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북이가 된 고슴도치
문성훈 지음 / 밀알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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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이가 된 고슴도치

이 책의 저자는 나와 페이스북 '친구'지만 이름만 알뿐, 얼굴 한 번 본 적 없고, 목소리도 들은 적이 없으며, 메신저로 대화도 나눈 적이 없는, 오로지 온라인의 많은 '친구들' 가운데 한 명일 뿐이다. 어느 날 그와 '친구'가 맺어졌고, 살가운 인사도 없이 나날이 지나며 가끔 댓글에서나 서로의 이름을 볼 뿐이었다. 그런 그가 어느 날 책을 낸다고 했고, 책 표지 디자인을 올려 사람들에게 쑥쓰러운듯 물었다.
나는 그가 건축가인줄 알고 있었는데, 그가 올리는 글이 작가인 나보다 더 매끄럽고 부드러우며 알맹이가 있다는 걸 알고는 건축가가 작가(나는 명색이 작가다)의 뺨을 후려치는 느낌을 받으며 부끄러움과 함께 열등감을 갖게 되었다.
솔직히 고백하건대, 나는 나이 들어 돌아본 내 삶에서 가장 후회했던 것이, 건축가가 되지 못한 것이었다. 나는 소설을 쓰고 있지만, 알고 보면 소설도 이야기를 '축조'한다는 점에서 건축가와 비슷한 점이 있다. 하지만 내가 젊어서 다시 공부를 한다면, 단연코 '건축가'의 길을 선택할 것이다.
현대사회는 더 이상 레오나르도 다 빈치 같은 '르네상스형 인물'을 원하지 않지만, 건축가는 고대부터 지금까지 가장 많은 직업의 복합체였으며, 르네상스형 인간이고, 다재다능한 사람이다. 건축을 하려면 공학, 인문학, 예술을 두루 공부하고 이해하며 그 지식과 배움을 건축현장에 적용해야 한다. 집을 짓는 것은 건설노동자들이지만, 집을 세울 수 있도록 창조하는 것은 건축가가 하는 일이다. 내가 건축가의 꿈을 아쉬워 하는 이유는, 15년 전에 양평에 내 집을 짓고 살면서부터다. 작은 집을 짓고 살면서 집에 관한 생각을 하게 되었고, 집(단독주택)을 관리해야 하는 과정을 통해 건축, 공간, 물성, 환경, 보수, 수리 등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다. 
건축은 한마디로 '종합예술'이다. 나는 안도 다다오를 비롯해 루이스 칸, 르 코르뷔지에, 가우디, 미스 반 데어 로에,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렌초 피아노, 리차드 노이트라...등등 무수히 많은 건축가들이 지은 건축물을 보면서, 그들의 작품은 인류의 주거물을 예술품으로 창조하는 예술가라고 생각했다.
그런 '종합예술'을 하는 건축가도 분명 '작가'다. 그러니 그가 글을 써서 작가인 내 뺨을 후려친 것도 알고보면, 내가 열등감을 가질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도 작가이기 때문이다. (이런 아Q식 자기합리화를 하는 내가 좀 한심해 보이긴 하다.)

그의 글이 미문인 것은 분명하지만, 단지 그의 글만으로 그에게 '동지적 친근함'을 갖는 것은 아니다. 이 책에서도 나오고, 페이스북에서도 우연히 알게 된 내용이지만, 그와 나는 공통점이 좀 있다. 저자는 '앙꼬빵'을 좋아한다. 그 앙꼬는 '단팥'이다. 단팥이 든 빵을 나도 퍽 좋아한다. 팥이 든 음식이라면 다 좋다. 팥죽, 팥칼국수, 팥빙수, 팥빵, 제주도 오메기떡, 시루팥떡, 팥이 든 호두과자, 팥소가 든 전병, 수수팥떡... 그런데 이 책의 저자도 팥이 든 음식을 좋아한다니, 뭔가 나와 공통점이 있어서 반가웠다. 게다가 그의 아내는 페스츄리를 좋아한다는데, 내 아내도 팥보다는 페스츄리를 좋아한다.
그런데, 팥을 좋아한다는 것과 함께 그가 군대 생활을 27사단에서 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나도 27사단에서 복무했다. '이기자 부대'인 27사단은 화천 사방거리와 사창리 주변에 흩어져 있는데, 우연히 만난 사람이 같은 사단에서 복무했다는 건 신기하고 반가운 일이다.
그러니까, 그와 나는 '전우'였던 것이다.
여기에, 저자는 유럽여행을 자동차를 빌려 가족이 자유롭게 다녔다고 했다. 신기하게도, 우리 가족도 유럽여행을 자동차를 빌려 자유롭게 다녔다. 비록 다닌 곳은 다르지만,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방식으로 유럽을 다녔다는 것도 신기하지 않은가 말이다.
마지막으로, 저자의 아내는 아이들을 대학에 보내면서 자신도 대학원에 진학했다. 내 아내도 직장에 다니며 대학원에 다닌다. 대학원 다니는 아내를 둔 '모지리' 남편(물론 저자는 동의하지 않겠지만)이라는 공통점도 있다. 

이런 비슷한 것들을 나열하는 이유는, 저자의 멋진 모습에 슬쩍 기대보려는 나의 알량한 비굴함이라는 걸 읽는 분들은 다 알 것이다. 비슷한 점들 보다는, 저자의 글솜씨가 일품이다. 생활에서 겪으며, 느낀 감상을 쉽고 깔끔하게 써내려간 그의 글솜씨는 어지간한 작가 뺨을 후려치고도 남는다. 나도 글을 쓰고 있어서 여느 사람보다는 글쓰기에 고민을 두는 편인데, 부드럽게 읽히는 글을 쓰기가 결코 쉽지 않다는 걸 잘 안다. 문장도 좋지만, 그의 상념과 생활의 천착, 사물을 바라보는 시선, 사람의 마음을 대하는 따뜻한 감정이 더 좋다. 
나는 앞으로도 저자를 계속 질투하면서 열등감을 느끼겠지만, 그의 글이 더 널리 알려지고, 사람들이 읽으면서 고개를 끄덕이면 좋겠다. 그가 젊어서 고슴도치였으나 이제는 거북이로 살고 있다는 카프카적 '변신'의 고백을 했지만, 나 역시 그렇다. 나이 들면서 남성호르몬이 줄어들어서인지, 자식의 뒷모습만 봐도 눈시울이 뜨거워질 때가 있다. 저자인 문선생과 함께 해바라기를 하면서 동병상련의 일상을 나누는 꿈을 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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