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아이처럼 - 아이, 엄마, 가족이 모두 행복한 프랑스식 육아
파멜라 드러커맨 지음, 이주혜 옮김 / 북하이브(타임북스)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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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에 가서 가만히 앉아서 식사를 하는 아이를 원한다면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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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개츠비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김석희 옮김 / 열림원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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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땜에 다시 읽게 된 책. 번역도 매끄럽고, 학창시절때보다 읽히기도 술술 잘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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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아이처럼 - 아이, 엄마, 가족이 모두 행복한 프랑스식 육아
파멜라 드러커맨 지음, 이주혜 옮김 / 북하이브(타임북스)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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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육아서가 범람하여 포화되더니 북큐레이터들이 이젠 미국교육에서 프랑스교육으로 눈을 돌리는 모양이다.

<프랑스 아이들은 왜 말대꾸를 하지 않을까>와 거의 동시에 출간된 <프랑스 아이처럼>!

 

둘다 미국 동부 출신의 거의 중상류층에 속하다고 할 수 있는 열혈뉴욕엄마

들이 프랑스에 가서 혹은 프랑스 친구들의 육아방식을 보고 놀란 자신들의 체험을 적고 있다.

개인적으론 프랑스아이처럼이 보다 프랑스 육아이론을 잘 접목하여 정리한 듯하여 좋다.

 

프랑스에는 '육아'라는 단어가 거의 쓰이지 않는다고 한다.

대신 '교육'이라는 단어가 있을 뿐.

 

육아서도 우리처럼 각양각색의 신간들이 넘치는 것이 아니라 돌토여사의 책 정도가 고전처럼 있다고.

 

프랑스교육의 핵심은 '아이를 존중하되, 건강한 좌절감을 통해 건전한 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부모와 사회가 함께 키우는 것'이다.

물론 잘 알지만, 어디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인가?

 

하지만, 읽다보면 프랑스 역사와 문화전반에 걸친 사회시스템을 이해하게 되면 아,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여성 노동의 필수화, 국가에서 대대적으로 밀고있는 보육시스템, 요리와 식사를 가장 중요시하는 풍토, 다른 사람에게 방해되는 행동을 극도로 저지하는 생활태도 등.

 

역시 아이는 부모만 키우는 것이 아니라 사회와 문화가 함께 키워야 함을 다시 느낀다.

 

프랑스 아니 아동교육에서 빼놓을 수 없는 《에밀》을 다시 읽는다.

정작 자신의 아이들은 고아원에서 보내버린 주제!에 에밀이라는 가상의 아이에 대한 교육관은 무릎을 치지 않을 수 없다.

이걸 고등학교 때 읽었으니 
범상한 나로선 그냥 루소의 《에밀》이었을 뿐이지.

미국 아이비리그식 보스턴 교육방식인 조기교육과는 다소 거리가 멀지만,
자연, 인간, 사물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교육의 실체는 크게 다르지 않다.

《에밀》에서 루소가 그런다.
플라톤의 《국가론》이 정치얘기가 아니라 교육에 관한 글이라고.

에이, 뭔소리 하며 책장에서 꺼내 넘겨보다
다시 《국가론》에 훌떡 빠진다.

어,어..진짜 그렇네 하며...

내가 아이를 기르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이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 교육이 가장 기본임은 기원전에도 마찬가지였음이다.

국가론을 읽으니 소크라테스, 역시 멋지다!
《대화론》까지 가게 생겼다.

 

"이미 생계가 확보가 된 사람은 덕을 수련해야 한다"

부지런히 읽고 행해야 할터인데.

 

반딧불 같은 얕은 조명 아래 읽는
이 책맛이 요즘 좋다.

이리 주절주절 여기에 읊어대고 싶을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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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가 들려주는 아기돼지 삼형제 이야기 - 3~8세 세계의 걸작 그림책 지크 29
존 셰스카 글, 레인 스미스 그림, 황의방 옮김 / 보림 / 199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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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단 아동문학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문학이 약자의 시선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현실에선 강자가 세상을 좌지우지하지만, 문학이라도 약자의 입장을 대변해주어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늑대와 돼지 이야기를 놓고 볼 때도 먹이사슬에서 불리한 돼지가 상대적으로 약자가 되며, 그 중에서 아기 돼지라는 연약한 존재를 잡아먹는 늑대는 그냥 무서운 강자일 뿐이었다.

 

당연히 여겨오던 시선의 위치를 작가 존 세스카는 유쾌하게 뒤집었다. 세상의 이야기란 것이 시점만 달리 해도 전혀 다른 사건이 되는 것이지 않은가. 고정화된 관점이 의외의 불평등에 근거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늑대는 무자비하고 사나운 동물로, 돼지는 순진무구한 낙천적 동물로 어릴 때부터 교육받는다. 그림책의 동물묘사에서부터 그러하다. 이 책은 이 고정과념을 가볍게 뒤집어 보고 있다. 그렇다고 늑대의 입장을 미화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나름의 이유가 있었지 않나에서 출발하는 공정한 양쪽 이야기 듣기정도이다. 물론 허구의 이야기이긴 하지만, 읽는 독자로 하여금 듣고 보니 늑대를 우리가 덮어놓고 오해 했구나라는 정도의 공감을 이끌어 낼 수 있을 수준의 뒷이야기라고 하겠다.

