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화의 종말 - 하버드 의대 수명 혁명 프로젝트
데이비드 A. 싱클레어.매슈 D. 러플랜트 지음, 이한음 옮김 / 부키 / 2020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인간 삶의 마지막에 대한 두 가지 생각이 있다. 하나는 늙음과 죽음을 자연의 순환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생각, 또 하나는 인간이 발견 또는 개발한 모든 기술을 동원하여 늙음과 죽음으로부터 멀어지려는 생각이 그것이다. 인간의 처음부터 최근까지 노화와 죽음의 문제는 사람이 어쩔 수 없는 일, 인간 능력 밖의 일로 받아들여졌다. 운명이 점지한 지상의 시간을 다 살고나면 그 기간에 관계없이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저세상으로 가는 일이 당연하다 여겨졌다. 근래 의학기술의 발달로 이런 생각이 도전받고 있다. 알고 보니 죽음에 대한 기존 관념이 흔들리기 시작한지 꽤 됐다.


하버드대학교 의과대학의 데이비드 A. 싱클레어 교수의 책 『노화의 종말』은 과학계, 의학계의 최신 정보를 근거로 인간의 생존한계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길다는 걸 증명하고 있다. 인간은 120세를 넘어 150세, 그 이상을 살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이다. 현재 개발되어 있는 혹은 개발 중인 기술만으로도 그 정도의 수명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그것도 건강하게 말이다. 사이비 종교가도, 약장수도 아닌 과학계에서 인정받는 학자의 주장이다. 귀 기울여볼만하지 않은가.


사실 인간은 세월이 가면 늙어야하고 때가 되면 죽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과하게 회춘하려는 노력은 명을 재촉할 수 있고 아름다움을 유지하겠다는 성형의 노력은 자연스럽지 않아 보였다. 나이에 맞게 주름지는 피부가 아쉽지만 당연하다 생각한다. 적지 않은 나이에도 팽팽한 피부와 검은 머리는 노력도 있겠지만 타고난 부분이 크다고 본다. 그런데 저자의 사진을 보고 생각을 달리 해야할까 싶었다.


데이비드 A. 싱클레어 교수는 사람이 "늙는 이유와 노화를 되돌릴 방법에 대한 연구"로 알려져 있다. 연구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발견한 "세상에 유익한 약물과 기술로 상용화 하는 일"도 하고 있다. 다시 말해 그는 연구만 하는 이론가가 아니라는 거다. 자신의 연구 결과를 인체에 적용할 약과 처치 기술로 실용화 하는 사람이다. 이 부분이 무언가를 믿거나 사용했을 때 영생을 얻으리라는 말과 저자가 다른 지점이다.


책은 노화를 질병으로 정의하는 것을 기본 가정으로 하고 있다. 근대를 지나 현대로 오면서 인가의 평균수명은 놀랄만큼 길어졌다. "평균 수명의 증가는 식량과 깨끗한 물을 안정적으로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유아와 아동의 사망률이 줄어들면서" 높아진 사망 하한선은 평균 수명을 늘렸지만 상한을 늘리지는 못했다. 건강 수명도 마찬가지다. 사는 기간은 길어졌지만 건강하게 사는 기간은 같은 비율로 길어지지 못했다. 덕분에 인생의 말년은 기나긴 병치레의 연속이 돼 버린 것이다. 가족과 떨어져 요양원을 전전하며 고통의 시간을 보내거나 치료비로 남은 가산을 탕진해 남은 가족이 위기를 맞기도 한다. 저자는 이런 노년의 문제를 해결책으로 '노화를 질병으로 정의하기'를 제시한다. 노화가 질병으로 정의될 때 의학 연구 지원, 약물 개발, 보험사의 의료비 청구 항목을 위한 체계 구축 등이 따라 오기 때문이다.


노화가 삶의 불가피한 일부가 아니라 "폭넓은 병리학적 결과들이 빚어내는 질병 과정"이라는 것이었다. 이 사고 방식에 따르면 우리가 으레 노년과 연관 짓곤 하는 심장병, 알츠하이머병 같은 증상들은 반드시 질병 자체가 아니라 더 큰 무언가의 증상이다.


아니 더 단순하면서 아마 더 선동적일 방식으로 표현하면 이렇다. "노화 자체가 질병이다."

p.140


저자 자신도 자신의 주장에 대한 반응을 잘 알고 있다. 과학적 근거가 충분함에도 아직 사람들의 인식이 그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인생은 본래 그런거야"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다수인 현실에서 늙지 않는 약물과 치료는 뜬구름 잡는 이야기이거나 사기처럼 들린다. 저자의 동료과학자들은 종종 저자에게 "안 좋게 보일 수 있어."라고 충구한다고 한다. 과학적으로 볼 때 확실한 이야기도 들을 준비가 안된 사람들에겐 무용지물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저자는 자신의 "낙관론"을 멈추지 않는다.


