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괴물 백과 - 신화와 전설 속 110가지 괴물 이야기
류싱 지음, 이지희 옮김 / 현대지성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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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나가는 이야기는 단단한 캐릭터에서 시작한다

스핑크스, 사이렌, 유니콘, 켄타우로스……

상상력에 날개를 달아줄 전 세계 괴물들을 만나다

책 표지 中


이 책의 편집자는 수많은 괴물들이 각각의 캐릭터를 살려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길 바랬던 모양이다. 기기묘묘한 형상의 괴물들이 담고 있는 이야기에도 호기심이 가고 그 괴물들이 존재한다고 믿었던 시대와는 어떤 관계를 주고 받았는지도 궁금하게 만드는 책이다.


『세계 괴물 백과』는 신문학을 전공한 후 민족, 종교, 박물 분야의 그림 연구에 몰두한 저자의 책이다. 전공과 다른 관심 분야를 꽤나 열심히 판 결과물을 이 책에 모았다. 책에는 괴물의 종류가 장별로 구분되어 있다. 고대 근동 신화, 이집트 신화, 그리스 신화, 종교 전설, 동방 여러 민족 전설, 유럽의 전설과 괴이한 일에 등장하는 괴물을 차례로 정리해 놓았다.


신기한 모양새의 괴물을 구경하는 차원에서 보기에도 좋은 책이지만 괴물들이 왜 그런 모습을 갖게 됐는지 또 시대를 거치면서 어떤 변천과정을 거쳤는지를 살펴보는 것도 좋겠다. 괴물의 존재는 인간의 두려움을 반영한 것이거나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을 이해해보고자 만든 것일 게다. 그렇다면 괴물이 담고 있는 의미를 파악하는 일은 인간이 가졌던 두려움을 파악하고 그 괴물의 시대가 가진 이해의 폭을 들여다보는 것에 다름 아니다.


저자는 프랑스 의사 앙브루아즈 파레가 쓴 책 『괴물과 불가사의』(1573)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이 책을 썼다. 동 시대의 비슷한 책들을 찾아 모아 괴물들의 뒷이야기를 풀어냈다. 그러므로 이 책은 16세기의 생각에 기초한다.


이 책에 담긴 생물들이 그려내는 경이로운 풍경은 당시 유럽의 사상과 관념과 관련하여 강한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이 상상 속 동물을 만들어낸 원천은 대체 무엇일까? 어떻게 이런 모습을 지니게 되었을까? 당시 유럽인들은 이 상상 속 생물에 무엇을 투사하려 했던 걸까? 여러 괴물 형상은 어떤 사상이나 관념을 반영하는 걸까?

p.11


저자는 괴물의 뿌리를 파고 드는 과정에서 동서양이 비슷한 시기에 유사한 괴물에 대한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는 걸 발견했다. 히브리 문명과 중동 문명이 공통의 원천을 소유하고 있는 것처럼 중동 전설과 중국, 일본 전설의 유사성도 발견한다. 저자는 서로 거리가 먼 지역들이 서로 공통된 특징을 가진 신화를 주고 받으며 발전했다고 말한다.


책은 고대 근동 신화의 괴물 훔바바 이야기로 시작한다. 『길가메시 서사시』에 등장해 익숙해진 괴물이다. 영웅 길가메시와 엔키두에게 죽임을 당하는 악당은 저자의 해석 안에서 한 나라의 지위에 올라선다.


비슷한 맥락에서 훔바바를 우르크와 동 시대에 존재했던 나라로 보는 견해도 있다. 훔바바는 레바논과 시리아 접경지대에 있던 나라로 삼나무가 많이 자라다 보니 매우 부유했다. 엔키두도 하나의 나라였는데 싸움에 상당히 능한 부족이었지만 길가메시에게 정복당했다. (…) 길가메시는 늘 훔바바의 풍부한 자원을 탐냈고 마침 삼나무는 우르크에 꼭 필요한 자원이었다. 결국 엔키두 부족의 힘까지 등에 업은 길가메시는 전쟁을 일으켜 훔바바르 멸망시킨다.

p.21


고대의 학자들도 괴물 전설을 신비를 배제하고 설명하고자 시도했었다. 그들 나름의 시도가 꽤 설득력이 있다. 반인반마 괴물 켄타우로스의 형태가 왜 그렇게 묘사되게 됐는지에 대한 설명과 메두사 이야기를 현실적으로 해설한 대목들이 그렇다. 켄타우로스는 단지 말을 잘 타는 사람들이었고 메두사는 페르세우스에게 패한 여성 부족장이라는 말이다. 현대의 우리에게 더 잘 납득되는 설명들이다.


