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알려지지 않은 것에 대한 모든 확실하고 굳건한 인식은 이미 확실하게 알려진 것으로부터만 끌어내고 도출될 수 있기 때문에, 후자의 것[이미 확실하게 알려진 것]은 처음부터 견고한 토대로 놓여야 하며, 이 위에 그 이후 인간 지식의 건물 전체를 구성해야 한다.”
로더베익 메이으르가 쓴 <데카르트 철학원리>의 서문의 첫 구절. 어찌보면 굉장히 학문을 다루는 사람으로서 당연한 이야기인데도 지금 이 시점에서 들으니 어쩐지 약간 감동을 받았다. 어딘가에 써놓고 제1의 원칙으로 삼고 싶다. 물론 막막함이 약간 섞인, 하지만 그 막막한 길을 헤쳐나갈 설렘도 섞인 한숨이 나왔다. “이미 확실하게 알려진 것”을 견고한 토대로 놓는 것도 어려운 일인데, 그 토대가 서야 알려지지 않은 것에 대해 굳건하고 확실하게 인식할 수 있다. 인간 지식의 건물의 첫 삽을 뜰 수 있기까지 얼마나 긴 시간이 걸릴 것인가. 지금 내가 가려고 하는 길이 “알려지지 않은 것에 대한 모든 확실하고 굳건한 인식을 얻기 위하여, 이미 확실하게 알려진 것의 견고한 토대를 쌓는”, 기초공사의 길을 닦는 일일 것이다. 기대가 된다.
2.
-> 올덴부르크의 답장(3/86) : 신에 대한 개념을 만들어낼 수는 있지만 그것만으로 신의 실존을 도출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 스피노자 선생께서는 신에 대한 정의에서 실존을 바로 도출해냈다. 하지만 그 정의에서 신이 실존된다는 것이 어떻게 바로 도출될 수 있는가. 정의는 정의고 실존의 증명은 따로 해야하는 것 아닌가. 정의는, 정의되는 대상의 실제 본성이나 본질을 참되게 하는 것과는 별로 상관이 없고, 우리 정신들의 개념들만 포함하는 것 아닌가(=우리의 마음속의 자의적인 것 아닌가). 우리 정신은 실존하지 않은 많은 것을 인식하고(봐라, 우리 정신 속에서 내린 정의에는 실존하지 않는 것들도 많지 않은가. 이를테면 귀신?), 이렇게 인식된 것을 증가시키고 확대할 때 가장 왕성하게 활동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로부터 이러한 존재의 실존을 우리는 추론할 수 없다. 이 점을 성찰하게 되면 저는 어떻게 제가 신에 대해 갖고 있는 개념으로부터 신의 실존을 추론할 수 있는지 알지 못합니다.
=> 올덴부르크는 정의를 “어떤 명칭의 뜻을 설명하는 것”이라고 이해하고 있다.
-> 스피노자의 답(4/86) :
우리가 실존을 도출해 낼 수 있는 것은 “특.별.한.” 정의뿐이다. 아무 정의나 그게 가능하다고 한 말이 아니다. 어떤 정의, 대상에 대해 정의를 제시한다고 해서 실존이 반드시 따라 나오는 것은 아니다(올덴부르크도 이 말을 한 것이고). 실존은 오직 어떤 속성, 자신을 통해 인식되고 자기 안에 있는 것에 대한 정의 또는 관념으로부터만 따라 나온다. / 방금 언급된 주석에서 저는 또한, 제가 잘못을 범하지 않았다면, 이러한 차이에 대한 근거를 명료하게 말씀드렸습니다. 특히 허구와 명석판명한 개념의 차이를 알고 모든 정의 또는 명석판명한 관념은 참이라는 공리의 진리성에 대해 안다고 가정되어 있는 철학자에게는 그럴 것입니다. 이러한 점을 주목한다면, 저는 첫 번째 문제의 해답에 대해 무엇이 더 결여된 것인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 저는 실체를 자신을 통해 인식되고 자신 안에 존재하는 것, 곧 그 개념이 다른 것의 개념을 함축하지 않는 것으로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변양 또는 우연속성은 다른 것(실체) 안에 있고, 그것이 들어있는 바로 그것(실체)을 통해 인식되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실체가 자기 안에 들어있고 자신 안에 존재하는 것과 달리, 변양이나 우연속성은 자기 안이 아닌 다른 것의 안에 들어가 있고, 그 다른 것을 통해 인식된다)
*** 실체= 자신을 통해 인식되고 자신 안에 있는 것= 실체에 대한 정의 또는 관념으로부터“만” 그 실존이 따라 나온다(오직 자신을 통해서“만”. 다른 것의 개념을 함축하지 않는).
*** 우연속성은 실체를 통해서만 이해가 가능하다.
이렇게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개념을 정돈하는 과정. 사실 나는 스피노자가 올덴부르크에게 보낸 두 번째 편지를 읽으면서 “정의는 정의고 실존은 실존이지, 실존의 증명은 따로 해야만 하는 것 아닌가? 정의에서 신의 실존이 어떻게 바로 나오지?”라는 의문을 가득 품고 있었기 때문에 바로 이어서 올덴부르크의 세 번째 편지를 읽을 때 우와! 그러니까 내 말이! 하면서 반가웠다. 그리고 스피노자의 답장 보면서 뜨끔했다ㅋㅋ 특히 스피노자가 막, “방금 언급된 주석에서 저는 또한, 제가 잘못을 범하지 않았다면, 이러한 차이에 대한 근거를 명료하게 말씀드렸습니다. 특히 허구와 명석판명한 개념의 차이를 알고 모든 정의 또는 명석판명한 관념은 참이라는 공리의 진리성에 대해 안다고 가정되어 있는 철학자에게는 그럴 것입니다. 이러한 점을 주목한다면, 저는 첫 번째 문제의 해답에 대해 무엇이 더 결여된 것인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이렇게, 요약하면 “네가 내 말을 제대로 알아듣는다면 알 것이다”라고 마치 트위터에서 점잖게 상대방 맥이는 논조로 키배 뜨 듯이 말했을 때ㅋㅋ
3. 지난 수업시간에 이미 흥미롭게 들었던 정의의 개념에 대해 좀 더 깊이 파고들었던 시간. 그리고 이 과정에서 약간 압도당하기 시작했다. 내 인생에 있어서는 두 번째 철학수업인 것인데, 이렇게 ‘정의’를 정의내리는 데에만 편지가 몇 차례씩 오가고, 수업에서 이것을 논증하는 데에 한 시간 반 가량을 들이고,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하게 머리를 굴리며 ‘정의’를 정의내리는 여정에 동참하고. 그리고 마침내 ‘정의’에 대해 더 깊게 알았을 때, 더 나아가서 혼돈에 빠져있었던 정의와 공리/공준의 차이를 알았을 때, 내가 지금까지 알아오던 ‘정의’가 정의의 진짜 의미가 아니라는 것(상이한 종류의 정의를 구분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짜릿했다(그래, 정의는 개별적이고 공리는 보편적이구나! 나의 혼란은 정의가 보편적이라고 생각하는 데에서 생겼다는 것을, 그러니까 실재적 정의만을 두고 생각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 정의는 개별적이고 자의적일 수 있어!) 이렇게 개념 하나를 정확하게 나누고 다듬고 파고드는 과정이 매우 재미있다는 것 또한 알았다. ‘사원’ 이야기까지 나왔을 때는 와, 진짜 철학 공부라는 거 장난 아니구나..라는 생각도.
