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둥의 궤적
리베카 로언호스 지음, 황소연 옮김 / 황금가지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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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인적인 힘을 가졌지만 자신의 능력을 의심하는 소녀, 의도치 않은 역경을 이겨내며 진정한 자아와 사랑을 찾는 이야기. 책에서 영화에서 (아주) 많이 접해본 설정이다. 그런데 이 책, 리베카 로언호스의 『천둥의 궤적』은 뭔가 달랐다. 알고 있는 이야기를 듣는 기분이면서도 갈 수록 빠져들었다. 작가가 그려낸 소설의 어느 부분에 사람을 끄는 매력이 담긴 걸까. 대재앙 이후의 척박한 지구 환경을 배경으로 다룬 것이 어제오늘의 이야기도 아니고 판타지 소설의 주인공들이 혈통에 따라오는 초능력을 가진 설정이 처음도 아니다. 좀비를 연상시키는 괴물, 불멸의 신적 존재들도 마찬가지. 성장 소설과 판타지가 조합된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책에 이렇게 마음이 간 이유가 뭘까.


책은 "큰 물이 닥치기 몇 년 전, 시한부 신세였던 미국 정부가 남쪽 국경에 건설"하려했던 것과 닮은 장벽으로 둘러싸인 나바호 자치국을 배경으로 한다. 장벽은 신비롭게도 스스로 자라났고 그 안의 디네(나바호족)들에겐 이전 세상에서는 "꿈과 환상, 전설과 노래" 속에 살던 존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디인 디네(신성한 사람들), 비케아예이(가장 신성하고 가장 두려운 존재) 그리고 괴물들. 주인공 매기는 유전적으로 물려받은 초능력 클랜 파워를 무기 삼아 괴물 사냥꾼으로 살아간다.


소설은 배경에서 드러나듯이 나바호 인디언 문화를 기초로 씌여졌다. 그들의 신화, 언어를 차용한 그들의 세계관을 토대로 미래를 그려냈다. 작가의 상상 속에서 완전히 창조된 세계가 아닌 유럽인 침략자들에게 쫓기고 미 연방정부에게 핍박받은 인디언의 역사를 보여준다. 아메리카 토착 거주민이었던 인디언들이 자신들의 살던 터전을 빼앗겼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겪었는지는 몰랐다. 작가는 미래의 서사를 구성하면서 과거의 사실들을 밝힌다. "미 연방정부가 한겨울에 나바호 족 거주지를 불태우고 뉴멕시코로 걸어서 이동하도록 한 사건", "어린 원주민들을 부족 사회와 격리해 기숙사에 수용하여 서구 문화와 생활 방식을 가르쳤"던 "기숙학교", "부족의 전통적 토지 소유 개념 및 조직 체제의 와해"를 가속시킨 "인디언 토지 할당법", 19세기 중반에 이루어졌지만 2009년에야 처음 법정에서 인정되었던 백인이 저지른 손해에 대한 배상 조약 등. 역사적 사실이 이 소설의 판타지를 현재의 미국 사회를 보는 창에 묶어두었다. 이 책이 흥미로웠던 첫 번째 지점이다.


작가 리베카 로언호스는 아메리카 원주민 출신의 어머니와 아프리카계 미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나 백인 가정에 입양되어 자랐다. 백인이 대다수인 주거지에서 살면서 작가가 느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감각은 남달랐을 것이다. 작가는 자신의 혈통을 긍정하고 관심을 기울였고 그 결과가 그녀의 소설에 드러난다. 그런 애정어린 마음이 소설에 그대로 드러난다. 소설은 나바호 인디언 신화에 바탕을 두고 있다. 나바호 신화 속에서 인류의 시조는 옥수수에서 비롯했으며 니흐치의 숨결은 그들에게 생명을 주었다. 하시치시지니는 다섯손가락(인류)에게 불을 주었다. 세상은 다섯 번 홍수로 멸망하고 지금은 여섯 번째 세상이다. 나바호 족을 창조한 '변하는 여인'은 태양과 결합해 불멸의 네이즈가니를 낳았고 그는 소설의 주인공 메기를 거뒀다. 낯설고 이채로운 신화들이 이야기 곳곳에 박혀 서사를 굴린다. 이 소설이 빛나는 또 하나의 지점이다.


모계에서 빠른 속도를 부계에서 강인한 전투력의 혈통을 물려받은 메기는 그 능력이 자신을 괴물로 만들까 두려워 한다. 사람들의 요청에 따라 괴물을 처치하면서도 피를 탐하는 스스로를 자제하지 못하는 순간이 올까 겁을 낸다. 메기는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움직이려 한다는 점에서 남다르다. "괴물"이 되기 보다는 "괴물 사냥꾼"으로 남기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경계한다.


