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플러62 Vol.5 : 바이러스 케플러62 5
티모 파르벨라.비외른 소르틀란 지음, 파시 핏캐넨 그림, 손화수 옮김 / 얼리틴스(자음과모음)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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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플러 62e 행성으로 떠난 여행의 막이 내렸다. 6권의 책에 걸친 질문과 호기심의 시간이었다. 지구로부터 1200광년 떨어진 케플러 62로 간 아이들, 그 아이들에겐 전 인류의 운명을 담은 임무가 주어져 있다. 황폐한 지구를 대신할 인류의 터전을 닦는 일이다. 위험해진 지구를 떠나 인류구원의 임무를 띤 아이들이 우주여행을 떠난다. 현재와 같은 환경 파괴가 계속된다면 지구 이외의 삶을 터전을 찾는 일은 머지않아 현실이 될 것이다. 핀란드와 노르웨이의 작가 티모 파르벨라, 비외른 소르틀란의 케플러62에 등장하는 케플러62e는 거문고자리에 실제로 존재하는 행성이다. 책은 생명이 존재할 것으로 예상되는 이 지구형 행성으로 탐험대를 파견하는 설정이다. 놀랍게도 탐험대는 십대의 아이들이며 선발 방식은 게임이다. 예측할 수 없는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선 아이들의 상상력이 더 필요할 지도 모른다. 이야기 속 아이들은 실제로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과 다른 방식으로 살아 남는다. 다만 아이들이 맞닥트린 위험들이 새로운 행성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는 데 이 책의 반전이 있었다.


아리, 요니, 마리에를 비롯한 개척자 일행이 도착한 행성의 자연환경은 지구 못지 않다. 오염되지 않은 공기와 초원, 울창한 삼림에 풍부한 물까지 일견 완벽해보이는 이곳 케플러62e. 걸림돌이 있다면 그곳에 살고 있는 선주민이다. 털없는 곰을 닮은 그나메르 족과 사람보다 큰 여치 형상의 초원족. 행성의 선주민과의 공생할 수 있는 가능성은 있을까. 아이들이 타고 떠난 우주선은 1492년 콜럼버스가 인도대륙을 찾아 떠날 때 탔던 배들의 이름을 땄다. 새로운 행성에서 우리 인류는 또다른 콜럼버스가 될 것인가. 4권이까지 보아온 케플러로의 여행은 아이들이 개척자라는 이름의 살육자가 되는 길을 따르는 듯 보였다. 앞서 초원족과 조우했던 마리에는 그들의 선의를 믿는다. 다른 일행들은 낯선 존재들을 신뢰해야 할 지 선뜻 판단하지 못한다.


개척자 일행 안에서 분열이 일어난다. 뭔가를 숨기는 듯한 지휘자 올리비아의 행동때문이다. 의문스러운 캡슐의 정체를 숨기고 무기에 등록된 생체 정보를 몰래 변경한다. 그녀는 '왕'을 기다리고 있었다. 새로운 세계, 각자의 특기를 발휘해 살아남아야 하는 이 때 누군가의 위에 군림하는 왕이라니. 올리비아는 공생의 방법을 찾기 보다 폭력을 앞세우는 인간을 회의하면서도 해결방법은 그 뿐이라고 생각한다. 저자들은 독자에게 올리비아의 판단에 대한 생각을 묻고 싶었을 것이다. 나보다 큰 권력을 가진 사람의 지시가 나의 생각과 다를 때 특히 그 결과가 파괴적일 것이 자명해 보일 때 어떤 선택을 해야할 지를 묻고 싶었던 듯하다. 올리비아와 같은 수동적인 판단에 안주하는 것으로 책임을 피할 수 있을 것인지 말이다.


왜, 인간은 과거에서 배우지 못하는 걸까? 서로 죽이고 파멸시키는 것 외에는 진정으로 다른 방법이 없는 걸까?

『케플러62 VOL.5』 p.43


인간으로 산다는 것은 실패의 연속일 뿐이다.

