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오소독스: 밖으로 나온 아이 - 뉴욕의 초정통파 유대인 공동체를 탈출하다
데버라 펠드먼 지음, 홍지영 옮김 / 사계절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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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를 선호하는 건 아니지만 이번 책을 선택하는데 큰 영향을 받았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그리고 베를린에서>의 포스터가 그 이유다. 거기엔 짧은 머리의 소녀가 슬픈 표정으로 정면을 바라보고 있다. 소녀 얼굴 아래쪽엔 새하얀 드레스와 베일로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 몸을 가리고 앉은 여성이 있다. 삭발과 신부. 풀리지 않았던 의문이 떠올랐다. 옴니버스 영화 <뉴욕, 아이 러브 유>에서 나탈리 포트만의 연기했던 대목에서 비롯한 것이었다. 영화 속 여성은 결혼을 앞두고 있었는데 상대가 독실한 유대인이기 때문에 삭발을 해야했다. 독실한 유대인은 왜 결혼할 신부에게 삭발을 강요하는가. 2009년 영화 <뉴욕, 아이 러브 유>를 보며 품었던 의문은 책 『언오소독스: 밖으로 나온 아이』를 읽으면서 풀렸다.


소설인 줄 알았던 이야기는 회고록이며 자서전이었다. 저자 데버라 펠드먼이 직접 겪은 이야기, 실재했던 이야기, 현재도 진행되는 이야기였다. 책은 가정을 바탕으로 만들어낸 서사라고 해도 분노할 사건들이 세계적 대도시 뉴욕 한가운데서 집단적으로 발생하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그보다 더 무서운 '종교'라는 이름으로.


데버라가 스물네 번째 생일 전날 오래전 집을 떠난 엄마를 다시 만나 인터뷰하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유대교 초정통파 공동체에서 태어난 데버라는 엄마가 공동체에서 이탈한 후 조부모의 손에 자란다. 독실한 조부모와 큰어머니의 양육방식은 공통체의 전통에 따른 것이었다. 유대교 초정통파 공동체에서 산다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특히 여성의 생활이 어떠한지에 대한 서술은 그야말로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그 공동체안에서 여성은 억압과 같은 말이었다. 


뉴욕 브루클린 윌리엄스버그의 유대교 초정통파 공동체 사트마는 보통 교육을 거부하고 자신들만의 종교적 교육시스템으로 아이들을 가르친다. 영어는 부정한 언어이므로 사용할 수 없고 이디시어를 사용해야 한다. 책은 남성에세만 허용된다. 남성과 여성은 다닐 수 있는 길이 다르고 성서의 가르침에 따른 복색을 갖춰야 한다. 이를테면 남성은 귀밑머리를 자를 수 없고 여성은 피부를 드러낼 수 없다. 성서적 규율 외에도 홀로코스트를 겪으면서 생긴 믿음들이 있다. 유럽의 다른 민족과 동화되어 살려했기 때문에 신이 학살이라는 벌을 내렸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들은 신의 노여움을 피하기 위해 절대적 고립을 택했다. 초정통파 유대인들은 심지어 같은 민족인 이스라엘과도 거리를 둔다. 시온주의는 신의 명령이 아니기때문이다. 종교의 테두리 안에서 여성은 보다 더한 억압의 굴레를 쓰고 있다. 그들에겐 홀로코스트로 희생된 유대인의 수를 복원하기 위해 아이를 낳는 것만이 삶의 목적이 된다. 그렇게 세뇌된다.


데버라는 질문하는 아이였다. 그리고 책을 읽는 아이였다. 왜 성서의 가르침과 자신들의 삶이 충돌하는지 질문했고, 왜 여성의 삶만 탄압받아야하는지 질문했다. 몰래 도서관을 드나들며 금지된 영어책을 매트리스 아래 숨겨놓고 읽었다. 데버라의 "생각과 외부의 가르침"이 충돌하고 호기심이 흘러넘쳤다. 호기심은 "저항의 불꽃"을 당겼다.


바로 이 생각을 한 순간, 내 안에서 저항의 불꽃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이 사실을 여러 해가 지난 뒤에야 깨달았다. 내가 가진 힘에 눈뜬 순간과 마찬가지로, 나는 어느 날 과거를 뒤돌아보면서 권위에 무조건 복종하기를 멈추고 내가 속한 이 세상에 관해 스스로 결론을 내리기 시작한 시점이 바로 이때였음을 깨달았다.

p.46


'질문'과 '독서', 이 두 가지가 데버라를 현재의 모습이 되게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주어진 조건,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강요되는 규칙들에 의문시하고 독서로 알게 된 지식들과 비교했다. 성서에 없는 여성에 대한 억압이 왜 가능한 것인지, 왜 종교 지도자가 임의로 정하는 규칙들을 숙고없이 신의 말씀과 같이 지켜야하는지, 렙비(랍비)를 숭배하고 그들의 권력 다툼을 용인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데버라에겐 자신의 공동체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이 의문 투성이였다.


책은 데버라의 숨통이자 조언자였다.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와 『나니아 연대기』는 현실을 탈출하는 꿈을 꾸게 했고 『작은 아씨들』은 양보와 타협을 생각하게 했다. 『빨간 머리 앤』을 좋아하면서 주변 사람의 사랑을 얻을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갖기도 했다. 『오만과 편견』에서 엘리자베스가 책 밖으로 나와 조언해주기를 바랐다.


엘리자베스가 느끼는 본질적 좌절감이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엘리자베스도 여성이 권력을 독점한 남성에게 선택받는 대상에 불과한 현실에 분노하고 있었다. 

(…) 

결혼 적령기 여자가 다른 사람이 내린 결정을 거부하고 스스로 결정권을 행사하는 이야기보다 내게 더 와닿는 이야기가 어디 있으랴? 자신의 처지에 낙담한 사람이 나 혼자가 아니었다니! 엘리자베스가 책 바깥의 진짜 세상으로 나와서 내게 조언을 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pp.151-152


데버라는 출산 후 자립을 위해 몰래 대학에 진학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쓰면서 이혼을 준비했다. 바깥 세상은 그녀에게 "하시딕 유대인이 아니어도 다들 잘만 살고, 누구도 그들을 벌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려줬다. 그녀는 과거로 돌아갈 수 없었다.


(…) 이제 나는 세상 물정을 너무 많이 알아버렸다. 나는 우리의 세계가 작동하는 방식과 오랜 전통을 거스르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깨닫게 되었다.

p.13


 종교와 인간의 관계는 어떠해야하는가, 억압은 어떻게 전통이 되는가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책이었다. 데버라는 아들과 함께 현재 베를린에 체류 중이다. 드라마 <그리고 베를린에서>는 아마도 데버라의 결혼·이혼 과정 그리고 그 이후 베를린에 정착하게 되기까지의 이야기를 다룰 듯하다. 종교 공동체로부터 수많은 비판을 무릎쓰고 자신을 드러내면서 뉴욕에서 베를린까지 갔다. 책 속 데버라는 아직 뉴욕에 있으니 독자들은 이제 그녀 이야기의 첫 부분을 알게된 셈이다. 


영화 <뉴욕, 아이 러브 유>에서 나탈리 포트만은 결국 삭발을 받아들인다. 영화 홍보문은 그녀의 캐릭터를 이렇게 설명한다. “그를 위해선 삭발도 오케이!” 화끈걸의 연애스타일. 홍보물 속에서 결혼 의상을 입은 그녀는 활짝 웃고 있지만 삭발로부터 시작될 일들이 어떤 것인지 알았다면 그러지 못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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