시몬 드 프리스의 편지(8/86) : 동시대 수학자(유클리드 기하학 원론)의 예를 통해서 질문.
1) 보렐리(<유클리드 기하학 이론> 편찬자) : 직선이 두 공간을 에워쌀 수 없다. 곡선이면 가능하지만. 보렐리가 이 예를 든 것은 누군가 도형에 대해 (허구적으로) ‘직선- 두 공간을 에워싼다’는 정의를 내린다면 이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다. 즉, 이건 참된 정의가 아니라는 것. 메이으르가 쓴 <데카르트 철학원리> 서문에 나온 말과 비슷하다
2) 클라비우스(<유클리드 기하학 이론> 편찬자/ 마테우리치의 스승/ 제2의 유클리드라고 불리울 정도) : 자의적인 용어다. 어떤 목적을 위해 임의로 설정한 용어가 정의다. 그러므로 이게 자연 안에 제대로 존재하는 것을 잘 표현하는지 따질 필요가 없다.
<<*** 이 두 사람의 ‘정의’를 요약해서 정리해보면
- 보렐리: 증명의 전제이기 때문에 정의는 명징해야 한다! (증명의 전제= 명징한 지식= 그러면 이건 ‘공리’. 보렐리의 설명으로는 정의와 공리 사이에 차이가 없다)
- 클라비우스: 정의는 전문용어기 때문이 실재와 합치 안해도 된다! 물론 합치할 수도 있지! 단! ‘증명’을 통해서. >>
- 스피노자 선생님의 ‘정의’는 보렐리랑도 다르고 클라비우스하고도 다른데 당신의 생각이 궁금하다.
-> 스피노자의 답(9/86) :
1) 선생이 어려움에 빠진 이유는 상이한 종류의 정의를 구분하지 못하는 데에 있는 것 같다= 정의에는 한 가지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가 있다.
- 실재적 정의: “본질만이 문제가 되고 있고 유일한 의문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을 설명하는 데에 사용되는 정의”
명목적 정의: “단지 검토를 위해 제안되는 정의” (클라비우스의 전문적 용어로서의 정의)
이 두 가지를 구분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전자의 경우는 규정된 대상을 갖고 있기 때문에 참된 것이어야 하는 반면, 후자는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2) 스피노자가 머릿속에서 그리는 사원에 대한 정의”
“가령 어떤 사람이 나에게 솔로몬 사원(규정된 대상)에 대해 참된 묘사를 해줄 것을 요구한다면, 제가 그에게 무의미한 말을 하려고 하지 않는 한, 저는 그에게 그 사원에 대한 참된 묘사를 제시해주어야 합니다. 하지만 만약 제가 제 마음 속에 제가 짓고 싶어하는 어떤 사원(규정되지 않은 대상)을 미리 그려봤고, 이 사원에 대한 묘사를 한다면(중략)”
솔로몬 사원에 대한 정의 – 실재적 정의
머릿속의 사원에 대한 정의- 실재하지 않는다. 존재하지 않는다. 명목적 정의
- 만약 누군가 정의를 “실재로 존재하는 정의만을 정의라고 한다!”라고 생각한다면 나의 머릿속 정의를 그르다고 말하겠지. 이 두 가지를 혼동하면 사람들은 후자는 정의가 아니라고 주장할 텐데 이 두 가지를 혼동하지 않는다면 후자도 정의다!
(그러니까 실재적 정의는 실재하는 것의 본질에 대해, 명목적 정의는 실재하지 않는 것에 이름을 붙이는 것에 대해)
*** 정의 VS 공리
- 정의: 어떤 사물의 본질을 제시해주는 것. 그렇다면 정의는 보편적인 것일까요? No! 특정한 사물의 본질에 대한 것이기 때문에 Singular. 개별적
- 공리: 보편적. (ex 무로부터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다. 모든 것에는 원인이 있다. 1+1=2. A는 A다. A=A) 이런 관점에서 공리. 어떤 특정한 사물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보편적인 것. “영원진리”까지 확장될 수 있는 참된 지식.
4. 에티카에 나오는 주요 용어들의 개념 정리를 끝내고 드디어 <에티카> 내용으로 들어갔는데 그 첫 시작에서부터 생경했다. 일단 ‘자기원인’이라는 개념이 생경했고, 이 ‘자기원인’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 데카르트의 정의, 스피노자의 정의들이 부딪히는 것을 따라가면서도 이 ‘차이’가 무엇을 의미하길래 이렇게 공들여서 논증해야하는 것인지도 생경했다(역시 철학은 작은 거 하나를 자세히 붙들고 늘어지는 학문이구나...라고 막연히 생각).
스피노자의 ‘자기원인’만 따로 떼어놓고 보더라도, 저 한 줄짜리 정의를 샅샅이 따져보는 것이 철학에서 중요하다는 건 알겠고 이게 철학이겠거니 했지만 왜 중요한지에 대해서는 잘 몰랐다. 잘 모른 채로 그냥 ‘자기원인’단어 자체가 변주되는 과정이 재미있었다. 이를테면 저 한줄짜리 정의가 “실존 없이는 본질을 인식할 수 없다/ 실존 없이는 본질이 성립할 수 없다/ 실존하지 않으면 본질도 없다”를 의미하고 있고 그래서 ->
그리고 스피노자의 정의에 따르면 저 ‘자기원인’에는 이미 “실존한다”는 것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속성상 실존해야만 본질이 성립하니까)도 흥미로웠고, 그 반대편에서 아리스토텔레스/데카르트 식의 자기원인은 용어모순이라는 것(그들이 쓰는 통상적 의미의 자기원인은 “자기가 자기 자신에 선행된다”는 것인데, 이것이 모순인 이유가 물리적인 시간이라는 점도 재미있었다. 시간상 말이 안 된다는 것인데, 자기가 자기 자신에게 선행하려면, “자기 자신에 대한 자기 자신의 시간적인 앞섬”이 있어야 하는데 이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는 것. 재밌어재밌어!(게다가 니체가 이걸 밀고 나가서 “신은 죽었다!”라는 그 유명한 말까지 하게 된 것도 재미있었다. 니체는 항상 좀 오버하는 경향이 있다고ㅋㅋ)
게다가 아리스토텔레스나 데카르트 식의 자기원인은 무한소급, 확실한 개념과 기원을 따지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들어서 철학을 무력하게 만드는 무한소급을 ‘신’이라는 개념으로 ‘소급’하고 그래서 답을 내리는 것과 철학이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라는 걸 아는 것도 흥미로웠다. 그러니까 여기에 대한 답을 하려고 “신”을 뚝 떨어뜨리는 것 자체가 이미 우리가 흔히 말하는 데우스엑스마키나잖아? 서사가 풀리지 않을 때도 신을 뚝 떨어뜨려 해결하려드는데, 철학도 그랬다니 어쩐지 재밌다. 철학의 기반 자체가 이미 데우스엑스마키나! “신”이라는 컨셉을, 절대자를 아무도 생각해내지 못했다면 철학은 과연 어떤 식으로 흘러갔을까?
