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여자 - 일상에 도전하는 철학을 위하여
줄리엔 반 룬 지음, 박종주 옮김 / 창비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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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이라는 말로 묘사되는 경험이 너무도 반갑고 귀하게 느껴질 만큼 우리 여성들은 비우호적이고 심지어는 모욕적인 형용사나 별칭을 뒤집어쓰는 데에 익숙하다.

p.8


추천사의 첫 마디다. '여성'이라는 단어에 '생각하는'이라는 수식어를 사용하는 일이 모순적으로 여겨졌던 때가 있다는 말이다. 추천사를 쓴 앤 서머스는 저자 줄리엔 반 룬이 '사려 깊다는 것, 삶에 대한 커다란 질문들의 답을 원한다는 것'을 여서의 특징의로 제시했다고 쓴다. 형이상학의 문제가 아닌 우리의 날마다 대하는 일상의 문제를 철학과 연결시킨 저작이라는 소개다.


이 책의 목표는 '철학적 사유와 일상생활을 연결'하는 것이며 줄리엔 반 룬은 매우 흥미로운 방식으로 이를 해냈다. 이 책은 한편으로는 자신의 어린 시절, 어머니가 된 것, 학계에 들어간 것, 오래된 관계를 떠난 것, 비참한 끝을 맺은 절친한 친구를 보낸 것, 여행, 배움, 사유에 관해 종종 편치 않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회고록이다. 또한 생활이나 일터에서 그녀를 사로잡아온 이 책의 뼈대가 되는 주제들에 대한 탐구이기도 하다.

pp.8-9


반가운 마음이 먼저 들었다. '여성'이라는 속성에 따르는 개인적, 사회적 문제를 바라보는 시선을 다룰 것이라는 기대에서였다. 철학을 '지혜를 사랑하는 일'이라고도 '인생, 세계 등등에 관해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한다. 즉, 어떤 대상 또는 상황에 대해 (현명하게) 숙고하고 이해하는 일이다. 인간 삶에 자주 철학적 이해를 구해야 할 사건이 일어나진 않는다(그런 일이 적은 삶이 행복한 삶이기도 하고). 삶은 매일 반복되는 일상으로 구성되어 있다. 누구나 겪을 만한 생활의 일들, 생각없이 흘려버리는 소소함들. 이런 일들이 모여 매일을 이루고 삶을 조직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일상에 대한 지혜가 더 필요할 게다. 저자가 말하는 '매일 협상해야 하는' '물리적, 사회적, 제도적 구조들'에 대한숙고가 귀하게 느껴진 이유다.


내가 보기에 철학의 목적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계에서의 우리 경험들을 분석하여 이해할 수 있도록 우리를 도와주는 것이다. 우리가 매일 협상해야 하는 저 물리적, 사회적, 제도적 구조들ㅡ일, 가족, 이웃, 동거ㅡ은 그 자체가 특정한 사유방식의 산물들이다.

p.13


저자는 여섯 가지 주제에 대해 여섯 명의 철학자와 이야기를 나눈다. 이중 철학 학계에 자리잡은 여성은 단 한 명이다. 인생과 세계에 대해 체계적으로 사고하는 일이 철학임에도 이 '여성'들이 한 생각과 말은 학계에서 학문활동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모양이다. 그것이 '여성'의 문제일까, 혹은 '학계'의 문제일까. 저자가 제기한 의문의 지점이다.


약 20년 전 나는 알랭 드 보통의 『철학의 위안』을 대단히 즐기면서 읽었다. 제목이 말해주듯 철학에서 위안을 길어올리는 책이었다. 그런데 여기에는 명백한 문제가 있었다. 죽은 백인 남성들의 사유로만 채워져 있다는 점이었다. 물론 그들은 훌륭한 사상가들이지만 모두 특정한 유형에 속한다. 책표지를 덮자마자 나는 생각했다. 이런 책을 쓰되, 모든 살아 있는 여성의 문제를 다루면 멋지지 않을까?

