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문장 쓰는 법 - 못 쓰는 사람에서 쓰는 사람으로 땅콩문고
김정선 지음 / 유유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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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소설의 첫 문장』 등으로 익숙한 교정 전문가이자 작가의 책이다. "이십 대 후반부터 27년간 남의 글을 손보는 일을 하며" 살았다는 분이 알려주는 '문장 제작 비법서'일까. 열 문장 정도만 매끄럽게 쓸 수 있으면 '쓰는 사람'으로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열 문장이 스무 문장이 되고 스무 문장이 삼십 문장, 그렇게 글이 글을 물고 증식하는 건 일도 아닐테니. 글쓰기와 책 쓰기 방법을 말하는 수 많은 책과 다른 지점은 무엇일까 찾아보는 것도 독서 포인트다. 글만 쓴 사람이 아니고 남의 글을 평생 들여다 본 전문가니까. 그런 사람이라면 좋은 글로 가는 지름길은 아니라도 중대한 팁 정도는 얻을 수 있겠지.


저자는 '들어가는 글'에서 집필의도를 밝힌다. 조근조근 이야기하는 투로 적은 문장에서 친밀감마저 느껴진다. 한국어 단어의 나열이 아닌 제대로 된 '한국어 문장 쓰기 방법'을 배울 수 있으라는 기대도 솟아난다.


예로 든 분들 모두 무슨 큰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단지 한국어 문장을 쓰는 일에 익숙지 않아서 낭패를 보시는 것뿐입니다. 그런데 글쓰기 책을 보면 독자가 한국어 문장을 쓰는 데 이미 익숙해 있다고 전제하고 내용을 전개하고 팁을 제시하고 있어서 큰 도움이 안 되겠더라고요. 글쓰기 책을 추천해 드리기가 영 주저되곤 했죠. 고민 끝에 이렇게 제가 직접 쓰게 되었네요.

p.11


저자는 '글쓰기 어려운 이유'는 '번역'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나만의 의견을 모두에게 통용되는 언어로 표현"하는 일을 '번역'이라고 정의하고 '나만의 것'과 '모두의 언어' 사이에서 타협하라고 제안한다. '모두의 언어'에 익숙해지는 방법으로 저자는 한 문장을 길게 늘여써 보라고 말한다. 문장쓰기의 금언인 '짧게 써라'와 대조적인 방법이다. 이러한 처방을 내린 이유를 읽어보면 저자의 생각에 동의하게 된다.


'단문교'短文敎라는 종교 단체가 결성된 게 아닌가 의심이 들 정도로 단문에 대한 칭송은 거의 숭배에 가깝죠. 하지만 이는 글을 어느 정도 쓰고 다루는 사람에게나 해당되는 이야기일 뿐 아니라. 그 자체가 진리도 아닙니다.(…)

게다가 글을 자주 써 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짧은 문장이 외려 더 부담이 될지도 모릅니다. (…) 짧은 문장으로 두세 문장 정도 쓰고 나면 그다음 이어갈 짧은 문장들이 부담으로 다가올 게 뻔합니다.

pp.21-22


책은 예시문을 자세히 제시하면서 생각이 흐르는 대로 문장을 길게 쓰고 나서 다시 자르고 다듬는 과정을 설명한다. 같은 내용의 원고가 초벌에서 교정된 상태로 바뀌는 단계들이 흥미롭다. 저자가 권하는 여러 방법들을 차근차근 따라 해보는 것면 도움이 되겠지만 문장을 다루는 방법을 들여다보는 자체가 재미있을 뿐 아니라 중간중간 예시 글에서 드러나는 '김정선'이라는 사람 자체도 인상적이다. 


말과 글의 다름을 설명하는 대목은 잘 읽히는 글을 쓰고자 한다면 기억해둘만 하다. 말은 마주하는 상대가 있고 목소리를 비롯해 비언어적 수단과 주변 환경까지 의미를 전달하는 수단을 한꺼번에 여럿 동원할 수 있다. 그러나 글은 다르다. 


반면 글은 이 모든 조건을 단 하나도 갖고 있지 못합니다. 오직 읽는 행위 하나만으로 독자를 정해진 시간동안 묶어 두어야 하고 그 과정에서 공감도 얻고 이해도 얻어야 합니다. 독자의 시간, 즉 독자가 글을 읽는 동안 어떤 시간을 경험하게 될지를 고려하지 않는다면 불가능한 일이죠.

pp.82-83


저자는 자신의 말을 녹취해볼 것을 권한다. 그리고 자신의 대화 녹취록을 보여주면서 말이 글이 되는 과정을 설명한다. 중언부인을 정리하고 쉽게 읽을 수 있는 흐름을 부여한다. 글 쓰기는 "불특정 독자를 고려하여 그들이 끝까지 읽을 그 시간을 견딜 수 있는 질서"를 말에 부여하는 작업이다.


책 후반에는 짧은 문장 쓰기에서 주의해야할 사항을 제시한다. 복잡한 글쓰기 방법보다 이런 간단한 도움말부터 실천해보는 것도 좋으리라.


우선 앞에서 언급한 바 있는 접속부사와 지시대명사의 쓰임입니다. (…) 꼭 써야 할 때가 아니라면 쓰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둘째, 말없음표, 말줄임료라고 부르는 '……'는 되도록 쓰지 않는 게 좋습니다. (…)

셋째, 주어를 반복적으로 쓰게 되면 의도하지 않았어도 해당 주어가 강조될 수 있으니 문장 안에 숨길 수 있다면 숨기는 것이 좋습니다. (…)

넷째, (…) 짧은 문장으로 이루어진 글을 쓸 때는 이 서술격 조사를 생략하거나 아니면 다른 종결어미 (가령 'ㅡㄹ까'나 'ㅡㄴ가')로 바꿔 쓰거나 그도 아니면 아예 서술격 조사나 종결어미를 과감히 생략한 문장을 중간중간 섞어 주시는 게 좋습니다.

p.137-138


대명사, 명사, 수사와 같은 체언보다 동사와 형용사같은 용언 위주의 문장을 구사하라는 (살짝) 전문적인 제안에 이어진 간단한 팁도 글을 퇴고할 때 확인해 봐야할 내용이다.


의존명사 '건'을 얼마나 많이 썼는지

조사 '의'를 얼마나 많이 썼는지

'대한' 혹은 '대해'를 얼마나 많이 썼는지

p.154


책에서 제시한 방법을 다 고려해 뭔가를 써보려하면 아무 것도 못쓸 것 같은 기분이다. 그럼에도 하얀 화면을 앞에 두고 깜박이는 커서와 맞서는 건 책에 인용된 철학자 미셸 푸코와 같은 생각을 하기 때문일 게다. "글쓰기를 통해 어제의 나와 다른 오늘의 나를 발견하고 창조"하고 "'내게조차 낯선 나'와 매번 맞닥뜨리기를 열망하기 때문일 게다.


나는 내 자신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그리고 더 이상 이전과 똑같은 것을 생각하지 않기 위해서 글을 쓴다.

(폴 벤느, 『푸코, 사유와 인간』, 이상길 옮김, 산책자, 2009)

p.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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