네이즈가니는 그런 악의 일부가 내게 있다고 했다. 그가 나를 발견한 밤에 벌어진 일에 노출되었기 때문이라고. (…) 하지만 내겐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었다. 그것이 커지지 않도록, 필요 이상으로 자라나지 않도록 경계할 수밖에 없었다. 내 운명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기에. 나는 괴물 사냥꾼이 될 수도 있고 괴물이 될 수도 있다.

p.28


메기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 또한 이중적이다. 도움을 청할 대상인 동시에 해를 끼칠 때상으로 보는 것이다. 메기는 초인들의 세상에도 일반인들의 세상에도 끼지 못한 채인 외톨이다. 다른 존재를 대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묘사된 부분이다. 소설에서처럼 특별한 능력을 가진 경우까진 아니더라도 일상에서 만나는 나와 다른 존재를 우리는 손쉽게 '괴물'로 치부하지는 건 아닌지. 그리고 그런 사람들을 통제하거나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로 만들어버리지는 않는지. 작가는 다름을 거부하는 다수의 시선이 누군가에게 침묵을 강요하는 사회에 대해 말한다.


까딱하면 사람들의 불신을 사고, 병에 걸린 사람 아니면 또 다른 괴물로 취급받기 십상인데. 스승은 혐오감에 등을 돌리고, 피를 향한 내 갈망이 너무나 거세서 무적의 전사인 그조차도 무엇이 나를 몰아치는지 이해할 수 없었는데. 타흐는 그런 걸 축복이라 생각하는 모양이다.

p.93



카이가 어떤 힘을 가지고 있든 (…) 칭송보다는 두려움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크다. 그게 어떤 건지는 속속들이 알고 있다. 회오리를 일으킬 수 있는 사람은 마을을 통째로 날려 버릴 수도 있다. 위험천만하다. 위험한 사람들은 통제되어야 한다. 통제하지 못할 거면 차라리 쓰러뜨리는 게 상책이다. 그러니 당사자는 그걸 비밀로 간직하는 게 당연하다.

p.278


믿고 의지했던 불멸자 네이즈가니에게 버림받았다고 생각했던 메기는 일련의 사건들 속에서 진실을 찾아간다. 네이즈가니가 자신을 떠난 이유를 알게 되고 그의 시선으로 스스로를 봐왔다는 것도 깨닫는다. 불멸자는 메기를 언제라도 '괴물'이 될 수 있는 존재라고 말했다. 메기의 능력은 질병과 같은 악의 일부라고 말이다. 그러나 다른 말을 하는 사람이 있었다.


네이즈가니는 악(惡)은 질병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는 얼룩처럼 그것을 사람들에게서 볼 수 있다고 했다. 빌라가나들은 악을 영적 개념이나 악인의 소행으로 취급하지만 그렇지 않다고. 악은 염연히 실재하는 것이며 신체와 관련된 전염병에 더 가깝다고 했다. 악한 것이 몸에 침투하면 악에 감염될 수 있다. 그리고 일단 몸에 침투한 악은 나를 장악할 수 있다. (…) 그렇게 또 다른 괴물이 될 위험에 처한다.

p.28


할아버지가 내게 가르쳐준 첫 번째 교훈이 그거였어. 클랜 파워는 재능이지, 저주가 아니라고. 왜 그것이 우리 중 일부에게만 찾아오는지, 그 능력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우리는 이해 못 할 수도 있다고. 하지만 할아버지는 그것이 어두운 시절, 다가올 괴물들을 이겨 내는 도구라고 확신했어. 여느 도구들처럼 선하게도, 악하게도 쓰일 수 있다고.

pp.348-349


치유자 타흐와 그의 손자 카이는 특별한 능력을 옳은 일에 사용하려 노력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메기는 네이즈가니가 말해준 세상을 깨고 스스로의 눈으로 세상을 보게 된다. 죽음으로 향하는 세상이 아닌 삶으로 이어지는 세상.


"나도 모르겠어." 나는 중얼거린다. "하지만 당신 말이 맞았어. 당신과 키스했을 때, 내가 맛본 건 죽음뿐이었으니까. 난 그것으로 만족 못해, 네이즈가니. 그리고 삶을 원해. 사랑도. 나를 죽이려 들지 않는 사랑."

p.420


책에서 치유자 타흐는 나바호 족 삶의 방식을 "연대"라고 말한다. 그들이 자신을 소개하는 방식은 모계와 부계와 조부모의 혈통을 밝히는 것이다. 자신의 주변을 밝히는 것이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일이다. 혼자만의 테두리 속에 갖혀있던 메기는 '타흐'와 '카이'라는 사람들 만나고 그 "연대" 속에서 삶을 새롭게 받아들이다. 비록 그녀를 이해하지 못하는 다수에게는 여전히 불청객으로 남을 수밖에 상황이지만.


"(…) 디네의 삶은 관계를 찾는 거야. 너 자신과 네 친척들의 관계, 너 자신과 세상의 관계. 디네가 살아가는 방식의 케흐, 즉 연대야, 이렇게."

p.52


세계의 대부분이 물에 잠긴 이후 상상 속 존재들이 현실에 출몰하는 이 판타지 소설이 소외된 존재들을 들여다보는 이야기의 변주로 들렸다. 주인공 메기의 할머니는 세상에 닥친 재앙의 원인에 대해 겉으로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고 말한다. "뭔가 더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작가가 화려한 판타지의 이면에 숨겨둔 "뭔가"가 더 있을 것만 같다. 이어질 '여섯 번째 세상' 시리즈에 대해 자꾸 생각하게 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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