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보그가 되다
김초엽.김원영 지음 / 사계절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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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1

소설의 내용은 기억이 나는데 어떤 소설집에 들어있는 것인지 도무지 기억이 나질 않았다.(지인 말대로 나는 현재만을 사는 사람인 것 같다. 읽은 책의 기억이 정말 오래 가질 않는다.) 인공 수정으로 완벽한 아이를 만들 수 있는 기술을 가진 해커가 정작 자기 아이의 장애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들이 사는 세상을 창조하는 이야기였다. 저자가 누구였더라... 외국 작가의 단편이었던 것같은데...

 

Episode 2

'김초엽X김원영 공저'. 저자 이름을 보고 동명이인인 줄 알았다. 소설가가 변호사와 공저로 책을 쓴다는 것이 언뜻 납득되지 않아 '김초엽'이라는 이름의 다른 작가가 있나보다 생각했다. 그런데 사진이 너무 닮았다. 혹시 싶어 작자 소개를 찾아 봤더니 소설가 김초엽이 맞았다. 김초엽 작가의 소설집에서 받은 인상이 너무나 강렬해서 다음 책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에세이라니. 조금 서운한 마음이 들었지만 작가의 문장은 어떤 주제를 다뤄도 읽기에 좋지 않을까 싶었다. 그런데 주제가 '사이보그'였다.

 


Episode 1 그리고...

한 밤중에 책을 뒤졌다. 대체 그 이야기가 어느 책에 들어있었던가. 놀랍게도 국내 작가 김초엽의 책이었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그러고 보니 김초엽 작가의 소설에는 딱 꼬집어 설명하기 힘든 "뭔가 다름"의 느낌이 있었다. 해외 작가의 SF를 읽을 때면 간혹 느껴지는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이질감이랄까. 그것의 느낌은 기분 나쁨이 아니라 경이감에 가까웠다. 갑자기 사각지대가 눈에 들어온 듯한 낯선 새로움이었다.

 

Episode 2 그리고...

김초엽 작자 소개에는 내가 못봤던 '사각지대'가 하나 더 있었다. "후천적 청각장애인이다"라는 문장이었다. '아!' 의문이 풀리는 기분이었다. '세상을 지각하는 방법이 달랐던 사람이구나, 그래서 작가가 그린 세상이 우리가 느끼는 세상과 닮았으면서도 다른 느낌이 들었구나'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나의 생각이 차별을 담은 시각에서 비롯된 것은 아닌지 걱정됐다. 책을 어서 읽어야 했다. 좀더 알아봐야 했다.

 

김초엽 작가와 김원영 변호사가 함께 쓴 『사이보그가 되다』는 장애를 가진 두 사람이 각자의 자리에서 장애와 세상을 바라본 이야기다. '사이보그(cyborg)'는 보통 "기계와 결합한 유기체를 일컫는 용어"로 쓰이는 동시에 "현대의 첨단 기술문명이 낳은 새로운 존재의 상징"을 지칭한다. 책에서는 불편한 부분을 보완하는 기계 장치와 동반하는 사람들을 '사이보그'로 정의한다. 김원영 변호사는 휠체어에 몸을 의지하고 김초엽 작가는 보청기로 청력을 보조한다. 두 사람은 '장애'라는 차원의 정체성을 공유하는 한편 성별, 나이, 직업적인 차이를 갖고 있다. 김원영 변호사는 두 사람의 공통점과 차이점이 장애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배경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과거보다는 장애학이 사회적으로 회자된 이후의 시기를 살아온 두 사람이 이 책에서 주목한 문제의 지점은 아래와 같다.

 

장애가 있다고 규정된 우리의 몸을 쉽게 부정하고 치료하고 구원하겠다는 주장을, 그것이 설사 과학적 의견에 토대를 두고 있더라도, 우리는 신중하고 비판적으로 바라본다. 과학 지식을 신뢰하고 기술의 효용에 기대를 걸지만, 첨단 지식과 기술의 발전이 언제나 인간의 문제를 매끄럽게 해결하지는 않는다는 점에도 주목한다. 지금 이곳의 삶을 소외시키거나 나 자신을 온전하지 못한 존재로 규정할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를 우리는 우려한다.

pp.10-11

 

책은 기계 기술과 함께 공존해야 하는 장애인의 정체성 문제를 시작으로 장애와 그것을 보완하는 기계 사이의 보완과 불화의 모습들을 거쳐 완전한 사이보그가 실현된 미래에도 필요한 '함께'의 모습까지를 10개의 장에 걸쳐 다룬다. 한 가지 주제를 두 저자가 번갈아가며 서술한다. 애초 김원영 변호사의 의도대로 두 사람의 시각은 닮음과 차이를 보여준다. 그러나 그 차이는 두 사람이 애초에 가지고 있던 성별이나 나이, 직업에서 기인한다기 보다는 장애 정도의 차이에서 나오는 것 같았다. 눈에 띄는 장애를 가진 경우와 굳이 말하지 않으면 쉬이 알아채기 힘든 경우.

