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을 나온 암탉 (출간 20주년 기념판) - 아동용
황선미 지음, 김환영 그림 / 사계절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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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수가 주인공이 죽었다. 암탉 잎싹은 족제비에게 순순히 자기 목을 내밀었다. 영화 <마당을 나온 암탉>의 엔딩이다. 권선징악 또는 '그들은 모두 행복하게 살았다'는 식의 결말이 아동물에서 볼 수 있는 결말이다. <마당을 나온 암탉>의 마지막은 익숙한 어린이용 애니메이션의 그것과는 지구와 안드로메다 사이만큼 거리가 멀었다.


황선미 작가의 책 『마당을 나온 암탉』을 알게 된 건 영화 제작 소식을 통해서였다. 영화 관련 회사에서 일했던 터라 제작 중 혹은 개봉예정인 영화 라인업을 조금 일찍 알 수 있었다. 주요 제작사에서 만드는 영화의 개봉일정은 특히 신경을 쓰는 편이었다. 2000년대 중반쯤 한국영화제작사 명필름의 라인업에 『마당을 나온 암탉』이란 영화가 등장했다. 닭이 주인공인 영화? 한국영화계에서 나름 의미있는 작품들을 제작해 온 영화사에서 만들기로 한 애니메이션이 궁금했다. 원작이 어떻길래 명필름에서 제작을 결정했을까. 일반 영화 제작과 달리 애니메이션은 제작 기간이 무척 오래 걸렸다. 제작을 결정했다는 소식이 2005년 경, 제작에 돌입했다는 뉴스가 2006년에 나왔다. 그 후에는 개봉 라인업에 제목을 올린채 몇 년이 지나갔다. 제작 중에 엎어진 걸까? 라인업을 정리할 때마다 잠깐씩 궁금했다. 그러면서 또 몇 년이 지나고 그 사이 나는 영화 쪽 일을 그만뒀다.


잊고 있던 영화가 TV에서 나오고 있었다. 우연히 채널을 돌리다가 만난 영화는 마지막 장면만 남아있었다. 체념한 표정의 암탉이 순순히 족제비에게 잡히고 있었다. 사냥꾼 족제비의 눈에도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아이들이 보는 영화에서 주인공이 죽는 장면이 나오는 것도 놀라웠다. 게다가 이른바 '악'으로 불릴만한 나쁜 놈의 표정은 이 작품이 기존의 아동물과 다른 지점에 있다는 걸 깨닫게 했다. 경험적으로 원작이 있는 영화는 영화보다 원작이 좋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이 경우는 선뜻 책을 찾아 읽기 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충격적인 결말을 미리 알아버렸기 때문이었다. 잎싹이가 아무리 알을 품는 꿈을 이룬다해도 족제비에게 목을 내놓는 순간을 다시 만나고 싶진 않았다. 또 시간이 흘러갔다.


『마당을 나온 암탉』이 출간된지 20주년이 됐다. 그동안 책은 세계 여러 나라로 수출됐고 영화로나 나름의 성공을 거뒀다. 스무 살 성인이 된 책은 양장본 기념판과 새로운 그림을 담은 특별판으로 거듭났다. 특별판의 그림은 윤예지 작가가 맡았다. 기존판의 김환영 작가의 그림이 좀 더 사실적이고 책의 내용을 잘 반영하는 것이었다면 윤예지 작가의 그림은 그래픽적 요소가 강하다. 성인 독자를 타겟으로 한 그림이라고 한다. 특별판 전체의 그림을 다 보진 못했지만 간결한 그림체에 해석의 요소가 더 많이 담겨있을 것 같다.


김환영 작가는 20주년 기념판에서 어린이책 그림이 화가의 독후감이라고 썼다. 그의 말대로라면 김환영 작가의 독후감이 어느 누구의 것보다 진지한 것일 게다. 문장을 읽으면서 생각한 양계장이 작가의 그림 덕에 한층 선명해졌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 책에 맞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 양계장을 직접 방문 취재했거나 사진으로라도 연구했음이 틀림없다. 작가의 그림에는 상상으로만 그릴 수 없는 사실성이 담겨 있다. 잎싹이 알을 낳던 양계장 첫 번째 풍경이 대표적이다. 층층이 계단식으로 쌓여있는 닭장, 천장에 늘어진 전선에 매달린 노란 전구, 바닥에 쌓여있는 달걀판, 깨져 뒹구는 달걀 껍데기, 반쯤 퍼낸 사료가 담겨진 외바퀴 수레, 각각의 표정으로 사료먹기에 정신이 없는 닭들. 이 그림 하나로 저 속에 갖힌 잎싹이 어떤 상황인지 느낄 수 있었고 아무렇지 않게 깨져 흩어진 알껍질에 잎싹이 슬픔을 알 수 있었다. 김환영 작가는 이 책을 처음으로 읽은 사람 중 가장 깊게 읽은 독자임에 틀림없다. 특별판에서는 이와는 결이 다른 또 다른 화가의 진지한 독후감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어린이책 그림은, 최초 독자의 한 사람인 한 화가가 솔직하게 써 내려간 독후감이기도 하거든요. 그림이 조금 서툴더라도 글이 품고 있는 철학과 세계관을 지지하고 몰입할 때 비로소 그림은 살아서 움직입니다. p.8


황선미 작가가 책에 담은 생각은 책 출간 후 시간이 지나면서 더욱 중요해졌다. 우리안의 다양성이 감췄던 모습을 드러내는 경우가 많아졌다. 다름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이 전환이 절실한 이유다. 잎싹은 자신과 다른 종인 야생 청둥오리의 알을 품는다. 알에서 나온 새끼가 닭이 아닌 오리임을 알고도 자신의 자식으로 받아들이고 사랑을 다해 돌본다. 자신이 알을 품는 동안 주변을 지키고 깨어난 새끼와 잎싹이 저수지로 이동할 시간을 벌기 위해 몸을 바친 나그네 오리에 대한 의리도 있었겠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닭장을 나온 잎싹이 품고 있는 소망이었다. 알을 품어서 병아리의 탄생을 보는 것, 잎싹은 자신의 소망에 따라 태어난 새끼를 사랑할 뿐이다. 그것이 오리인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다른 존재를 완전히 납득하기는 어렵다는 것, 알고 나서 품으려 할 때는 때가 늦을 수 있다는 것을 아는 일이 중요하다. 우선 이해하고 포용하려 노력하는 일이 중요하다.