이들의 정의가 언어모순이고, 무한소급에 대한 변명이라는 것까지 알고나니 스피노자의 ‘자기원인’의 정의가 더 포괄적이고 훌륭하다는 것을 느꼈는데, 그냥 그 정도였는데, 그 ‘차이’가 결국에는 창조론을 반박하고 자연을 해방시키는 데까지 이어지는 것을 보면서는 소름이 돋았다. 그러니까, 이 ‘차이’하나가 세상을 바꾸어놓을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부터 나는 완전히 압도당했다. 스피노자의 선언이 자연을 해방시켰다. 자유와 능동성을 돌려줬다. 저 선언을 듣고 나무 해 달 별들이 마구 와! 해방이다!라고 소리치며 춤을 추는 일러스트를 잠시 상상해봤다. 어쩐지 귀여워ㅋㅋ 그리고 이렇게 자유원인을 첫 번째로 때려버리며 창조론을 반박하고 시작하는 <에티카>, 사이다같은 오프닝이었다.
자기원인: “나는 그 본질이 실존을 함축하는 것, 곧 그 본성이 실존하는 것으로 인식될 수밖에 없는 것을 자기원인으로 이해한다.
*** 함축 involvere involve: ”A과 B의 개념을 함축한다“고 말하는 것 = A는, B없이는 인식될 수 없다. (2부 정리 49. 80P) 즉, 실존 없이는 본질을 인식할 수 없다/ 실존 없이는 본질이 성립될 수 없다./ 실존하지 않는다 -> 그러면 본질이 성립되지 않는다.
*** 어떤 것이 “자기 원인”이다라고 하면, 그 속성상 그 어떤 것은 실존할 수밖에 없다!
*** 어떤 사람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시초라고 말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스피노자적 자기원인 개념으로는 데카르트가 시초라고 한다. 저 위의 이야기도 데카르트에 나오는 이야기다.
*** 하지만 스피노자의 ‘자기 원인’의 독창성: 다른 중세철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의 책을 살펴보면 항상 자기원인의 개념은 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데에 쓰인다. 예를 들면, 누군가 이게 왜 존재하냐? A 때문에. 그럼 A는 왜 존재하냐? B 때문에. 그럼 B는? C 때문에. C는? 이런 식으로 무한히 나갈 수 있다 <- 무한소급. 이것의 문제점은 철학적으로 볼 때 우리가 확실히 얘기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스콜라 철학자들은 “신이야말로 이 모든 무한소급을 막아주고 답이 되는”. 그럼 왜 신이냐? 하면 답이 “신은 그 자체로 자기원인적이기 때문이다”라는, 신이 없이는 이 세상의 근거를 설명할 수 없다는 식으로 쓰여왔다. 하지만 스피노자는 ‘자기 원인’ 개념을 신과 분리시킴! (<- 이때까지만해도 스피노자가 굳이 ‘자기 원인’의 개념을 신과 분리키시키는 것에 집착하고-첫번째로 정의로 썼을 정도로- 논증하려고 하는지 잘 몰랐다. 그런데 자기원인 개념을 신과 분리시킨다는 것이 창조론에 정면으로 맞서는, 자연을 신이 만든 산물로만 만들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자연 그자체로 능동적이라는, 자연 해방의 기틀이라는 것까지 이어지는 것을 보고 소름돋았다)
2) 자기원인 개념의 통상적인 의미
“어떤 개체가 자기 자신의 존재 및 활동의 원인이 된다는 것. 그런데 이는 결과로서의 개체가 존재하기 이전에 원인으로서의 개체가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 따라서 자기모순적. - 니체 <선악을 넘어서> 41P
*** 즉, 자기가 자기 자신에 선행된다= 이것이 통상적인 의미의 ‘자기원인’(앞에서 본 ‘신’의 예 같은 것이 통상적인 의미의 자기원인이었다) <- 스피노자는 이것을 말이 안 된다고 부정. 니체도 바로 저 통상적인 의미의 자기원인을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통상적인 의미대로 사용하면, (신처럼) 자기가 자기 자신에게 원인이 되려면, ‘자기’가 선행되어야 하는데(=자기 자신에 대한 자기 자신의 시간적인 앞섬) 이건 말이 안 된다 (둘로 분리되어 있는 것도 아니고...) 니체는 여기서 더 나아가서, 신은 죽었다. 신이 자기 원인이라는 개념을 만들어 우리를 속여 왔다고 주장. (니체는 스피노자에서 약간 늘 오바하는... 크크)
3) 스피노자 철학의 고유한 의미 (= 그렇다면 스피노자는 ‘자기 원인’을 왜 에티카 1부 첫 번째 정의로 썼을까?)
가) 초월성에 대한 비판
자기원인은 일차적으로 자연의 자족성을 가리킴. 곧 자연인 자기 이외의 다른 원인에 의거하지 않는다는 것. 자연은 실존하기 위해서나 작용하기 위해서 신이라는 초월적인 원인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것. 신 자신이 자연의 일부. 신즉자연. “자기원인”이 윤리학 1부 첫 번째 정의로 제시된 것은 초월성에 대한 근원적 비판과 배제를 뜻함. 즉, 자연을 넘어서는 초월적 존재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 창조론 비판. 신 비판.
- “무로부터의 창조” 유대교에서는 신이 전지전능하며 초월적이고 자연을 주관한다고 하는데 스피노자는 ‘자기원인’을 들어 그런 건 존재하지 않는다고 반박(시간적으로 신이 결과이면서 동시에 원인일 수 있는가)
나) 역동적인 장으로서의 자연
자기원인은 자연이 원인라는 것, 곧 실재들을 생산하는 무한한 역량이라는 것을 함축하고 있음. 또는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자연은 실재들의 생산과 소멸, 성장과 쇠락, 변화가 끊임없이 이루어지는 인과연관들의 체계라고 할 수 있음 자연은 정태적이거나 활동하지 않는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끊임없이 생성, 소멸, 운동으로 가득한 곳이다.
5. 그리고 오늘의 두 번째 하이라이트. 라이프니츠와 스피노자의 “무”에 대한 탐색. 이 부분에서 나는 살짝 눈물이 나올 만큼 감동했다. “무”에 대한 그들의 논의는 우아하고 낭만적이었고 나를 철학과 사랑에 빠지게 만들 정도로 달콤했다.