 

늑대의 나름의 이유를 설탕과 재채기로 엮어낸 작가의 위트가 돋보인다. 늑대에게도 할머니라는 가족이 있고, 가족을 위해 요리를 하고, 감기에도 걸리는 동물 중의 하나라는 시선을 부여한다. 반면 돼지는 기존 아기 돼지 삼형제에서 보던 귀여운 돼지가 아닌 다소 표독스러운 돼지로 그려지고 있다.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관념을 깨버리는 순간이다.

 

 

유사하게 <거북이는 왜 달리기 경주를 했을까>라는 책에서 저자 김경집은 우리가 흔히 익숙하게 알고 있는 동화나 우화의 관점이 실제로 상당한 불공평한 시각을 초래할 수도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뭍의 동물 토끼와 바다의 동물 거북이의 경주 자체가 공정한 출발인가에서부터 토끼가 자신의 빠른 발만 믿고 중간에 쉰 것만이 잘못인가, 거북이 자고 있는 토끼를 보고도 깨우지 않고 못본 척 지나친 거북은 잘한 것인가 등에 대해서 인문학적인 관점에서 질문을 제시하고 있다. 누구나 알고 있는 이야기라 하더라도 만약?’이라는 질문을 스스로 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두 책 모두 큰 점수를 주고 싶다.

 

다른 익숙한 동화를 읽을 때도 이야기를 틀어보는 습관이 생길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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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수는 철수다 청소년오딧세이
노경실 지음, 김영곤 그림 / 크레용하우스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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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내내 작가가 사실은 중학생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 정도로 중학생의 내면 심리묘사를 기가 막히게 풀어나간 노경실 작가의 철수는 철수다를 다 읽고 뒷장을 덮는 순간, 초등 1학년 아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부모라면 누구나 피해가기 어려운 함정, ‘남의 집 아이와 자신의 아이 비교하기’! 우리 집에서 엄마인 내가 어떻게 하느냐는 생각지 못하고, 우선 눈에 띄는 아이의 장단점만 보게 되는 어쩔 수 없는 치명적 과오. 매일 매일 입 밖으로 꺼내지는 못하지만, 머릿속으론 소리친다. ‘누구는 점잖게 잘도 앉아있던데’, ‘누구는 인사도 잘하던데’, ‘누구는 밥도 혼자 잘 먹던데’... 속이 타고 애가 닳기 일쑤다.

그걸 아이 입장에서, 아니 당하는 입장에서 풀어놓으니 짐작은 했지만 너무 리얼하게 아이의 마음을 읽게 되는 것 같아 불편하면서도 반성이 된다.

 

병국이와 준태.

철수와 엄마에게 서로 상반되는 위치의 친구들이다. 철수에겐 더할 나위 없이 편하고 친하지만, 엄마 눈엔 그저 그런 아이로 탐탁치가 않은 병국이와 엄마의 동창의 아들로 뭐 하나 빠지는 데가 없는 말 그대로의 엄친아이지만 철수에겐 경쟁불가 눈에 가시 같은 준태.

10, 20년의 세월이 흐른 뒤 철수의 인생에 더 선한 영향을 끼칠 친구가 누구일까를 생각하면 병국이의 손을 들겠지만, 당장에 학교생활에서 본받아줬음 하는 아이는 준태임에는 틀림없다.

 

평소에 내 아이에게도 이 정도 얘기하면 알아듣고 행동이 달라지겠지?’싶게 말했다고 생각했지만 정작 아이의 태도는 하나도 달라지는 게 없는 것을 보면서 울화가 치민 적이 한 두번이 아니다. 정말 그 머릿속을 한번 들어가 봤으면 싶을 때가 많은데 철수의 머릿속을 보면서 , 아이들은 들리지 않는구나.’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아이의 눈높이, 귀높이에서 보고 얘기하지 않으면 안 보이고 안 들린다는 것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순히 좋은 부모로 보이기 위해 아이를 닦달하고 있지는 않는지 돌아보게 되었다. 아이 스스로가 비교를 받고 싶을 정도로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지 살펴보고, 진지하게 물어봐 주어야겠다라는 다짐이 좀더 오래 오래 갔으면 좋겠다.

본인이 원하든 아니든 세상엔 다양한 형태의 비교와 경쟁이 존재한다. 비교나 경쟁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자신과 다른 존재를 파악하는 방법으로서 비교는 필요한 과정이다. 다만, 비교 기준은 공정해야 하고, 그 비교를 통해 다른 존재를 인정하는 결론에 이르러야 한다. 경쟁도 마찬가지다. 경쟁이 정당하게 요구되었는지, 그 경쟁이 공정하게 겨뤄지는지, 그 결과에 깨끗하게 승복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아이에게 공정한 정의를 가르치기 전에 우선 부모인 내가 불공정하게 아이에게 요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고민해 본다.

황금이 있어 행복한 부자보다는 지금이 있어 행복하다는 아빠의 말을 되새기는 철수를 보면서, 아이에게 지금의 행복에 흠뻑 빠진 자신만큼 좋은 건 없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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