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20 ”신의 실존과 본질은 하나의 동일한 것이다

증명 신과 (앞의 정리에 의해) 그의 모든 속성들은 영원하다. (정의 8에 의해) 신의 각각의 속성은 실존을 표현한다. 따라서 (정의 4에 의해) 신의 영원한 본질을 설명하는 이 동일한 신의 속성들은 동시에 신의 영원한 실존을 설명한다. 곧 신의 본질을 구성하는 이 동일한 것이 동시에 신의 실존을 구성한다. 따라서 그의 실존과 본질은 하나의 동일한 것이다. Q.E.D.

따름정리1 이로부터 다음과 같은 점이 따라나온다. 1. 신의 본질과 마찬가지로 신의 실존은 영원 진리다.

따름정리2 이로부터 다음과 같은 점도 따라나온다. 2. 신 또는 신의 모든 속성은 불변적인 것들이다. 왜냐하면 이것들이 실존의 관계에서 변화된다면, (정리 20에 의해) 또한 본질의 관계에서도 변화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 자체로 명증한 것처럼) 참이 거짓이 되어야 할 텐데, 이는 부조리하다.

 

* 1) 1부의 전반부: 정리1~정리15

- 우주의 논리적 구성에 대한 이야기.

- 스피노자의 우주는 무한하게 많은 속성들을 가진 절대적으로 무한한 실체다.

 

2) 1부의 후반부: 정리16~정리36

- 만물의 근원인 실체와 신, 신과 만물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는지,

- 만물의 원인으로서의 신과,

신으로부터 따라 나오는(신이 산출하는) 무한한 만물들 사이의 인과관계를 다루는 것.

(무한하게 많은 것들을 신이 어떻게 산출하는지)

 

* 1부 정의3 실체에 대한 정의 + 정의5 양태에 대한 정의 + 공리1 ”존재하는 모든 것은 자신 안에 있거나 다른 것 안에 있다“ -> ”존재하는 모든 것은 실체이거나 양태다.“

* 정리16: 신의 본성으로부터 따라 나오는 무한하게 많은 것들 = 만물

* 정리18: 신은 만물의 내재적 원인이지 타동적 원인이 아니다. 일시적 원인 이행적 원인이 아니라, 신이라는 것이 외재적으로 관계를 맺는 것이 아니라, 만물 안에서 내재적으로 작용하는 원인이 바로 신이다. 신과 만물 사이의 관계는 외재적이고 타동적이지 않다. 1부 정리15을 염두한다면 정리16은 사실 당연하다. // 모든 것이 신 안에 있다. 역으로 말하면, 신은 만물에 내재해있다.

 

* 정리21~23: 스피노자가 양태에 대해 체계적으로 이야기하는 첫 번째 대목. 무한양태에 대해서도. 그동안 우리가 양태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1부 정의5, 공리1이 전부였다.

* 정리24~25에서 어떻게 신이 만물 안에서 내재적 원인으로 작용하는지 부연한다

 

* 1부 정의5에서 스피노자의 양태 개념이 매우 독특하다는 이야기를 했다. 데카르트에 비해서도 독특하다. 라틴어의 Modus. 방식. 데카르트는 양태를 물체의 색깔이나 촉감 같은 것까지 포함하는 모든 것이라고 말했지만, 스피노자는 우리가 개체라고 말하는 모든 것들을 모드라고 한다. <<<<<<<<<<<<<<3) 데카르트와 스피노자의 차이

양태는 데카르트에서 유래한 개념이지만, 스피노자의 개념과는 몇 가지 측면에서 차이난다.