처음에 라이프니츠의 “왜 무가 아니라 어떤 것이 존재하는가?” 라는 질문을 들었을 때 너무 아름다운 질문이라고 생각했다. 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주는 것. 지식에서 그 전까지는 없었던 무, 무였던 무에 밝은 빛, 관심의 빛을 비춰주는 것. 그리고 이건 ‘소외된 자들, 기입되지 않는 자들’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비추어주고 싶어하는 나의 평소 고민에 직격탄이기도 했다. 그러니까. <왜 ‘유’만이 질문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가. ‘무’도 질문이 되어야 한다. ‘무는 단지 아무 것도 없는 부정적인 것이 아니라 존재와 대등한 것이니까.>라는 라이프니츠의 주장이 너무나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이 아름다운 질문의 끝이 결국에는 <(그 말은 반대로 말해서) 이 세상이 존재하는 것은 당연한 것/필연적인 것이 아니라,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를 거쳐, “왜 존재하는가. 이 우연은 누가 가능하게 했나”로 이어지는 것을 보고 짜식었다ㅋㅋ 결국 이 질문은 “신”에 대한 깔대기적 질문이었던 것.
여기서부터 스피노자가 라이프니츠를 우아하게 발라버린다. 나는 첫 번째 감동의 순간이었던 ’자기 원인‘에서 철학과 사랑에 빠졌다면, 여기서는 스피노자와 사랑에 빠져버린다(저 아름다운 질문에 반함-> 그 질문이 의도한 것을 알고 짜식음ㅋㅋ -> 반했던 만큼 배신감 느껴서 더 크게 짜식음ㅋㅋ 야이씨, 오늘 수업에서 가장 눈물나게 감동받은 질문이었는데 결국 그런 말을 하려고 깔아둔 거였어? -> 근데 이걸 스피노자가 너무나 우아하게, 라이프니츠보다 몇 단계 위에서 발라버림 -> 스피노자 짱 멋있음!!! 이런 과정ㅋㅋ)
스피노자는 이미 라이프니츠 너를 뛰어넘어서 나의 ’실존‘의 정의에는 이미 그 ’무‘가 포괄되어 있거든? 네가 따로 떼어놓고서 나중에야 그 ’무‘에 대해 질문할 생각을 한 그 시간에 나는 이미 그 ’무‘에 대한 포괄과 결론을 다 끝냈단 말이지. 훗. 넌 이제야 인식하고 배려 좀 해주려는 거야? 하는 스피노자의 단호함!
스피노자에게 있어서 ’무‘는 “무언가가 이미 있다가 없어진 것”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라이프니츠처럼 뒤늦게 “왜 무가 아니라 실존하는가?”가 아니라 “왜 무언가가 (이미) 있었다가 없어진 것인가?= 왜 무언가가 실존하지 않는가?”에 질문의 포커스를 맞춘다. 라이프니츠는 ’무‘를 우연적으로/당연히 애초부터 없는 것으로 봤지만 스피노자는 그런 나태한 ’우연‘이라는 개념 집어치우고, 당연히/ 우연적으로 없는 게 아니라 -> 어떤 이유로 없다 -> 그 존재하지 않는 “어떤 이유”를 밝히자!고 말하는 것. 라이프니츠는 무와 실존을 동등한 두 개의 항으로 놨지만, 스피노자는 무=비실존으로서, ’무‘를 이미 실존의 한 양태로 포섭하고 있다!! 그러니까 실존의 양태들 중 “없음 상태”로 실존하는 것이다!(헐!)
재미있는 것은 스피노자에게 “시간”은 그리 중요하지 않은 개념이고 <에티카> 뒷부분을 공부할 때도 시간에 대한 것이 크게 작용하지 않는데(“영원”을 말할 때만 빼고) 여기서는 시간의 개념이 살짝 들어간다는 것이다(앞서 “통상적 자기원인”의 모순을 지적할 때도 그렇긴 했지만). 시간순으로 따졌을 때 무는 1) 이미 있었다가 2) 나중에 없어진 것. 즉, “이미 일어난 존재함”이 없어진, 그 “이후”의 상태인 것. = 이미 일어난 존재함이라는 상태 그 이후.
다시 말해 라이프니츠가 가능태의 본질-> 현실태의 실존으로의 이행, 그리고 이 “이행”에는 시간차가 필연적으로 발생하는데, 스피노자에게는 이 “시간”이 존재하지조차 않고 필요도 없다(그런 점에서 보면 스피노자에게 “시간”이 중요하지 않은 개념인 것을 넘어서서 아예 필요치 않은 개념인 것 같다. 자기원인에도 “이행의 순간”이 들어갈 필요없이 그 자체로 이미 하나로 되어있으니까) 이미 본질 안에 실존이 들어가 있는데, A에 B가 들어가 있는데 어떻게 A에서 B로 움직일 수가 있나!). 그러니까 스피노자에게 본질은 항상 이미! 영원하게! 실존을 함축하고 있으며 실존은 항상 “현행적” 본질이다. 존재(실존)한다는 것은 이미 그 자체로 필연적인 것이므로 왜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은 아예 성립도 안 하고!
이렇게 스피노자에게는 ’시간‘의 개념도 필요 없고, 형이상학적 무는 존재하지도 않는 허구인 것이다.
*** 1부 정리11 신 존재증명 과정 “모든 사물에 대해, 그것이 실존한다는 점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그것이 실존하지 않는다는 점에 대해서도 원인 또는 이유가 존재해야 한다.” (반대로 왜 실체가 실존하는가에 대한 이유는 실체의 본성“만”으로부터 따라나오는데, 이는 곧 그것이 실존을 함축하고 있기 때문이다(정리7 실체의 본성에는 실존함이 속한다)) = 존재하지 않는
*** 라이프니츠 <자연과 은총의 원리 Principle de la Nature et de la Grace> 7절.
“왜 무가 아니라 어떤 것이 존재하는가?”
-> 이 라이프니츠의 말이 유명해진 것은 하이데거 <형이상학 입문(1935)>. 그의 책 <형이상학 입문>은 나치스를 철학적으로 정당화시키며 쓴 책이다. 그 책에서 첫 번째 화두로 삼고 있는 문장이 바로 저것이다.
-> 라이프니츠의 저 문장은 철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질문이다.
- 자연(넓은 의미의 자연/ 존재하는 것 모두, 실재하는 것 모두)
- 은총(즉 실재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이걸 넘어선!)
형이상학이라면 ‘실재’를 초월하는 것에 대한 질문을 해야 한다. 그러니까 실재를 창조한 것에 대한 질문. 신학적 질문. 라이프니츠 입장에서 존재만이 질문의 대상이 되는 건 너무 납작했다. “무”도 질문이 돼야한다. 형이상학적인 “무”. 아무것도 없는 것은 부정적인 것이 아니라 ‘존재’와 대등한 것. (그 말은 반대로 말해서) 이 세상이 존재하는 것은 당연한 것/필연적인 것이 아니라,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러니 질문이 뜻하는 바는 “왜 존재하는가. 이 우연은 누가 가능하게 했냐” (그리고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바로 신... 그분....) 저 질문 자체만 듣고 너무 멋있었는데 추론해나가며 답까지 이르는 과정에서 깼다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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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피노자의 말과는 매우 대조적 개념.
* 스피노자: 무는 이미 있다가 없어진 것(“시간의 개념으로 놓았다?) 그러니 왜 실존하지 않는지 밝혀야 한다(왜 실존하지 않는가? VS 왜 실존하는가). 실존하지 않는 것에는 원인 또는 이유가 존재할 테니까. 당연히 없는 게 아니라-> 우연적으로 없는 게 아니라-> 어떤 이유로 없는 것이다. 그 존재하지 않는 ”어떤 이유“를 밝히자!
