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 내가 쓴 글, 내가 다듬는 법
김정선 지음 / 유유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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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문장 쓰는 법』을 읽고나서 저자 김정선이 전문분야인 교정·교열만 잘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았다. 오랜 기간 다른 사람의 문장을 돌보는 동안 그 자신의 문장도 함께 자랐던 모양이다. 아니면 문재를 타고 났던지. 글자 하나하나를 예사로 보아 넘기지 않는 저자의 섬세함에 호감이 갔고 문장에 대한 이야기를 더 들어보고 싶었다. 


다음으로 순서로 집어든 책은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다. 이런 흥미로운 제목의 책이 있다는 건 진즉 알고 있었지만 이상한 문장을 잔뜩 보고나면 나의 이상한 문장도 참을 수 없게 될 것만 같아 읽기를 망설였다. 배워서 쓰는 것도 아니고 교정·교열을 받지도 않는 문장들을 계속 생산해내고 있는 바 그 글줄을 이상하게 보기 시작하면 더 이상 아무 것도 표현하지 못할 듯했다.(사실 책을 읽고 나니 자꾸 이상함에 집착하게 되긴 한다) 그래도 '내가 쓴 글, 내가 다듬는 법'이라는 부제처럼 글을 가지런하게 하고 싶은 날도 언젠가 올지 모른다며 책장을 넘겼다.


역시나 책은 단순히 문법을 논의하고 교정의 기술을 나열하지는 않았다. "문장 안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면서 문장을 어색하게 만드는 표현"을 목록으로 만들어 제시하고 한편으로는 저자와 글 사이에 존재할 법한 '관계'를 다룬 소설 같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런 저런 표현들을 쓰면 어색한 문장이 된다는 내용을 읽으며 머리가 복잡해지려는 순간 조금 전에 읽었던 소설이 이어진다. 독자의 마음을 쥐락펴락하는 저자랄까. 이런 '기술'은 앞서 출간된 『동사의 맛』에서도 발휘됐다고 한다. 저자는 '꼼수'라고 칭했지만 이 책의 매력이라고 부르고 싶다. '꼼수'에 해당하는 '소설 같은 이야기'도 따지고 보면 문장과 저자를 소재로 하고 있고 이론보다 실전에 가까운 이야기를 들려주기 때문이다.


책에 정리된 글 다듬는 '비법'은 '적·의를 보이는 것·들', '굳이 있다고 쓰지 않아도 어차피 있는', 지적으로 게을러 보이게 만드는 표현', '내 문장은 대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 걸까?', '당하고 시키는 말로 뒤덮인 문장' 등이다. 교정·교열의 지침들을 설명하면서 저자는 '중독에 빠지지 말라'고 주문한다. 습관적으로 쓰이는 표현들과 다양한 표현을 생각하지 않으려는 수사를 사용하지 말라는 말이다. 외국어 표현도 "다채로운 한국어 표현을 위해 필요하다면" 쓸 수 있어야 한다고 후한 인심을 발휘하기도 한다.


문제는 습관적으로 반복해서 쓰는 데 있다. 어떤 표현은 한 번 쓰면 그 편리함에 중독되어 자꾸 쓰게 된다. '적·의를 보이는 것·들'이 대표적이다. 그러니 아예 쓰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 편리함의 중독자인지 살피라는 것뿐이다.

p.22


일각에서는 외국어에서 온 표현이니 쓰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하는데, 한국어 이용자가 수억 명 정도 된다면 모를까 기껏해야 1억 명도 안되는 현실에서 언어 순혈주의를 고집하다가는 자칫 고립을 자초할 수도 있따. 외국어에서 온 표현이라도 더 다채로운 한국어 표현을 위해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장려해야 하지 않을까.

p.56


외국 문학 전공자들의 번역에 대해 꼬집는 부분은 항상 생각해오던 바였던지라 시원하게 느껴졌다. 해당 작가 전문가라는 분의 번역에 실망할 때가 종종 있었다. 연구는 깊을지 모르나 한국어 구사에 문제가 있어 독자에게 지식의 풍성함을 전달할 수 없다면 그 연구라는 게 다 무슨 소용일까. 작가 전문가의 번역을 번역 전문가가 이해하기 쉬운 문장으로 만들어줬으면 싶은 소망을 느껴본 독자라면 이 대목에 크게 공감할 것이다.


외국 문학 전공자들에 대한 편견? 솔직히 없다고는 말 못하겠다. '옮긴이 해설'이나 '옮긴이의 말'에서는 멀쩡한 문장을 구사하면서 정작 번역문은 절뚝거리는 문장으로 채우는 경우가 많았다. 이게 같은 사람의 문장이라고? 늘 의심하곤 했다. 전문 번역가보다 관련 분야 연구자들이나 교수들의 문장이 더 안 좋았다. 오죽하면 해당 작가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사람에게는 되도록 번역을 맡기지 말라는 말이 다 있겠는가. 번역하 생각은 않고 각주를 통해 논문을 쓰려 한다는 게 편집자들의 불만이었다.

p.25


"모든 문장은 다 이상합니다"라고 단언하는 대목에서 안심했다. "정답"고 없고 "표준적인 문장"도 없다고 했다. "규칙적으로 일관되게" 다듬어진 문장은 애초 글쓴이의 머리 속에 있던 생각과 어느 정도 거리를 두게 되고 글을 읽는 사람의 머릿 속에서 또다시 거리가 벌어진다. 나만의 문장은 다른 시간대에서 읽는다면 나 조차도 일해하지 못하는 '난해'로 남게 되지 않을까. 나만의 문장을 세상에 이해시키기위해서는 합의된 언어 규칙에 맞춰 변신을 시도해야 한다. 저자는 회사원이 히어로가 되는 변신을 제안하지 않는다. '습관'과 '중독'을 유의하라는 정도의 주문은 '독자에게 최소한의 예의를 갖추기' 위한 '변신'의 방법으로는 소소한 것이 아닐지.


모든 문장은 다 이상합니다. 모든 사람이 다 이상한 것처럼 말이죠. 제가 하는 링은 다만 그 이상한 문장들이 규칙적으로 일관되게 이상하도록 다듬는 것일 뿐, 그걸 정상으로 되돌리는 게 아닙니다. 만일 제가 이상한 문장을 정상으로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면, 저야말로 이상한 사람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

'표준적인 문장' 같은 건 없노라고 말이죠.

정답같은 건 없습니다. 그건 심지어 맞춤법도 마찬가지입니다. 맞춤법이란 그저 의사소통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만든 규칙일 뿐이죠. (…) 다만 책을 사서 읽는 독자에게 최소한의 예의를 갖추는 것이라고나 할까요.

저는 제가 하는 일에 그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지 않습니다.

p.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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