저자는 노화가 일찍 죽을 수 밖에 없는 환경에 적응한 산물이라고 말한다. 험난한 자연 환경에 노출되어 사는 동안에는 '세포 노화'가 30-40대에 암을 막기 위한 전략이었다. 그러나 생존 기간이 길어지면서 노화세포들이 다시 암의 원인이 되었다. 인간의 몸은 그 진화 단계를 넘지 못했다. 저자가 연구하는 노화 방지 기술들은 자연적 진화의 시간을 단축하려는 의도다. 이 주장을 밀고 나가 보면 자연상태에서도 언젠가는 인간이 노화를 극복하는 때가 올 것이라는 예측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미래를 향한 진화의 시계를 좀 더 빨리 돌리는 것이 그리 부자연스럽지만은 않은 일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진화는 아직 그 증가한 수명에 맞추어 적응할 기회를 얻지 못했다. 우리는 노화세포에 시달리고 있으며, 노화세포는 방사성 폐기물이나 다름없다.

p.271


저자와 저자의 가족은 자신의 연구 결과에 따라 세포의 손상을 복구하고 노화를 늦추는 약물을 복용하고 있다고 했다. 저자가 제시한 과학적 연구의 증거들, 저자가 자신과 유사한 유전자를 타고난 동생과 자신의 건강을 비교한 이야기, 무엇보다 저자의 사진을 볼 때 노화 방지 약물에 대한 저자의 주장은 의미있어 보인다.


주변에 노화를 예방한다는 수많은 의약외품, 보조식품들이 있다. 하지만 객관적인 안정성이 보장된 정말로 신뢰할만한 것이 무엇인지 알기 어렵다. 노화가 '질병'으로 지정되면 의학계가 합의하는 노화 방지 약물의 규정이 정해질까.


다행히 약물외에도 노화를 늦추고 건강 수명을 늘리는 방법이 있다. 저자는 다음과 같이 제안한다.


적게 먹어라.

간헐적 단식 또는 주기적 단식을 하라.

육식을 줄여라.

땀을 흘려라.

몸을 차갑게 하라.

후성유전적 경관을 흔들지 마라.


'후성유전적 경관을 흔들지 마라'는 쉽게 말해 DNA 손상을 촉진하지 말라는 얘기다. 즉 담배, 가공식품, 방사선을 피하라는 말이다. 나머지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아는 건강을 위한 생활 습관과 크게 다르지 않다. 어쩌면 우리는 이미 건강 수명을 늘리는 방법을 상당히 알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인공적, 기술적인 노화방지에 따르는 여러 가지 고려할 점들이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노화 치료에서의 차별 문제일 것이다. 누군가는 혜택을 받고 누군가에게는 접근할 수도 없는 기술이라면, 그것이 인간에게 최소한의 평등을 보장하는 것을 흔드는 것이라면 말이다.


저자는 노화에 대해 우리가 가지고 있던 생각을 점검하면서 책을 시작하고 현재의 기술들을 서술한 뒤 미래의 문제들을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그 결과를 대단히 낙관적으로 바라본다. "다행히 그런 일이 벌이지기 전에 나는 이미 죽고 없을 거야."라며 "미래를 나와 상관없는 문제"라고 여기는 태도로는 현재의 기술 발달이 가져올 가까운 미래조차 대비할 수 없다. 저자는 "미래에 영향을 미칠 우리의 과거 결정에 책임을 지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노화의 문제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닥친 불행에 대해 우리는 살아서 설명해야 할 것이라는 말이다.


그저 생명 연장의 개념으로 생각했던 노화 방지의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을 새롭게 할 수 있는 독서였다. 기술은 우리의 관념의 변화보다 훨씬 빨리 앞으로 나가고 있었다. 저자는 고통스런 생명의 연장이 아닌 오랜 기간 건강하게 살기의 문제를 다뤘다. 누구나 바라는 그 일을 위해서는 미리 아니 시급히 준비해야 할 책무들이 많았다. 정치문제, 사회 보장 제도 개혁, 양극화 문제 등. '건강하게 오래 살기'를 보편적인 것으로 만들기 위해 선행해야할 그 일들이 무겁게 다가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