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 아더 피플 - 복수하는 사람들
C. J. 튜더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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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째 여름마다 만나는 작가다. 잊고 싶은 어린 시절로부터 온 편지 또는 죽은 줄 알았던 동생과 함께 스산한 냉기를 몰고와서 수백 페이지의 책을 쉬지 않고 읽게 만드는 C.J.튜더. 이번엔 잃어버린 딸 이야기다.


표지를 보자마자 익숙함이 느껴진다. 『초크맨』의 모티브가 된 분필 그림과 닮은 졸라맨이 그려져 있다. 강렬한 데뷔작의 그림자는 지워지기 힘든 걸까 생각했다. 도입부에서는 딸을 태우고 가는 차를 쫒아가는 아버지의 추격전이 펼쳐진다. 이 설정 또한 얼마전 읽은 다른 소설의 데자뷰였다. 부모가 모르는 사이 아이가 납치당하는 설정이 자극적이어서 여러 소설에서 차용되는 걸까. 데뷔 3년차, '여자 스티븐 킹'은 비슷한 소재를 택한 다른 작가들과 어떻게 다른 길을 갈지 궁금했다.




게이브는 3년전 강도에게 아내와 아이를 잃었다. 그날은 아이와 저녁시간을 함께하겠다고 한 아내와의 약속했었다. 꽉 막힌 도로 위에서 초초해져 있던 그의 눈에 딸과 닮은 아이가 타고 있는 차가 눈에 들어온다. "아빠!"를 부르는 아이의 얼굴을 자세히 볼 틈도 없이 아이를 태운 차는 꽁무니를 뺀다. 휴대전화 배터리는 마침 떨어지고 급히 찾은 공중전화 수화기에선 경찰의 목소리가 들린다. 경찰이 말한다. 아내와 딸이 죽었다고. 시체로 발견된 둘의 장례식도 치러졌다. 아내와 딸에게 닥친 불행을 게이브는 믿을 수 없다. 그날 그 도로위 그 자동차 안에 딸이 있었다. 딸을 찾기 위한 아버지의 시간이 시작됐다. 희망은 그를 살게 하지만 고통의 시간을 사는 그는 산 목숨이라기 보다는 죽음에 가까워 보인다.

사람들이 말하길 인간을 망가뜨리는 건 증오와 가슴에 맺힌 응어리라고 한다. 아니다. 인간을 망가뜨리는 건 희망이다. 기생충처럼 안에서부터 갉아먹는다. 상어 위에 매달린 미끼처럼 만든다. 하지만 희망이 인간을 죽이지는 않는다. 희망이 그 정도로 친절하지는 않다.

p.22


이지를 찾을 수 있을 것인가가 이 소설의 중요한 결말은 아니다. 이미 소설 초반부터 살아있는 이지를 등장시키기 때문이다. 이름은 다르지만 눈치빠른 독자라면, 스릴러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알아채지 못할 수 없다. 당연하게도 소설의 절정은 앨리스라 불리던 소녀가 이지라는 이름을 되찾는 장면이다. 그 중요한 사실이 어떻게 밝혀지게 될까를 따라가는 과정이 이 책에서 얻을 수 있는 스릴의 거의 전부다. 한 아이의 존재를 지우게 한 원인은 무엇일까. 이렇게 살아 있는 아이를 죽었다고 믿게 만들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작가가 이 소설을 통해 하고 싶었던 이야기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단순하지 않다.


책은 딸 이지를 찾는 게이브의 동선을 쫒는 가운데 침대에 누워 있는 소녀를 병치해서 보여준다. 의식을 잃고 오랜 시간 누워지내는 소녀다. 이 소녀와 생존을 숨긴 아이는 무슨 관계가 있는 걸까.


