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의 귀환 - 누구나 아는, 그러나 아무도 모르는
제이슨 바커 지음, 이지원 옮김 / 경희대학교출판문화원(경희대학교출판부)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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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 혁명 사상의 핵심에 가닿은 걸출한 소설"이라는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의 평은 과했다. "기이하고, 재미나고, 당혹스럽고, 불손하다. 마르크스의 사상에 예기치 못한 통찰을 주는 영감 넘치는 탈선"니라는 철학자 레이 브래시어의 지적은 적절하다. 지젝이라는 이름의 무게 덕에 다른 방향의 책을 상상했다. 알 필요가 있지만 알지 못하는 사람 '마르크스'와 그의 저작 『자본』을 논리적인 저술이 아닌 서사로 읽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책은 시작부터 기대와 다른 면모를 과시했다.


이택광 교수가 쓴 '책머리에'는 어찌보면 이 책의 장점을 가장 잘 드러내고 있다고 하겠다. '인물을 평면화하지 않'았다는 점, 마르크스라는 거인을 그저 우러를 인물로만 그리지 않았다는 점이 이 책의 놀라운 점이므로.


납작하게 눌렸던 마르크스의 이미지가 생생하게 살아난 것처럼 말을 걸어왔다. … 바커의 소설은 자칫 이런 역사소설이 빠질 수 있는 함정을 절묘하게 피하고 있다. 특히 마르크스가 미분방정식을 통해 자본주의의 미래를 예측하려고 고군분투하는 모습이라든가, 아버지의 유령을 조우하면서 자신의 공산주의에 대한 신념을 독백하는 장면들은 마르크스라는 인물의 복잡성을 단순히 평면화하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이 소설의 미덕은 마르크스주의라는 이론적 집적물이 눈앞에서 서사로 전개된다는 점이다.

p.10




때는 1849년, 사람이 살기에 몹시 부적합한 환경의 런던이다. 작가가 묘사하는 런던은 공장지대 한 복판이다. 매연이 공기를 대신하고 바람엔 공장 폐기물 찌꺼기가 날아다닌다. 산업혁명으로 공장은 맹렬히 돌아가지만 환경도 사람도 생(生)과는 점점 거리가 멀어지는 풍경이다. 그 도시에 마르크스가 있다. 그의 모습도 도시의 모습과 과히 다르지 않다. 마르크스는 프랑스와 독일에서의 혁명이 실패한 후 런던으로 망명했다. 친구 엥겔스와 동료들의 지원 외에는 경제적으로 기댈 데 없는 처지다. 넝마나 다름없는 옷을 걸치고 가족들과 단칸방에 산다. 그 와중에 자신의 철학적 사고를 집대성한 책을 쓰려고 고투중이다. 정말 불가능한 일이다. 아무리 그가 천재라 해도 아이 셋이 뛰어 놀고 가족 전체가 돌아다니는 와중에 저작에 몰두한다는 일은 실현가능성이 낮다.


동료들의 지원도 믿을만하지 않다. 마르크스가 사상적 기반을 제공했던 당은 혁명 추구 방식에 대한 생각 차이로 붕괴 직전이다. 그는 분열된 동지들을 하나로 모으고 노동자들의 혁명 의지를 일깨울 책을 쓰고자 했다. 그 일은 생각처럼 쉽게 진척되지 않았다. 저술 기간이 길어지면서 동료들은 그가 하고자 하는 일에 의문을 품는다.


"… 하지만 내가 궁금한 건, 자네에게 어떤 현실적인 대안이 있는가, 이제 이 당의 정치적 노선은 어떤 것인가, 하는 걸세. 자네의 대안은 무언가, 마르크스? 난 정말 모르겠어. 대체 자네는 정확히 무얼 바라나?"

p.115


마르크스의 런던 생활은 온통 『자본』에 대한 생각뿐이다. 『자본』을 읽어보지 않아 모르지만 아마도 마르크스는 미분을 통해 자본의 수학적 분석을 시도했던 모양이다. (나로서는 알 수 없는 ) 수학 수식들을 동원해 자본과 노동을 해설하려는 그의 의도는 번번히 생활의 고난에 가로막힌다. 창의적인 사고를 위한 산책은 채무자들을 피하는 길이어야하고 휴식을 위해 집에 들어가기 위해선 집주인의 눈길을 살펴야 한다. 사상가의 지적 위대함은 현실의 궁핍에 가려졌다.