 

A. 사물의 상태인가 사물 자체인가.

데카르트의 양태개념은 스콜라철학의 우연속성accidents과 달리 실체와의 내재적 관계를 함축한다. 양태는 실체가 변용되거나 변화되는 것을 고려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물체의 경우 모양, 크기, 운동 등, 정신의 경우, 감각, 상상, 의지 등.(즉 데카르트에게 양태는 사물의 상태)

반면 스피노자에게 양태는 실체의 상태나 변화 방식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개별적인 사물 그 자체를 의미. 더 나아가 스피노자에게는 무한양태들도 존재. (스피노자에게 양태는 사물 그 자체)

직접적 무한양태: 연장 속성- 운동과 정지/ 사유 속성- 무한 지성

매개적 무한양태: 우주 전체의 모습

 

*** 양태개념 관련해서 데카르트와 스피노자의 차이

- 스피노자는 올덴부르크와의 편지에서(1강의록2P) 초기에는 양태라는 표현 대신에 아키댄스accidence 우연적 속성. 우유라고 썼다. 그러나 에티카에서는 affection이라고 용어가 바뀌었다. 왜 그랬을까. 아키댄스(우연속성)과 사물, 이 두 개념 쌍을 사용하게 되면- 스콜라 철학에서 사람의 본질은 이성을 가진 짐승이고, 특성은 웃을 수 있고, 직립보행이고... 등등인데, “어떤 사람은 키가 190이고 어떤 사람은 170이고, 어떤 사람은 피부가 하얗고 어떤 사람은 까맣고...”<-바로 이런 것들이 아키댄스에 해당하는 것이다. , 아키댄스-사물 간의 관계는 외재적 관계, 우연히 갖게 되는 외재적인 것. 그러나 내재적 특성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스피노자는 실제 변용으로 그런 외적인 것을 생각하지 않았다. 외재적으로만 보면 제대로 설명해내는 것이 불가능하니까 아키댄스 대신, affection, mode를 즐겨 쓰게 됨. , 스피노자가 아키댄스 대신에 이 단어를 선택했다는 것 자체가 이미 변용이 내재적이라는 것을 잘 보여준다.

- 데카르트 또한 mode라는 말을 자기 철학의 주용법으로 채택했는데 데카르트의 경우 mode는 어떤 사물의 표현 방식/형태를 의미했다. 예를 들면

물체의 경우: 물체가 갖고 있는 무늬, 형태

정신의 경우: 감각, 상상

 

- 이 두 가지는 매우 중요한 차이다!!

a. 데카르트에게 mode는 정말 의존적인 것이었다. mode가 속해있는 사물하고 독립적으로 분리해서는 전혀 생각할 수 없는 것 VS 스피노자의 다섯 번째 정의와 정리1~36을 보면, 스피노자가 모드라고 부르는 것은 사물 일반이다. 실체를 제외한 모든 것이다.

b. 데카르트에게는 무한 실체- / 유한 실체: 정신, 물체, 사람 VS

스피노자에게 실체는 오직 무한 실체 밖에 없다. 스피노자 사상에서 실체를 실체라고 부르려면 반드시 무한해야만 한다. , 스피노자는 실체의 유한성을 배격했다! 매우 중요함!!!

c. 데카르트가 유한실체라고 불렀던 것이 스피노자에게는 양태가 된다. 데카르트는 사물과 독립해서 생각할 수 없는 것이 모드, 스피노자에게는 그 사물 자체!

 

*** 그럼 스피노자에게는 유한한 것들만 양태냐?

아니! 스피노자에게도 무한 양태가 있다! 에티카 1부 정리 21~23: 무한양태에 관한 내용.