저자는 과거의 일이 원인이 되어 현재의 고통이 되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은 듯하다. 『초크맨』과 『애니가 돌아왔다』에서도 학창시절 사건의 결과가 수 십년 후에 돌아왔다. 과거는 끝임없이 현재에 달라붙어 인물들의 삶을 달라지게 만들었다. 『디 아더 피플』에서도 마찬가지다. 게이브에게는 과거의 족쇄가 있었다. 자신은 그 댓가를 치렀다고 생각하는 일. 하지만 그 일과 관련된 누군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인생은 불공평하니까. 골라서 선택해야 하는데 가끔은 선택하기가 어려울 때도 있다. 가끔은 아예 선택권이 없을 때도 있다. 끈으로 묶고 풀로 발라서 고칠 수 없는 물건과 사람도 있고 누구나 앞 베란다에서 햇살을 맞으며 생을 마감하는 것은 아니다.

p.278


과학 실험의 인과 관계와는 다르게 인간 세상의 원인과 결과의 값이 정확히 일치하기는 쉽지 않다.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그래 보인다. 누군가 한 일에 대한 보상이나 처벌이 지나치거나 턱없어 보일 때가 많다. 특히 타인이 나에게 준 피해에 대한 처벌은 언제나 적게 느껴지게 마련이다. 그럴 때 생기는 억울하고 분한 마음이 '가슴과 영혼에 병'을 초래한다. 세상의 잣대와 처벌로 잠재우지 못해 쌓인 억울함이 자기 구제의 방법을 찾았다. '디 아더 피플'. 그들은 누군가의 요청을 어떠한 것이든 실현해준다. 그것이 무엇이 됐든. 그리고 댓가로 요청자는 언제 올지 모를 그들의 다른 요청을 실행해야 한다. 반드시. 주고 받는 거래다. 단, 나에게 온 요청은 거절할 수 없다. 실행하지 않으면 상응하는 보복이 뒤따른다. 선택할 수도 거부할 수도 없는 관계 속에서 세상과 다른 그들만의 정의를 실현한다.


'디 아더 피플'이 법 체계가 용인하지 않는 사적 정의 구현을 추구한다. 하지만 그렇게 실행된 정의는 또다른 악의 그물을 짤 뿐이다. 분노 속에 저질러 버린 일들은 사지지 않았다.복수는 복수를 낳고 내가 휘두른 칼은 총알이 되어 돌아왔다. 그 과정에서 소중한 것들이 계속 부서졌다. 사라져가는 것은 분노가 아니라 삶이었다.


하지만 케이티는 뭐든 잘 버리지 못했다. 얼마나 쉽게 잃어버릴 수 있는지 알기 때문이다. 인생, 가족, 사랑. 모든 게 너무나 쉽게 부서졌다.

p.271


비극이 일어난다. 누군가의 의도 없이 일어나는 참사가 있다. '그때 이랬더라면, 저쟀더라면, 그랬다면, 안그랬다면' 모든 게 달라질 수 있었을 것만 같아 후회한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아주 깊숙한 곳까지 파헤치고 보면 단순히 재수가 우라지게 없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분노와 억울함을 해결하는 일은 물론 중요하다. 개인들의 억울함이 쌓인 사회가 좋은 사회일리 없다. 부조리함에서 기인하는 납득할 수 없는 분노와 억울함은 해소되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다른 시각이 필요한 비극들도 있지 않을까. 완전한 정의 구현이라 생각한 일이 그에 상응하는 억울함을 유발하는 비극이 되기도 하므로.


게이브는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다'는 말을 믿지 않았다. 비극의 포인트는 말이 안 된다는 데 있는데, 사람들은 비극을 이해하려고 애를 썼다. 그냥 벌어진 일인데.

p.429


『디 아더 피플』에는 환상적 요소가 다분하다. 『애니가 돌아왔다』에서 얼핏 보였던 초월 세계에 대한 서사가 이번 책에서는 더 짙어졌다. 삶과 죽음의 중간 지대인 바닷가가 묘사된다. 그 해변에는 삶을 떠나지 못한 소녀가 누군가와 함께 떠나기를 기다리며 방황하고 있다. 그 바닷가에 발을 디뎠던 누군가는 삶을 향한 새로운 마음을 먹게 되기도 한다. 소설에 신비로운 분위기를 드리우는 바닷가에 대한 서술을 읽으며 언젠가는 작가 C.J. 튜더를 완전한 심령스릴러물로 만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또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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