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잊은 그대에게 - 공대생의 가슴을 울린 시 강의
정재찬 지음 / 휴머니스트 / 2015년 6월
평점 :
품절


다시금 감성에 젖게 됐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성석제 지음 / 창비 / 2002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이 되어버린 당숙

 

성석제의 단편집에 수록된 []은 기묘한 이야기다. 당숙이 기묘한 사람이니 기묘한 사람의 일상을 쓴 내용이 독특한 건 어쩌면 당연할 수 있겠다. 성석제는 삶의 근본과 존재에 대해 늘 관찰하고 탐구하는 글을 쓴다. 그 재주가 뛰어나서 별 생각 없던 독자마저도 평범하기 이를데없는 주인공에게 관심을 쏟는다. []에 소개된 당숙만도 그렇다. 얼핏 봐도 이 이야기는 시덥잖은 내용에 그친다. 얼이 빠져 있는 서음書淫의 이삿날에 대한 화자의 기억이니까.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볼수록 책이 되어버린 당숙에 푹 빠지게 되고 책의 의미까지 생각해보게 되니 이야기의 깊이가 매우 깊다.

당숙은 항렬이 높아 에게 반말을 하지만 실상 동갑내기다. 손이 귀한 집에 자란 당숙은 곧잘 아팠는데 누이가 넷이라 양기를 뺏긴 탓이라며 조카인 의 집에서 길러졌다. 부모의 손에서 자라야 마땅한 나이에 빼곡히 꽂힌 책에 둘러싸인 방에서 혼자 자랐으니 실상 당숙은 사람의 손에서 길러졌다기보다 책의 손에 길러졌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인지 당숙은 일찍부터 월급을 받는 족족 생활에 쓸 수 있는 적은 돈의 일부를 제외하고서는 모두 책을 구매하는데 사용했다. 습관이라면 습관인 이 괴벽은 평범한 직장에 눌러 붙을 수 있게 하지는 못해 결국엔 마지못해 사서가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다가도 모를 당숙을 사람들은 늘 생각했다. 그의 어떤 매력이 그를 생각하게 하는지는 모르지만 그가 항상 책과 함께였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그가 책인지 책이 그인지 모를 만큼 헷갈렸다고 는 고백한다.

 

결혼하기 전 어느 날 당숙이 고백한 바에 의하면 어린 시절부터 이십대까지 당숙의 가장 친한 친구는 나였다. 그러나 나 역시 당숙을 잘 안다고 할 수는 없었다. 내게 당숙은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해서 총 아홉해 동안이나 같은 학교에 다닌 동기동창이지만 쉽게 정체를 알 수 없는 이상한 친구였다. 당숙은 남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고 어떤 자리에서나 뒷전과 그늘을 택했다. 그래도 조금 알 만해지는가 싶은 어느 순간 당숙은 책을 가지고 간단하고 손쉽게 자신의 정체를 감추었다. 수업시간에 보는 교과서를 제외하고 어떤 책이든 당숙과 함께 있으면 당숙은 알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나중에 생각해보면 당숙이 책을 들고 있었는지, 읽고 있었는지, 걸어갔는지, 소리를 냈는지, 책을 베고 잠을 잤는지, 책으로 파리를 잡았는지 도무지 기억할 수 없었다. 책은 당숙을 희미하게 만들고 당숙은 책과 사물의 경계선을 흐렸다. 그러면서도 둘은 섞여서 존재했다고 말할 수 있겠다

 