『케플러62 VOL.5』 p.121


초원족이라 불리는 대형 여치를 닮은 종족들과 마리에의 생각은 올리비아와 다르다. 폭력을 폭력으로 혹은 할 수 있다면 물리적 폭력을 행사하는 빠른 방법을 옳다고 생각하는 그 반대편에 초원족과 마리에가 있다. 마리에는 세계적인 게임 및 군수산업 수장의 딸로 태어났다. 부족한 것 없이 누리고 살았고 돈으로 친구까지 살 수 있었지만 어쩐 일인지 그녀는 폭력을 믿지 않는다. "KILL THEM ALL"을 가훈으로 삼은 집안 내력과는 반대 방향으로 간다. 일견 차가워 보이는 마리에 안에 숨겨진 따뜻함을 초원족이 알아봤을 것이다. 지구를 파괴한 힘이 케플러62e를 위협하자 마리에는 괴로워 한다. 초원족은 엄청난 에너지의 근원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또한 파멸시켜야 하는 대상으로 지목된다. 자신의 힘으로 초원족과 행성을 보호할 수 없기 때문에 좌절한 마리에는 초원족에게 도움을 청한다. 마리에의 머리 속에는 초원족의 목소리가 울린다.


선한 힘을 믿어야 한다. 오직 선한 힘만.

희망을 가져라.

『케플러62 VOL.6』 pp.78-80


무엇이든 지배하려는 왕 앞에서 '선한 힘'과 '희망'이 의미가 있을까. 이야기 속에서는 물론 의미가 있다. 의미가 있어야 한다. 현실에서는? 긴 시간을 두고 볼 때 의미있는 일이 단기적으로 고통뿐일 경우를 많이 본다. 그럼에도 선함과 희망을 버리지 않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붙잡을 수 있는 희망이란 생각이 든다. 그런 사람들이 손 잡을 수 있어야 탐욕의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구원의 가능성이 있을 것이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위험을 앞두고 서로의 손을 잡은 마리에와 아리처럼.


마리에가 손을 내밀었다. 아리는 마리에의 손을 덥썩 잡았다. 두 사람의 손은 바짝 말라 있었지만 얼음처럼 차가운 길을 걸어온 것을 생각하면 놀라울 정도로 따스했다.

『케플러62 VOL.5』 p.94


정세랑 작가는 이 책을 추천하면서 "이 책을 읽을 어린 SF 독자들이 경험할 짧지만 강렬한 몰입이, 어쩌면 모든 것을 바꿀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했다.(채널예스, http://ch.yes24.com/Article/View/41591) 『케플러62』는 어린이 또는 청소년 도서라고만 분류하기엔 아까운 책이다. 세계를 선과 악으로 단순화하지 않고 인간이 복잡한 존재이고 모순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게임 중독, 환경 문제, AI의 폭주같은 현재 또는 근 미래에 대두될 수 있는 문제를 흥미진진하게 다루면서도 잊지 말아야할 존재에 대한 존중이라는 철학적 문제를 말한다. 등장인물 묘사는 아기자기 하지만 그 귀여운 인물들이 마주하는 환경에 대한 묘사는 서늘할 때가 있다. 그림과 내용의 조화가 탁월하다. 글에 맞춰 그림을 끼워 넣은 것이 아니라 이미지가 문장과 함께 간다. 그림이 이야기를 대신하기도 한다. 글쓴이와 그린이의 협업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주는 책이다.


아이들이 한 번 읽고 재밌어 하는 책과 자꾸 보면서 생각을 다시 해보는 책은 다르다. 『케플러62』는 후자다. 한 눈에 내용을 일별 할 수 있는 책도 아니거니와 등장인물의 심리도 숙고해봐야 한다. 생각하는 책읽기가 필요하지만 그렇다고 어렵지 않다. 수수께끼를 푸는 듯한 재미를 느끼는 과정에서 아이의 생각하는 시간까지 길어지는 건 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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