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여행자들 오늘의 젊은 작가 3
윤고은 지음 / 민음사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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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영국 추리작가협회 주관의 대거상을 수상하고 신작 소설 『도서관 런웨이』와 산문집 『빈틈의 온기』 가 연이어 출간되면서 알게 된 작가 윤고은. EBS 라디오에서 책프로그램 'EBS북카페'도 2019년부터 진행해왔다. 활동 반경이 넓어 한 번쯤 들어봤을 법 한 이름인데 눈여겨 두지 못했기 때문일까. 이제야 기억에 남겼다. 


소설 『밤의 여행자들』 초판은 2013년에 민음사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 3권으로 출간됐다. 책 뒷 면에 붙은 시리즈 목록에서 이미 읽은 책들을 일별해보니 장강명의 『한국이 싫어서』와 정세랑의 『보건교사 안은영』보다 앞서 출간됐다. 『한국이 싫어서』를 읽은지가 아주 오래인듯 느껴지는데 그보다 먼저 세상에 나온 책을 지금에서야 읽는다.


소설은 '재난 관광' 프로그래머 고요나가 회사 '정글'에서 퇴물 취급을 받는 '재난' 상황에서 시작한다. '정글'은 일단 회사에 필요한 사람이라는 인정을 받으면 주거, 복지 등 필요한 모든 걸 제공하고 필요를 다한 직원은 애매한 일에 시달리다 퇴사하게 만드는 약육강식의 법칙이 적용되는 곳이다. 요나는 자신의 기획을 빼앗기고 상사에게 성추행을 당했으며 담당 업무가 아닌 고객상담전화에 시달린다. 그러면서도 회사에서 밀려난 다른 직원들과 자신은 다르다는 생각을 한다. "성추행당한 무리, 즉 퇴물이나 패배자, 떨거지들로 규정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요나의 추락은 회사에서 '옐로카드'를 받았을 때가 아니라 패배자들과 연대를 거부했을 때 시작된 것같다. 어떻게든 정글에 남을 수 있을 거라고 회사에 자신의 능력을 보여줄 기회가 더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거다. 타인의 고통을 멀리하고 그것이 자신의 것이 되지 않으리라는 막연한 기대를 갖는 태도는 그녀가 해왔던 일 '재난 관광'과 비슷하다. 사람들은 너무 가깝지 않게 어느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타인의 고통을 구경한다. "너무 가까운 것은 무서"우니까. 


재난 여행을 떠남으로써 사람들이 느끼는 반응은 크게 '충격 → 동정과 연민 혹은 불편함 → 내 삶에 대한 감사 → 책임감과 교훈 혹은 이 상황에서도 나는 살아남았다는 우월감'의 순으로 진행되었다. 어느 단계까지 마음이 움직이느냐는 사람마다 다르지만, 결국 이 모험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재난에 대한 두려움과 동시에 나는 지금 살아 있다는 확신이었다. 그러니까 재난 가까이 갔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안전했다,는 이기적인 위안 말이다.

p.61


사람들은 재난 지역으로 여행을 떠나지만, 그 여행 중에 자신들이 또 다른 재난을 남겼다는 것은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p.72


요나는 자신의 재난을 직시하지 않고 상사가 제안하는대로 다른 재난 관광을 평가하는 여행을 떠난다. 오래 전 발생한 씽크홀로 재난을 겪은 지역 '무이'로 떠난 요나는 그곳에서 '재난 관광지'의 이중성을 발견한다. 관광지의 주민들은 재난을 연기하고 있었다. 


"글쎄요, 사실 전 여기에 어떤 재난이 있는지 잘 모르겠어요. 관광객들이 몰려오기 전에는 그냥 아무것도 없었거든요. 아무것도 없을 뿐이지, 그게 재난인 건 아니잖아요."