- 직접적 무한양태: 연장속성의 경우 운동과 정지, 사유속성의 경우 무한지성

매개적 무한양태: 우주전체의 모습

*** 스피노자가 양태라고 부르는 범위가 굉장히 넓다. 그 이유는? 스피노자가 실체의 개념을 아주 엄밀하게 정하는 바람에 생긴 결과다. 그 실체를 제외한 나머지 것이 다 양태에 포함되니까. (이거 어쩐지 너무 멋있다..) >>>>>>>>>>>>>>>>>>>>

 

*** 여기에 더해 스피노자 양태 개념의 충격적인 점은 바로 정리21~23에 걸쳐 나오는 무한양태 개념이. ? 양태는 어디에 의존하고 있고 실재적이고 독립적인 것이 아닌데 이걸 무한하다!라고 말하니까. 유한한 양태라는 것도 이해가 쉽지 않은데 무한하다니. 이 무한양태 개념은 스피노가 실체가 우주 전체라고 이야기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스피노자는 유한양태에 말하기 앞서서 무한양태를 21~23에서 말하고 있다.

 

정리21 “신의 어떤 속성의 절대적 본성으로부터 따라 나오는 모든 것은 항상 실존해야 했으며 무한한 것이어야만 했다. 또는 이 동일한 속성에 의해 영원하고 무한하다.

 

- 항상 실존했고 실존하고 있고 -> 영원하다는 이야기. 무한하다는 이야기.

- 무한양태의 무한성과 영원성은 어디서 생겨난 것인가? 자기 스스로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속성에 의해 갖게 되는 것. 만약 자기 자신에 의해 무한성 영원성을 갖게 된다면 그것은 실체다. 그러나 양태라는 것은 정의5에서 실체의 변형. 다른 것에 의해 인식되는 것. 이때 다른 것이 바로 실체. 실체에 존재론적으로 의존한다는 것. 즉 여기서 갖는 양태의 무한성은 스스로 갖는 것이 아니라 속성에 의해.

- , ”신의 어떤 속성으로부터 무한하고 영원한 무한양태가 따라 나온다.“

 

정리22 “신의 어떤 속성이 이 동일한 속성을 통해 필연적으로 실존하고 무한한 어떤 변양에 의해 변양된 한에서, 그 속성으로부터 따라 나오는 모든 것은 또한 필연적으로 실존하고 무한해야 한다.”

 

- “이 동일한 속성을 통해 필연적으로 실존하고 무한한 어떤 변양”= 정리21의 무한양태

- 변양: modification 모디피카치오 (정리8의 주석2에 나온다). 스피노자는 양태(모두스)라는 말을 더 자주 쓰고 변양(모디피카치오)는 거의 쓰지 않는데 변양과 양태를 같은 의미로 쓴다. 여기서는 양태라고 쓰지 않고 변양이라고 썼다. 양태라고 썼으면 덜 헷갈렸을 텐데ㅋㅋ

 

1) 속성에서부터-> 필연적으로 실존하고(=영원하고) 무한한 어떤 변양, 무한양태가 따라 나온다

(= 속성이 영원하고 무한한 양태에 의해 변양된다)

2) 그리고 이 영원하고 무한한 양태에 의해서 변양된 이 속성으로부터 -> 또 영원하고 무한한 양태가 따라 나온다.

*** 그러니까 스피노자에 따르면 영원하고 무한한 양태에 의해 두 가지 형태가 있는 것이다

1) 신의 속성으로부터 직접 따라 나오는 무한한 양태

2) 이 직접 따라 나온 무한양태에 의해서 변양된 속성으로부터 나오는 무한한 양태

*** 스피노자 연구자들끼리 1)을 직접적 무한양태, 2)를 매개적 무한양태라고 부른다. 직접적 무한양태를 매개로해서 따라 나오는 무한양태기 때문에.

 

*** 매개적 무한양태에서 따라 나오는 것은 또 없는가. 없다. 뭐가 나올 것도 같은데. 이를테면 유한양태. 여기서 유한양태가 따라 나올 것도 같은데. . 유한한 양태들이 있으니까. 그런데 그렇지 않다. 누가 이렇게 생각했냐면 헤겔이 그렇게 생각했다. 그는 이렇게 신-> 속성-> 직접적 무한양태-> 매개적 무한양태-> 유한양태, 이게 스피노자의 세계에서 우주가 환원하는 순서다, 라고 말했다. 완전한 신에서부터 덜 완전한 속성, 덜 완전한 직접적 무한양태, 덜 완전한 매개적 무한양태, 덜 완전한 유한양태 순서로. 하지만 스피노자는 그렇게 이야기한 적이 없다. 매개적 무한양태에서 끝이다.