* 스피노자는 무와 실존을 동등한 두 개의 항으로 정립하지 않고, 비실존/”무”를 이미 실존의 한 양태로 포섭하고 있는 것이다(실존의 양태 중에 ‘없음’상태로 실존). 이는 첫째, 스피노자에게 ‘무’는 실재성을 지닌 사태가 아니라는 것을 의미(‘실존’이나 마찬가지니까). 둘째 이것은 논리적 근거나 인과성 원리는 항상 “이미 일어난 존재함”이라는 사태 이후에 적용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 ( 1) “무”는 이미 존재로 포괄되니까 2) “무”는 이미 일어난 존재함이 없어진, 그러니까 그 이후의 상태인 것. 즉, “이미 일어난 존재함”이라는 사태 이후!)
* 스피노자에게 자기원인은 이러저러한 존재자 또는 “실재”의 필연적 실존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며, 이미 필연적 실존 그 자체를 의미하고 있다. 곧 이는 누구에게 귀속되기 이전의, 누구의 실존으로 존재하기 이전의 있음이라는 사태 자체를 의미. 자기원인에 대한 정의에서 “그 본성이 실존하는 것으로밖.에.는. 인식될 수 없는”이라는 규정, “그것말고 달리~ 일 수 없음”라는 규정은 바로 이를 가리킨다. (스피노자에게 존재(실존)한다는 것은 이미 그 자체로 필연적인 것이므로 왜 존재하는가 라는 질문은 아예 성립하지 않는다. 이미 저 스피노자의 문장에 “필연으로써” 그 이유, 왜에 대한 답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아니 “실존할 수 밖에 없다고 필연성을 이미 잔뜩 부과했는데 거기에 뭘 물어!)
* “그 본질이 실존을 함축하는 것”이라는 규정은 라이프니츠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가능태인 본질에서 현실태인 실존으로의 이행이라는 관점이 스피노자에게는 부재함을 가리킨다(왜냐면 이미 본질 안에 실존이 들어가 있는데, A에 B가 들어가 있는데 어떻게 A에서 B로 움직일 수가 있나!). 본질은 항상 이미, 영원하게 실존을 함축하고 있으며 실존은 항상 이미 본질의 행위, 현행적인 본질이다! 따라서 스피노자의 자기원인 개념은 암묵적으로 자연의 외부나 자연 이전에 성립하는 형이상학적 무를 가정하는 궁극적 근거에 관한 문제설정과 무관하며, 근본적으로는 부정이나 결핍, 무를 포함하지 않는 존재, 있음의 순수한 실정성을 가리킨다!
(형이상학적 “무”를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창조론”을 너무나 뒷받침해주는 것이니까! 스피노자에게 이 세계란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았다가 나타나는 “기원” 따위는 없다)
*** 스피노자 주장: 형이상학적인 무는 존재하지 않는 허구다. 무의미한 말. 라이프니츠는 있지도 않은 것을 만들어서 혹세무민 하고 있다 VS 라이프니츠의 주장: 스피노자는 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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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관점에서 보면 기독교는 철학에 아주 큰 기여를 했다. 그전 철학에는 ‘절대자’ 개념이 없음. 기독교가 들여온 개념. 절대자= 무로부터 창조(를 가능하게 만듦). 기독교적인 게 없었다면 철학에서 ‘절대성’이라는 것은 없었을 것. 철학의 지평을 엄청나게 확장했다.
6. 하이데거 전공자들이 현재 독일에서 취업도 어렵다는 현실/ 칼슈미트와의 의기투합
-> 이 라이프니츠의 말이 유명해진 것은 하이데거 <형이상학 입문(1935)>. 저 1935년이라는 해는 매우 의미심장하다. 하이데거는 1933년에 대학 총장이 됨. 1933년은 나치스가 정권을 잡은 해다. 하이데거가 나치스당에 가입하면서 프라이부르크 대학총장이 된다(이 해에 법학총장으로 임명되는 사람은 칼 슈미트다 크크) 하이데거와 칼 슈미트가 의기투합! 하지만 2년을 버티지 못하고 이 동맹은 깨졌다. 둘 다 권력경쟁에서 밀려난 것이다. 칼 슈미트는 나치의 개완 법학자로 나치를 법적으로 정당화시키기 위해 엄청 글 써댐. 뉘른베르크전범재판에서 유죄. 하이데거/ 칼 슈미트 둘 다 전쟁 후 학계에 복귀하지 못했다. 하이데거 말에 따르면 “나치스에 실망했다. 입당할 때 보니 대단한 줄 알았는데 시시하더라. 아메리카주의, 볼셰비키 혁명에 맞서 제국의 문명을 수호하기 위해 입당했는데 실망해서 탈당했다.”고. 하지만 그는 죽을 때까지 나치당원증을 (고이)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2년 전 나온 책 하이데거의 <검은 노트>. 이 노트를 보면 그는 유대인에 대한 증오심이 대단했다고. 독일에서는 하이데거 전공하면 취직도 안 된다고. 그의 책 <형이상학 입문>은 나치스를 철학적으로 정당화시키며 쓴 책이다. 그 책에서 첫 번째 화두로 삼고 있는 문장이 바로 저것.
7. 속성에 대한 칸트의 정의.
