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퍼민트 (양장)
백온유 지음 / 창비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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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퍼민트 차를 진하게 우린 후 나무 막대에 거즈를 감아 적셨다. 그리고 엄마의 입으로 가져가 맛보게 했다. 미각을 깨우는 데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는 매일 같이 엄마가 좋아하던 페퍼민트 차를 우렸다. p.11


이시안이 초등학교 6학년 때 치사율이 5%가 넘는 감염병 유행이 시작되었다. 해외여행 사실을 숨기고 격리를 하지 않은 친구가족과 접촉하여 이시안의 가족도 감염이 되었다. 이시안과 아빠는 회복되어 퇴원했지만 엄마는 혼수상태에 빠졌고 식물인간 판정을 받았다. 그 후 이시안은 육년 간 엄마의 간병을 하고 있다. 엄마는 산소 호흡기에 의해 숨을 쉬고 스스로 음식을 삼키지 못 한다. 백온유 작가의 장편소설 『페퍼민트』는 코로나19 팬데믹을 직접적인 배경으로 삼지는 않지만 그 자장안에서 간과되기 쉬운 지점들을 건드린다.


모두 결국에는 누군가를 간병하게 돼. 한평생 혼자 살지 않는 이상, 결국 누구 한 명은 우리 손으로 돌보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야. 우리도 누군가의 간병을 받게 될 거야. 사람은 다 늙고, 늙으면 아프니까. 스스로 자기를 지키지 못하게 되니까. pp.191-192


『페퍼민트』는 감염병의 전파자와 감염자를 등장시켜 감염병의 참혹함 이면의 간병노동에 대해 이야기한다. 일상에 늘 존재하지만 죽음만큼이나 불편해하고 회피하는 간병노동이 감염병이라는 특수한 상황에 잘 녹아있다. 간병이 백온유작가의 말처럼 ‘상상으로 면역력을 기를 수’ 있는 일인지는 모르겠으나 간병을 하게 되는 가족들이 마주하게 되는 어려움은 생각해볼 문제이다.


나는 나의 20대를 웬만하면 생각하지 않으려고 한다. 상상할 수 없다는 게 더 정확한 말일 것이다. p.158


내가 참을 수 없는 건 이 365일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예측할 수 없다는 사실이야. 20대의 이시안과 30대의 이시안, 40대의 이시안이 이 방 저 방을 오가며 소변 통을 비우는 모습을 내가 상상하고 만다는 거야. p.211


엄마가 없어지면 내겐 무엇이 남지. 간병 이후의 삶을 생각하면 홀가분하기보다는 또 다른 막막함이 나를 덮친다. p.216


학교가 끝나면 학원대신 병원에 가서 엄마를 간병하는 이시안에게 입시학원이나 성적, 수능, 대학, 장래희망은 다른 세계 이야기다. 이시안은 엄마의 간병이 언제 끝날지 예측할 수 없어 미래를 꿈꿀 수 없다.


이시안은 6년 전 감염병 전파자가 되자 갑자기 이사를 간 김해원가족을 우연히 만나 평범한 고등학생의 일상을 경험한다. 이시안은 엄마를 간병하는 상황을 숨기고 보통의 고등학생을 흉내내지만 자꾸만 어떤 선을 넘어가려고 하는 것 같아서 두렵다. 병원비를 대느라 어렵게 장만한 아파트를 처분했던 이시안의 아빠는 실직하나 취직이 되지 않는다. 빈곤으로 간병비와 생활비를 감당하기 어려워진 이시안의 아빠는 ‘그만하는 게 어때.’라며 엄마의 산소통 밸브를 잠그려 한다.


대한민국에서 간병의 책임은 전적으로 가족에게 지워지지만,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 있는 선택권은 환자와 가족에게 주어지지 않는다. 환자가 산소호흡기를 하게 되면 연명치료를 중단하고 싶어도 산소호흡기를 떼는 것은 불법이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하여 연명치료를 거부할 수는 있지만 시작된 연명치료를 환자나 가족의 결정으로 중단하지 못 한다. 심장이 멈추면 심폐소생술을 하고, 자가 호흡을 못하면 기계호흡기를 달고, 음식을 삼키지 못 하면 튜브로 강제 주입한다. 치료에 동반되는 통증과 경제적 부담과 일상생활을 포기해야하는 간병노동의 고통은 환자와 가족의 몫이다.


기계호흡기가 의료에 사용되기 전에는 인간은 스스로 호흡을 못하게 되면 임종하였다. 인위적으로 영양분을 신체에 주입하는 시스템이 의료에 도입되기 전에는 음식을 스스로 삼키지 못하면 인간은 임종을 맞았다. 스스로 숨을 쉬지 못하고 영양분을 공급하지 못하면 임종을 맞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임종의 시기를 예측할 수 있었고 가족은 슬플지언정 죄책감에 빠지거나 범죄자가 되지 않았다. 기계호흡기가 의료에 도입된 것이 1940년대 전후이니 80년 전에는 연명치료를 하지 않고 임종을 맞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이시안의 엄마가 연명치료를 시작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심장이 멈추었을 때, 스스로 호흡이 어려울 때, 음식을 삼키지 못 할 때 연명치료를 하지 않고 임종을 했더라면 이시안 가족의 삶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이시안의 엄마는 딸이 미래를 포기하고 자신을 간병하기를 원할까? 식물인간인 상태로 연명치료로 인한 고통을 계속 견디기를 원할까? 기계호흡기와 인위적인 영양공급과 약물로 임종까지의 시간을 연장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인가?


백온유 작가의 소설 『페퍼민트』는 누구나 겪을 수 있는 간병이라는 상황에 맞닿은 개인의 삶과 도덕, 정치, 법, 경제 문제를 고민을 깊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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