 

*** 직접적 무한양태로 변양된 속성은 그냥 속성과 다른가. 다르다. 직접적 무한양태로 변양된 속성이라고 스피노자가 왜 그렇게 이야기하냐면, 매개적 무한양태가 직접적 무한양태로부터 따라나오는 것이 아니다, 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매개적 무한양태가 직접적 무한양태로 변양된 한에서 속성으로부터 따라나온다, 라고 말하고 싶어서. 그러니까 직접적 무한양태나 매개적 무한양태다 원인은 속성이다. 출처는 속성.

*** 가령 연장속성을 예로 들면, 스피노자가 직접적 무한양태를 운동과 정지라고 말한다. 그러니까 물질적 우주에서 바로 따라 나오는 직접적 무한양태는 바로 운동과 정지.

*** 스피노자가 생각한 직접적 무한양태는, 속성이 갖게 되는 특성 중 하나다. , 직접적 무한양태를 산출하지 않으면 이 속성은 속성일 수 없는 것. 어떤 속성이 속성이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산출할 수밖에 없는 것. 그러니까 물질이 물질이려면, 물질은 운동을 해야하고 정지를 해야 한다. 이 운동과 정지를 스피노자는 연장이라는 속성의 직접적 무한양태라고 보는 것이다. 물질은 항상 운동과 정지 중이다.

 

*** 그렇다면 스피노자가 생각하는 매개적 무한양태는?

- 2부 정리14 보조정리의 주석(55P) : 어떤 개별적인 개체라는 것은 복합물체. 개체들이 모여가지고 형성하는 또 다른 상위의 개체가 있고, 이 상위의 개체들이 모여서 형성하는 또 다른 상위의 개체가 있고... 이렇게 죽 나아가다보면 자연전체를 하나의 개체처럼 생각할 수 있다. 자연전체가 단 하나의 개체이며, 그 부분들, 곧 모든 물체들은 전체 개체의 변화 없이도 무한한 방식으로 변이한다는 것을 쉽게 인식하게 된다그러니까 단 하나의 개체로 사고되는 자연, 이게 바로 스피노자가 이야기하는 매개적 무한양태. 스피노자는 슐러에게 보내는 예순네 번째 편지에서 이것을 우주전체의 모습이다라고 이야기 (강의록 10)

 

- 여기서 말하는 우주전체는 실체가 아니다. 여기에서는 지금 하나의 개체로서의 자연전체를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개체로서의 자연전체= 전체로서의 자연. 실체는 개체가 아니다.

- 부분과 전체를, 스피노자는 notion이라고 부른다. 통념이라고 부르지, 부분-전체를 real thing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부분과 전체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고상의, 상대적인 부분과 전체로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하나의 개체로서 인식된 자연전체는 실체로서의 자연과는 다르다. 개체로서의 자연전체- 우리가 알고 있는 지구, 태양계, 은하계, 우주 이런 것들. 우리가 자연 안에 존재하고 있다고 인식하는 물체들.

- 사람-> 국가-> 지구-> 태양계 -> 우주, 이런식으로 죽 나아가다보면 이 자연 안에 우주라는 것을 여러 개의 개체들이 합성해서 만든 최상위의 개체처럼 인식할 수 있다. 이게 바로 스피노자가 말하는 매개적 무한양태. 하지만 이 최상위의 개체가 스피노자가 말하는 실체로서의 자연과는 동일하지 않다. ?? 이것은 원인이 아니니까. 이것은 원인이 아니라 원인으로서의 실체가 생산해낸 결과다.