[]이라는 단편을 다 읽고 나면 한바탕 마당놀이를 본 것 같은 기분은 드는데, 어째 어안이 벙벙하다. ‘내가 당숙을 잘 알고 있는 걸까?’라는 의문이 떠오른다. 이야기가 한결같이 당숙을 이야기하는데도 알고 있다고 할 만한 근거를 정확하게 찾아낼 수가 없어 끝 맛이 개운하지 않기 때문이다. 당숙이 늘 손에 책을 쥐고 있다는 것만 명확할 뿐 좀체 당숙의 성격을 이해할 수가 없다. 책을 쉼 없이 읽는 당숙을 들여다보고 []의 마지막 페이지를 읽어 내려갈 때, 곧 책이 되어버린 당숙을 이야기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책을 좋아한다고 말하지만 명확하게 책의 성질이 이런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누군가가 내게 왜 책을 읽으세요?’, ‘왜 책을 좋아하세요?’라고 묻는다면 그냥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듯이 책과 당숙은 그런 존재다. 당숙은 이미 책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내가 보기에 당숙은 어떤 책을 읽어서 내용을 안다기보다는 디자인, 촉감, 냄새, 분량과 무게, 책장을 넘길 때 나는 소리, 거기에 더하여 책에 관한 독특한 육감을 가지고 총체적으로 파악하는 것 같다. (중략) 책을 읽기보다는 느끼려고 한다. 글자 하나하나의 생김과 책에 있는 낙서며 흠, 색깔을 기억한다. 마치 야생의 동물 수컷이 암켯에게 다가가 냄새맡고 살펴보고 노려보고 톡톡 건드리며 시험을 하는 것 같다. 그러고는 서로가 맞는다고 생각하면 존재의 일부를 섞고, 때로는 과감하게 올라타고 할퀴어 피투성이가 된다. 책과 당숙, 두 존재의 혼재를 1+1이라고 하면 그 결과는 2가 아니고 0이거나 2가 되기 십상이다.”

 

이미 그는 책이 되었기에 당숙을 는 끝까지 이해할 수 없다. 눈에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분명한 것은 책과 당숙은 혼재되어 있는 것이다. 이 책을 내려놓고 나는 0이 되었는지 2가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일단 내 주위의 상황이 아무것도 변한 건 없으니 0 이하의 것이 된 것은 확실하다. 우리의 삶 곁을 지키고 있는 책에 오늘도 빠져있는 사람들에게 책의 의미를 묻게 한 아주 기묘한 이야기 성석제의 []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가면 산장 살인 사건 히가시노 게이고 산장 3부작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4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추리물을 딱히 좋아하지도 않고, 살인사건이라고 하면 왠지 찝찝한 느낌을 떨칠 수가 없을 것 같아 즐겨보지 않았지만 우연히 보게 된 이 소설의 뒷맛은 왠지 개운했다. `추리소설임에도 개운한 느낌을 주는구나-.` 라는 의외의 생각을 갖게 돼 가끔은 추리소설을 읽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어려운 수수께끼였다면 이 책을 당장 내려놓았을지도 모르겠다. 독자도 함께 이 살인사건의 전말을 파헤쳐 범인을 찾아가게끔 하는 단순성의 원리가 이 책을 끝까지 읽게 했던 묘한 매력이 아니었을까 싶다. 왠지 이 사람이 범인이 아닐까?, 하는 짐작을 하면서 내 추리가 맞지 안맞을지 궁금해하며 한 페이지 한 페이지 넘기는 재미가 있었다. 뭔가 극적인 반전을 기대하진 마시라.(뭐지, 추리탐정같은 말투는?) 근사한 메인요리를 기대하기보다 디저트와 같은 느낌이 드는 책이라고 보면 무방하겠다. 이 책의 소재는 추리소설 입문자에게 꽤 흥미로웠던 것 같다.
 
 일단, 이 책의 결말은 사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설국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61
가와바타 야스나리 지음, 유숙자 옮김 / 민음사 / 2002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그 시대에 살지 않았음에도 희뿌연 연기를 뿜고 레일 위를 미끄러지듯 달리는 구식 열차가 떠올랐다. 어두운 터널을 막 통과했을 때 온통 눈으로 뒤덮인 마을이 한꺼번에 눈 속에 담겨져 시릴 것 같은 상상을 하게 됐다. 이 문장을 읽은 것만으로도 코 끝이 시렸다. 상상력이란 묘했다. 직접 경험해보지도 않았고 영상에서 본 그 때의 그 열차를 상상하며 내가 느꼈던 감각을 총동원해 읽을 수 있었던 작가의 세밀한 묘사는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그 이상을 상상하게 했다. 
 
