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의 마음 사계절 만화가 열전 12
소복이 지음 / 사계절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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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년의 마음

소복이의 그림과 글을 퍽 좋아하는 나는, 소복이가 그린 책을 찾아 읽는다. 이 그래픽노블을 보면서, 소년의 마음에 감정이 자연스럽게 동화되면서 나도 소년처럼 울었다.
가족과 함께 있어도 행복하지 않았던 시절, 부모의 불화 속에서 늘 우울하고 외롭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때로는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했지만, 더 많이 혼자 철둑길의 풀밭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던 기억이 난다. 어린이에게 집과 부모는 세계의 모든 것이고, 절대적이었는데, 그 세계가 행복하지 않다는 것은 온 존재가 불행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소복이는 이런 어린 소년의 마음을 잘 읽고 그려내고 있다. 소년은 슬프고, 외로운 시간을 견디기 위해 그림을 그린다. 그리고 자신을 귀여워하고 사랑한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할머니를 그리워하며 상상의 세계에서 할머니를 만난다. 할머니는 여전히 소년을 사랑하고, 따뜻하게 안아준다. 그 힘으로 소년은 현실의 슬픔과 외로움을 견딘다.
세상에 홀로 남겨졌다해도, 단 한 사람이라도 자신을 사랑하고, 격려하는 사람이 있다면 힘든 세상을 견딜 수 있는 힘이 된다. 소년에게는 돌아가신 할머니의 추억이 있고, 다행히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어린 시절을 행복하게 지낸 사람은 부러운 사람이다. 그런 사람은 나이 들어도 원만하고 행복한 삶을 살아갈 확률이 높다. 가난하고 조금은 불행한 어린 시절을 보낸 나는 나이가 들어서도 여전히 그때의 트라우마를 겪고 있다. 심하지는 않아도, 가끔 꿈속에서 나는 슬프고 외롭다. 어린이는 행복해야 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가정이 행복하지 않다면, 사회에서라도 어린이를 돌봐야 한다. 이 책의 주인공, 소년의 모습이 보편성을 얻는 것은, 그런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이 많기 때문 아닐까.



출처: http://marupress.tistory.com/2527 [知天命에 살림을 배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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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내전, 우리가 그곳에 있었다
애덤 호크실드 지음, 이순호 옮김 / 갈라파고스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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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스페인 내전 - 도서출판 갈라파고스


