보다 쉬운 언어로,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는 것이 좋았고, 주제를 선명하게 드러내며, 하고자 하는 발언의 내용을 두괄식으로 명확하게 정리하고 있어서 나처럼 경제를 잘 모르는 사람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서문에서, 한국은 21세기를 '새로운 처음'을 맞닥뜨리는 나라로 규정하고 있다. 이 충격을 완화하기 위한 방법으로 1) IT 및 인터넷 혁명에서 데이터 혁명으로 진행하는 기술 혁명 2) 기후변화 문제와 신재생 에너지 문제 3) 남북한이 반드시 연결되고 통합되어야 하는 문제를 짚고 있다.
본문의 앞부분에서 책 전체를 관통하는 문제제기를 하는데, 21세기의 시작은 1) 2001년 9.11테러 2) 신종 바이러스의 습격 3) 2007년 미국발 금융위기 4) 2011년 지진, 쓰나미와 일본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를 꼽고 있다.
이 책은 누구나 한번쯤 한국 경제,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생각해 본 사람이라면 쉽고 재미있게 읽으며 수긍할 수 있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 쉽고 재미있다고 해서 깊이가 없는 것도 아니다. 이 책에서 인용되고 있는 각종 자료들은 가장 최근의 국제 공식 통계들이어서 경제를 이해하는데 필수 내용이며, 사람들과 경제 이야기를 하거나, 토론을 할 때 이 책의 내용이 매우 훌륭한 근거 자료로 뒷받침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책을 쭉 읽으면서, 그동안 내가 가졌던 경제학에 관한 선입견이 상당히 잘못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최배근 교수님이 말하는 경제는 결코 어렵지 않으며, 전문가만 알고 있는 내용도 아니었다. 경제는 모든 국민이 먹고 사는 문제를 다루는 것인데, 경제전문가라고 행세하는 사람들은 복잡한 이론과 언변으로 대중을 무지하게 만들고 있다. 전문가라면 오히려 알기 쉬운 말로 대중에게 현재의 상황과 문제를 올바르게 설명해야 할 의무가 있음에도, 기존의 부르주아 경제학자들, 엘리트주의에 빠진 경제학자들은 '그들만의 리그'에서 경제학을 움켜쥐고 있었던 것이다.

현재 최배근 교수는 경제를 왜곡하는 전문가들과 언론에 맞서 일당백의 역할을 하고 있다. 호사카 유지 교수가 독도와 관련해 일본의 왜곡, 선동에 대해 일당백의 역할을 하는 것처럼, 한국의 경제학자들 가운데 드물게 정의롭고 양심적인 학자임을 알 수 있다.
촛불 시민이라면 이런 학자들을 보호하고 실력을 드러낼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사회는 여전히 돈과 권력을 가진 자들이 수구, 반동, 매국노들이 많기 때문이다. 많은 분이 이 책을 읽어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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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망일기 - 선장작가 하동현의 해양산문집
하동현 지음 / (주)베토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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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망일기

지은이 하동현 선장이자 작가는 나를 모르지만, 나는 하동현 작가와 우연히 겹치는 인연이 있다. 우리는 같은 해에 태어났고, 하 선장이 배를 탈 무렵, 나는 군대에서 전역하고 '현대해양'에 입사했다. 이 책이 '현대해양'에서 연재한 글이라는 것 역시 우연이다.
'현대해양'에서는 짧은 기간 일했지만, 그때 나는 우리나라의 바다 관련 정책과 산업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절실히 느꼈다. 우리는 세 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땅을 가지고 있지만, 해양 관련 정책과 산업은 다른 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이 부족하다. 해양 관련 산업은 대중이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다양하고 중요하다. 현재 한국의 조선산업은 세계 1위이며 기술과 수주 실적에서도 단연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한동안 많은 어려움을 겪었고, 구조조정과 기술혁신을 통해 새로운 전성기를 맞고 있다.
바다 산업에는 원양어업과 연근해어업이 있고, 양식업이 있다. 또한 바다를 활용하는 해양레저, 스포츠 산업도 중요하다. 여기에 바다를 의지해 살아가는 많은 어민들의 삶이 있고, 바다에서 나오는 먹거리는 우리 양식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물론, 그 중요성은 말할 나위 없다.
이렇게 중요한 바다 관련 산업을 지원하는 정부의 정책과 예산, 제도는 많이 부족하고, 어민의 삶을 지금보다 더 낫게 개선하려는 움직임도 생각보다 느리다. 이런 큰 흐름이 문화, 예술에서도 나타난다. 바다, 해양의 중요성이 높음에도 대중의 관심이 적은 이유는 정부의 지원과 홍보가 부족하고, 언론도 중요하지 않게 여기며, 바다의 가치를 낮게 평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배경에서 바다, 해양을 다루는 예술가들이 드물고, 그 현장에서 일하는 주인공의 목소리를 듣는 것은 더욱 어렵다. 그런 가운데 드물지만 훌륭한 성과를 보이는 현장 작가들이 나타나는데, 소설 '남극해'를 쓴 이윤길 선장과 이 책 '양망일기'를 쓴 하동현 선장이 바로 그들이다.