우리는 다르게 생겨서 서로를 속속들이 이해할 수 없지만 사랑할 수는 있어. p.87


같은 족속이라고 모두 사랑하는 건 아니란다. 중요한 건 서로를 이해하는 것! 그게 바로 사랑이야. p.163


잎싹과 족제비는 악연일까. 병든 닭이 되어 닭장을 나왔을 때부터 잎싹은 족제비에게 쫓겼다. 알을 품는 동안에도 초록머리가 자라는 동안에도 족제비는 잎싹 모자의 숨통을 조인다. 혹독한 겨울 끝 어느 은신처에서 잎싹은 눈도 못뜬 핏덩이 족제비 새끼를 발견한다. 무력한 새끼들을 보면서 잎싹은 자신이 마지막으로 낳았던 알을 떠올린다. 미쳐 껍데기가 여물지도 못한 채 버려져서 흘러내린 알. 잎싹은 새끼를 볼모로 족제비를 위협한다. 나그네 오리를 죽였고 잎싹과 초록오리를 사냥하려했던 족제비는 공평하지 않다고 말한다. 자신은 단지 배가 고팠기 때문에 굶지않으려고 사냥했을 뿐이라고. 이것이 자연의 순리라면 잎싹과 족제비는 관계는 운명이다. 잎싹은 자신이 먹이 사슬의 연쇄 고리 중 하나라는 사실을 이해한다. 그리고 자신의 알처럼 다치기 쉬운 족제비 새끼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놓는다. '자연의 순리'는 예외가 없으며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어쩌면 잔혹한 이런 모습을 아이들이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생각한 탓인지 외국에서는 영화의 마지막 부분을 편집해 상영했다고 한다. 아이들은 아름답고 행복한 결말만을 보아야 하는 것일까. 우리의 삶이 언제나 해피앤딩은 아니라는 사실이 숨겨야 하는 일일까. 『마당을 나온 암탉』의 가치는 자연의 순리를 그대로 보여준 데 있다. 닭은 족제비를 이길 수 없고 배부른 족제비가 재미로 닭을 사냥하지는 않는다.


잎싹에게는 알을 품는 것 외에 또 다른 소망이 있었다. 너무 뒤늦게 깨달은 소망, 초록머리가 떠나고 나서 깨달은 소망은 '나는 것'이었다. 잎싹이 어미로서의 소망 대신 날개 달린 존재로서의 소망을 먼저 품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자식을 낳고 사랑하고 돌보는 삶이 아닌 자기만의 자아 실현을 목표로 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책에서는 이 소망이 죽는 순간 이루어지는 것으로 표현된다. 잎싹은 모든 소망을 다 이룬 것처럼 말이다. 그렇지만 아쉬웠다. '알을 품는 소망'보다 '몸이 원하는 날고 싶은 소망'을 먼저 알아차렸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다른 이야기가 됐겠지만, 잎싹의 삶을 생각할 때마다 '그랬다면…'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아, 미처 몰랐어! 날고 싶은 것, 그건 또 다른 소망이었구나. 소망보다 더 간절하게 몸이 원하는 거였어. p.203


사랑을 다해 키운 초록머리가 자기 인생을 찾아 떠나고 홀로 남은 잎싹은 기억을 붙잡고 산다. 그녀는 많은 기억들이 있어 외롭지 않다고 말한다. 세상은 순리대로 돌아가고 주위의 많은 것들이 사라진다. 그것이 인생이고 그렇기때문에 현재를 즐기고 현재를 집중해야 한다. 잎싹은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현재를 치열하게 느끼며 산다.


어쩌면 앞으로 이런 시간은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소중한 것들은 그리 오래 머물지 않는다. 그것을 알기 때문에 앞싹은 모든 것을 빠뜨리지 않고 기억해야만 했다. 간직할 것이라고는 기억밖에 없으니까. p.171


책을 알게 된 후 읽기까지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다. 애초 우려했던 대로 눈물 천지가 된 독서였다. 잎싹과 초록머리가 헤어지는 장면에서, 잎싹의 목숨이 끊어지는 장면에서 순식간에 눈앞이 뿌예졌다. 눈물과 함께 솟아난 감정은 복잡했다. 슬프기도 했고 화도 났으며 부럽기도 했고 부끄럽기도 했다. 아이들이 이 책을 읽고 느끼게 될 감정의 폭은 얼마나 넓을까. 이렇게 다양한 의미와 감동을 담은 책을 읽은 아이들은 또 얼마나 많은 생각을 하게 될까. 아이들에게만 추천하기엔 아까운 책, 『마당을 나온 암탉』은 나에게 오랜만에 만난 옛 친구같은 책이다. 안다고 생각해서 더 알아보려 하지 않은 담고 있는 가치가 보이는 것보다 훨씬 큰 친구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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