많은 경우, 한 권의 책을 읽으면 그 책은 마치 하나의 씨앗처럼 뿌리를 내리고 가지를 치고 열매를 맺으며 연쇄적으로 퍼져나간다. 갈라파고스 출판사에서 나온 '스페인 내전'을 읽으면서 다른 관련 자료들을 찾아보게 된다. 이 책은 한국에서 보기 어려운 스페인 내전에 관한 내용을 다룬 책이다. 알라딘 서점에서 '스페인 내전'으로 검색하면 쓸만한 책은 앤서니 비버가 쓴 '스페인 내전'(교양인)과 갈라파고스에서 출판한 '스페인 내전'이 있을 뿐이다.
애덤 호크실드가 쓴 '스페인 내전'은 앤서니 비버의 '스페인 내전'과는 각도가 약간 다르다. 앤서니 비버가 '통사적'으로 접근했다면 애덤 호크실드는 미국 출신의 자원병들에 관해 보다 깊이 있는 서술을 하고 있다. 미국인으로 스페인 내전에 직접 참가한 국제주의자들 가운데 생존자를 만나거나 그의 친구, 가족, 지인들을 만나 인터뷰 하고, 그들이 남긴 자서전, 회고록, 전기를 비롯한 출판물들을 찾아서 미국인들이 스페인 내전에서 어떻게 싸웠는지, 싸우다 죽었는지를 세부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런 작업들이 조금 더 일찍 시도되었다면 보다 생생한 증언들을 들을 수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기도 하다.
이를테면,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미국 군인을 다룬 이야기는 너무나 많아서 일일이 열거하기도 어렵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 '밴드 오브 브라더스' 같은 최근의 수작들은 물론이고 이미 70년대부터 헐리우드에서는 수 많은 전쟁영화를 만들면서 미국 군인들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얼마나 영웅적으로 싸웠는가를 널리 알리고 있다.
하지만 스페인 내전의 경우는 다르다. 미국은 스페인 내전에 관한 한 미국인들이 자발적으로 그곳에 가서 공화파를 위해 싸웠다는 사실이 알려지는 것을 꺼리는 듯 하다. 그나마 헤밍웨이가 직접 스페인 내전에 참전한 경험으로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는가'를 써서 널리 알린 것이 거의 유일할 정도로 미국은 스페인 내전을 기억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스페인 내전에 참전한 미국인들의 대부분은 공산주의자, 사회주의자, 진보적 노동자들이었기 때문이다.
미국을 비롯해 유럽 여러 나라에서 몰려 온 국제여단 사람들의 구성은 출신이나 신분에 전혀 상관없이 그들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막 세계경제공황이 끝나갈 무렵이었고, 자본의 악랄함과 잔인함을 몸으로 느낀 사람들이었으며, 1917년 러시아 혁명의 기운이 유럽과 미국으로 퍼져나가고 있던 상황이었다. 자본의 힘도 강력하지만, 그에 반발하는 공산주의, 사회주의 이념 역시 그에 못지 않게 강력한 기운을 발산하던 때, 스페인 내전은 제국주의화 하는 독일로 대표되는 자본과 파시즘이 격렬하게 충돌하는 현장이었던 것이다.
이 시기에 동양에서는 중국과 일본이 전쟁을 시작했고(중일전쟁), 조선은 일본의 식민지 상태에 있었으며, 일본은 이미 동남아시아를 침략해 식민지를 확장하고 있던 시기였다. 미국에서는 1929년 촉발한 경제공황으로 자본의 수탈로 인한 노동계급의 착취가 극심하던 시기였는데, 이때 미국언론에서는 '사람들이 빌딩에서 소나기처럼 떨어져 내렸다'고 표현할 정도였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주범이 바로 '자본(가)'이라는 것을 그때부터 지금까지 많은 언론과 권력은 숨기고 있다.
유럽에서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 패배한 독일과 주변 승전국가들 사이의 갈등이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전후 보상금 문제를 비롯한 승전국의 요구에 독일 국민은 파시즘의 출현으로 대답했다. 유대인과 관련한 사안이 파시즘의 대두에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유럽 전역에서 당시 유대인을 핍박한 것은 단지 히틀러 정권만이 아니었고, 유럽인 대부분이 유대인에 대한 경멸과 분노의 감정을 보이고 있었다.
스페인 내전은 현대 사회에서 최초의 '이념전쟁'이라고 부를 수 있다. 스페인의 왕정이 무너지고 공화정이 들어서는 과정에서 왕당파를 비롯한 수구집단-왕정 옹호론자, 가톨릭 집단, 자본가, 군부, 부르주아 등-은 공화파와의 권력 다툼에서 근소한 차이로 진다. 수구집단은 군부를 부추겨 쿠데타를 일으키도록 하는데, 이미 수십 차례의 쿠데타가 실패한 상황에서, 프랑코는 스페인에서 쫓겨나 모로코에 있다가 군대를 모아 쿠데타를 일으킨다. 프랑코를 지원하는 세력은 스페인 내부의 수구집단은 물론이고 영국, 프랑스 등 주변 국가도 노골적이지는 않아도 공화파를 지원하지 않음으로써 프랑코 군부를 지원하게 된다.
결정적으로 독일의 히틀러와 이탈리아의 무솔리니는 스페인 내전이 발발하는 것을 속으로 만세를 부르며 좋아했는데, 스페인 내전이 일어나던 1936년 무렵에 이미 히틀러는 독일을 장악하고 유대인을 학살하기 시작했다. 독일은 자기들의 새로운 무기를 실험하기 위해 스페인 내전에 많은 무기와 군인을 지원했으며, 이 시기를 통해 히틀러는 전쟁을 일으켜도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은 불간섭 원칙을 지켰는데, 그 이유가 미국 내부의 보수집단-자본가, 가톨릭 세력-의 눈치를 보기 때문이었다. 결국 이런 불간섭 원칙이 스페인 내전에서 공화파의 패배에 중요한 원인이 된다. 쏘련 역시 스탈린이 집권하면서 스페인의 공화파를 지원하지 않았는데, 독일과의 불가침조약 등 전쟁에 휘말리지 않으려는 스탈린의 의도는 자신의 집권 초기 쏘련 내부에서 정적들을 굴복시키고 숙청을 감행해 자신의 권력 기초를 다지기 위한 계산이 내포되어 있었다.
스페인 내전에서 인민전선은 이런 세계적 정세를 모르지 않았지만 그들은 쿠데타를 일으킨 수구집단과 싸우지 않을 수 없었고, 결국 패한다. 이 과정에서 미국에서 자원한 국제여단 참전군인은 약 7천 명 정도이고 그 가운데 전쟁에서 사망한 사람은 약 2천5백 명 정도에 이른다.
내전에서 패배한 인민전선은 내부에서도 문제가 있었는데, 공산당과 무정부주의자 그룹, 마르크스통일노동자당(POUM) 등 주요 세력들이 각 정파의 이해관계에 따라 전략을 다르게 구사하고, 일사분란한 연대를 이루지 못한 것이 원인이었다. 여기에 각 정파들이 이념에 따라 다른 전략을 세우고, 갈등을 일으킨 것이 결정적이었다. 스페인 공산당은 쏘련의 지원을 받기 위해 스탈린의 요구를 들어야 했는데, 그것이 무정부주의 집단에게는 심각한 폭력이었다. 스페인 정부의 공식 권력은 인민전선, 무정부주의 집단에서 가지고 있었지만 스페인 공산당은 조직되어 있고, 쏘련과의 연계로 내전에서 주도권을 잡기 시작한다.
쏘련의 스탈린이 스페인 내전을 지원하지 않으면서 스페인 공화파 내부에서는 공산당에 대한 불신이 커지고, 결국 세계 정세도 파시즘이 확산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런 점에서 스탈린은 심각한 잘못을 저질렀으며 공산주의의 국제화 전략에도 커다란 오점을 남기고 말았다. 스페인 내전은 공화파가 패배한 역사적 사건이었고 세계 모든 나라가 기억하고 싶지 않은 역사지만, 내전에 참가한 인민전선과 국제여단의 공산주의자, 사회주의자, 노동자들의 투쟁은 빛바래지 않는 기록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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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내전, 우리가 그곳에 있었다
애덤 호크실드 지음, 이순호 옮김 / 갈라파고스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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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파와 파시스트의 역사적 전쟁이었고, 세계 곳곳에서 몰려 든 공화파의 진보적 지식인들 사이에서 발생한 갈등은 눈 앞에 존재하는 명백한 적(프랑코, 파시스트) 앞에서 적전 분열을 일으키면서 분열을 일으키고, 세계 역사를 바꾸는 결정적 장면이 됩니다.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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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대장정 1
웨이웨이 지음, 송춘남 옮김, 선야오이 그림 / 보리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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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설 대장정

