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삶
마르타 바탈랴 지음, 김정아 옮김 / 은행나무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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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쓰고 있어. 보이지 않음에 대한 이야기야. p.208 

브라질 작가 마르타 바탈랴의 소설 보이지 않는 삶에서 가장 매력적인 문장이다. '보이지 않음'을 알아보고 그것을 책으로 쓰려는 여성, 작가가 이야기하고 싶은 주제다. 이 문장에 호기심을 느끼는 독자는 본격적인 독서를 결정하기 전에 자신의 관심이 어느 쪽으로 기우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에 더 관심이 가는지 혹은 '보이지 않음'이 더 궁금한지. 마르타 발탈랴의 소설은 '보이지 않음'에 더 집중하는 것처럼 보인다.

 

2016년에 브라질에서 출판된 소설은 영화화돼 제72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주목할만한 시선' 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영화는 에우리지시와 기다 자매를 둘러싼 가족의 이야기에 집중했다. 가부장적인 가족과 사회 분위기 안에서 서로를 보듬는 자매애에 촛점을 맞췄다. 영화의 원작 소설은 더 다채로운 '보이지 않음'을 펼쳐보인다. 사랑을 배제한 선택으로 결혼 생활을 시작한 에우리지시와 열정 하나에 한 시절을 바친 자매의 대조적인 모습이 소설의 중심이다. 작가는 자매 이야기에서 그치지 않고 부모, 가깝고 먼 가족, 주변 마을 사람들에까지 폭을 넓힌다. 그들 모두, 특히 여성들의 인생은 '보이지 않음'에 의해 주조된 것이었다.

 

서사 틈틈이 신비로운 일들이 일어나는데 가장 흥미로운 예는 에우리지시가 의상 디자이너로 일하는 걸 남편 안테노르가 알게 되는 장면에서다. 안테노르는 자신의 집에 의상 제작을 의뢰하러 들른 여자들이 가득 찬 상황을 납득할 수 없었다. 그는 "내게 필요한 건 가정에 전념하는 여자"라며 "좋은 아내는 남편과 자식들 외에는 쳐다도 보지 않아야" 한다고 반복해 소리친다. 신비로움은 부부의 아이들에게서 발생한다. 안테노르가 소리치는 순간마다 아이들이 초췌한 모습으로 변해간 것이다.


"나는 일하러 가고, 너는 애를 봐야 해."

안테노르가 겨우 반복을 멈췄을 때 더 특이한 일이 일어났다. 그들이 소리를 한 번 지를 때마다 아이들의 상태가 더 안 좋아진 것이다. (…) 신의 보살핌만 받고 사는 아이들이었고, 자신의 운명을 운에 맡긴 아이들이었다. 이제 얼마 지나지 않아 빈민가의 아이들이나 다름없게 될 것이다.

pp.70-71

시인의 재능을 20대 초반 여섯 아이 출산에 바쳐야 했던 안테노르의 어머니 마리아 히타, 미혼모가 되어 오갈데 없어진 기다와 프란시스쿠를 돌보고도 매춘부였기 때문에 정체성이 숨겨진 필로메나, 부유했던 과거를 잊지 못한 채 아들을 담보로 자신의 인생을 보상받으려는 기다의 시어머니 에울랄리아에게도 현재는 보이지 않는 삶이 있었다. 그러나 정해진 미래는 출산이요, 운이 좋아야 가사노동을 면할 수 있고 남편과 아이들만 바라봐야 하는 가부장 체계의 한계는 여성의 삶을 모순으로 가득채웠다.

 

가부장 사회의 영향은 남성들에게도 예외가 아니었다. 사회적 규정에 맞는 아내를 요구했던 안테노르는 '영혼없는' 아내를 마주하고 당황한다. 책임을 다하되 감정도 활력도 없는 아내, 안테노르는 '아내'의 기준에 의문을 떠올리지만 그 이상 나아가지 못한다. 그는 문제의 핵심을 몰랐고 알고 싶지 않았다. 이러한 사고의 지체 현상은 기다의 첫사랑 마르쿠스에게도 나타난다. 돈으로 학위를 취득하고 의사가 된 그는 병원이 왜 잘 안되는지 몰랐고 자신이 사랑보다 안락한 일상을 선택할 사람이라는 것, 혈육에 대한 책임에 대한 의식이 없었다. '보이지 않는 삶' 이면에 '무사고(無思考)'가 있다.

 

에우리지시는 첫 프로젝트로 요리책을 썼다. 남편의 비웃음 덕분에 그 '작품'은 한 순간 쓰레기통 신세. 하지만 에우리지시는 자신의 노고가 깃들인 '작품'을 그렇게 보낼 수 없었다. 그는 거실 책장 뒤를 그 '작품'의 무덤으로 삼았고 좌절에 빠졌을 때 그 앞을 지켰다. 에우리지시는 책장 앞에 놓인 소파에 앉아 문학과 백과사전이 보여주는 세계 너머 자신의 작품을 기억하고 재기를 다진 것은 아닐지.


안테노르가 터트린 폭소가 그녀를 잠들지 못하게 했다.

거실의 시계가 세 번 울렸을 때, 그녀는 그것을 소명으로 받아들였다. (…) 에우리지시조차 왜 자신이 그 공책을 다시 가져왔는지 몰랐따. 에우리지시는 공책의 검은 표지를 행주로 닦으면서 생각을 잠시 미뤘다. 젖은 공책 속지 사이사이 종이를 끼워 넣은 뒤, 거실 책장을 장식하고 있는 백과사전 전집 뒤에 숨겨두었다.

방으로 돌아온 에우리지시는 그제야 잠들 수 있었다.

p.48

소설의 마지막은 에우리지시의 끝없는 타자기 소리에 묻혔다. 쉬지 않고 써낸 글은 어디에도 실리지 못한 채 책상 서랍 속에 쌓였다. 에우리지시의 성공을 바랐지만 그런 결말은 너무 안이하다. 세상은 그런 식으로 굴러가지 않으니까. 작가는 에우리지시의 책 '보이지 않음의 역사'가 지혜를 가진 눈에 띄리라는 예측을 '작가의 말'에 조심스럽게 남겼다. 그러나 아무렴 어떤가. 에우리지시가 글로 발굴한 '보이지 않음'의 역사는 사라지지 않는 화석이 되어 영원히 남을 텐데.


새로운 단계를 맞이한 에우리지시에게서 가장 거슬리는 게 있었다면 눈빛이었을 것이다. 이제 그녀는 상대방을 바라볼 때, 마치 마음속에 있는 것을 끄집어내겠다는 듯이 뚫어져라 쳐다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집안이 제대로 굴러가즌 이상, 아폰수가 머리 자르는 것을 잊지 않고 세실리아는 아무 데서나 헤프게 웃어대지 않으며 항상 적당한 길이의 치마를 입는 이상, 안테노르의 슬리퍼와 소파의 쿠션이 늘 같은 자리에 놓여 있는 이상, 에우리지시는 자신이 하고 싶은 눈빛을 마음껏 할 수 있었다.

p.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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