배를 타고 세계를 누비며 조업을 하고, 세계의 바다에서 벌어지는 놀라운 경험을 한 이들 뱃사람들이 남긴 기록은 그 자체로 새로운 영역의 예술 세계다. 이 책 '양망일기'는 하동현 선장의 산문집으로, 그가 바다에서 생활하며 겪은 다양한 경험을 유려한 문장으로 기록하고 있다.
바다 생활의 기록만으로도 신기한 이야기가 많아서 읽는 즐거움이 크다. 바다와 해양을 모르는 사람이 이 책을 읽으면 새로운 상식도 많이 알 수 있으며, 무엇보다 하 선장이 겪은 많은 에피소드가 마치 소설처럼 신기하고 놀랍다.
이 책은 하 선장의 개인적 경험과 기록이지만, 그보다는 훨씬 넓은 의미에서 한국 해양산업의 다양한 모습을 내포하고 있다. 우리나라 원양어업은 한때 한국산업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할 정도로 성장했었다. 1960년, 1970년대는 한국의 경제가 경공업 위주로 편재되어 있었고, 노동력을 집중하는 산업에서 강세를 보였다. 이때 이미 한국은 수출 위주의 산업 구조를 확정하고, 노동력 집중 산업인 섬유, 전자, 건설 등에 집중 투자하고 있었다. 원양어업도 이 시기에 전성기를 누렸다. 이때 독일에 간호사, 광부들이 파견되었고, 중동 지역에 건설노동자들이 파견되어 외화를 벌었다.
80년대 이후 중화학 공업에서 백색 가전, 반도체, 첨단 IT 산업으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노동 집약적 산업은 자연스럽게 축소되었고, 이들이 한국 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줄어들었다.
하지만 '바다'는 여전히 첨단이고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영역이다. 다른 분야 산업이 위축되고 하향길을 걸어도 '바다'와 관련한 해양 산업은 첨단 IT 산업과 궤를 같이 한다. 이런 사실 역시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지 않고 있다.

'양망일기'는 독자를 낯선 세계로 안내한다. 육지에 사는 사람이 막연하게 동경하는 바다, 수평선이 보이고, 붉은 해가 솟아오르고, 파도가 철썩이고, 바다 낚시를 하고, 해녀들이 바다 밑에서 건져올린 해산물을 초고추장에 찍어 먹는 낭만이 아닌, 진짜 바다, 거칠고 두려운 파도가 일렁이고, 빙하가 살아 움직이고, 폭풍이 휘몰아치고, 무더위와 갈증을 견뎌야 하고, 바다 위, 망망대해를 떠도는 배 위에서 몇 달을 견디며 생활해야 하는 진짜 바다를 이야기한다.
항구와 공항에서 만난 여러 사람들과의 짧은 인연, 망망대해 바다 위에서 벌어진 칼부림, 해양에서 쓰이는 전문용어와 그 유래, 세계 여러나라를 다니며 겪은 낭만과 음식, 부족한 물을 아껴쓰는 지혜, 바다에 관해 아는 것이 거의 없는 일반인들의 편견과 무지를 대하는 태도 등 작가는 자신의 경험을 진솔한 문장으로 기록하고 있다.
'해양산문'이라는 분야도 한국문학에서는 매우 드물고 귀하다. 문학의 다양성과 폭넓은 영역을 포괄하기 위해서라도 해양, 바다와 관련한 글이 지금보다 더 많이 발표되기를 바라는데, 단지 '해양문학'이라는 고정되고, 제한된 영역이 아니라, 우리 삶의 일부분으로 자연스럽게 바다와 해양이 스며들기를 바란다. 
우리는 이제 농업과 어업의 역사를 잃어가고 있다.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 IT사회로 발전, 이전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지만, 우리의 뿌리가 되는 농업과 어업을 소홀하게 여길 수는 없다. 세상이 아무리 첨단으로 발전해도 우리의 근원이자 뿌리는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바다는 우리의 삼면에 있고, 가장 중요한 먹거리를 생산하는 곳이며, 산업면으로도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곳이다. 바다와 관련한 더 많은 이야기, 다양한 이야기, 새로운 이야기를 창작하는 작가가 꾸준히 배출되기를 바라며, 해양문학으로는 1세대에 해당하는 하동현 작가의 신선하고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은 독자에게 읽히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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