오랫만에 재미있는 소설을 읽었다. 이 책(다섯권짜리다)을 헌책방에서 발견했을 때, 망설임없이 구입한 것은 출판사 이름 때문이었다. 중국공산당 홍군의 대장정에 대해서는 기본적인 지식이 있었으므로 내심 대단할 것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며칠 전 이 책을 처음 읽기 시작하면서 내가 가졌던 선입견이 잘못이었음을 깨달았다.
이 소설은 읽기 시작하면 중간에 책을 덮기 어려울 정도로 재미있다. 중국 현대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라고 할 수 있는 홍군의 대장정이고, 그 결과가 이미 알려져 있어 흥미가 반감될 것으로 예상할 수 있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물론 이 소설을 쓴 작가 웨이웨이는 중국 인민을 대상으로 창작을 했으므로 인민들이 '대장정'에 대한 기본 상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즉, '대장정'에 아무런 지식이 없는 사람은 이 소설이 그다지 감동으로 다가오지 않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따라서 이 소설을 읽기 전에 '대장정'에 관한 약간의 상식을 알아두면 좋겠다. ('대장정'에 관한 지식이 전혀 없는 사람도 소설 자체를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이 소설은 역사적 사실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등장인물들은 거의 모두 실존 인물들이다. 작가는 이 소설을 쓰기 위해 '대장정'의 실제 코스를 세 번이나 답사를 했다고 한다. 거리만으로도 무려 1만2천km나 되는 엄청난 거리이며, 그 길이 하나같이 험난하고 척박한 땅을 지나가고 있어서 그냥 지나가는 길이라고 해도 힘든 길이었는데, 당시 홍군은 최악의 상황에서 목숨을 내놓고 그 길을 지나갔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결코 평온하지 않을 것이다.
중국 공산당은 중국 남부에 자치정부인 소비에트를 구축할 정도로 세력을 키웠지만 반공을 기치로 내세운 최대 군벌 장제스(장개석)에 의해 공격을 받아 쫓기게 된다. 당 지도부는 궤멸 직전의 당을 이끌고 남부 내륙에서 북쪽 연안까지 탈출을 하는데, 이 과정이 바로 '중국공산당 노농홍군 대장정'이다. 장제스는 중국공산당과의 내전에서 초기 공산당원의 약 80%를 학살했다. 장제스를 비롯한 중국 군벌들은 돈과 권력을 가진 자들의 군사조직이었으며, 중국공산당은 중국 전체 인민의 약 90%를 차지하는 농민과 노동자를 위한 정치조직이었다.