*** 직접적 무한양태도 매개적 무한양태도 실체가 원인. 이 직접적 무한양태나 매개적 무한양태는 결과들의 집합이지, 여기에는 논리적으로서의 원인은 빠져있다.

- ”매개로 해서원인으로 해서를 절대 혼동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지금 논리적으로 원인과 결과를 분해하는 것이다. 스피노자에 따르면 우주전체 모습이라는 것이 운동과 정지라는 직접적 무한양태를 원인으로해서 따라나오는 게 아니다. 우주전체 모습의 원인은 속성이다. 이게 성립하기 위해서는 운동과 정지라는 매개로 해서가능하다. 논리적으로 봤을 때 운동과 정지라는 직접적 무한양태를 매개로 해서“, 연장속성이 원인이 돼서따라 나온 결과가 우주전체의 모습.

 

- 스피노자의 연장개념은 원인으로서의 연장개념이다. 1부 정리14에서 데카르트와 스피노자의 연장개념이 굉장히 큰 차이를 만든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데카르트의 자연은 물질적인 자연, 내재적 원인이 없고 내적 동력이 없는 기하학적 자연. 여기서 운동이라는 것은 단지 위치이동만을 의미할 뿐이다. 그러나 스피노자처럼 연장이 신의 속성이 되면, 그러니까 물질적인 연장이 신의 바깥이 아니라 신의 안에 들어와 있고 신을 구성하는 것이면, 신이 갖고 있는 절대적으로 무한한 역량이 자연 안으로 들어와 있는 것이다. 스피노자의 연장개념은 데카르트의 기하학적 자연이 아니라 무한하고 다이나믹한 동력학적인 자연. 그러니까 연장개념이 없으면 운동과 정지는 단지 기하하적인 장소 이동, 위치 이동에 불과할 텐데 스피노자에게는 연장개념 자체에 동력학적인 원인개념이 들어가 있으니까, 여기서 말하는 운동과 정지 역시 동력학적인 것이 된다. 이게 두 사람의 차이이며, 스피노자의 연장개념에 원인이 들어있다고 말하는 근거.

- ”운동과 정지를 전제로 했을 때 스피노자의 세계에서 공간이라는 것은? 정리15에서 스피노자와 데카르트는 진공을 부정했다. 진공을 부정했다= 우주 전체가 물질로 가득 차있다, 충만하다, 공백이 없다. 그러므로 연장이라는 것 자체와 공간은 구별이 안 된다. 공간 자체에 다 물질이 차 있는 것이기 때문에.

 

*** 정리21의 증명

첫 번째 부분: 무한성 증명/ 두 번째 부분: 영원성 증명

-”신의 관념에서 주의해야할 점! 신의 관념에 대해 주의해야 한다. 스피노자가 신의 관념이라고 부르는 것은 인간의 정신이 신에 대해서 갖고 있는 관념ㄴ을 뜻하는 게 아니다. 신이 자기 자신에 대해 갖는 관념. 스피노자는 2부 정리3과 정리4에서 이 신의 관념이 무한지성이라고 이야기한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연장속성에서 직접적 무한양태가 운동과 정지라고 이야기했다면, 사유속성에서 직접적 무한양태는 바로 무한지성이다.

- 그렇다면 사유속성의 매개적 무한양태는 뭘까? 아무도 모른다. 다 추측만 할 뿐이다. 이것은 다 슐러라는 사람 때문이다ㅋㅋㅋ

- 63번째 편지에서 슐러는 직접적 무한양태와 매개적 무한양태의 사례를 알고 싶다고 했고, 스피노자는 64번째 편지에서 답을 한다. “직접적 무한양태의 사례들로는, 사유의 경우에는 절대적으로 무한한 지성이 있고 연장의 경우에는 운동과 정지가 있습니다. 매개적 무한양태의 사례로는 우주 전체의 모습이 있는데 이는 무한한 방식으로 변이됨에도 항상 같은 것으로 남아 있습니다.” .

