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계에서 참담한 이야기들이 계속 쏟아져 나오는 가운데, 글들 하나하나 읽을 때마다 손끝까지 부들부들 떨리는 가운데, 가끔씩 조심스럽게 비죽비죽 보이는 ’연극계에서 벌어진 일들을 보니 내가 겪은 것들은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아 뭐라고 말 얹기도 죄스럽다‘ 같은 글들을 보면 마음이 베인 듯이 아프다. 전자의 글들로 화를 내다가 후자의 글들을 보면 눈물이 나서 울고 만다. 당신이 겪은 일이 무엇인지 정확히 모르겠지만 뭐가 됐든 결코 아무 것도 아니지 않다고 너무나 말해주고 싶다.
저런 조심스러운 마음은 타인의 경험과의 비교에서만 나오는 게 아니라 한 인간의 세계 안에서도 너무 쉽게 일어나는 일이라 더 그렇다. 오랫동안 가정에서 학대를 당해온 아동들이 누군가의 가해가 물리적 가해가 아닌 언어적 가해 정도에서 그쳤을 때 그것을 학대로 인지하지 않고, 심지어 ’그 정도 까지만‘ 가해를 한 사람을 비교적 ’좋은 어른‘이라고 생각하는 것과도 비슷하게, 강도10의 심한 가해를 지속적으로 받고나면 강도5 정도의 가해는 괜찮다고 넘기게 되는, 그전까지 나는 분명히 강도1의 행위도 부당하다고 느끼던 사람이었는데 어느 순간 강도5까지는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세상은 한 인간의 견적을 뽑아내는 데에 가차 없어서 강도5까지 받아들이는 사람에게는 강도5까지의 행위를 아무렇지도 않게 저지른다. 쟤는 그래도 괜찮은 애니까. 쟤는 쿨하니까. 이런 식으로 내가 지켜나가야 하는, 그리고 세상이 지켜줘야 마땅한 인간으로서의 존엄의 선이 점점 아래로 내려가는 일은 무서운 일이다. 그 누구도 어떤 강도로든 존엄이 밟혀서는 안 되는 건데. 피해의 등급을 매겨 10보다 낮은 5가 5가 아닌 0으로 가치 매겨져서는 안 되는 건데.
’강도1까지도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에서 ’강도5까지는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으로 변하는 과정에서 한 인간의 영혼이 어느 정도로 부서져 나갔을지를 생각해보면 마음이 베여나간다는 표현 외에 뭘 더 쓸 수 있을지 모르겠을 정도로 마음이 아프다. 그래서 피해 당사자들도 매겨서는 안 되는 피해의 등급을 당사자도 아닌 사람들이 지켜보며 등급을 매기는 것이 화가 난다. 누구도 ’내가 겪은 것들은 저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야‘ 같은 생각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고(이게 절실한 바람이라면), 누구도 ’네가 겪은 것들은 저것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야‘ ’내가 저지른 것들은 저것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야‘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이건 인간이라면 그래서는 안 된다는 당위의 영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