 시마무라는 고마코와 요코를 보기 위해 일년에 한 번 이 고장을 찾아온다. 자신이 생활해 온 곳에서 탈피해 열차를 타고 온 이 곳에서 그는 기대감도 뜨거운 열정도 없다. 시마무라의 무심함이 고마코를 반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억지스러운 행동을 더 이끌어내고는 하는데 한 몫을 한다. 고마코의 귀여운 모습이 우습기도 하고 가련하기도 하다. 자고 일어나면 눈보라에 게다의 자국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듯 모든 생각들이 지워지고 그 청명함과 순수함만이 남는 고장 설국이다. 자연이 선물한 풍경에 압도되어 색채의 이미지만 남아 더 매력적인 소설이었던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른이 된다는 건 - 요시모토 바나나의 즐거운 어른 탐구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15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른이 된다는 것은 무거운 책임감과 거추장스러운 허례허식이 덧입혀지는, 칙칙하고 기분 나쁜 것이라고 생각했다. 난 어른이 되는 것이 싫었다. 그러나 세월은 무심하게도 나의 의지를 꺾어버리기나 하겠다는듯이 나이를 선물했다. 어째서인지 '어른답지 못하다.'는 이야기를 점점 더 듣게 되니 이미 난 어른일 수 있다는 자각도 들고 말이다. 무뚝뚝하고 보수적인 엄마에게서 난 더더욱 어른이었다. 내게 조금이라도 철들지 못한 부분이 있으면 '어른스럽지 못하다'는 말을 남용하시고는 하니까.

 춤을 추고 싶을 때 춤을 출 수 없고,  ~씨, ~님으로 불리는 박제된 인간을 어른이라고 한다면 정중히 사양하겠다는 것이 내 입장이었다. 그러다가 문득 나는 그렇지 않다고는 하지만 남들이 보기엔 어른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렇게 직장인들은 출근을 하고 학생들은 학교에 있는 오후 시간에, 도서관에서 서가 정리를 하다가 말이다. 지금 내 나이쯤이면 보통 결혼을 하거나 정장을 입고 사무실 안에 있을 법한데... 이렇게나 다른 나의 삶이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날 사람들은 어떻게 볼까.. 라는 생각이 들고 말이다.

 

 '뭔가 모자른 어른인가....' 라는 생각에까지 미치니 실소가 터졌다.

 

 원하든 원치않든 난 어른이었던 것이다.

 

 어른은 이렇게 해야만 한다는 개개인의 기준이 있겠지만 정확히 어른이 되는 법을 그 누구도 일러주지 않았다. 제멋대로 어른이 됐을텐데 어른이라면 해야할 일을 진지하게 생각 해보지 않았을테니까.. 무턱대고 이건 어른답지 못한 행동이라고 훈수를 두는 몇몇의 사람들이 있겠지만 그 말 속에는 교훈성보다는 볼멘소리가 가득가득 들어있음을 느낀다. 늘상 고민하지만 속시원하게 털어낼 수 없는, 어른이 될 수 밖에 없는 숙명을 갖고 태어난 인간일 뿐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 바나나도 그런 생각을 해왔던 걸까. 이번에 나온 에세이집 느낌의 '어른이 된다는 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어른이 된다는 의미와 삶의 의미를 나름의 시선으로 이해하고 위로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사춘기 시절부터 시작된 이야기를 읽어가면서, 어렸을 적 내가 그렇게나 어쩔줄 몰라 눈시울이 붉어졌던 건 어른이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어른이 아니니까 서툴고 능숙하지 못했네. 라는 생각을 시작으로 마지막페이지까지 읽다보니 어른은 꽤 멋진 타이틀이었다.

 어른은 무조건 목에 힘을 주어 누군가를 가르칠 필요도 없었다. 그저 삶에 모든 면에서 능숙해져가는 것이었고 또 닥치는대로 새로운 모든 것을 주워담기 바빴던 시절에 이별을 고하는 시간임을 느끼게 했다. 어른이 된다는 건 멋진 일이다. 나중이라는 말 대신에 지금을 힘껏 살자는 바나나 말에 동감하면서, 나도 꽤 멋진 어른인 것 같다는 마음이 들었고 어른의 삶을 뜨겁게 맞이할 준비가 됐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