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남자고, 페미니스트입니다
최승범 지음 / 생각의힘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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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을 대하는 남성들의 입장이 궁금했다. 고대부터 누려와 본능처럼 고착된 권력관계가 뒤집히는데 분노하는 쪽이 아닌 페미니즘을 이해하고 알리려는 남성들, 그들이 궁금했다. 그들은 어떤 생각으로 페미니즘, 여성주의를 받아들리려는 걸까. 자신들이 변하지 않으면 쉽게 달라지지 않을, 애써 들여다보고 공부하지 않으면 부당하다는 걸 알아채기 어려울만큼 생활에 밀착돼 있는 (남성의) 유리함을 포기할 생각을 할 수 있었던 걸까. 어떤 교육을 받고 어떤 사고 체계를 구성했기에 공정함에 대한 감각을 그토록 예리하게 벼릴 수 있었던 걸까. 최승범 저자의 책은 이런 궁금증들을 해소시켜줬다.


저자는 놀랍게도 선생님이시다. 오래 전 선생님에 대한 안좋은 선입견을 가지고 있는 나로서는 이런 다른 생각을 '선생님'이 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신기했다. 세대가 바뀌었기 때문일까 싶다. 아무튼 최승범 '선생님'은 남자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거부감없이 교육과정에 페미니즘을 녹여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분이었다. (아주 바람직하며 존경스러운 분이다.)


"남자니까 잘 모르"고 그러니까 "배워야"한다는 걸 알았던 선생님은 "남자는 페미니스트로서 한계가 있"지 않을까를 고려하는 사람이다. 스스로의 말과 생각이 가부장적 사고방식에 고착돼 있어 실수하지 않을까 주의를 기울일 줄 아는 사람이다. 한국사회에서 여성혐오가 "공기처럼"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걸 깨달을 줄 아는 사람이다.


오랫동안 공부하고 성찰했으니 여성혐오로부터 자유로울 거라 여겼는데 오만한 생각이었다. 30년 넘게 한국 남자로 자라며 공기처럼 마신 여성혐오는 사고의 기저에 뿌리박혀 쉬이 사라지지 않는다.

pp.28-29


선생님은 페미니즘이 필요한 이유를 '평등을 위해서'라고만 주장하지 않는다. 남성의 자유를 위해서 필요한 일이라고 말한다. 감정을 억제하고 공감능력이 저하되어 상대를 이해하기 힘든 상태에서 벗어나야하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제시한다. 그런데 매우 바람직한 이런 근거들이 실제 힘을 발휘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나는 회의적이다. 가부장제를 제2의 천성으로 장착한 사람이 겨우 "좁은 틀에 갇힌 남성성"을 구출하자고 여성과의 공정한 위치를 인정하고 싶지는 않을 것 같다.


그래서 페미니즘은 남성에게도 유용하다. 힘과 용기, 의지와 절제로 대표되는 견고하고 좁은 틀에 갇힌 남성성을 구출한다. 우는 남자, 말 많은 남자, 힘없는 남자도 괜찮다고 토닥인다. 군대 가라 떠밀고, 데이트 비용과 집 장만의 부담을 주고, 아담한 키와 작은 성기에 주눅 들게 하는 주체가 '김치녀'가 아니라 '가부장제'라는 걸 알게 된다. 그 사실을 이해하고 나면 남성의 삶도 자유로워진다.

p.52


구조적으로 여성에게 불리하게 짜여진 판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해온 세월이 하루이틀도 아니고 수천수만년이다. 과연 달라지는 게 가능할까. 인식은 변화할 수 있겠지만 몸이 변하는데는 지금껏 흐른 세월만큼이 필요할 것만 같다.


(…) '모든 남자가 잠재적 가해자는 아니다'라는 말은 사실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라는 말이다. (…) 나의 무결함을 증명할 시간과 에너지로 다른 이의 아픔을 들여다보는 건 어떨까. 흔들리는 배 위에서 혼자 중립을 지킬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개인인 나는 떳떳하더라도 구조적으로 남성인 나는 가해자일 수 있으니까.

p.61


남성들은 살고, 여성들은 살아남는다. 10퍼센트 남짓한 신고율에도 연간 3만 건 이상의 성범죄 사건이 접수되는 나라에서, 보복의 두려움에 떨며 어렵사리 신고해도 3분의 1만 기소되는 나라에서, 남편 혹은 남자친구의 손에 매년 백 명 이상의 여성이 살해되는 나라에서, 여성이 남성 임금의 3분의 2도 받지 못하고 남성보다 5년 먼저 퇴직하는 나라에서.

pp.97-98


최승범 '선생님'은 여성 인권 운동의 장에서 남성 페미니스트가 서야하는 자리와 할 수 있는 일을 명확히 알고 있었다. '협력자'로서 보조적 역할을 해야한다는 것, 여성들 앞에서 '맨스플레인'을 하려하지 말고 남성들을 만나야한다는 것.


페미니즘은 여성 인권 운동이다. 당사자인 여성이 주체가 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남성 페미니스트는 자신을 협력자ally로 정체화하고 여성이 하기 힘든 역할을 보조적으로 수행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 남성 페미니스트로서 기능하고 싶다면 일상의 최전선에서 남성들과 대화하자. 내 가치는 그곳에서 빛난다.

p.137


선생님은 학생들에 대한 사랑이 지극했다. 자신의 제자 남학생들이 미래에 '꼰대' 혹은 '개저씨'가 되지 않길 간절히 바랬다. 그는 십대 학생들이 '변화의 가능성'과 '개선의 여지'가 크고 '공감능력', '정의감'이 강하기 때문에 깨우침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봤다.


일상생활에서 만나는 남성들을 설득하고 있다. 쉽지는 않다. 서른 살만 되어도 생각이 잘 바뀌지 않는다. 뇌가 말랑말랑할 때 나서야 한다. 십대는 성인보다 공감 능력이 탁월하고 편견이 적으며 정의감이 강하다. 변화의 가능성이 크고 개선의 여지가 많다. 교사가 새로운 시각과 다른 목소리를 소개하는 것만으로도 학생들 스스로가 깨치고 길을 터나갈 수 있다. 나는 우리 남학생들이 따뜻하고 성숙한 사람으로 성장하면 좋겠다. 적어도 '꼰대'나 '개저씨' 소리는 듣지 않기를 바란다.

p.139


페미니즘에 대한 남학생들의 반발을 고려해 최대한 자연스러운 접근 방법을 고민하는 선생님의 노력은 일상 도처에 있었다. 사회적 관련 이슈에 접목하거나 교과 과정 중에 대입할 수 있는 순간을 노렸다. 그러면서도 너무 가지 않는 선을 지켰다. 적당히 궁금할 만큼만 제시하는 절묘함이 있었다. 최승범 선생님 같은 분이 한 학교에 한 명씩만 계셔도 평등권 확대에 걸릴 오 천년의 시간이 백 년쯤으로 단축될 것 같다. "나에게 유리한 쪽보다 우리에게 유익한 쪽에 서"자는 선생님의 말씀이 많은 이에게 들렸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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