"사실이 그렇죠! 본인 꼴을 좀 보세요. 나리 이름의 재산은 한 푼도 없어요. 하는 일이라고는 그저 징징대고 끙끙대는 거밖에 없잖아요. '내 원고! 내 잉크! 내 똥구멍!' 아내한테는 쉬지 않고 불평을 해대죠. 전 아주 노예 취급을 하고요. … 애들한테는 잔뜩 겁을 주고요. 일은 절대 안 하고, 술은 진탕 퍼마시고, 냄새 풍기고, 친구들한테 빌붙고, 그 머냐… 경제, 자기도 이해하지 못하는 그 개똥 같은 소리를 쓴다고 허송세월만 하잖아요."

p.188


마르크스의 저작은 그 한 사람의 노고가 아니었다. 그의 생계를 잇기 위한 엥겔스의 노력이 있었고 유명했다는 그의 악필을 대필한 아내 예니가 있었다. 가사를 전담해준 헬레네가 있었고 곤궁한 생활을 온몸으로 버텨준 아이들이 있었다. 아이들 모두가 가난을 버티지 못한 것은 마르크스에게 큰 아픔이었을 것이다. 그가 해낸 일은 가족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


마르크스의 집은 기름칠 잘된 기계였다. … 그래도 꽤 효율적인 그 기계는, 우선 엥겔스가 자기 면직 공장노동자의 잉여노동을 이윤이라는 형태로 전용하게 한 후, 엥겔스 자신에게 월급을 주고서, 나머지 돈 일부를 빼돌려 마르크스에게 보내도록 했다. 그러면 마르크스는 그 돈을 자기 공장의 고정비와 변동비를 내는 데 썼다. 마르크스의 공장은 훨씬 작은 규모였지만 생산성만큼은 뒤떨어지지 않았다. 공장 철폐를 목적을 하는 공산주의 공장.

p.301


저술에 몰두하는 마르크스는 광인에 가까운 모습이다. 일상 생활 모두를 책에 대한 생각에 쓸어 넣은 것도 모자라 발상의 전개를 위해 아이의 장난감까지 전당포행을 면치 못한다. 자신의 생각을 형상화할 증기기관차 모형을 살 돈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아무 것도 남은 것이 없는 집안을 둘러보며 돈과 바꿀 물건을 찾는 마르크스의 모습은 광기라고 밖에는 설명할 수 없다.


"우린 자본주의의 이탈과 우회에도 그 본질을 간파해야 해. 더 나아가, 불규칙한 등락과 선회 속에서도 그것이 미래로 전진하는 경로를 그려내야 해. 동지들, 그걸 달성하는 방법은 오직 하나, 더 긴 철로야."

그가 집 안의 물건을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자, 뭐가 남았지?"

p.330


익히 알려져 있다시피 마르크스는 프롤레타리아가 주인이 되는 세상이 올거라고 확신했다. 그의 책 『자본』도 그러한 논리로 쓰여졌을 것이다. 소설의 마지막은 『자본』을 출판한 직후의 마르크스가 그려진다. 그는 유산 상속과 엥겔스의 지원으로 살만한 집을 찾아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었다. 또한 마르크스의 예언을 실현한 듯 프롤레타리아 정부인 파리코뮌이 (잠시 동안이지만) 파리를 통치하고 있었다. 아마도 그에겐 인생 마지막에 비친 서광이었을 것이다.


"분명히 시대가 변했어, 프레드. 우린 새 시대의 시작을 맞고 있어. 이젠 과학이 세상을 지배할 거야. 부르주아의 과학이 아니라, 프롤레타리아의 과학. 노동자의 삶을 개선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과학. 마침내 그들의 진정한 이익에 복무하도록 준비된 과학."

p.438


마르크스도 인간이었다. 약점도 있고 실수도 했다. 평전이 아닌 소설이지만 작가 제이슨 바커는 마르크스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할 만큼 연구가 깊은 사람이다. 소설 내용 모두가 상상만으로 쓴 것이 아닐 것이란 말이다. 작가는 세상을 바꿀만한 사상을 제시한 철학자의 인간적인 면을 부각시켰다. 종기로 고생하고 여색을 탐하며 술집을 전전하는 가운데 자식이 아사하도록 실질 경제 관념이 부족한 사람, 작가가 그린 마르크스다. 주변의 희생이 없었다면 가능했을까 싶은 그의 사상적 성취는 주변 모두를 잊을 만큼 자신의 생각에 몰두할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작가는 이런 마르크스의 모습도 그려냈다.


읽는 내내 마르크스의 '불손'한 '탈선'쪽에 더 마음이 기울었다. 작가가 마르크스의 아내 예니를 묘사한 방식에는 의구심이 남았다. 예니는 마르크스의 사상을 적극 지지하고 생활고를 견디며 저술 활동의 많은 부분에 기여했다. 현실 감각없는 귀족 영애의 모습만 그려진 부분에 아쉬움이 남았다. 예니와 마르크스를 다룬 다른 독서로 메워야할 빈 구석이다.


소설 『마르크스의 귀환』으로 철학자 마르크스의 인간적인 상을 얻었다. '마르크스 혁명 사상의 핵심에 가닿'기 위해선 또 다른 (많은) 독서가 필요할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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