(…) 무이는 가난했다. 그러나 그건 어쩌면 외부인의 시선일지도 몰랐따. 외부인의 관점에서 무이를 재난 지역이라고 분류하는 것은 오만일 수도 있었다.

pp.150-151


주민들이 살아가는 일상은 재난과 상관없는 것이었지만 관광으로 돈을 벌어들이는 기업은 일상을 재난으로 탈바꿈시키려 한다. 요나는 이 모든 진실을 알아채고도 " 자신이 끼어들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오래 된 재난으로 '무이' 지역이 더 이상 관광객을 끌어 들일 수 없게 되자 한 기업이 재난을 계획한다. 더 크고 피해자도 많은 재난, 즉 사람들이 관심을 끌만한 재난을 말이다. 재난은 어느 정도 규모가 돼야하고 새로워야 하며 이야기가 있어야 이슈가 된다. 소설 속 자연재해 뿐 아니라 우리 일상의 사건 사고에도 똑같이 기준이 적용되지 않는가.


"모든 재난이 눈길을 끌 수는 없잖아요. 이슈가 되는 재난들은 따로 있어요. 보통 이 세가지 요소를 충족시켜야 하죠. 일단, 규모가 어느 정도 이상은 될 것. (…) 어느 정도 규모가 있어야 바쁜 사람들이 시간을 내서 동정하고 주목해 준다 그겁니다. 세상이 너무 자극적이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일이죠. 관심이란 건 정직한 거니까요. 둘째로 새로운 지역이어야 한다는 겁니다. (…) 연민에도 권태가 올 수 있으니까요. (…) 마지막은, 이게 가장 중요한 건데 바로 스토립니다. 재난이 벌어진 후에 사람들이 신문을 뒤적이는 건, 재난의 끔찍함을 보려는 목적도 있지만 그 만신창이 속에서 피어난 감동 스토리를 찾아내기 위해서이기도 하죠. 그건 우리가 자주 잊고 사는 거거든요."

pp.143-144


무이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예정된 재난을 파악하지 못한다. 기업은 단계적으로 정보를 차단해 재난에 휩쓸릴 사람들이 사건의 전말을 연결하지 못하게 만든다. 인공 재난을 조장하는 무리에 끼어서 한국에 돌아갈 날만 기다리던 요나는 자신과 마음을 나눴던 사람이 재난에 캐스팅되었음을 깨닫는다.


사람들은 과거형이 된 재난 앞에서 한없이 반듯해지고 용감해진다. 그러나 현재형 재난 앞에서는 조금 다르다. 이것이 재난임을 인식하지 못하거나, 인식해도 방관하거나, 인식하면서도 조장한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싱크홀은 저편 사막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에 있었다.

p.175


요나는 재난을 만들어내는 자의 모습이 자신과 같다는 걸 깨닫고 다른 선택을 하기로 마음 먹는다. 자신의 역할을 바꾸기로. 멀리서 객관적인 눈으로 바라보던 사건에 뛰어들기로. 그 순간 내내 마음 속에 있은 '억울함'은 비로소 '안도감'으로 변한다. 


이건 내 역할이 아니라고 그렇게 중얼거리다가, 요나는 그 억울함 끝에 설명할 수 없는 안도의 감정을 만난다. 자기 대신 럭이 살 수 있다면, 그렇다면 조금은 다행이지 않을까 하는. 스스로 그렇게 믿지 않았던 감정의 굴곡 위로 지금 요나는 흘러간다.

p.199


재난의 현장을 관광한다는 설정은 현실과 동떨어진 디스토피아적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읽는 내내 책의 내용은 현실을 재난 상황을 중계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크고 작은 사고가 났을 때 우리는 소설에서 말하는 재난이 이슈가 되는 세 가지 원칙에 따라 뉴스를 선별하는 건 아닐까. 그리고 곧 객관적인 자세로 멀리 떨어져서 관광을 시작하고 있지는 않은지. 소설 초반에 재난이 닥쳤던 한국의 진해와 이야기 마지막에 무이에 닥친 '쓰나미'가 연결돼 있다. 재난 관광하는 사람들이 살았던 곳이 재난 관광지가 될 수도 있다. 고통을 객관화하고 있지 않은지 숙고해야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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