칸트: “속성이란 물자체. 하지만 우리는 물 자체를 알 수 없다. 현상만 알 수 있다”를 참고하면, 우리는 속성을 그 자체로 이해할 수 없다. 다만, 인간 지성이 지각하는대로만 이해할 수 있다. 즉, 속성이란 객관적 실체가 아니라, 인간지성이 주관적으로 투사하는 것 <- 속성에 대한 주관주의적 해석론 (예전에는 많은 사람들이 저렇게 생각했는데 20세기 와서 스피노자 연구자들은 속성을 객관적인 것이라고 주장하기 시작. 근데 최근에는 여기에 대한 반론이 나와서, 주관주의적 해석론을 복원시키자는 움직임이 일어서 다시 논쟁중)
8. 수업 중간에 누가 아베로에스에 대해 질문했고, 아베로에스의 존재에 대해 전혀 몰랐던 나는 이렇게 해서 대단한 사람 한 명을 만나버렸다. 나에게는 문화충격수준! 그래, 중세는 암흑시대. 이런 게 얼마나 서구 중심 사고였는지! 그렇다. 중세의 암흑시대는 이슬람의 황금시대인 것이다!! 이날 수업에서 돌아와서 밤새 아베로에스를 파기 시작했고, 아침이 되자마자 태하에게 “태하야, 아베로에스라는 사람이 있어!”라고 흥분해서 막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내 이야기를 듣던 태하가 “이러다가 아주 서양철학사까지 다 파시겠어요?”라고 놀리며 쓱 책장에서 꺼내 내민 책이 요한네스 힐쉬베르거의 <서양철학사>. 이것도 바로 정군(그렇다, 바로 그 분ㅋㅋ)이 태하에게 옛날에 추천하셨던 책이라고. 그리고 태하가 하나 더 추천해줬는데 <이슬람의 눈으로 본 세계사>라고 이슬람의 관점에서 쓰인 세계사 책, 그리고 <유럽 패권 이전- 13세기 세계 체제>. 세 권 다 우리집 책장에 곱게 꽂혀있다. 언젠가 꼭 공부해야지. 아닌게 아니라 공부를 하면 할수록 궁금해지고 공부하고 싶은 것들이 계속 늘어나서... 아... 내가 처음 세웠던 원칙 잊었어? “수업 시간 외에는 공부하지 않는다”? 그래서 난 지금 저 책들까지 볼 시간은 없다고. 하지만 정신 차리고 보니 나는 어느새 고대-중세-르네상스 연표를 꺼내들어 이슬람의 역사와 대조해보고 있을 뿐이고... 그래 1096십자군 전쟁, 이라고 중얼거리고 있을 뿐이고... 사실 두 번째 수업 끝나고 와서는 하버마스, 푸코, 데리다를 찾아보고 있었지... 아아 이 점점 넓어져가는 세계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위시리스트의 책들 어떡하지. 이제 강의 딱 3번 들었을 뿐인데 정말 아무것도 안 하고 딱 1년만 이렇게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공부만 실컷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진심으로 솟구쳤다. 아베로에스를 한참 보는데 태하가 심각하게 물었다. “이 사람은 침대 축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미치겠다ㅋㅋ)
- 예전에는 중세철학하면 기독교적 의미의 라틴스콜라를 많이 이야기했는데, 그 라틴스콜라를 확립시킨 “존재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낸 Etienne Gilson 에티엔 질송(1884-1978)의 초기업적 중 데카르트와 라틴 스콜라 용어를 비교해서 인덱스로 만든 것이 있었다. 그전에 사람들은 데카르트가 중세철학과 아무런 연관 없이 새로운 철학을 연, 근대철학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질송이 보니까 데카르트의 철학에 중세철학 이론도 나와 있고 중세철학에 굉장히 많은 것을 빚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걸 보여주기 위해 이 작업을 했고, 데카르트-는 중세철학 사이의 연계를 최초로 보여줌. 이 사람은 중세철학의 가장 기본을 세운 것은 토마스 아퀴나스라고 주장. -> 근데 몇 십년 후에 연구방향이 바뀌어서 중세철학은 아랍/유대 스콜라 철학이 영향을 끼친 것이 굉장히 크다는 것이 밝혀짐. 아랍/유대 철학은 유럽라틴 스콜라와는 매우 다른 사상이다. 이 아랍/유대 철학은 근대철학에 매우 큰 영향을 미쳤다. 아베로에스야말로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중세에 전했다. 창조론이라기보다 우주/자연의 영원성을 강조한 철학. 그런면에서 스피노자 철학은 아베로에스 주의에 가깝다.
*** 따로 검색
역사상 가장 추악하고 잔인한 십자군 전쟁 이후 사람들은 지쳐 있었고, 점차 중세를 지배하던 기독교에 염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에 대한 일종의 반동으로 르네상스 운동이 시작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새로운 것을 원했고 과거로 돌아가자는 기운이 태동했다(새로운 것을 원하는 것이 “과거로 돌아가자”로 이어지는 것, 합리적이면서도 흥미로운 지점) 바로 민주주의가 꽃을 피웠고 학문의 자유가 보장됐던 고대 그리스에 대한 추억이 떠오르기 시작한다. 그런데 고대그리스 정신으로 돌아가려면 그리스 문헌들이 있어야 했다. 하지만 무려 2천 년 전의 문헌들을 찾아서 다시 공부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또한 기독교가 지배한 중세시대에 고대 그리스 문헌들은 ‘악마의 서(書)’로 분류돼 온데 간데 없이 사라졌다. 그러나 이슬람 세계에서는 그 문헌들이 잘 보존되어 있었다. 그 문헌들을 유럽 학자들이 라틴어로 번역했고, 그것을 토대로 유럽의 철학과 과학의 기초를 마련했다고 할 수 있다.
성지탈환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이슬람을 침략하기 위해 원정에 나섰던 십자군 전사들은 전리품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그 과정에서 고대의 문헌들을 발견하게 됐고, 그것들을 유럽으로 가져온다. 그 문헌들을 번역하기 위해 유럽학자들은 수도원 근처에 조그마한 연구소를 만들게 되는데 오늘날로 치면 대학의 전신이 되는 것이다.
한마디로 이슬람 학자들은 고대 그리스 문헌들을 내팽개친 것이 아니라 아라비아어로 번역하는 동시에 그 철학을 깊이 있게 연구했다. 그러한 작업에 매진했던 학자가 바로 아베로에스이다. 이런 차원에서 기독교의 유럽은 이슬람에 너무나 많은 빚을 지고 있는 것이다. 흔히들 이야기하는 종이, 나침반, 화약, 인쇄술뿐만이 아니라, 과학을 비롯해 철학과 사상까지도 이슬람에 의해 전파됐다.
아베로에스는 이슬람 전통과 그리스 사상을 통합한 철학자로 유명하며 독특한 학파인 아베로이즘Averroism을 세운다. 아마도 이슬람 세계에서 가장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한 학파로 알려져 있다.
그는 에스파냐 출신의 이슬람 신학자이다. 그런데 에스파냐 사람이 이슬람교도가 됐다는 것이 조금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에스파냐는 기원전 200년경부터 로마가 통치하다가 700년대부터 800여 년 동안 이슬람이 지배했던 대표적인 이슬람 국가였다. 이후 기독교 세력이 이슬람교도들을 몰아내게 된다. 클래식 기타 연주곡인 [알람브라 궁전의 추억]으로도 유명한 알람브라궁전은 이슬람 왕조가 세운 건축물이다. 이슬람 세력이 물러난 이후 에스파냐는 기독교 국가가 되어 ‘마녀사냥’이라는 잔인한 종교재판의 상징이 되기도 한다. 아마 에스파냐에서 ‘마녀’가 많이 나타나 처형됐고, 고문 역시 잔혹하게 이루어진 것을 보면 문화적 전통 때문에 기독교에 반기를 든 사람들이 많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고대 그리스 철학의 쌍두마차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이다. 그 가운데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주의 철학사상과 과학이 유럽문명의 모태가 되는 데 커다란 역할을 했다는 것은 앞에서 설명했다. 이 과정에서 아베로에스가 중요한 역할을 하여 아리스토텔레스의 거의 모든 작품을 아라비아어로 번역했다. 번역만이 아니라 그는 주석(註釋)까지 달았다. 이러한 해설서가 르네상스 시대에 라틴어로 번역됐고, 유럽문명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된 것이다.
아베로에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대다수 작품들, 예를 들면 [논리학] [영혼에 관하여] [자연학] [형이상학] [수사학] [시학] [니코마코스윤리학] [동물의 신체기관에 관하여] [자연에 관한 단편들] [기상학]과 같은 작품들에 대한 번역과 함께 주석서들을 집필했는데, 어떤 것들은 한 작품에 대해 2~3가지를 썼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을 구할 수 없어서 플라톤의 [국가]에 대한 주석서를 저술했다. 이들 주석서들은 아라비아의 원본이나 히브리어 번역본 또는 2가지가 모두 남아있다. 그리고 번역본 중의 일부는 분실된 것으로 보이는 아랍어 원본들, 예를 들면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과 플라톤의 [국가]에 대한 귀중한 주석서 등을 대신할 수 있는 유용한 것이다. 아베로에스의 주석서는 이후 수세기동안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에게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 또한 중세 기독교 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에게도 많은 영향을 끼친다.