저자 인터뷰에서(책 뒷표지 中)


저자가 다룬 '일상에 도전하는 철학'의 주제는 사랑, 놀이, 일, 두려움, 경이, 우정이다. 각각의 주제마다 그 주제를 깊이 다룬 '여성'철학자들을 인터뷰했다. '사랑'에 대해서는 로라 키프니스, '놀이'는 시리 허스트베트, '일'은 낸시 홈스트롬, '두려움'은 줄리아 크리스떼바, 로비 배티, 헬렌 캘디콧, '경이'는 마리나 워너, '우정'은 로지 브라이도티와 함께 했다.


추천사에 등장한 '회고록'이라는 정의는 책을 읽기 시작하자마자 아주 적절한 것으로 드러났다. 저자는 각 주제에 대한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각 장을 서술하고 있다. '사랑'을 다루는 첫 번째 장에서는 자신의 오랜 동거 생활의 끝을 담담하게 서술한다. 그리고 또다른 만남에 대해서도. 저자는 자신의 헤어짐 그리고 만남의 과정에 로라 키프니스의 저작 『사랑과 맞붙기』의 서술들을 대입해 생각을 이어간다.


일, 일, 일… 근무시간이 아닌 때가 있기는 한가?… 일부일처 관계가 노동이 될 때, 욕망이 계약에 따라 조직될 때, 장부가 기록되고 피고용자들의 노동처럼 신의가 착취될 때, 결혼이 이 세상의 아내와 남편과 동거 파트너 들을 현상유지식 기계장치에 옭어매기 위해 고안된 엄격한 생산현장 규율이 통치하는 가내 공장이 될 때 ㅡ 이것이 정녕 우리가 말하는 '좋은 관계'인가?

p.30


사람들이 결혼과 여성을 바라보는 시각을 이야기하면서 저자는 씨몬 드 보부아르와 장뽈 싸르트르 커플을 거명한다. 둘의 사상은 각각 실존주의 운동에 기여가 큰 인물이다. 그럼에도 이들은 특히 씨몬 드 보부아르의 성취는 '성공적인 결혼'에 비유되는 '평생의 관계'에 무게가 실려있다. 저자는 '영원한 커플 상태'에 대한 기대 때문에 이별이 무능력으로 취급되는 현상을 지적한다. 사랑의 성공이 실패보다 더 예외적이라는 말이다. 사랑에 대한 문화적 기대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일이 '사랑'에 대한 철학적 이해의 시작이다.


하지만 그러한 앎은 이해를 위한 도구가 되어주며 우리로 하여금 잠시 멈춰 주의를 기울이고 우리 여성들이 자주 발을 빠뜨리는 저 '정상'적이고 '복잡할 것 없는' 일상들을 재검토할 수 있게 해주는 촉진제로서 기능한다.

p.54


'놀이'를 다룬 장에는 미술비평가이자 소설가 시리 허스트베트와의 대화가 담겨있다. 인간발달 과정에서 '놀이'의 역할에 대해 말하던 허스트베트는 남성적 학문 연구 경향을 지적한다. 허스트베트는 놀이에 필요한 상상력이 여성적인 것으로 코드화돼 있다고 경고한다. '무의식, 수면, 욕망, 충동, 놀이, 재미'등과 같이 '창의적 작업'에 절대적 영역들이 여성적으로 코드화 되어 왔음을 지적하는 것이다. 문화적 의미에서 '여성적'임은 곧 '모욕적'인 것을 은연중에 암시하고 있다는 말이다. 이런 경향은 심지어 '의식되지도 않'는다.


이상하게 비판받지 않는 커다란 거짓말 몇개가 있죠. 그중 하나가 전적으로 자율적인 개인, 그러니까 고독한 주체, 스스로 결정하며 이리저리 다니는, 대가 남성인 주체의 정치이론이에요. 글쎄, 좋아요 어느 정도의 자율성은 있죠. 하지만 그런 모델들은 언제나 인간의 발달을 잊고 있어요. 그건 절대로 포함하지 않죠. 뇌의 작동방식에 대한 모종의 정적인 모델들, 혹은 뇌가 움직 이고 변화하는, 시간이 지나면서 발달하는 기관이 아니라는 듯이 뇌를 고립적으로 연구하는 것…그래서는 아무데로도 나아가지 못할 거예요.

pp.85-86


우리가 상상력을 여성적인 것으로 코드화하고, 여성적feminine이라는 형용사 자체가 계속해서 모욕적인 형용사로 쓰이는 문화 속에서 살고 있다고 한다면, 저는 인간 존재가 곤란에 처해 있다고 생각해요.

