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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 - 김영하의 인사이트 아웃사이트 ㅣ 김영하 산문 삼부작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9월
평점 :
절판
김영하의 에세이집 제목, '보다'이다.
'보다'라는 책이 난해한 예술작품을 작가만의 독자적인 시각으로 바라본 총평집인 줄 알았다.
아, 물론 이 책을 빌리게 된 이유는 실수에서 비롯됐다.
한겨레문화센터에서 서평읽기라는 수업을 들었는데, 많이 읽어야 글쓰기가 쉬워진다면서 김영하 작가의 '읽다'를 추천받은 것이 '보다'를 빌려버리게 된 거다. 이미 빌린 것이고, 또 시리즈로 '보다, 읽다, 말하다'가 3개월마다 발간됐다고 하니, 다시 돌려주기도 뭐해서 끝까지 읽게 됐다.(또 개인적으로 부담없이 읽을 수 있는 시리즈물을 좋아한다)
내가 5포세대여서 그런건지, 아니면 빈한한 사람으로 분류돼서인지,
빈자와 부자의 이원론적인 계층구조에 대한 이야기를 참 좋아한다.
'보다'라는 책의 첫 시작은 미국식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80년대 후반에 소일거리로 영어회화 카세트 테이프를 판매한 추억을 시작으로 헝거게임이라는 영화에 대한 단상부터 써있길래 매우 흥미롭게 읽어내려갈 수 있던 걸지도 모르겠다.
뭐 이런 주제의 내용뿐만 아니라, 부다페스트에서 만난 인연이라든지, 페이퍼를 쓰기 이전에 대충 끄적여놓았을 법한 영화비평문 같은 느낌의 글도 몇 개 있었다.
소설작가여서 그런가.... 어쩐지 무력하고 약해보이는 듯한 필체가 답답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난 오히려 편했다. 책 제목이 '생각하다'는 것이 아니라, '보다'로 명명될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언제부터인가 편향된 시각으로 삶을 살아가는 것을 격하게 혐오했다. 태어날 때부터 올바른 시대정신을 가지고 태어나는 것도 아닌데, 그게 마치 골빈 사람이라고 떠들어대는 현학적인 선배와의 잘못된 만남에서 비롯된 걸지도 모르겠다. 내가 학교를 다닐 때는 광우병으로 온 나라가 들썩였고, (정확히 말하자면 한미 FTA의 전면적 반대의지라고 볼 수 있겠다.) 또 자유주의 경제체제의 대한 선택으로 오히려 다양성이 상실되어가는 시대에 살고 있어서 뜻밖에도 시대정신을 갖지 않으면 눈 뜨고 코 베일 수밖에 없어서인지 끊임없이 생각하지 않으면 안됐다. 하여튼간 이념으로 설명하기에 이 세상의 얼굴은 옳고 그름의 경계가 불분명하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지 말이다, 내 가치의 근간이 민족주의, 혹은 자본주의 아니면 장황하게 사회주의의 정신에 매몰돼서 사는 멍청이가 되고 싶지 않은 건 분명하다. 누구나 인간답게 살아갈 권리를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세상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 날 움직이게 할 뿐이다. (내 세계관을 말하자면 그렇다.) 취업을 할 무렵이었다. 자기소개서에 나의 신념을 적는 란이 있는데, 이런 식으로 내 세계관에 대해 글을 써서 첨삭을 받았더니, 첨삭하는 분이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애매한 글이라고 이야기했다. 이 피드백을 받고 나의 신념은 '하쿠나 마타타'로 적었다가 '카르페디엠'으로 진화했다. 세계관을 논할 때 구체적인 것은 무엇이고 애매한 것은 무엇인지 여전히 모르겠다. 유물론적인 사고방식이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사회는 우리 안에 떠오르는 피안의 무언가를 구체화하는 시간이 어쩌면 헛되게 느껴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나 스스로가 깨달음이 느려서 그런걸지도.
나는 누군가가 보기에 여전히 관망하며 기회주의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으로 비춰질지도 모르겠지만 선택이 제한된 이 곳에서의 자유는 썩은 자유임을 느끼고 있는 바다. 마치 김영하의 '설국열차 번외편'처럼 말이다. 관망보다는 다른 생각을 하고 싶은 것이 나의 바람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볼 만하다. 생각을 고집하지 않는 바라봄의 미학을 느끼게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