- 이상하지 않은가. 두 번째 정리의 사례로 우주전체의 모습 하나만 이야기했다. 슐러가 한 번 더 편지를 보냈어야지! 선생님, 하나 빠지셨는데요? 사유의 경우에 매개적 무한양태가 뭔지 말씀해 주셔야죠, 라고 질문을 했어야지. 이거 분명 궁금했을 텐데. 이게 지금 사람들을 몇 백년째 궁금하게 만들고 있다. 주석가들의 의견도 분분하다. 이게 뭘까, 대체. 어떤 사람은 평행론에 따라서 우주전체 모습의 관념이다, 라고 이야기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스피노자가 이 하나를 가지고 두 개 모두에 답했다(연장에만 해당하는 게 아니라 사유에도 해당한다)고 이야기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왜 여기에서만 찾냐 5부에서도 찾자고 하고 제각각이다. 그래서 논문 쓰기 굉장히 좋다ㅋㅋㅋ 스피노자가 아무 이야기도 안 했으니까

 

-유한하고 규정된 실존을 갖는다는 이야기는, 이것이 생겨나는 시간과 소멸하는 시간이 있다는 이야기다. 그러니까 규정된 실존을 갖는다는 것 = 기원과 종말이 있다는 것. 시작 이전과 끝 이후라는 것이 있다는 말이다. 그러면 그때는 사유속성으로부터 아무 것도 따라나오지 않는가. 따라 나오겠지. 하지만 신의 속성과는 무관하겠지. 그러니까 신의 속성으로부터 유한하고 규정된 실존을 가진 신의 관념이 필연적으로 따라 나온다는 가설에 모순이다. 신의 속성으로부터 필연적으로 신의 관념이 따라 나오는 것이 아닌 게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러니까 신의 속성으로부터 필연적으로 따라 나온다고 하려면 무한해야 한다(귀류법)

- 창조론은 우주의 영원성을 이야기할 수 없다. 신 이전에 무가 있었어야 하니까. 창조라는 시작이 있어야 하니까. 스피노자에게 창조라는 시작은 없다. 영원히 계속 존재해있었다.

창조라는 시작은 없다. 영원히 계속 존재해있었다.

 

정리23: “필연적으로 실존하고 무한한 모든 양태는 신의 어떤 속성의 절대적 본성으로부터 필연적으로 따라 나와야 했거나 아니면 필연적으로 실존하고 무한한 어떤 변양에 의해 변양된 어떤 속성으로부터 필연적으로 따라 나와야 했다.”

 

정리24-29는 유한양태에 대한 이야기 (딱 부러지게 유한양태라고 이야기하기 어려울 수 있는데 어쨌든 정리28, 28가면 singular thing에 대한 이야기를 하니까)

 

정리24: “신에 의해 생산된 것들의 본질은 실존을 함축하지 않는다

 

- 스피노자가 따름정리에서 신이 단지 생성원인일 뿐 아니라 존재원인이라고 부연하는 것은 데카르트의 유한실체론을 비판하기 위해서이다. 데카르트주의자들은 정신이나 신체, 인간 같은 개별적 존재자를 유한실체라고 간주하고 있고, 신에 의해 일단 창조되고 나면 자기 스스로 실체처럼 존립할 수 있다고 본다. 반면 스피노자는 정의5, 공리1, 정리15에서 일관되게 실체와 양태를 구별하고 있으며 모든 것은 신 안에 존재하고, 신이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고 주장한 바 있다. 스피노자에게 신을 제외한 실체는 존재하지 않으며, 더욱이 유한실체는 논리적 모순에 불과하다(양태도 무한한데, 실체가 유한할리가!!!). 따라서 모든 것이 신 안에 존재하고 존재론적으로나 인식론적으로 신에 의존한다면, 신을 제외한 모든 것은 처음 생성될 때만이 아니라 생성된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신에게 의존해야 한다. 이것이 따름정리의 의미다.