p.111


일에 관한 사유에서는 일터에서 여성의 몸을 대하는 시선과 노동투쟁과 페미니즘의 통합에 대해 낸시 홈스트롬과 대화를 나눴다. '공적 장소에서 여성의 몸은 상대적 표준으로 여겨지는 남성의 몸과는 달리 문제적'이며 '생산현장에서의 착취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는 노동자 계급투쟁은 너무 좁은 개념'이라는 당연한 언급이 새로웠다. 여러가지 사회적 관계에서 여성이기 때문에 느꼈지만 말로 표현하지 못한 불편감이 언어로 명료화되어 있는 지점이었다.


두려움을 다룬 장에서는 '성과 폭력성'에 대한 인터뷰가 이어진다. 헬렌 캘디콧의 발언은 역사와 영웅을 보는 시각에 대해 생각해 볼 바를 꼬집고 있다.


'정말로, 대체 왜 전쟁을 찬양하는 걸까요? 왜 유럽에는 광장마다 말을 탄 남자 동상이 있는 걸까요? 역사상 "위대한" 사람들의 정말 많은 수가 살인자들이에요. 이게 대체 무슨 일일까요? 전 알 수가 없어요.'

p.193


여성과 남성의 말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받아들여진다는 저자의 의견도 새롭지 않은, 그러나 짚어야할 대목이다. 우리 문화에서도 이런 일은 너무 당연한 현상이어서 그런 줄도 모르고 지나가는 일상이다. 부당함에도 불구하고 당연하게 체화되어 있다.


우리 문화에서 남성들의 말과 여성들의 말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을 두고 마리나 워너가 한 말이 떠올랐다. 전자가 자신감을 갖고 자신의 생각을 말하려는 성향은 매우 자주 존경과 함께 받아들여지지만, 후자가 그럴 경우엔 지나치게 떽떽대는 것으로, 혹은 수다스러운 성격으로 취급된다.

p.212


배움의 전제가 되는 경이, 호기심에 대해서도 성별에 따라 대우가 달라진다. 호기심은 '남자 쪽에서는 과학적인 미덕이지만 여자 쪽에서는 이브의 죄와 동일시'된다. 이러한 젠더적 함의는 여성들의 '지식과 의견은 처음부터 의미가 없다고 여겨'지게 만들고 결과적으로 '여성과 어린이는 역사적 문화기록에서 구조적으로 부재하기에' 이른다. 이것이 역사를 거슬러 올라갈 수록 인간으로서의 여성에 대한 기록을 찾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저자는 이 모든 방해에도 불구하고 체념하지 말자고 주문한다.


… 성 바울의 작업이 틀이 되어 여성은 너무도 자주, 그런 (경이와 호기심의) 망망대해에 발끝을 담가보는 것조차 적극적이고 체계적으로 방해받았다.… 어떤 구조가 우리를 제약하고 곤란에 처하게 한다 해도 우리가 그것을 어쩔 도리가 없는 것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 이 장은 경이에 대한 우리의 능력이 실제로 우리가 누구인지를 바꿀 수 있는가 하는 질문에서 출발했다. 답은 분명하다. 그렇다. 바꿀 수 있다.

p.268


낯선 구성의 책이었다. 저자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소설처럼 풀어내면서 일정한 대목마다 연결되는 철학적 주제를 이어댔다. 각 주제를 함께 풀어내는 여성 사상가들의 이야기는 때로는 여성의 입장에서 절절히 와닿고 때로는 배경지식의 부재로 소화하기 벅차기도 했다. 이 책의 의미는 무엇보다 살아있는 우리 시대의 여성 철학자의 음성을 듣는다는 데 있을 것이다. 저자는 저작을 통해서가 아니라 수차례의 인터뷰를 푼 녹취로 여성 철학자의 이야기를 전한다. 살아있는 대화로 전해지는 생각들 그리고 현 시대를 살아내고 있는 저자의 경험들이 어우러져 저자가 의도한 '일상에 도전하는 철학'의 모습을 어렴풋이 그릴 수 있었다.(배경지식과 독해력 부족으로 미진한 이해가 아쉬울 따름이다) 다름아닌 '여성'으로서 일상에 도전하는 철학의 모습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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