이 소설은 '대장정'의 과정인 약 1년(368일)간의 시간을 압축했으며 거리는 약 1만km에 이르는 공간을 그렸다. 중국공산당의 상징 인물들인 마오쩌둥(모택동)은 물론이고 저우언라이(주은래), 주더(주덕), 펑더화이(팽덕회), 덩샤오핑(등소평), 린뱌오(임표) 등 공산당 지도자들이 등장하고, 홍군의 중간 간부들은 물론 일반 병사까지 고르게 등장한다.
중국공산당은 혁명집단으로, 노동자와 농민, 소수민족의 정치적 해방을 위한 투쟁을 하고 있으므로 이들이 보여주는 태도는 모든 인민의 모범이 된다. 공산당 최고 지도자인 마오쩌둥이 나이 어린 병사를 대하는 태도는 극진하다. 홍군에서 일방적 명령은 있을 수 없다. 모두가 동등한 동지로서 단지 직위에 따라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는데, 기본은 인간에 대한 존중과 존경이다. 이것은 우리나라의 역사에서도 '동학'이 보여준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인내천' 사상과 매우 비슷하다. '동학'도 서양의 침략에 맞서 힘없는 백성들이 뭉쳐 새로운 세상(개벽)을 만드는 것이 목적이었지만 현실에서는 실패했다. 하지만 중국공산당은 대장정을 통해 약 8만 명의 홍군이 목적지인 연안에 도착했을 때는 90%의 병력을 잃고 불과 7천명만이 남게 되었지만 이 병력으로 마침내 10년의 투쟁 끝에 중국 전체를 해방하는 혁명을 성공하게 된다.

작가는 '성공한 역사'인 '대장정'을 그리면서 크나큰 자부심과 자긍심을 보여주고 있다. 조금 삐딱하게 본다면 중국공산당을 미화한다고 하겠지만, 나는 이 소설이 '대장정'을 미화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적어도 이 당시의 중국공산당 지도부는 혁명에 관한 열정에 불타고 있었고, 인민의 해방을 위한 모범을 보이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마오쩌둥을 비롯한 지도자들이 보여주는 고결한 품성은 마르크스-레닌의 사상을 바탕으로 하는 인간해방의 이론이 혁명의 과정에서 실천적으로 드러날 때 어떤 모습을 보여주는지를 상징하고 있다.
알려진 것처럼 '대장정' 과정에서 홍군은 90%의 병사들이 낙오하거나 국민당군에 포로로 잡히거나 길 위에서 죽어갔다. 전투로 죽은 병사들이 가장 많지만 포로로 잡혀서 죽은 병사들도 몇 만 명에 이른다. 이들은 중국의 혁명 과정에서 이름 없이 스러져간 진정한 영웅들이다. 마오쩌둥도 대장정을 마치고 대장정 과정에서 죽은 모든 홍군 병사들이야말로 진정한 영웅이라고 말했다.

이 소설이 대단한 것은, 소설만큼이나 훌륭한 그림이 거의 매 페이지마다 있다는 것이다. 그림은 션야오이가 그렸는데, 한컷 한컷에 온 정성을 들여 그 자체로 작품이다. 그림은 아름답고 선명하게 당시의 상황을 보여주고 있어서, 소설만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등장하는 인물들은 실제 인물과 똑같이 닮은 얼굴이어서 마치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다.

홍군의 '대장정'은 중국의 최고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삼국지'에 견줄 수 있다. 실제 소설에서도 등장인물들은 자신들의 대장정을 삼국지와 비교하기도 한다. 중국의 역사에서 '삼국지'는 단지 소설이 아니라, 살아 있는 교훈이기도 하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중국인의 저력을 느낄 수 있다. 우리는 중국을 낮춰보고 때로 비하하기도 하지만, 중국공산당은 소수의 인원이 결집해 농민과 노동자 속으로 들어가 결국 혁명에 성공한 뛰어난 힘을 가진 나라이고, 저력이 있는 나라다. 이제는 정치체제는 공산주의, 경제체제는 자본주의라는 조금은 이상한 형태의 나라로 변했지만, 그들이 현대사에서 보여 준 혁명의 과정은 여전히 빛바래지 않고 있다.