- 정리25에 가서 다시 할 이야기지만, 마지막 문장처럼 이야기하면 스피노자는 유한한 개체들로부터 존재론적인 자립성을 박탈한 것처럼 보인다. 생성될 때뿐만 아니라 재생산될 때도 지속될 때도 항상 신이 있어야 존립할 수 있으니까. 신이 없으면 유한한 양태들은 존립할 수 없으니 매순간 신에 의존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러니까 비실재적, 비자율적으로 보이는데. 정리25로 가보자.

 

정리25: “신은 실재들의 실존의 작용인일 뿐만 아니라 그것들의 본질의 작용인이기도 하다.”

따름정리 특수한 실재들은 신의 속성의 변용들과 다르지 않다. 곧 신의 속성이 일정하게 규정된 방식으로 표현되는 양태들과 다르지 않다. 이점에 대한 증명은 정리15 및 정의5로부터 명백하다.

 

- 존재하는 개체들은 신의 속성의 변용이다.

- 정리15가 유난히 많이 나오는데, 이유는, 정리15가 신과 만물 사이에 가장 원초적인 관계를 제시한 명제라서 그렇다. 정리16부터 정리36까지가 신과 만물 사이의 인과관계를 설명하는 것이라, 증명할 때 다 정리15로 돌아간다. 정리15가 이하의 논의들의 출발점이라서.

- 정리24가 데카르트의 유한실체론을 비판적으로 보는 것이라면 정리25는 플라톤주의를 겨냥하는 것이다. 플라톤주의의 요체는 이데와의 세계와 현상의 세계가 있다는 것. 이게 중세철학에서 나타날 때는 영원한 본질의 세계와 유한한 실존의 세계로 구별이 된다. 본질이라는 것은 생성되지도 않고 소멸되지도 않고 영원히 존재하는 것이고, 그래서 플라톤주의자들에게 사물의 본질과 실존은 엄밀히 구분된다. “사물들의 실존이 시간적이고 변화하며 소멸하는 것이라면, 사물들의 본질은 신의 지성 안에 존재하는 원형(이데아로서)에 입각한 것으로 영원히 존립하는 것이다

- 신이 창조한 것은 사물들의 실존. 사물들의 본질은 스콜라 철학식으로 말하면 가능태로, 잠재태로 있는 것. “possibility 가능태로 존재(본질) + 신이 existence를 부여 -> actuality를 갖고 현실태” -> 이게 바로 창조. 본질 자체는 actuality는 없지만 possibility 가능태로서는 계속 영원히 존립하고 있다

- 스피노자는 정리25에서 이러한 플라톤주의 모델을 반박한다. “하지만 증명에서 공리4와 정리15에 근거를 두고 있듯이, 스피노자가 신을 제외한 모든 것은 신이 없이는 존재할 수도 인식될 수도 없다고 주장하는 한에서, 사물들의 본질이 신이라는 궁극적 원인과 무관하게 영원히 존립한다고 말하는 것은 허용될 수 없다. 따라서 스피노자는 신이 만물의 실존만이 아니라 그 본질들에 대해서도 작용인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주석에서처럼 기분 나쁠 때는 생산 안 했다가 기분 좋을 때는 생산했다가 이런 거 아니고 만물을 필연적으로 생산해내고 있다. 넘치도록 전능해서. 무한한 생산자로서.

 

- 그렇다면 스피노자는 개체들로부터 일체의 독자적인 실존과 행위의 역량, 또한 사유의 역량을 완전히 박탈하는 것인가? 스피노자 철학에서 개체들은 아무런 자율성과 실재성도 지니지 못하게 되는 것일까?

- 어떤 의미에서는 그렇다. 신 없이는 존재할 수도 인식될 수도 없으니까. 신은 만물의 존재의 원인이자 지속의 원인이기도 하니까. 신 없이는 인간은 아무런 역량도 가질 수 없으니까.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할 대목은!