그는 명석한 통찰력으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을 정확히 대변해 주었고 그의 사상에 대한 이해력을 높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그의 노력만큼 역사가 그를 기억하는 것은 아니다. 세계의 중심은 기독교의 유럽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의 사상을 번역하고 보존하지 않았다면 르네상스는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오늘날 우리가 그리스 철학을 온전히 접할 수 있는 것은 [아테네 학당]에 마귀 할아범처럼 묘사된 아베로에스의 공적이 크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라파엘로에게는 그러한 사실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역사적 철학적 안목이 있었다. (중략)
우리는 야만의 시대인 중세 암흑기에 포문을 연 르네상스 시대에 인본주의, 다시 말해서 휴머니즘이 시작됐다고 이야기한다. 또한 인본주의 선구자로 단테를 지목하며, 인본주의의 신호탄으로 그가 지은 [신곡]을 꼽는다.
그러나 단테보다 무려 100년이 앞선 시기에 이슬람 세계의 최고 지성인 아베로에스가 이미 종교에 대항해서 인본주의라는 휴머니즘 사상의 틀을 완성했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단테 또한 라틴어로 번역된 아베로에스의 사상을 접하고 크게 감동했다고 하니 그의 영향력이 어느 정도였는지 실감할 수 있다.
[아테네 학당]을 그린 라파엘로가 그림의 영감을 단테의 [신곡]에서 얻었다는 이야기는 앞서 언급했다. 그렇다면 [신곡]을 쓴 단테는 그 영감을 어디에서 얻었을까? 물론 그가 아홉 살 때부터 사랑에 빠진 베아트리체, 그리고 딸을 돈 많은 금융업자와 결혼시킨 베아트리체의 아버지 포르티날리에 대한 증오와 분노로 복수하기 위해 썼다는 주장이 있다. 하지만 위대한 작품의 영감이나 소재가 하나에서 나오는 것은 아니다. 소재의 상당부분이 아베로에스로부터 나왔다는 주장이 있다. 바로 그리스 사상을 이슬람 신학에 접목시킨 아베로에스의 휴머니즘 철학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말이 나온 김에 세속주의 대해 조금만 더 언급해보자. 세속주의는 그야말로 ‘속물, 속된, 저속한’이라는 뜻과 연결돼 상당히 좋지 않은 의미로 보이지만 해석상 그럴 뿐 본래 의미는 인간을 종교와 교회에서 분리한다는 차원에서 휴머니즘의 시작이라고 설명했다. 소위 종교적 신앙이나 믿음에 구애받지 않은 자유사상의 근간이 된다고 볼 수 있다. 정치뿐만 아니라 사회의 모든 것을 지배하는 종교에서 벗어나는 것은 곧 자유를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중략)
유럽이 중세 암흑시대에서 벗어나 문명의 개화기인 르네상스 시대를 여는 데 있어 이슬람 문명이 대단히 중요한 가교 역할을 했다. 고대 그리스 사상을 이슬람 문명과 통합하고, 잘 보존해온 이슬람이 현대에 와서 너무나 급진적이고 폭력적으로 왜곡돼 묘사되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그러한 이슬람 문명 속에서 휴머니즘을 열어 유럽에 중대한 영향을 준 사람이 아베로에스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본주의 화가 라파엘로가 [아테네 학당]의 등장인물 가운데서도 눈에 띄게 표현한 것이다. 따라서 이슬람에 대해 새로운 접근과 이해가 필요하다. 과학사의 아버지로 통하는 조지 사튼George Sarton은 아베로에스의 업적을 높이 평가하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아베로에스는 위대하다. 왜냐하면 수세기동안 인간의 마음속에 거대한 감동을 심어 주었기 때문이다. 아베로에스 철학의 역사는 16세기 말까지 지속됐다고 할 수 있다. 무려 4세기에 걸쳐 영향력을 발휘했던 중세 암흑기 만큼이나 커다란 힘을 발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븐 루슈드를 아는가? 르네상스 시대의 화가 라파엘로가 바티칸 궁에 그린 [아테네 학당]에는 터번을 쓴 인물이 등장한다. 이 사람이 바로 이븐 루슈드다. [아테네 학당]에 나오는 유일한 이슬람 학자로, 유럽에서는 아베로에스(Averroes)라는 라틴어 이름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단테가 쓴 [신곡]에서는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등 고대 철학자들과 함께 ‘림보’(기독교 세례를 받지 못하고 죽은 이들이 가는 곳)로 간 인물로 나온다. 이슬람 철학자가 왜 로마 바티칸 궁 벽화에 그려졌을까? 그는 아랍어로 기록된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라틴어와 히브리어로 번역해서 유럽에 전한 사람이다. 기록에 따르면 그는 26년간 이 작업을 했다. 아리스토텔레스 책에는 간단한 약론에서 자세한 상론까지 세 종류로 나누어 주석을 달았다. 만약 루슈드의 작업이 없었다면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은 유럽에 알려지지도 않았고, 기독교에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옷을 입힌 중세 스콜라 철학이 탄생하기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스콜라 철학에서는 이름 대신 ‘철학자’라는 보통명사로 통용되는 이가 있다. 이 ‘철학자’는 아리스토텔레스를 가리킨다. ‘철학자’와 함께 ‘주석자’라는 호칭으로 거명되는 이도 있다. 이 주석자는 루슈드를 지칭한다. 이상하지 않은가? 아무리 생각해도 통상적인 표기 방식은 아니다. 처음 ‘철학자’와 ‘주석자’가 중세 유럽에 등장할 때 그들은 모두 이슬람 세계에서 건너 온 수상한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철학자가 그 혐의를 벗은 뒤에도 주석자는 철학자를 오독한 인물로 인용되었다. 주석자는 위대한 철학자를 오염시킨 간사한 이교도였을 뿐이었다.
나는 이것을 ‘루슈드 두들겨 패기’라고 부르고 싶다. 체제에 위협이 된다고 여겨지는 인물, 또는 사상이 소개될 때 종종 나타나는 양상이다. 위험한 철학이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 감추다가, 더 이상 덮을 수 없는 지경이 되면 속죄양을 만들어서 두들겨 패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때로는 집단 광기가 동원된다. 한 마디로 마녀 사냥이다. 잠깐!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이 그토록 위험한가? 아리스토텔레스는 상식을 존중하고 중용의 덕을 유난히 강조한 철학자가 아닌가? 상식과 중용의 철학자로 유명한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소개한 이븐 루슈드를 위험한 인물로 두들겨 패야 할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 의문은 또 있다. 플라톤과 더불어 서양철학의 전통을 세운 아리스토텔레스가 어떻게 이븐 루슈드에 의해서 유럽에 전해졌다는 말인가?
