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그 시대에 살지 않았음에도 희뿌연 연기를 뿜고 레일 위를 미끄러지듯 달리는 구식 열차가 떠올랐다. 어두운 터널을 막 통과했을 때 온통 눈으로 뒤덮인 마을이 한꺼번에 눈 속에 담겨져 시릴 것 같은 상상을 하게 됐다. 이 문장을 읽은 것만으로도 코 끝이 시렸다. 상상력이란 묘했다. 직접 경험해보지도 않았고 영상에서 본 그 때의 그 열차를 상상하며 내가 느꼈던 감각을 총동원해 읽을 수 있었던 작가의 세밀한 묘사는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그 이상을 상상하게 했다. 시마무라는 고마코와 요코를 보기 위해 일년에 한 번 이 고장을 찾아온다. 자신이 생활해 온 곳에서 탈피해 열차를 타고 온 이 곳에서 그는 기대감도 뜨거운 열정도 없다. 시마무라의 무심함이 고마코를 반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억지스러운 행동을 더 이끌어내고는 하는데 한 몫을 한다. 고마코의 귀여운 모습이 우습기도 하고 가련하기도 하다. 자고 일어나면 눈보라에 게다의 자국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듯 모든 생각들이 지워지고 그 청명함과 순수함만이 남는 고장 설국이다. 자연이 선물한 풍경에 압도되어 색채의 이미지만 남아 더 매력적인 소설이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