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본스
애나 번스 지음, 홍한별 옮김 / 창비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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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나 번스의 『밀크맨』은 북아일랜드 분쟁 현장의 일상을 들여다보게 한 소설이었다. 대의를 추구한다는 주장은 약자의 삶을 가렸다. 자고 나면 시체가 발견되는 동네에서 소녀의 삶은 존중받지 못했다. 다들 그럴 거라는 추측과 그래야 한다는 강박이 소녀의 남다름을 짓눌렀고 사태는 일촉즉발의 상황으로 치달았다.


작가는 전쟁의 불안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막혀있는 심리와 누구에게도 보호를 청하지 못하는 소녀의 혼돈을 그렸다. 불친절하게 덜컹거리는 문장은 소녀의 마음이 흐르는 그대로는 드러냈고 읽는 사람조차 불편하게 만들었다. 소녀가 느끼는 어두움을 문체에서 오롯이 느낄 수 있었던 덕분에 소설의 결말이 더 반가웠었다. 작가가 구축한 세계의 갑갑한 공기를 문장으로 겪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문장과 소설이 추구하는 바가 훌륭하게 합치된 소설이었다.


애나 번스는 작품을 빨리 내는 작가가 아니어서 후속작을 많이 기대하지 않았는데 이전에 출간한 작품이 번역돼 나왔다. 데뷔작 『노 본스』. "작가 자신이 나고 자란 벨파스트의 마을 아도인을 배경으로 한 소녀와 이웃들의 일상을 통해 북아일랜드의 무장독립투쟁 시기를 그린 첫번째 장편"이다. 그러고 보니 『밀크맨』 이전의 두 소설이 합쳐저 세 번째 소설을 만들어 낸 것처럼 보인다. 『노 본스』에서 작가의 고향이기도 한 아도인의 상시 전쟁 상황을 마을 사람들의 목소리로 그렸다면 두번째 소설 『작은 구조물』은 "폐쇄적인 범죄자 가족 내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세번째 소설 『밀크맨』은 무장투쟁 중인 북아일랜드 어느 마을의 한 소녀가 겪는 일을 소녀의 시점으로 다룬다. 『노 본스』는 『밀크맨』이 나오기까지 작가의 성장을 들여다볼 수 있는 소설인 동시에 『밀크맨』 이야기의 절반을 다룬 책으로 보였다.


출판사에서 받은 서평도서는 출간본의 앞부분만을 가제본이었다. 작품 전체를 읽지못했으므로 초반의 설정들이 어떤 결말을 위해 준비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등장 인물들이 처한 상황 설명만으로도 충분히 흥미로웠다. 소설은 아도인에 사는 어밀리아라는 이름의 일곱 살 아이의 시점에서 시작한다. 1969년, '트러블'이라 불리는 "북아일랜드 독립 투쟁을 둘러싼 혼란기"가 열린 때다. "신중하고 조심스러우며 끈덕지게 의심하는 성격"의 어밀리아는 "평소처럼 지낼 수 없을 정도로 위험한 일"과 "길 어귀에서 못 놀 정도로 나쁜 일"을 상상할 수 없었다. 그러나 아이의 생각과 달리 트러블은 이후 30년간 계속됐다. 트러블은 계속해서 더 "과격한 죽음"이 발생하는 기간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죽음을 당하지 않으려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지, 왜 열여섯 먹은 아이가 60년, 70년 남은 시간을 살고 싶어하지 않는지 알 수가 없었다.

(…)

세 사람은 그날 오후에 밀타운 공동 묘지에 묻혔다. 다들 처참한 일이다, 끔찍한 일이다, 안타까운 일이다, 영영 잊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아니었다. 그렇지 않았다. 모든 일이, 언제나 그렇듯, 그다음의, 새로운, 과격한 죽음에 묻혔다.

pp.146-147


이야기는 아이의 시점에서 아이의 친척과 마을 사람들 각각의 이야기로 시야를 넓힌다( 『밀크맨』에서 주인공 소녀의 시각에서 마을 사람들을 묘사한 점에서 차이가 있다). 하나의 이야기가 다음 이야기로 건너갈 때마다 시간이 흘러가고 어밀리아는 자라난다. 트러블 초기에는 영국군으로 참전한 친척이 아도인 마을을 방문할 수 있었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상황은 엄혹해진다. 영국군은 적일뿐 더이상 친척이 아니었고 과거 혈연의 친근함을 기억하던 청년은 한때 인사를 나눴던 아이에게 목숨을 잃는다.


주변에 산재한 폭력은 가정에도 스몄다. 어밀리아의 부모와 형제들은 서로서로에게 폭력을 가한다. 부모는 자녀들 사이에 일어나는 일을 못본체 외면한다. 가족간 폭력은 상시적이었고 다른 형제 자매들과 달리 폭력에 익숙해질 수 없었던 어밀리아는 폭력을 거부하듯 음식을 거부하게 된다. 30년가 지속된 폭력에 노출된 사람들이 변화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도 작가의 의도 가운데 하나였을까. 일상을 넘어선 폭거를 상상할 수 없었던 아이는 폭력 없는 삶을 상상할 수 없게 된다. 마을 사람들은 죽음과 떨어진 일상을 무시한 채 살아간다. "일상적인 것"이 삶을 구하지 못한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아이의 시야에 아버지의 죽음이 박혀들지 못하게 하려는 시도는 일상의 귀함을 역설적으로 증명한다. 비록 아버지의 노력은 실패하지만.


(ㄴ) 집에서 죽을 수는 없다, 어린 아들이 아무 생각 없이 집에 왔다가 발견하면 안되니까. 그래서, 늘 그러듯 일상적인 것들ㅡㅡ이웃 사람들, 하늘, 분홍색 노을, 팔을 스치는 늦여름 산들바람ㅡㅡ을 무시하며 어떤 것에도 눈을 주지 않고 길을 따라 걸었다. 앨로이시어스 팰런의 세계에서는 그게 당연한 일이었다. 일상적인 것들을 뭐 하러 보나? 그게 지금 나를 구해줄 수도 없는데.

p.131


아도인 마을 사람들은 어떤 모습으로 트러블의 끝을 맞이하게 될까. 어밀리아는 세상에 대한 거부로 시작됐을 거식증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 작가는 『밀크맨』의 결론을 초기작에서부터 보여줄 것인가. 차마 읽어내고 상상 속에 재현해보기 두려운 장면들을 작가 애나 번스는 차분한 문장으로 적어냈다. 『밀크맨』의 원형이 되는 인물들을 찾아보고 부커상 수상작으로 변모할 작품의 모태를 눈여겨볼 수 있다는 점은 『노 본스』 읽기의 또 다른 수확이 될 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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