-“신의 속성이 일정하게 규정된 방식으로 표현이라는 점이다. 신의 속성을 일정하게 규정된 방식으로 표현한다는 점은, 신의 속성이 지니고 있는 본성, 곧 그의 무한한 역량을 양태들 역시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다만 절대적으로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일정하게 규정된 방식으로 표현”(중세식으로 말하면 분유’)할 뿐이다.

 

*** 스피노자의 존재론의 윤리적인 함의를 이야기할 때 항상 유념해야할 점

- 신이 양태하고 맺는 관계는 어떤 관계인가. 스피노자식 신의 속성을 일정하게 규정된 방식으로 양태들이 표현한다’, ‘신이 양태들의 원인이다’, ‘신이 양태들의 실존의 원인일 뿐만 아니라 본질의 원인이다’, ‘양태들을 생산한다같은 표현들에서 나오는 신과 양태의 관계는 뭘까. 한마디로 말하면, 신은 양태들에 있어서 타자가 아니다. 이 말의 의미는-

- 우리가 일반적으로 타자, 어떤 개체 사물과 타자의 관계를 생각할 때 항상 염두하는 것인데, ‘유한하다는 말은, 자신과 타자의 것에 대해서 배척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그러니까 모든 사물이 자신의 타자를 전적으로 다 받아들일 수 없다. 유한한 사물은 자신이 존재하기 위해 동물을 먹기도 하고 식물을 먹기도 하고, 먹고 먹히는 생태 사슬을 거부할 수 없다. 유한한 것이 유한한 것으로 존재하려면 타자와 positive한 관계만 맺을 수는 없다. 이게 바로 유한자와 타자의 관계의 기본적인 측면인데-

 

-신은 그렇지 않다. 신은 무한자다. 신은 어느 경우에도 양태를 배제하지 않고, 항상 긍정적인 관계를 맺는다. 신은 양태들로부터 무언가를 뺏거나 박탈하지 않고 양태들에게 항상 근거와 역량을 제공한다. 존재할 수 있는 역량, 사유할 수 있는 역량을 부여해주는 존재. “신은 타자가 없다는 것은 그런 의미다. 신과 양태의 관계는 절대적으로 긍정적인 관계다. 신은 양태에 대해 아무것도 부정하지 않으니까. 신은 자기와 관련된 모든 것에 절대적으로 긍정한다. 무언가를 제한하고 박탈하는 게 아니라.

-문제는 양태가 신으로부터 신의 절대적인 무한한 역량을 다 갖고 올 수 있는가. 아니다. 이게 바로 일정하게 규정된 방식으로 표현된다는 의미.

- 그러니까 양태의 자율성의 근거!!는 신이 준 긍정성과 역량에 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다 신의 역량을 표현한다는 점. 물론 그걸 얼마나 표현하는지 얼마나 갖고 있는지는 개체마다 다르지만. 나중에 가면 코나투스. 신으로부터 부여받은 역량. 그러니까 신과 피조물, 신과 양태들과의 관계는 신의 입장에서 보면 절대적인 긍정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자.

 

- ‘실체가 양태의 원인이다라는 말과 실체가 양태의 본질이다라는 말은 다르다. 신은 양태의 원인이기는 해도 양태의 본질은 아니다. 양태는 각각 개별본질이 따로 있다. 이 개별본질이 코나투스. 양태 자신의 존재 안에서 존립하려는 노력. 양태들의 본질이 코나투스.

- 그 근거를 꼭 으로 놓았어야 하는 이유. 이 당시에는 신이 만물의 근거, 만물을 사고하기 위해 거쳐가지 않을 수 없는 전제였기 때문에 신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스피노자가 이 당시 사람이 아니었다면 이를테면 동양철학자였다면 다르게 이야기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냥 자연만 이야기한다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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