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모네이드 할머니
현이랑 지음 / 황금가지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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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큼한 노란색 표지에 깜찍한 일러스트, 발랄한 제목, 할머니 탐정과 꼬마 조수가 주인공이라 하여 어린이 책인 줄 알았다. 아니다. 현이랑 작가의 『레모네이드 할머니』는 추리소설이다.


“그럼 이제 할머니는 탐정 ‘레모네이드’예요. 난 조수 ‘꼬마’고요.”

p.61


탐정과 조수 콤비.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와 존 왓슨?


사건이 일어나는 장소는 도란마을이다. 도란마을은 돈이 많은 노인들이 입주하는 고급 치매 요양 병원이다. 레모네이드 할머니는 두 달 전에 도란마을에 입주했다. 소문에 할머니는 도란마을 땅 소유자였고 굉장한 부동산 재벌이라고 한다. 여섯 살인 꼬마는 도란마을에서 일하는 서이수 의사의 아들이다. 서이수 의사와 함께 도란마을로 출근하는 꼬마는 레모네이드 할머니를 따라다니기로 한다. 2주 전 쓰레기 처리장에서 사건이 일어났다. 레모네이드 할머니는 요양병원 생활이 지루해지던 차에 사건에 흥미를 느끼고 조사를 한다. 꼬마는 할머니를 따라다니면서 함께 범인을 찾게 된다. 아들을 보호하려는 서이수 의사도 사건에 휘말린다.


단서를 풀어가며 범인을 찾아내는 흥미진진한 추리소설을 기대했다. 사건도 있고 단서도 있는데, 추리에 퍼즐을 맞출 때 맞는 조각을 찾아내는 것 같은 기쁨은 적다. ‘자기가 보고 싶은 걸’ 쓴다는 현이랑 작가는 추리보다 이 사회의 어두운 일면을 보여주는 것에 더 무게를 둔 것 같다.


『레모네이드 할머니』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새콤달콤하고 시원한 레모네이드와는 거리가 멀다. 이 사회에 존재하지만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현실을 모아서 한 통에 담은 인스턴트 통조림 같다. 부정부패와 비리 같은 사회의 어두운 일면을 보여주는 것은 의미 있지만 비판과 대안을 구하는 고민을 다루지 않은 것은 아쉽다.


부정부패와 비리를 보여주기 위해 비속어와 비하표현을 많이 써야하는가도 의문이다. 알맞은 곳에 적절하게 쓰인 욕은 통쾌한 느낌을 준다. 그러나 담고 있는 내용과 별개로 비속어와 비하표현이 난무하는 글을 읽는 것은 거북하다.


빛나고 아름다운 청춘. 잘 모르는 사이인 나이 든 사람들이 20대인 나를 만나면 늘 하는 말이다. 그 말을 들으면 늘 나는 어리둥절해지곤 한다. 누구나 사는 건 다 엿 같은데.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사는 게 엿 같다고 느끼는 내가 이상한 놈인 것 같다.

p.130


“네 아빠가 너랑 네 엄마한테 무슨 짓을 했던 그건 네 잘못이 아니다. 넌 그것만 알고 있으면 돼.”

p.223


“아무리 돈으로 보상을 해 준다 해도 그 사람이 받은 상처는 어쩔 수 없을 테니까…….”

p.225

『레모네이드 할머니』에는 고개가 끄덕여지는 문장들이 곳곳에 있다. 그럼에도 이 말들이 식상하게 느껴지는 것은 소설의 제목과 추리와 문장이 잘 어우러지지 않기 때문일까 싶다. 덜 녹은 가루가 바닥에 가라앉고 신맛과 단맛과 물이 조화롭지 못하게 한 컵에 떠다니는 인스턴트 레모네이드 같지만 문장과 구성의 시원스러운 맛은 즐길만한 추리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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