이 퍼즐을 풀기 위해서 우리는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이 기독교 유럽 세계에서 실전되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한다. 중세 초기 유럽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은 논리학에 대한 단편적 기록 이외에는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우리가 <철학의 숲> 아우구스티누스 편에서 본 바와 같이 중세 초기의 철학은 기독교에 플라톤 철학을 결합한 교부 철학이 성행했다. 그러면 도대체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은 어디에서 갑자기 나타났다는 말인가? 그것은 이슬람 세계에서 건너왔다. 기독교 유럽에서 실전된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이 이슬람 세계에서 계승 발전되고 있었던 것이다.
흔히 중세를 암흑 시대라고 부른다. 르네상스 시대의 인물 페트라르카가 처음 쓴 암흑 시대라는 표현은 중세를 부르는 또 다른 이름이다. 그런가? 로마 제국, 더 정확하게 말하면 로마를 수도로 하는 서로마제국이 무너진 뒤 지중해 세계의 질서는 크게 재편된다. 이슬람 세력은 북부 아프리카와 에스파냐와 포르투갈이 있는 이베리아 반도까지 세력을 넓혀나간다. 지금 우리가 유럽이라고 부르는 지역은 이슬람 제국에 의해 포위되어 있는 형국이다. 이 시기를 유럽에서는 암흑 시대라고 부르지만, 이슬람에서는 황금 시대라고 부른다. 물리적인 힘에서도 이슬람이 유럽보다 컸지만, 문화의 힘에서도 이슬람이 유럽을 압도하는 시기였다. 역사가는 이 때를 ‘이슬람의 황금시대’ (750~1258)라고 부른다.(“암흑시대”라는 말이 얼마나 서구유럽중심적인 말인지를 여기서 깨달았다)
이븐 루슈드는 1126년 에스파냐 코르도바에서 태어났다. 근대 이전의 대부분 학자처럼 그는 여러 분야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당대 최고의 이슬람 학자들이 그렇듯이 그는 칼리프(이슬람 교단의 최고 지도자) 가족의 건강을 책임지는 궁정의사이기도 했다. 철학과 과학, 그리고 의학 분야에 남긴 그의 업적은 곳곳에서 발견된다. 근대 의학이 출범한 곳으로 이름이 높은 이탈리아 파도바 대학의 의학부 교수들은 대부분 루슈드의 제자들이다. 기독교 세력에 의해 코르도바에서 쫓겨난 그의 제자들이 무더기로 베네치아 근처에 있는 파도바 대학에 자리를 잡았기 때문이다. 의학 분야에 관한 한, 당시 기독교 유럽의 학문 수준은 이슬람과 비교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과학 분야에서도 그의 공헌은 크다. 과학사라는 학문을 개척한 20세기 과학사가 조지 사튼에 따르면 이븐 루슈드와 그의 주장을 따르는 아베로이즘(Averroism)은 16세기까지 이어졌다고 한다. 철학과 과학이 분리되지 않았던 근대 이전의 시기에 과학의 역사는 곧 철학의 역사이기도 하다. 사튼은 마녀 사냥을 당했던 이슬람 학자 이븐 루슈드의 명예 회복과 역사에서 지워진 아베로이즘 4백 년의 역사를 다시 복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븐 루슈드가 주창한 학문이 고대 학문에서 근대 학문으로 넘어가는 진정한 이행 과정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라고 사튼은 말한다. 이 말에 동의한다. 루슈드가 잃어버린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찾아 주었듯이, 우리도 루슈드 철학의 제 자리를 찾아주어야 한다.
철학의 눈으로 본 이븐 루슈드는 이성을 중시한 합리주의자다. 그것은 이슬람 교리에 반대하는 철학자들의 주장을 반박한 알 가잘리의 [철학자의 모순]을 재반박한 이븐 루슈드의 [모순의 모순]에서 잘 드러난다. 가잘리와 루슈드가 제기한 물음은 신학과 철학이 양립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다. 이 질문을 살짝 돌려서 말한다면 신앙과 이성은 서로 화합 가능한가 하는 물음이라고도 할 수 있다. 가잘리가 철학에 대한 신학의 우위, 또는 이성에 대한 신앙의 우위를 주장했다면, 루슈드는 가잘리의 주장에 대한 이의제기라고 할 수 있다.(<- 오 스피노자의 향기!)
여기서 신학이란 이슬람 성전인 [쿠란]에 대한 해석과 예언자 무함마드의 언행을 기록한 [순나]를 구체적으로 설명한 [하디스]에서 기초한 이슬람 신학이며, 철학이란 고대 그리스 철학 원전에 대한 번역과 주해를 기초로 하는 철학 연구를 말한다. 루슈드는 이슬람 율법이 철학 연구를 결코 금하지 않으며, 오히려 율법은 논증적 추론을 하는 철학 연구를 명한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루슈드는 철학과 신학의 조화를 변호하는 것을 뛰어 넘어서 철학이야말로 진리의 최종 중재자라고까지 주장한다. 신앙에 대한 이성의 우위로 해석될 수 있는 이 주장은 후에 그가 이단으로 단죄되는 하나의 원인이 된다. 그는 율법학자들이 주도하는 철학에 대한 박해가 본격화되었을 때 코르도바 근처에 있는 작은 마을 루세나에 감금되었고 그가 쓴 책들은 불태워졌다. 그의 나이 70이 되는 만년에 일어난 일이었다. 이듬해 그는 감금에서 풀려났지만, 모로코에서 생을 마감했다.(블랙 아리스토텔레스. 이슬람 세계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검은 피부를 가진 흑인으로 그려진다.)
눈을 다시 유럽 세계로 돌리면, 루슈드는 오늘의 서구사상의 전통을 이어준 사람이다. 그는 서구 사상의 큰 흐름을 이루고 있는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발굴하고 체계적으로 정리해서 중세 유럽에 전달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서구 사상의 큰 특징으로 자리잡은 합리주의 전통을 이어준 인물이다. 그 점에서 기독교 유럽 세계는 루슈드에게 큰 빚이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나 그 빚을 갚기는커녕 두들겨 팬 죄가 있다. 유럽의 눈으로 정리한 지적 풍토에서 루슈드는 때로는 이름 없는 적으로, 때로는 기독교 세계를 혼란에 빠뜨리기 위해서 침투시킨 ‘사상 전사’ 쯤으로 등장한다. 그러한 흔적은 루슈드를 통해서 아리스토텔레스를 읽은 토마스 아퀴나스에 대한 평가에서 절정을 이룬다.
글 정재영 / 철학자 서울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2,30대에 언론사 기자를 지냈다. 나이 40에 늦깎이 유학생으로 영국에 건너가 워릭대에서 사회 존재와 인간의 이해에 대한 리얼리즘 접근법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경기도 양평에 있는 대부산 중턱에 자리를 잡고 철학 저술 작업을 하고 있다. 저서로는 [철학, 도시를 디자인하다] 1, 2권이 있다.
아불 왈리드 무함마드 이븐 아흐마드 이븐 루시드(아랍어: أبو الوليد محمد ابن احمد ابن رشد,
라틴어: Averroës 아베로에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