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박물관 순례 1 - 선사시대에서 고구려까지 국토박물관 순례 1
유홍준 지음 / 창비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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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화유산답사기가 출간되기 시작한 지 30. 그동안 국내외를 두루 돌아다니며 펴낸 답사기가 총 스무 권에 달한다. 그럼에도 유홍준 교수는 "아직도 답사할 곳이 너무도 많다"라며 국토박물관 순례라는 제목의 답사기를 새로 시작했다. 기존에 내놓은 "답사기에서 다루지 않은 유적지를 선사시대부터 삼국·가야·발해·통일신라·고려·조선을 거쳐 근현대까지 시대순으로 찾아가"려는 것이다. 열두 권에 걸친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도 다 담지 못한 답사처가 여전히 남았다는 사실, 그 답사처들에서 풀어낼 이야기가 "이제까지 쓴 것만큼 더 써야"할 정도로 많다는 사실이 대단하다. 우리 국토와 문화유산에 대한 관심과 연구 열정이 그만큼 크다는 증거이기도 하고 체력 또한 여전하다는 말 같아서다.

 

국토박물관 순례는 우리나라의 역사를 선사시대부터 따라 답사한다. 1권에서는 구석기 시대, 신석기 시대, 신석기·청동기·초기철기시대, 고구려 시대를 다룬다. 저자는 이전 답사기에서 다루지 않았으면서 각 시대를 대표할 만한 유적지를 골랐다. 그렇게 선택된 답사 장소가 각 시대별로 연천 전곡리, 부산 영도, 울산 언양 그리고 중국의 단동, 환인, 집안이다. 연천과 부산, 울산은 책을 준비하면서 직접 다시 답사했지만 고구려의 주요 유적은 현재 중국의 동북공정의 영향으로 답사할 수 없었다고. 유홍준 교수는 대안으로 2000년의 '압록·두만강 대탐사단' 답사기를 가져와서 같은 유적지가 20여년 동안 변화한 부분에 대해 설명을 추가했다.

 

연천 전곡리의 구석기시대 유적은 "세계 고고학지도를 바꾼 주먹도끼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소개하고 있다. 막연히 선사시대 유적이 발견된 곳으로만 알고 있던 연천 전곡리의 역사를 상세히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미군 병사 그레그 보엔이 우연히 발견한 주먹도끼에 세계 고대사 지형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 그리고 이후 진행된 발굴 상황과 최근 건립된 전곡선사박물관 건립기가 소개된다. 이어 박물관 내부를 설명하면서 인류 진화의 과정을 도판과 함께 보여주고 출토 유물과의 관계를 설명한다.

 

저자는 구석기시대의 연천을 소개하는데 그치지 않고 가까이 있는 가볼만한 장소들을 함께 소개한다. 발굴에 힘쓴 고고학자 김원용의 일대기를 해설하고 인근의 '연천 주상절리', 고구려 시대에 축성된 '당포성', '호로고루', '은대리성'을 보여준다. 한 장소가 담고 있는 이야기를 쫒아 삼국시대에서 조선시대까지 넘나드는 것이다.

 

신석기시대 유적을 찾아 부산 영도를 살피고 울산 언양에서 신석기에서 청동기를 거쳐 초기철기시대의 유적유물을 둘러본다. 울산 반구대 암각화만을 알고 있었는데 그 인근에 천전리 각석과 대곡댐 건설로 인해 수몰된 지역의 유물이 소장된 울산대곡박물관이 있었다. 천천리 각석에는 청동시 시대 추상무늬와 신라시대의 문자가 새겨져 시대를 관통하는 유적으로 자리하고 있다.

 

책 뒷부분 절반 정도 분량을 차지한 고구려 유적 답사는 현재 불가능한 상황 때문에 더 흥미롭게 읽힌다. 저자는 고구려 역사 답사를 지역에 따라 세 부분으로 나눴다. 다수의 고구려의 성터가 자리 잡은 압록강 주변, 고주몽의 건국 신화가 깃들인 오녀산성과 환인 지역, 유리왕이 수도를 옮겨 지은 집안(국내성).

 

집안의 환도산성 자락에의 산성하 고분군에는 고구려 적석총 수천 기가 있다. 환도산성 꼭대기에서 찍은 고분군 전경은 어느 피라미드 집락 못지않은 위용이었다. 고구려 적석총이 수천 기씩 모여 있는 고분군이 몇 개씩 있다는 걸 알지 못해 놀라울 따름이었다. 저자는 고구려의 고분과 신라·백제의 그것을 비교해 설명한다.

 

좀 더 올라가 북쪽을 바라보자 산자락 아래로 수천 기의 적석총이 무리지어 있었다. 집안 산성하 고분군이었다. 그 장대함은 송기호 교수가 환인의 오녀산성과 함께 고구려의 웅혼한 기상을 보여주는 두 가지 중 하나로 지목한 것이다. 경주 신라 대릉원에서 볼 수 있는 화려한 집체미, 백제의 공주 송산리 고분과 부여 능산리 고분의 우아한 능선과 달리 고구려의 강인함과 장대함이 절로 다가온다.

pp.266-267

 

현재는 하나만 개방돼 있는 벽화 고분의 양식사 설명도 유익하다. 읽을 수록 새로운 지식이 새록새록한 건 한국사와 한국미술 공부가 그만큼 부족하다는 의미일 게다.

 

고구려 벽화고분은 350년 무렵부터 668년 멸망까지 300년간 조성되면서 초기 100년간은 여러 칸 무덤의 초상화, 중기 100년간은 두 칸 무덤의 풍속화, 후기 100년은 한 칸 무덤의 사신도 벽화로 이동하는 양식사의 흐름을 보여준다. 이러한 양식의 변화는 무덤의 주제가 초기는 피장자 개인, 중기는 내세의 삶이 영위되는 공적인 공간, 후기는 영혼의 세계를 구성하는 질서 등으로 변해간 것을 말해준다. 즉 고구려 사람들의 죽음에 대한 인식이 이처럼 점점 높은 차원으로 발전해갔음을 알 수 있다.

p.285

 

국토박물관 순례1권은 압록강을 따라 흘러가는 뗏목의 모습에서 마무리된다. 지난 2000년 유홍준 교수가 이 지역 답사를 다녀올 무렵 같은 지역 역사탐방을 다녀왔었다. 둘러본 루트는 비슷하지만 갖고 있는 답사자의 배경 지식에 따라 답사의 후기는 천만가지 차이가 난다. 다시 간다해도 이제는 직접 광개토대왕비를 직접 볼 수 없을 것이며 각종 유적에 접근할 수도 없다. 유홍준 교수의 답사기를 따라 오래 전 걸었던 고구려의 땅을 떠올려볼 뿐이다.

 

저자의 답사기는 동선을 상세히 소개하면서 답사 목적지에 더해 지나치기 아까운 인근의 유적지로 안내한다. 각 장 별로 그 시대에 중요한 역사 지식도 빼곡해 흥미를 위한 독서에도 지식을 위한 독서에도 충실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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