출처: http://marupress.tistory.com/2331 [知天命에 살림을 배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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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포물선이 다른 포물선에게
박정애 지음 / 사계절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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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한 포물선이 다른 포물선에게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마지막 페이지를 넘길 때까지 쉬지 않고 한 번에 다 읽었다. 많은 부분에서 공감하는 내용이었고, 내가 느끼고, 생각하던 감정들이 글로 표현되어 있었다.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부모로서, 작가로서 박정애 작가의 이 소설은 ‘가족’의 의미, 가족이라는 하나의 작은 집단 속에서 개별 존재로 살아가는 부모와 자식의 처지를 지극히 현실적인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점에서 사실적이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가족 소설이나 청소년 소설들이 많이 나오고 있지만, 중년의 부모와 청소년의 자녀들이 가지고 있는 삶의 고민을 진지하게 묻고 있는 작품은 그리 많지 않다. 아니, 그런 시도를 하는 소설들은 많지만, 대개 교훈적이거나 낭만적으로 끝을 맺는 경우가 많다. 현실이 힘들고 고달프기 때문에 상상의 세계에서라도 위안을 받고 싶은 마음은 이해하지만, 현실을 비껴가는 결말은 당장의 슬픔과 아픔을 외면하는 당의정에 불과하다.

이 작품은 평범한 가족의 이야기다. 중년의 부부와 청소년의 아들과 딸이 가지고 있는 세계는 아마도 비슷한 세대에서 공감할 내용이 많을 것이다. 나는 아들 민수의 이야기에 크게 공감하고 있다. 또한 민수의 아버지 용규의 깊은 마음도 이해하고 공감한다. 결국 정란과 용규는 아들 민수의 꿈을 이해하고 공감하게 되는데, 나 역시 이 소설의 내용을 깊이 공감하게 되는 부분이 바로 민수가 자신의 삶을 이미 일찍부터 결정하고, 스스로 노력하는 것과, 그것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부모의 모습이었다.
나도 이 소설에서 묘사하는 삶의 일부분과 비슷하게 살았거나 살고 있다. 나는 그것을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주변에서 드문 경우인 것은 분명하다. 나는 이제 미래의 우리 아이들이 살아가는 사회가 학력, 혈연, 지연과 같은 비정상적이고 폭력적인 방식의 삶이 아니기를 바라고, 그렇게 될 것으로 믿는다.
따라서, 민수가 학교를 그만두고 일찌감치 시골에서 자신의 삶을 개척하겠다는 생각은 매우 바람직하다고 본다. 또한 민수의 아버지 용규 역시 대기업에 다니는 직장인이지만, 퇴직을 하고 치매가 시작되는 아버지를 모시며 농사를 짓고, 농촌에 적응하겠다는 태도도 옳은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우리 세대의 부모들이 가지고 있는 불안은 과거의 경험에서 비롯한 것이다. 또한 자식들을 그렇게 불안한 눈으로 바라보고, 다그치는 것도 과거의 경험을 기준으로 자식을 재단하는 것이다. 
부모의 불안과 자식에 대한 불신은 부모 세대 스스로가 만든 공포에서 기인하는 것이며, 그들 스스로가 마땅한 대안이나 해결책을 발견하지 못했거나 모르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아이들을 공부기계로 만들어야 안심하는 부모는, 세상을 경쟁과 투쟁의 전쟁터로 만들어 그 속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인간병기를 길러내는 폭력적인 부모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아이들은 아무리 어려도 자기 생각이 있고, 청소년이 되면 부모보다 더 자신의 삶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한다. 그러니 아이들을 믿고, 오로지 격려하고, 응원을 보내는 것만으로 부모의 역할을 다하는 것이다. 따뜻한 밥 먹여주고, 때 맞춰 옷 사주고, 아이들이 원할 때 함께 시간을 보내고, 좋은 음악이나 책을 권하고(강요하지는 말고), 그저 느긋하게 바라만 봐주면 아이들은 잘 자란다.

이 소설은 아이들을 불안한 마음으로 바라보는 모든 엄마, 아빠들에게 보내는 편지이자, 학교에서 고통받는 청소년들에게 보내는 희망의 메세지다. 2016년 객주문학과 창작관에서 박정애 선생님과 보낸 짧지만 따뜻한 기억들이 떠오른다. 이렇게 애틋한 작품이 그곳에서 탄생했다는 것이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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