고대 로마의 학자이자 작가 플리니우스(Gaius Plinius Secundus)는 저서 『박물지』에서 켄타우로스 전설을 합리적으로 설명하고자 했다. 그에 따르면 당시 테살리아인이 말의 등에 타서 적과 싸우는 방법을 처음 개발했는데 그들을 켄타우리(Centauri)라 불렀고 펠리온 산에 주로 거주했다.

p.84


박물지 저자들의 견해는 이들과 조금 다른데, 파우사니아스는 고르곤 메두사의 신화를 합리적으로 설명하려 했다. 아버지 포르키스가 죽은 뒤 메두사는 리비아의 트리토니스 호수 일대의 사람들을 다스렸다. 부족민을 이끌고 사냥을 하거나 전쟁에 나섰다. 그러던 어느 날 페르세우스가 이끄는 부대와 맞서게 되었는데 그만 야밤에 암살을 당하고 만다. 죽은 메두사의 미모에 놀란 페르세우스는 그 머리를 베어 그리스로 가지고 돌아간다.

p.104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서 한 세계를 깨뜨린 존재가 가 닿는 신의 이름으로 등장하는 아브락사스도 만날 수 있다. 한때는 헤세가 창조한 신이라고 나름 상상했던 신인데 닭머리를 갖춘 형상이었다. 데미안의 신이 왜 알에서 나와야 하고 신에게 날아갔어야 하는지가 이해됐달까. 아무튼 아브락사스는 영지주의의 신이었고 '아브라카다브라'의 어원이었다.


유럽의 전설과 괴이한 일을 다룬 장에서는 전통 가톨릭과 루터파 교회의 대립이 낳은 괴물들이 다수 소개된다. 라벤나의 괴물, 크라쿠프의 괴물, 수도사 송아지, 교황 당나귀, 오튕의 이상한 달걀 등이 그것이다. 루터파 신교는 오랫동안 권력을 유지해온 로마 가톨릭에 대항 하기위한 명분을 세우기 위해 각종 인쇄물을 이용해 여론을 몰아갔다. 기이한 괴물들이 출몰하는 것이 가톨릭의 부패를 상징한다고 믿게 만들려던 것이다.


16세기 마르틴 루터를 비롯한 그의 종교개혁 지지자들과 로마 가톨릭교회 사이에 치열한 여론전이 벌어진다. 루터파는 화가들의 지원을 받아 로마 가토릭교회와 교황, 수도사들의 잘못을 풍자하는 소책자를 상당수 발간하고 특히 교황을 연관시켜 적그리스도의 형상을 여럿 제작했는데, 마르틴 루터는 이처럼 여론전의 선구자였다.

p.351


익숙한 괴물도 있고 참신한 상상력이 놀라운 괴물도 있다. 괴물들의 이런 저런 모양들과 그 기원부터 변천사와 의미를 따라가는 흥미로운 독서였다. 아쉬움이라면 신과 괴물 구분의 모호함과 이집트 신화 부분이 지나치게 소략하다는 것이다. 아누비스와 같은 이집트의 신을 괴물로 소개한 이유는 뭘까. 온갖 동물과 신이 결합된 세계를 갖춘 이집트에 대한 설명이 어째서 이렇게 단순한 걸까. 이집트의 괴물들은 괴물의 기준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일까. 아니면 저자가 기본으로 삼은 르네상스 박물학자의 시대에는 이집트에 큰 관심이 없었던 걸까.


괴물을 묘사한 각 시대의 유물 또는 그림을 삽화로 넣어 시각적 이해를 도운 점이 이 책의 장점이다. 괴물의 신기한 형태를 그 시대 사람들의 눈으로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고대의 괴물들 모습은 조각이나 조형물을 통해 제시하고 르네상스 시대의 것들은 다양한 당시의 책자의 그림을 활용했다. 『세계 괴물 백과』 읽기는 풍부한 사진자료와 함께 떠나는 즐거운 상상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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