 

 

김원영 변호사의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을 읽는 내내 장애를 바라보는 나의 시선이 지나치게 비장애인적인 것일까 의문을 가졌었다. '장애'라는 조건이 너무 낯설게 느껴지기 때문에 장애인의 삶에 대해 상상하기 어려웠었다. 이번 책 『사이보그가 되다』 는 그런 상상력의 빈곳을 채울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장애인이 기계와 결합해 사이보그가 되는 경험의 일부를 나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기억을 보조하기 위해 스마트폰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시력에 도움을 받기 위해 안경이 필요하다. 이것들이 미약하나마 사이보그의 삶을 살고 있다는 증거라고 생각한다. 없을 경우 몹시 불편함을 느끼게 되는 이런 경험을 몇 십배 또는 몇 백배 증폭시키면 장애의 경험에 살짝 닿지 않을까. 빈곤한 상상력으로 장애 경험에 공감해보려는 시도는 책을 더욱 적극적으로 읽을 수 있게 했다.

 

기술과 장애의 관계에 대한 장을 마무리하는 김초엽 작가 문장을 기억하고 싶다. 우리는 상상 속에서 과학 기술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 기대한다. 그러나 우리의현실은 과학기술과 그렇게 마주치지 않는다. 첨단의 기술과 일상의 거리는 생각보다 멀다. 아무리 좋은 기술이 개발돼도 필요한 사람에게 공급되지 못할 수도 있고 그 기술을 인체에 적용하는데 장애를 견디는 만큼의 고통을 감수해야할 수도 있다. 심지어 최고의 기술이 어떤 개인에게는 무용지물일 수도 있다. 김초엽 작가는 "기적의 과학기술"보다는 실제 장애인의 "구체적인 경험"에 귀를 열어야한다고 말한다.

 

우리가 과학기술에 거는 기대는 너무나 쉽게 현실과 어긋나고 또 미끄러진다. 어떤 기술도 완전무결한 해답이 될 수는 없다. 기술 낙관론자들이 약속하는 기술 유토피아는 결코 그런 방식으로 이곳에 도래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불완전한 기술과 불완전한 인간의 몸으로 지금 이 세계를 바꾸어나가야 한다. 언젠가 나타날 기적의 과학기술에 미리 찬사를 보내는 대신, 이미 현실에서 기술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살아기는 사이보그들의 구체적인 경험에 주목해야 한다.

pp.87-88

 

책 후반에서는 돌봄의 문제를 다룬다. 홀로 일상 생활이 어려운 장애인의 경우 누군가의 돌봄이 필수적이다. 돌봄의 역할이 우리 사회에서는 대부분 가족 특히 여성에게 의무지워진다. 이런 책임과 의무의 역할이 무겁고 힘들 것이라고만 생각했던 내 생각은 편견이었다. 김원영 변호사는 돌보는 사람과 돌봄을 받는 사람의 관계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수 있게 해줬다.

 

그렇다고 해도 누군가에게 의존하는 삶이 언제나 비극은 아니며, 누군가를 돌보는 삶도 그저 동정의 대상이나 숭고한 예찬의 조건으로만 이해될 수 없다. (…)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대한 성찰을 결여하고 누군가를 돕기 위한 기술에 열광한다면, 자칫 서로에 대한 착취를 강화할 위험이 있다.

p.291

 

"완전함에 도달하기 위한 기술이 아니라 불완전함과 함께 살아기기 위한 기술"에 대한 두 저자의 대화는 날카롭지만 따뜻했다. 장애의 다양한 사례를 알 수 있었고 미래의 찬란한 기술보다 일상의 삶을 돕는 기술이 얼마나 더 절실한 것인지 살필 수 있었다. 인간은 불완전하다. 그 불완전함의 형태가 크거나 작고 잘 보이거나 숨겨져 있을 뿐이다. 일부의 불완전함만이 보편적인 일상에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해야한다. 불완전함의 크기가 클 수록 일상에의 절실함도 클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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